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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문화사] 잉글랜드 편(1)


2009.8.24.월요일


intro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이 공놀이는 스포츠라고 하기엔 너무 범위가 크다. 축구는 대리전쟁이며 자존심 싸움이고, 민족주의의자의 해방이고, 마초들의 정신적 정액 배출구다. 누군가에게는 눈살 찌푸려지는 전체주의지만 누군가에게는 고난을 마다않고 순례길에 오를 만한 성지이기도 하다. 2002년의 한국처럼 가끔은 축제가 되기도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일종의 축구문화사다.


연재를 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맥락이 필요하다. 이런 연재는 어쩔 수 없이 프로팀, 선수, 전술 등의 이야기를 산개해서 하다가 결국은 범벅이 되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나는 연재의 구성을 국가별로 나누기로 했다. 축구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유럽, 남미의 8개국 -잉글랜드, 네덜란드, 독일,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브라질, 아르헨티나-의 축구사를 국가별로 소개할 생각이다. 당연히 팀 소개는 국가대표팀 위주가 될 것이다. 연재 순서는 미안하지만 내 마음대로가 될 전망이다. 보너스로 다른 지역과 국가의 축구사가 추가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첫 순서는 잉글랜드다. 축구의 유래는 알고 시작하는 게 예의이지 않을까.







잉글랜드 (1) - 축구와 패싸움



잉글랜드는 축구의 고향이자 훌리건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현대라는 시대는 스포츠를 성역으로 만들어놓았다. 우리는 축구 자체는 신성하게 여기면서도, 훌리건 문화는 축구발전을 저해하는 악습이라고 말한다. 나는 딴지 독자라면 이런 통상적인 관념에 반대하기를 바란다. 축구라는 현상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본능은 평화가 아니라 폭력성이다.


축구는 전투를 연상시키는 은유어로 가득 차있다. 태극 전사, 아주리 군단(이탈리아 대표팀), 전차부대(독일), 삼사자 군단(잉글랜드), 오렌지군단(네덜란드), 탱고군단(아르헨티나), 무적함대(스페인) 등등. 이런 애칭(?)에는 종종 역사성이 내재되어 있다. 세 마리 사자는 전설적인 마초인 사자왕 리처드의 문장이었고 무적함대는 스페인을 제국으로 만들어주었으며 오렌지는 네덜란드 왕가의 성(姓)이다(네덜란드식으로는 오란냐, 혹은 오라니에).


브라질에서는 훌륭한 스트라이커를 킬러라고 부르고 독일에서는 폭격기에 비유한다. 분데스리가 시절 차범근의 별명은 갈색 폭격기였다. 선수가 경기에 임하는 것을 출격이라 하는가 하면 팀이 이기고 지는 데에는 격침, 침몰이라는 용어를 쓴다. 외국의 경우 표현이 더욱 과격하여 (대량)학살, 살육, 심지어 토벌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한다. 축구만큼 폭력사건이 자주 일어나는 스포츠도 없다.


축구는 싸움이다. 축구는 세밀하게 정제되어있지 못하다. 손을 쓰지 못하는 축구경기의 형태는 원시적이다. 무딘 발과 머리로 다뤄야 하는 공은 어디로 굴러갈 지 예측하기 힘들다. 게다가 축구장은 넓다. 선수들은 언젠가 터질 지도 모르는 한 골을 위해 경기장을 고되게 뛰어다녀야 한다. 축구가 득점의 카타르시스가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원시성과 우연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리라. 이것은 폭력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럼에도 미디어는 축구로 인해 세계인은 하나가 되며, 월드컵은 평화와 화합의 장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한다. 거짓말이다. 나는 세계평화나 양국 간 화합에 기여하기 위해 한일전 경기를 보지 않는다. 축구는 싸움이다. 내가 시작한 싸움은 아니지만 싸움은 이겨야 맛이다.


축구라는 현상 자체는 선하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렇지만 축구를 폭력성과 분리하려는 메스미디어의 사회적 시도는 좀 가소롭고, 괘씸하다. 그런 이야기들은 축구팬을 온순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축구에 얽힌 진짜 이야기들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을 안 주기 때문이다. 훌리건을 이해한다고 해서 훌리건이 되는 건 아니다.



축구의 기원에 관한 설은 많다. 발로 하는 공놀이의 기록이 동서양 이곳저곳에 흔하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이 축구의 종주국을 자처하고 나섰다. 요즘 중국은 수십 년 째 계속되는 고고학적 발견의 성과에 중화제국주의가 더해져 ~의 종주국이 되는 데 상당히 열심이다. FIFA에서도 이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인데, 중국에서 축구는 전통적인 병영 스포츠로 병사들의 훈련을 겸하는 놀이였다. 언젠가부터 중화주의/거대주의에 빠져있는 중국의 메이저 영화감독들 중 하나인 오우삼은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군사가 축구하는 모습을 필요 이상으로 오래 보여준다. 이 연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잉글랜드를 축구종주국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건, 이곳에서 현대축구와 축구협회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 섬나라 사람들은 어쩌다 축구를 하게 되었을까. 대체적인 설은 노르만 세력이 잉글랜드를 침략하면서 축구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노르만 세력이란 스칸디나비아인들, 그러니까 바이킹을 말한다. 12세기, 잉글랜드에 고난의 시기가 닥친다. 바이킹들이 배를 타고 건너와 북에서부터 남하하며 잉글랜드를 정복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축구의 역사란 바이킹들의 공놀이를 잉글랜드인들이 배우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더 재미있는 설도 있다. 이 설에 따르면 최초의 축구경기는 잉글랜드 동부에서 열렸다. 바이킹 국가인 덴마크도 당시 잉글랜드를 침략했던 세력 중 하나. 이곳 사람들이 잉글랜드와의 전투에서 패해 목이 잘린 덴마크 왕자의 머리를 차고 놀았다는 것이다.


다른 설에도 덴마크인이 등장한다. 잉글랜드 동부지방을 점령했던 덴마크인들이 물러가자 잉글랜드인들이 그들의 영혼에라도 복수하기 위해 바이킹 전사들의 무덤을 파헤쳤다. 거기서 나온 두개골을 공삼아 발로 차고 논 것이 축구의 기원이라는 설이다. 이 설이 사실이라면 덴마크 축구대표팀은 조상과의 관계가 아주 특별한 집단이다. 국제적인 축구대회가 열릴 때마다 아디다스에서 출시되는 공인구의 기원이 사실은 선조들의 두개골이 된다. 힘차게 슛을 하는 덴마크 스트라이커의 모습을 보면, 좀 웃긴다.



선조의 두개골을 컨트롤하고 있는 덴마크의 스트라이커 욘 달 토마손


사실 괴담처럼 들리는 이런 가설들은 꽤나 신빙성이 있다. 모든 구기종목은 죽은 인간의 머리에서 유래했을 지도 모른다. 자연 상태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둥글면서 가볍고 내구성 있는 물건은 인간의 두개골이다. 폴로는 적장의 두개골을 모욕하는 기마민족의 의식에서 유래했다. 말을 타며 막대기로 굴려서 두개골에 스며들어가 있는 영혼까지도 말살하려는 목적에서다. 이 의식이 고대 페르시아에서 스포츠로 진화해 훗날 동서양 각지에 전해지게 된다. 스포츠에 해당하는 고대의 활동은 폭력을 대체하거나 통제하기는커녕 폭력을 심화시키기 위한 경우가 많았다. 원시상태에는 폭력도 오락이 될 수 있었고, 사실 훌륭한 오락이었다. 
 


어쨌든 잉글랜드인들은 축구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 축구는 중세에 크게 유행하게 되는데, 이때의 축구는 스포츠가 아니라 패싸움에 가까웠다. 중세 영국의 도시와 마을들은 인근 지역과 정기적으로 축구경기를 치렀다. 경기방식은 간단하다. : 돼지 방광에 공기를 채워 만든 공(물론 다른 형태의 공도 있었을 것이다.)을 미리 합의된 지점으로 옮기는 편이 이긴다. 그 외에는 무규칙이었다.


즉 발차기와 주먹질은 기본이고 이빨로 물기와 눈 찌르기도 가능했다. 맨몸싸움이라는 룰이 있었지만 주머니에 돌멩이나 쇠붙이를 숨겨갖고 출전하는 일도 흔했다. 더 큰 문제는 선수의 숫자가 무제한이라는 점이었다. 머릿수가 많으면 당연히 유리하다. 그러니 한 마을의 사지 멀쩡한 남자들은 죄다 동원되었다. 심지어 신부까지 선수로 나섰다는 기록도 있다. 즉 우리 마을 전투력의 총량을 투입하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시합이 시작되면 공을 사이에 두고 작게는 수십 명에서 크게는 수백 명의 테스토스테론이 충돌하게 된다. 인접한 동네와 시합을 하다 보니 그라운드는 광장이나 골목이 된다. 그럼 공을 옮겨놓아야 하는 상대의 골문은 어디일까. 가장 흔하게 낙점되는 곳은 바로 교회였다.


중세의 교회는 마을의 중심이자, 지역민들이 영혼의 구원을 얻는 곳이었다. 옆 동네 녀석들의 교회를 유린하는 것은, 비록 득점에 의한 상징적이고 간접적인 유린이지만, 매우 짜릿한 일이었다. 반대로 우리 편 교회를 내주는 일은 이만저만한 수치가 아니었다.


공이 어느 한 편의 교회(혹은 다른 지점)에 들어가면 시합은 끝난다. 서든데스(어느 한 편의 득점과 함께 시합이 끝나는 방식) 방식이지만 시합은 다음 날 동이 틀 때까지 계속되곤 했다. 어떨 때는 경기가 이틀 이상 계속되는 경우도 있었다. 시합은 보통 몇 구의 시체와 수십 명의 부상자를 남겨놓고 끝나게 된다. 이러니 진 쪽의 기분이 얼마나 더러웠을지는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런 형태의 축구를 몹 풋볼(Mob football)이라고 한다.



이것이 몹 풋볼>


몹 풋볼은 과도한 폭력성 때문에 여러 차례 사회문제가 되었다. 지배층의 눈에 하층민들의 축구문화는 악습이었다. 1331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는 의회에서 축구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스코틀랜드에서는 1424년 국왕 제임스 1세가 "누구도 축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선언을 한다.


백성들에게 권위적이지 않은 것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엘리자베스 1세는 매우 느슨한 -그리고 여성 군주다운-  축구반대법을 내놓는다. 축구를 하다가 적발된 사람은 일주일간 감옥에 갇힌다. 감옥에서 나온 후 고해성사를 해서 축구를 한 죄를 씻으면 자유가 된다. 이런 법을 누가 무서워했을까. 참 귀여운 법이다. 


왜 이런 폭력적인 활동이 계속되었을까. 인간은, 주로 남자들은, 폭력적이고 과격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멤버들과 연대감을 공유하려는 경향이 있다. 테스토스테론은 집단성을 띤다. 집단의 패배는 나의 패배이며, 때로는 개인의 패배보다 자아에 더 큰 상처를 남긴다.


부상자가 속출하는 몹 풋볼에서 한 번 맞붙었던 상대는 승패를 떠나 원수가 되었고, 패배는 반드시 만회해야 할 수치였다. 시합의 동기가 강력했던 만큼 경기는 계속되었고 웬만하면 붙었던 놈들과 또 붙기는 리그경기의 원시적 형태가 된다(하지만 여기에서 현대 구기종목의 리그전이 유래했다고 볼 수는 없으니 주의하자.).



축구를 받아들이는 영국인들 특유의 방식은 이러한 역사에서 비롯된다. 연고팀을 응원하는 나는 팀의 팬이기 이전에 팀의 일부이다. 자신의 마을이 이기는 것은 내가 이기는 것이다. 프리미어리그를 포함해(프리미어리그는 영국의 1부 리그이다.) 잉글랜드 프로팀들의 이름을 보면 유나이티드, 햄, 햄튼 등의 단어가 공통적으로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다. 토튼햄, 울버햄튼, 웨스트햄, 멘체스터 유나이티드, 리즈 유나이티드 등등.


햄과 햄튼은 중세 영어로 마을을 뜻한다. 유나이티드는 노동조합을 뜻한다. 즉 이름이 유나이티드로 끝나는 프로팀은 우리 식으로 말하면 노동조합의 조기축구회에서 유래되었다. 마을과 노동조합은 국가나 시(市)보다 훨씬 원초적인 우리이자 운명공동체다. 이 우리에는 나와 내 가족, 내 이웃의 동갑내기와 사촌형 같은 사람들이 포함된다.


따라서 영국인들에게 지역팀에 대한 애정은 국가대표팀에 대한 지지보다 훨씬 내밀하다. 국가대표 간 경기에는 열광하면서도 K리그 관중석은 텅 비어있는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2, 3부 리그가 잉글랜드처럼 인기 있는 곳은 없다. 유럽 역시 다른 대륙보다 이런 경향이 강하지만, 잉글랜드만큼은 아니다. 잉글랜드 서포터들은 몇 대에 걸쳐 한 팀을 응원하고,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팀이 정해져있는 경우가 많다. 


"아내와 차는 바꿀 수 있어도 축구팀은 바꿀 수 없다."


잉글랜드 축구팬들 사이에 속담처럼 통하는 이 말은, 아내와 탈것을 동일선상에 넣는 마초적 무식함을 흘려보내고 나면 생각할 만한 여운을 남긴다. 이들이 지역 팀에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편이기 이전에 그냥 우리인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잉글랜드는 훌리건들의 고향이 되기에 이른다. 훌리건들이 싸우는 이유는 그들이 갱스터이기 이전에 우리의 싸움에 동참하고자 하는 심리 때문이다. 현대의 축구는 선수의 수와 시합 장소가 정해져 있다. 그래서 패싸움에 끼지 못한 잉여전사들이 발생하게 된다. 필드에서는 정예전사(선수)들이 공동체간의 대리전쟁을 하는 반면, 필드 밖에서는 잉여전사들이 축구의 대리전을 펼친다. 이 잉여전사가 바로 훌리건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훌리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확실한 것은, 훌리건 문화의 근본을 이해하지 않고 훌리건 나빠요 하는 건 공허하다는 게다. 리그를 지탱하는 팬과 서포터가 많은 나라일수록 훌리건도 많다. 두터운 팬 층이라는 장점은 살리고 폭력성이라는 단점은 없애자고 말하기에 장점과 단점은 너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장단점은 한 현상의 앞뒷면에 불과하다.


다음 편에서는 현대축구가 태동하는 과정을 잠깐 살펴본 후 잉글랜드 축구가 종주국 자존심을 내세우다가 어떻게 자멸하는지를 이야기해볼 생각이다.


PS. 영국보다는 잉글랜드라는 표현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 영국이라는 한자어가 지칭하는 대상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잉글랜드를 가리키기도 하고,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를 합한 UK(United Kingdom)를 뜻하기도 한다. UK 국가대표팀이란 것은 없다. 축구에서(다른 종목도 마찬가지지만) UK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대표팀으로 나뉘어 국제대회에 따로 출전한다. 중국과 홍콩이 1국가 2체제라면, UK는 3국가 1체제라고 보면 된다.


필독(the.dog.on.the.field@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