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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잘가요, 패트릭!

 

2009.9.21.월요일
빼드라

 


드라마 <남과 북>

 

패트릭 스웨이지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날, 고향에 계신 엄마에게 전화가 왔더군요. 인사도 생략하고 다짜고짜 하시는 말씀이 "<남과 북>의 패트릭 스웨이지가 죽었다며?"였어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랑과 영혼>의 패트릭 스웨이지가 아닌 <남과 북>의 패트릭 스웨이지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그의 임종 소식에 내 마음이 왜 그리 뒤숭숭했는지 이유를 알 것 같더군요. 초등학교에 다닐 때, 패트릭 스웨이지가 나오는 미국 드라마 <남과 북>을 열을 올리며 봤던 제게 패트릭 스웨이지는 일종의 그 시절을 대변하는 추억이었어요.(제게 미드의 본좌는 <남과 북>인 셈입니다) 그런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내 추억도 함께 밀려나는 기분에 씁쓸함이 들었던 거죠. 그런 그를 보내며 잠시 추억해 보려고 합니다.

 



 

열정적인, 댄스강사 조니

 

조니를 기억하세요? 현란한 춤사위로 뭇 여성들의 마음을 후들거리게 했던 남자. 패트릭 스웨이지입니다. 1979년 <스케이트 타운>으로 늦깎이 영화 데뷔를 치룬 패트릭 스웨이지는 <더티댄싱>을 통해 청춘스타로 급부상했죠. 어쩌면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는지 몰라요. 발레리나였던 어머니와 발레 스쿨을 운영하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패트릭 스웨이지에게 <더티댄싱>은 몸에 꼭 맞는 맞춤복 같은 작품이었거든요. 연예계 데뷔도 뮤지컬로 한 그였기에, <더티댄싱>은 패트릭 스웨이지의 장점을 엑기스처럼 응축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었어요. 아닌 게 아니라, 본인의 매력을 십분 살린 그는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관능적인 춤을 선보이며 센세이셔널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로 <토요일 밤의 열기>의 존 트라볼타와 더불어 허리춤을 제일로 섹시하게 추는 할리우드 스타로 등극했죠.

 

 

개봉되자마자 전 세계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킨 영화는 국내에서도 1988년 1월 1일 개봉해 전국 50만명을 동원했어요. 지금이야 50만이 별거냐 하실 수 있지만, 멀티플렉스가 없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50만이면 대단한 기록이었죠. (게다가 당시 이 영화는 미성년자 관람불과라는 핸디캡까지 가지고 있었어요) 솔직히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저에겐 <더티댄싱>이 개봉했던 당시 풍경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어요. 하지만, 18세 관람가였던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어색한 화장을 하고 극장 잠입을 시도했다는 이모, 선정적인 두 남녀를 내 세운 포스터가 탐나 극장에 붙어있던 포스터를 몰래 가져왔다는 이웃 오빠(?), 패트릭 스웨이지의 허리 돌리기에 흥분한 나머지 손에 들고 있던 초콜릿이 녹아내리는 것도 몰랐다는 어떤 여인네의 고백이 패트릭 스웨이지와 이 영화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충분히 가늠하게 합니다.

 

로맨틱, 샘

 

"I love you, SAM(사랑해요, 샘)." "Ditto(동감이야)." 패트릭 스웨이지는 이 영화, <사랑과 영혼>으로 한국 남성들의 구세주로 떠올랐어요. 사랑한다는 낯간지러운 말을 꺼리는 한국남자들에게 동감이야 한 마디로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샘의 연애술은 누워서 떡 먹기 식의 꽤나 좋은 묘약이었거든요. 물론, 이 영화에 더 열광한 건, 여성들이었죠. 사랑하는 여인을 홀로 남겨두지 못해 이승을 떠도는 로맨티스트라니. 많은 여성들이 그의 품에 안겨 도자기를 빚는 데미 무어를 부러워했고, Unchinged Melody를 들으며 샘을 떠올렸죠. 전 세계적인 히트를 친 이 영화는 국내에서도 <타이타닉>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최다 관객을 동원한 빅히트작으로 기록 돼 있어요. 놀라운 건, 이 영화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거죠. 최근 미국의 대형 유통사 HMV가 실시한 역대 최고의 로맨스 영화(The Most Romantic Film of All Time))를 뽑는 여론조사에서 1위로 선정되는가 하면, 가장 멋진 러브신에 대한 여론조사가 있을 때 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거든요.

 

 

 

지금이야 패트릭 스웨이지 없는 <사랑과 영혼>은 상상할 수 없지만, 재미있는 것은 영화 제작 당시만 하더라도 그가 캐스팅 1순위가 아니었다는 점이에요. 원래 샘의 역할로 물망에 올랐던 건 톰 행크스와 브루스 윌리스였어요. 그들이 "유령 연기는 싸구려 같다", "흥행이 어렵겠다"는 이유로 고사한 자리를 패트릭 스웨이지가 대타로 들어가 홈런을 친 거죠. 그것이 운명이었든, 운이었든 패트릭 스웨이지는 이 한편의 영화로 굉장한 인기를 얻죠. 물론 [사랑과 영혼]이 가져다 준 인기가 좋았던 것만은 아닐 거예요. 워낙 사랑을 받았던 캐릭터였던 탓에 그에게는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을 줬을 테니 말이에요.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패트릭 스웨이지의 족쇄 같은 작품이라고 보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족쇄라면 한 번 도전해 볼 만하지 않나 싶어요. 배우는 철저히 작품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존재예요.(CF로 먹고 사는 연기자는 뭐냐고 토 달지 마세요. 적어도 제겐 그들은 배우가 아니라 스타일 뿐) 오랜 시간이 지나도 팬들에게 기억 될 영화를 남기고 떠날 수 있는 배우가 얼마나 될까요? 적어도 패트릭 스웨이지는 샘을 통해 영원한 생명력을 얻었으니, 배우로서 결코 나쁘지 않은 인생을 살고 간 게 아닐까 싶어요. 

 

카리스마, 보니

 

 

[사랑과 영혼]으로 전 세계 팬들의 로맨틱 가이로 떠오른 패트릭 스웨이지는 다음해인 1991년 터프가이로의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죠. 남성 특유의 페로몬을 풀풀 풍기는 <폭풍 속으로>의 보니로 말이에요. 보니의 옷을 입은 패트릭은 전직 대통령의 가면을 쓰고 은행을 터는 갱단 두목이면서 위험한 파도 속으로 몸을 던지는 서퍼의 역할을 멋지게 수행해 내요. "우리는 돈 때문에 은행을 터는 게 아니야. 이건 시스템과의 싸움이라구. 이 X같은 자본주의사회에도 시스템을 비웃고 파괴하려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줘야 해!"라는 궤변마저도 카리스마가 넘쳤죠.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100년에 한 번 오는 거대한 스콜을 향해 작은 서핑 보드를 타고 달려들던 모습은 지금도 자주 거론되는 명장면이에요. 아마 패트릭 스웨이지의 지난 1년간의 투병생활은 보니와 가장 닮아 있지 않을까 싶어요. 거센 파도에 맨 몸으로 대항했던 보니처럼, 췌장암 진단을 받은 패트릭 스웨이는 TV시리즈 <비스트>에 출연하며 연기에 집중하기 위해 진통제 투약을 거부하는 투혼을 불살랐으니 말이에요. <비스트> 이후에도 영화 <파우더 블루>에 출연하며 마지막까지 연기자로서의 삶을 놓지 않았다고 하니, 이 끈질긴 열정은 통제할 수 없는 생명력의 화신, 보니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네요.

 

여장 남자, 비다 보엠

 

 

패트릭 스웨이지가 출연한 작품 중 가장 특이한 이력을 꼽으라면, 단연 <투 웡 푸>의 비다 보엠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뉴욕 드랙 퀸(drag queens: 여장한 동성애자) 컨테스트에서 우승한 세 명의 드랙 퀸이 헐리웃으로 출발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서 패트릭 스웨이지는 여장 남자로 등장하죠. 충격이자 경악이었어요. 선 굵은 얼굴과 탄탄한 몸매, 그 어디에서도 여성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던 그가 화장을 하고, 드레스를 입고, 되지도 않는 여자 목소리를 내는 게 말이에요. 봉숭아학당에서 풍만한 가슴 분장을 하고 나타난 코미디언 황승환이나, 귀곡산장 코너에서 할머니로 분장한 이홍렬과 대적할 만한 언발란스의 미학을 보여줬어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패트릭 스웨이지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 하지 않은 마초 근육남 웨슬리 스나입스가 같은 드랙 퀸으로 등장했다는 정도? <투 웡 푸>는 작품적으로는 큰 호평을 받지 못했지만, 유명 남자배우들의 엽기적인 변신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 신선한 작품으로 기억되네요.

 

그리고, 영원히 패트릭

 

<사랑과 영혼>에서 정점을 찍은 후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던 그의 인기는 <투 웡 푸> 이후 눈에 띄게 급격히 떨어졌어요. 덩달아 종종 성형에 실패한 스타로 선정되며 가십난에 오르내렸고, 재기를 기대하며 내 놓은 <더티댄싱2>는 그야말로 더티한 욕만 먹고 간판을 내렸죠. 이때 들려 온 게, 암 발병 소식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배우는 작품 안에서든 실제 삶에서든 타인보다 더 비극적일 때, 큰 사랑을 받는 것 같아요. 퇴물배우 취급을 받던 이 배우는 암이라는 폭탄을 몸에 안고 나서야, 다시금 대중의 관심 안으로 들어갔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1년간 암과 사투를 벌이다 세상을 떠난 그를 영웅이라고 하네요. 유령이 되어서야 연인과의 깊은 사랑을 확인했던 영화 속 샘처럼, 그의 연기에 대한 집념도 유령이 되어서야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는 걸 보며 씁쓸한 건 저 뿐인가요?

 


투병 후 수척해진 모습의 패트릭 스웨이지 

 

"It´s amazing, Molly. The love inside, you take it with you."(참 신기해, 몰리. 마음속의 사랑은 영원히 간직할 수 있으니 말이야.)

 

영화 속 대사처럼,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간직되길 바라며.

 

* 잠시 감상하세요. 전성기 때의 패트릭 스웨이지입니다.

 



 


빼드라(siwoorain@hanmail.net)
시네티즌(cinetiz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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