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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기업 수퍼마켓을 반대하는 이유

 

2009.8.24.월요일

 

지역 상인들이 대기업 슈퍼마켓 입점을 반대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엊그제, 이 동네에도 그런 슈퍼가 하나 문을 열었다. 롯데 산하의 마이슈퍼였다. 여론이 좋지 않은 걸 의식해서인지, 개장 홍보를 전혀 하지 않았다. 매일 지나가던 길목이었음에도 개점한 걸 보고서야 알았으니까. 피자 체인점이 있던 자리에서 공사를 하길래 리모델링 중인 줄로만 알았다.

 


상계 7동의 롯데 마이슈퍼 (우리 동네 가게는 아닙니다)
출처: 레디앙

 

하지만 이 동네에선 반대 시위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근처 지하철 역에는 내가 자주 이용하는 마트 두 곳이 있다. 입지 조건이 훨씬 좋고 가격도 저렴하다. 마이슈퍼는 대로변이긴 하지만 역세권에선 제법 떨어져 있다. 현재 상태로선 게임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마이슈퍼는 무료 배달 행사를 하고 있었다. 기존 마트에선 2만원 이상을 사야 배달 서비스를 해주는 점을 노린 것이다.

 


상계동에서 열렸던 반대 시위
출처: 레디앙

 

나 또래의, 한창 일할 나이의 남자들은 이런 변화에 대체로 둔감하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에는 나 역시 동네에 무슨 가게가 새로 생겼는지 몰랐고, 물건을 산다면 늘 가던 마트에 가서 살 것만 집어오면 되었다. 대기업 슈퍼마켓이 새로 생기는 것이 굳이 지역 경제에 해가 되는지, 아마도 모른 채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직접 장바구니 물가를 꼼꼼히 챙기며 다니다 보니, 소비자 입장에서 그런 면을 알 수 있게 된 듯하다.

 

요즘에는 웬만한 지역마다 대형마트에 가는 게 어렵지 않다(여기서 말하는 대형마트는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을 지칭한다). 그럼에도 중소규모 슈퍼마켓이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일단 지리적으로 가깝기도 하지만, 대형마트에 비해 장바구니 쇼핑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처음엔 대형마트의 쇼핑이 볼거리도 많고 좋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 곧 근처 슈퍼마켓이 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선 대형마트는 지나치게 넓다. 동네 가게와 비교해보면 이해가 쉬울 거다. 만약 캔커피 하나 마시고 싶다면, 동네 가게에선 냉장고에서 꺼내 바로 계산하면 끝난다. 하지만 대형마트는 그 캔커피를 찾아 한참을 걸어야 한다. 또 계산대엔 늘 사람이 많다. 5개 이하 소량 계산대가 따로 있긴 하지만, 몰라서 그러는지 무작정인지 카트에 잔뜩 물건을 싣고 가져온 사람이 앞에 있기라도 하면, 귀찮아서라도 딴데서 계산하라는 소리를 하기 힘들다. 어쨌거나 대형마트를 빠져나오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건 분명하다. 대형마트의 물건 가격이 더 싸다고 해도, 거기서 파는 발품이 구멍가게의 비싼 가격을 상쇄하고 남을 때가 많다.

 

대형마트를 가려고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한다면 얘기가 또 달라진다. 최소 왕복 비용이 1800원이다. 가격을 비교해서 그 이상의 이익이 남아야 대형마트에 간다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대형마트를 간다는 건, 중소마트보다 확실한 가격 메리트가 있는 물품을 구매할 때로 좁혀진다. 세일 정보를 알아보면 되겠지만 그건 중소마트도 하고 있다. 또한 최근엔 다이소 같은 소위 1000원샵이 많아져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즉 대형마트에서 일반적으로 싸게 판다고 여겨지는 물건이 쇼핑 대상이 되었을 때, 그리고 다른 소소한 물건도 좀 필요할 때 대형마트를 가는 게 유리해진다. 내가 소비하는 물품 범위에서는, 대형마트의 상대적 우위는 다음과 같은 종목에 있다고 여겨진다.

 

프리미엄급 화장지, 덕용 햄, 외국산 쇠고기, 커피믹스 50개 들이 이상, 면도기류, 일반형 속옷과 양말, 일반형 샴푸 및 세제, 외국산 주류, 외국산 소스, 큰 사이즈의 식용유나 장류, 6개들이 달걀, 저가의 환경보호 제품들, 새로 출시된 상품 거의 모두(행사가격 할인).

 

최근엔 인터넷 쇼핑몰이 많아져서, 공산품의 경우엔 그다지 대형마트의 가격 메리트가 크지 않은 듯하다. 마트가 꼭 필요한 건 사실 식품 때문이다. 대형마트에는 근처 중소마트에서 팔지 않는 여러 가지 식품이 구비돼 있다. 특히 과일이나 육류는 종류도 많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대형마트에서 사 오는 물건은 거의 육류나 외국산 소스, 행사 가격으로 파는 신상품인 경우가 많았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횟수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대형마트의 진짜 우위는, 갈 때마다 생각지 않았던 소비를 더 유도한다는 점이다. 대형마트에선 안 파는 게 없다. 그곳은 중소마트와 분식집과 빵집과 옷가게와 신발가게와 전기재료상, 다이소와 하이마트를 모두 모아놓은 곳이다. 견물생심인 법이다. 쇼핑 목적은 호주산 쇠고기였다고 하더라도, 집에 돌아와 비닐봉지를 들여다보면 만두랑 샴푸랑 양말이 들어 있는 것이다. 중소마트에 갈 때와는 씀씀이가 달라진다.

 

 


 

 

 

우리 동네에 생긴 롯데 산하의 마이슈퍼가 가지는 우위도 마찬가지다. 이곳은 대형마트가 아니기 때문에, 가격도 더 비싸다. 지하철 근처 중소마트에서 파는 프리미엄 캔커피는 580원인데, 마이슈퍼에선 700원이다. 우리 집 근처 구멍가게 가격하고 똑같다. 식품류를 제외한 일상잡화류는 더욱 비싸다. 50g짜리 페리오 치약을 1000원에 파는데, 같은 가격에 나는 140g짜리를 산 적이 있다. 개점 행사로 팔았던 2960원짜리 신라면 덕용포장은 벌써 동나고 없었다. 중소마트에서 특별가 700원에 팔고 있는 비누를 여기서 1400원 주고 살 주부는 아마 없을 것이다.

 

가격 면에서 새로 개점한 마이슈퍼는 그리 메리트가 없었다. 어쩌면 그 때문에, 주위 상권에서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하여 반대 시위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이슈퍼의 경쟁력은 곧 생겨날 것이다. 그건 이곳이 작으나마 대형마트의 기본적 구성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중소마트에서 닭다리 튀김이나 김밥 세트 등의 먹거리를 팔지는 않는다. 직접 구운 베이커리 빵을 팔지도 않는다. 또 롯데마트 자체 브랜드 상품은 가격 경쟁력도 있는 편이다. 그러므로 마트와 다이소, 김밥집과 빵집을 들러야 하는 형편에선 여기 한 군데 오는 게 유리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역 상인들의 경계가 이해가 되었다. 대기업 슈퍼마켓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동종 슈퍼마켓뿐만 아니라 주위 상권 거의 모두와 동시에 경쟁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가령 마이슈퍼가 화장지를 할인가에 내놓아 사람들이 몰렸다고 했을 때, 일차적으로는 중소마트와 다이소 등이 상대적 피해를 보겠지만, 한편으론 사람들이 빵도 사고 양말도 사고 하면서 빵가게와 속옷 가게의 수익도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대형마트는 별의별 상품을 다 취급하지 않던가. 그러니 마이슈퍼가 무슨 상품으로 소비자들을 유인하든 간에, 그 상대적 피해는 관련 상권 전체로 파급될 수 있는 것이다.

 


2009년 8월 11일 자료

 

앞서 대형마트에 가기 싫은 이유로 이동거리가 너무 길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마이슈퍼와 같은 대기업 슈퍼마켓은 오히려 그 점에서 유리하다. 내가 건전지와 소보루빵과 카레라이스 재료를 최저가로 사기 위해서는 세 곳을 들려야 한다. 하지만 한 1000원만 더 돈을 쓴다면 마이슈퍼 한 곳에서 해결이 가능하다. 요즘처럼 더운 날, 혹은 궂은 날씨엔 충분한 유인책이 된다. 그리고 상품 종류가 다양한 구조 덕분에 생각지 못한 물건 몇 개를 더 살 수도 있다. 그 상대적 피해는 고스란히 주위의 조그만 가게들로 옮겨갈 것이다.

 

물론 이런 점 자체가 시장 경제 하에서 잘못이라고 하긴 어려울 거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시장 상인들의 반대 목소리에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지하철 매표 시스템이 바뀌었다. 교통카드를 쓰지 않는 사람은 1회용 카드를 사야 한다. 기계에 운임과 보증금500원을 넣고 카드를 받은 뒤, 목적지에서 내린 후 환급기에 넣어 500원을 돌려받게 되어 있다.

 

 

 

 

나는 왜 꼭 기계를 통해 이런 절차를 밟아야 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반영구적 카드를 쓰게 하는 게 목적이라면, 창구에 직원 한 명이 있어 카드를 나눠주고 보증금을 받아도 되지 않았을까.

 

내 생각엔 그 직원에게 지급하는 임금이 발매기와 보증금 환급기의 교체 및 유지 비용보다 많지 않을 듯 했다. 하지만 설사 많더라도 그렇다. 시스템을 바꾸게 되면서, 지하철 공사는 고용인력의 임금과 기기 교체 및 유지 비용을 맞바꾼 셈이니 일자리를 줄이게 된 것이다. 그 상대적 이익은 기계를 담당하는 회사든 지하철 공사든 기업이 가져가게 됐다. 좀 이상하다. 이전보다의 발전이 고용 감소와 동의어는 아닐텐데 말이다. 더군다나 지금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일자리 창출을 부르짖고 있지 않았던가.

 

나는 대기업 슈퍼마켓의 입점도 마찬가지 효과를 발생시킨다고 본다. 대기업 슈퍼마켓의 이익은 기업의 몫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된 주위 상가는 기업이 아니라 가계에 속한다. 더군다나 이건 가계의 이익을 대기업이 가져가는 형태니까, 새로운 이익을 창출하는 게 아닌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제로섬 게임은 결코 시장경제의 본질이 아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시장경제의 원리에서도 완전경쟁시장일 때 효율적이며 독과점이 나타나면 그만큼 후생이 감소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정부가 대기업 슈퍼마켓을 규제한다고 해도 결코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나지 않으며 오히려 효율적 운용에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이상하다. 친기업 정책만이 시장경제에 부합하는 듯한 요즘의 세태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그래서 나는 앞으로 마이슈퍼를 이용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쩌면 마이슈퍼는 이 지역에서 주위 상가와 공생하며 존속할 수도 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기업의 생리란, 확실한 이윤이 보장되지 않고 겨우 연명만 하는 업종은 과감히 엎어버리기 마련. 대신 대기업 슈퍼마켓이 번성하면 얼마나 많은 상가들이 문을 닫고 재고 땡처리 가게로 변할 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처음 들어간 날, 나는 너무 덥길래 캔커피 하나 사서 나왔다. 500원짜리였다. 마음이 약해서인지, 이 가게에서 이제 물건을 안 사겠다고 생각하니 괜히 우울했다. 계산대에 있던 직원은 아무 잘못이 없을텐데.

 

정치적 선택은 역시 크든 작든 비정함이 따르는 모양이다.

 

 


 

 

 

PS.

 

원고료를 받았습니다. 모듬회는 아니고, 광어회 대짜로 하나 먹었습니다.

 

 

 

관심 가져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느 먹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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