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허기자의 이 영화를 부탁해] <불신지옥>
-국산 공포물의 불신을 한방에 날려버려

 

2009.8.24.월요일

 

근 십년 가까이 여름시즌을 장식했던 국산 피(血)무비는 매년 수십만 명의 사상자를 배출하며 극장가의 대표적인 지뢰밭으로 악명을 드높였더랬다. 올해 기세 역시 만만찮아서 여름 피무비 시장의 서막을 열어젖힌 <여고괴담5:동반자살>의 경우, 여고괴담 시리즈가 쌓아왔던 명성을 한 큐에 말아먹으며 혹시나 하던 기대를 역시나로 마무리하는 놀라운 살상능력을 만천하에 과시했다. 올해 역시도 볼짱 다 봤다는 불신감이 영화판에 팽배할 때쯤 홀연히 등장한, 관객을 피 보게 만든다 하여 피무비가 아닌 말 그대로의 공포영화가 한편 있으니, 바로 바로바로 이용주 감독의 데뷔작 <불신지옥>되겠다.

 

 

 

제목이 심상찮다. <불신지옥>이란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에서 가져왔나보다. 그럼 일부 빗나간 종교인을 향해 똥침 놓는 영화? 아니다. <불신지옥>은 단순히 특정종교인을 겨냥한 작품이 아니다.

 

물론 광적인 기독교인이 등장한다. (무속신앙인도 등장하지만 너무 자세하게 밝히면 명랑관람에 지장 있는 바, 이 부분은 생략하기로 한다!) 주인공 희진(남상미)의 마더(김보연)다. 딸 소진(심은경)이 실종됐음에도 찾을 생각 없이 기도에만 올인한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찾아준다나 모라나. 희진은 그런 마더의 행각에 복장 터진 나머지 경찰에 신고하지만 형사 태환(류승룡)은 단순 가출을 이유로 수사에 소극적이다. 바로 그때, 윗집에 사는 소진의 친한 언니가 목매 자살을 하면서 상황은 급변, 태환은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다. 하지만 소진을 목격했다는 이웃주민들이 하나둘 이유 없이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보신 바와 같이 <불신지옥>은 종교적인 이야기와는 코딱지만큼도 연관이 없다. 다만 소진 정도를 제외하면 <불신지옥>의 등장인물들은 종교적이다 싶을 정도로 어딘가에 집착하는 모습이 강하다. 희진과 소진 시스터즈의 마더는 말할 것도 없고 옆집에 사는 시한부인생의 수경(장영남)은 병만 낫는다면 뭔 짓인들 벌일 기세며 5공 독재시절의 향수에 푹 절어 사는 아파트 경비원 귀갑(이창직)은 자기 기준에 벗어나면 누가 죽어도 별 상관없다는 투다. 태환 역시 다르지 않아, 딸이 죽을 병에 걸려 있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이렇듯 <불신지옥> 속 대부분의 인간들은 광신도에 다름 아니다. 감독이 보기에 극중 기독교인이나 무속신앙인은 별 반 다를 것이 없는 인물이다. 오로지 자신의 믿음만을 신봉하며 그 믿음에 반하는 이들은 모두 경계하고 해를 입히는 까닭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들의 믿음에서 보는 건 종교의 교리가 아니라 빗나간 믿음이 주는 공포다. 문제는 그것이 그 둘에만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 내 삶은 물론, 당신 주변의 모습도 다르지 않으며 우리가 처한 상황 대부분이 그렇다는 것을 영화는 말하는 듯 보인다. 다시 말해, <불신지옥>은 맹목적 믿음이 만들어낸 불신의 지옥도를 한국적인 풍경 위에 그려낸 작품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는 <장화, 홍련> 이후 국산 피무비들이 베껴먹고 또 베껴먹길 주저하지 않았던 알록달록 꽃무늬 벽지 풍의 숲속의 대저택스러운 공간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불신지옥>의 배경은 지방소도시의 아파트를 웬만해선 떠나지 않는다.

 

아시다시피 아파트는 지극히 한국적인 공간이다. 오로지 잘사니즘을 앞세운 개발논리의 첨병이자, 성냥갑을 도미노처럼 배열한 천편일률적인 만듦새에, 별 특징 없는 공간 속에서 목격되는 특유의 잡스러움까지. 예컨대, 극중 아파트는 교인을 드러내는 교회 명패와 함께 동네무당집 간판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한국 외 전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혹자는 이용주 감독이 봉준호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란 점을 들어 <플란다스의 개>의 오마주, 봉준호에게 받은 영향 등 플란다스의 개 같은 사운드를 내기도 하는데, <불신지옥>은 지금의 한국, 그중에서도 우리네 평균적인 현재 삶이 만드는 무지막지한 풍경에 대한 영화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에 따라 영화는 공간의 배경은 물론, 귀신의 존재나 공포를 발현하는 방식까지도 현실이라는 범위를 넘지 않는다. 귀신의 공식복장이랄 수 있는 하얀 소복과 긴 머리는 저 멀리 나빌레라 흔적도 찾을 수 없을뿐더러 도리어 말끔한 복장에 긴 머리까지 모자로 감춘 이가 귀신이라고 등장할 지경이다. (물론 존나게 무섭다!) 더욱이 가위눌림과 신들림, 그리고 지하실의 어둠과 같은 현실적인 소재로 공포를 자아내는 솜씨는 과연 <불신지옥>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렇게 현실적인 공포를 목격하는 건 아마도 윤종찬 감독의 <소름>(2001) 이후 실로 오랜만의 일이 아닌가 한다.

 

이는 한편으론 그동안의 국산 피무비들이 얼마나 무뇌아적인 방식으로 이 장르를 다뤄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실 공포영화는 오락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지만 그 기반은 현대인의 심연 깊숙한 곳에 짱박힌 불안 심리를 바탕으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장치로써의 공포가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이러한 현실이 뒷받침되어야 하거늘 오로지 놀람과 사지절단으로 오해한 부류들로 인해 국산 공포물이 피무비의 불명예를 뒤집어썼다는 얘기다. <불신지옥>이 그 자체로 좋은 공포영화인 것은 사실이지만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이면에는 피무비들의 활약이 한몫했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 <불신지옥>에서 우리가 가장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미스터리 형식을 띄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 영화는 공포물보다 추리물의 성격이 더 짙다. 사건은 소진의 실종에서 시작되고 이야기 전개는 대부분 태환의 수사로 이뤄지며 결국 소진을 찾음으로써 끝맺음되기 때문이다. 추리물로의 미시적인 접근을 통해 거시적인 공포를 자아낸다고 할까. 그러니까 소진의 행방을 추적하는 과정은 곧 공포의 정체를 쫓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앞서 밝힌 바, 이 영화가 다루는 공포의 정체는 맹목적 믿음이 야기한 불신이다. 즉, <불신지옥>은 소진이라는 공포분자를 추적함으로써 불신이 어떻게 발생하고 전이했는지를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그런 점에서 <불신지옥>은 대만 에드워드 양의 <공포분자>(1986)를 연상시킨다. <공포분자>는 경찰이 소년 갱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사건이 주변 인물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사회의 갈등을 조장하는지를 탐구한 작품이다. 이를 에드워드 양은 굉장히 사실적인 필치로 그려내고 있는 것에 반해 <불신지옥>은 장르로 접근하는 방식을 택한다. 좋은 장르영화란 바로 이런 것이다. 순수하게 오락적인 형태로써 현실과 유리된 듯 보이지만 그 형식을 좇다보면 그 끝은 항상 현실, <불신지옥>과 같은 공포영화의 경우, 현실의 어두운 이면과 맞닿아있다.

 

그에 비춰, <불신지옥>이 품고 있는 영화적 메시지는 가볍게 넘길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소진의 실종은 불안한 시대의 황폐한 정신이 야기한 필연의 산물이며, 영화의 끝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소진은 상식을 뛰어넘은 우리 사회의 각종 광신의 총합이 빚어낸 비극의 총체인 까닭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가슴 찢어지는 자식의, 동생의, 이웃의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불신지옥>은 뜬금없게도 이 모든 이야기의 끝을 모성의 기적으로 마무리 짓는다.

 

이 영화가 내세우고 있는 도발적인 화두에 비해 결말의 야심이 부족해 보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기야 감독에게도 뾰족한 해답은 없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기 위해서 감독이 감당해야 할 모험의 위험성이 너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가령, 특정종교를 비판했을 때 닥쳐올 반발은?) 그런 상황에서 모성에 책임을 지운 지금의 결말이야말로 <불신지옥>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불신지옥>의 결말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가 내세우는 메시지는 유효하다. 정작 <불신지옥>이 처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찾는 관객이, 별로 엄따. <해운대>는 천만 관객 초읽기요, <국가대표>는 3주 만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면서 승승장구한다는데 <불신지옥>은 지난 한 주 동안 10만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물론 한국 공포영화가 그 정도면 많이 든 거 아니야 이렇게 나오시면 할 말 없지만서도 다만 <불신지옥>은 그간의 국산 피무비가 쌓아온 한국 공포물에 대한 관객의 불신을 한 방에 날려버릴 만한 작품이다. 그러니 <해운대>와 <국가대표>도 좋지만 이 영화에도 관심 좀 가져주면 안되겠니? <불신지옥>을 부탁해~   

 

허기자(edwoong@daum.net)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