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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이 시각 교통정보에 담긴 진실

 

2009.9.24.목요일

 

 

매일 아침 습관적으로 트는 텔레비전뉴스 코너 중 이 시각 교통정보가 있다. 그런데 이걸 볼 때마다 나는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일단 한 번 보시라.
 

 



 

물론 아무 특별할 게 없는 교통정보뉴스다. 현재 시각 반포나들목과 양화대교의 교통흐름을 보여주는. 하지만 이걸 매일 아침 나는 부산에서 보고 있다는 게 문제다. 고속철도가 천성산을 관통했으니 이제 곧 부산에서 서울까지 열차로 2시간이면 도착할 것이고, 저가항공사의 공세로 한층 부담이 적어진 비행기를 이용하면 1시간이면 충분히 서울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러나 저 이 시각 교통정보는 서울로 순간이동을 하지 않는 다음에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뉴스다. 내가 왜 바쁜 아침시간에 뉴스 대신 이 시각 서울 교통정보를 봐야만 하는 거냐.

 

물론 보기 싫으면 채널을 돌리면 되겠지. 하지만 난 아침시간에 다른 뉴스도 보고 싶다. 다만 저 교통정보 코너가 한창 진행되던 뉴스의 중간광고 같은 역할을 할 뿐이지. 중간광고 싫다고 채널 돌리는 건 더 귀찮은 일 아닌가.

 

문제는 또 있다. 저 채널은 지상파 채널로, 불특정다수에게 일방적으로 송신된다는 특징이 있다. 트위터처럼 내 의지로 팔로잉 했다가 너무 트윗을 많이 올린다 싶으면 언제든 끊거나 리플로 항의할 수 있다던가 하는 시스템이 아닌거다. 그래서 지상파 언론은 그 내용 구성에서 더욱 신중할 의무가 있다.

 

이 시각 서울의 교통정보는 일각에 불과하다. 늘 헤드라인 뉴스로 보도되는 서울의 택시, 지하철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 소식은 부산에 살고 서울엔 출장과 결혼식 때나 가끔 올라가는 나에게 거의 필요가 없는 기사다. 명절 때나 한 번씩 찾는 고향의 버스요금 인상 소식이 헤드라인 뉴스로 다뤄지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아닌가. 이외에도 각종 공연 소식이나 재개발 소식, 문화시설 건립, SOC확충 등 열거하자면 끝도 없는 수많은 뉴스들이 서울시민만을 위해 보도되고 있다.

 

하물며 "오늘은 짧게 하겠습니다"라고 훈화를 시작하는 교장선생님 다음가는 거짓말쟁이라는 기상청마저도 서울의 날씨를 더 신경쓴다. 나는 지난해 서울에서 5개월정도 생활하게 되었는데, 날씨정보가 너무 잘 들어맞아서 참 신기했던 경험이 있다. 물론 우연의 일치로 그 기간에만 잘 맞았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우리나라 뉴스에서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고 했을 때 서울에 비가 올 확률은 거의 100%이나, 부산에는 안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상청과 지상파 뉴스의 기준으로 전국적으로의 중심은 다름아닌 서울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다 보니, 본의 아니게 부산은 전국에 포함되지 않는 도시가 되어버렸다. 못 믿겠으면 부산에 5개월만 살아보라.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에 500원 건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현상은 서울중심적 문화를 비판하는 진보적 지식인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서울의 여론을 전국의 여론으로 확대해석 한다거나, 어디까지나 서울의 이슈인 광화문 광장문제와(물론 정치적 의심이 있는 사안인 건 안다) 청계천 복원 같은 문제가 큰 이슈거리가 되는 것이 그렇다. 비슷한 사례로 부산에서는 이미 부산역광장과 온천천이 있었는데 말이다.

 

부산역에 와 본 사람은 알겠지만, 부산역광장은 정말 구시가의 중심에 위치한 탁 트인 넓은 공간이다. 여러모로 서울 강북의 광화문광장과 그 역할이 비슷하다. 당연히 민주노총이나 여타 집회의 단골장소였던 곳인데, 어느 날 이 광장에 거대한 분수와 나무들이 들어와버렸다. 그때도 지금 광화문광장과 마찬가지의 정치적 의혹들이 제기되었지만, 그렇게 큰 이슈는 되지 못했었다.

 


오른쪽에 분수 공사모습이 보인다. 한 눈에도 집회공간이 얼마나 좁아졌는지를 알 수 있다.

 

온천천은 청계천 따위와는 게임이 안되게 좋은 곳이다. 물론 청계천 복원공사가 끝난 뒤 그것이 인공수로이니, 이명박식 개발의 정점이라느니 비판의 목소리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좋다는 여론이 대부분이었고, 급기야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곳이 바로 청계천이다. 그런데 이 청계천의 완벽한 반면교사 역할을 하는 곳이 온천천이다. 해운대구 센텀시티 부근부터 동래를 거쳐 부산대 근처까지 약 15.6km나 이어지는 온천천은 그 폭도 청계천의 3배는 되는, 그야말로 도심 속의 친자연적 공원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공공근로사업으로 조성된 이 온천천 시민공원은 정부의 대규모 프로젝트 사업이 아니었던 관계로 원래 하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주변에 산책로만 조성하는 정도로 만들어졌다. 당시 담당했던 공무원의 철학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청계천만큼 예산을 많이 받는 큰 사업이 아니었던 다소 황망한 이유 덕택에, 이곳은 청계천과는 달리 실제 물고기들도 퐁퐁 뛰어오르며 함께 살고 있는 매우 자연친화적인 공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알음알음 온천천이 알려지자 웹2.0의 특징인 User Created Content가 온천천에서도 나타났는데, 관공서에서 산책로만 깔아두니 시민들이 알아서 온천천 가꾸기 모임 등을 만들고는 꽃심기 등 본격적인 조경사업에 나섰던 것이다.

 


시민들이 직접 심고 가꾸고 있는 꽃들

 

이처럼 온천천의 인기가 상한가를 치자 동래구청장과 연제구청장은 서로 이것이 자신들의 업적이라며 다투기 시작했고, 급기야 서로 구역을 나누어서 음악도 다르게 틀고, 자기네 구역 안에 관할 구의 상징을 새겨 넣는가 하면, 경쟁적으로 노천 수영장이니 인라인스케이트장, 야외 공연장 등을 건설하고 나섰다.

 


소규모 공연이 가능한 무대. 무대 뒤 쪽은 온천천이고, 무대 앞의 관객석도 시멘트가 아닌 바위를 이용해 주변과 잘 어우러지게 만들어 두었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이처럼 외견으로 보나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문화로 보나 온천천이 청계천보다 훨씬 이슈가 되기에 충분함에도, 그 유명세에서 게임이 안 되는 이유는 단 하나. 청계천은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 말은 제주도로 가고 사람은 한양으로 가야 한다는 건가.

 

물론 지상파뉴스를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서울에 살고 있기 때문에 멀리 떨어진 이곳의 이슈가 크게 와 닿길 바라는 건 무리다. 사실 나도 내가 거기에 살지 않기 때문에 중동이나 아프리카 문제에 큰 관심을 갖지 못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광화문문제는 서울사람들에겐 삽질정책을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이슈이겠지만, 서울에 살지 않는 사람들에겐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서 여전히 조금은 불편하다.

 

 

태어나서 한 번도 주류에 끼어보지 못했던 난, 늘 비주류만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그 중 하나가 부산 KBS뉴스다.

 

현재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의 메인뉴스는 대개 저녁 9시부터 9시30분까지 전국뉴스를, 9시30분부터 45분까지 각 지역뉴스(KBS부산과 같은)를 방송한다. 10분에서 15분정도 배정받은 이 시간은 아나운서 한 명이 달랑 나와 거의 대부분 1분20초짜리 리포트기사가 아닌 30초짜리 단신기사를 읊어대고, 그나마도 전국뉴스에서 날씨를 할 시간이 되면 갑자기 툭하고 잘려버리는 자투리 신세였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조금 나아져서 아나운서도 남녀 두 명이 되고 리포트기사도 늘었다만, 본질은 별로 변한 것 같지 않다. 아무튼 이런 관계로 나는 1년에 두어번 탈까 말까 한 서울의 택시요금 인상소식을 9시 헤드라인뉴스로, 매일같이 타는 부산의 버스요금 인상소식을 9시30분에 단신기사로 들어야만 한다.

 

나는 대학 때 한 방송국에서 방송기자 체험을 2주간 한적이 있다. 이때 한 가지 놀랐던 점은, 리포트 기사에서 뉴스 앵커들이 "누구누구 기자입니다"라고 화면을 넘기기 전까지 하는 대사들을 모두 기자가 직접 써준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단신기사나 기자가 직접 말하는 부분을 제외하고, 기사 앞에 앵커가 몇 마디 넣는 것은 전부 앵커가 작성한 건 줄 알았다. 그러나 실상은 엄기영 같은 스타 앵커나 몇 마디 애드리브를 쳐 넣을까, 대부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자가 모조리 써 주는대로 읽는 게 앵커의 일이다. 그래서 전국뉴스는 전국의 각 지역 보도국에서 생산된 기사를 본사 보도국으로 보내면, 이를 앵커가 그대로 읽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반대의 방향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서울 보도국에서 보내준 기사를 부산에서 받아서 부산뉴스의 앵커들이 방송할 수도 있다는 것. 그렇다면 아예 9시 정각부터 부산지역에선 부산 KBS뉴스를 방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것. 모두가 서울로 서울로를 외치는 상황에서 부산KBS 앵커들은 적어도 부산에서는 간판 앵커가 될 수 있으니, 실력있는 앵커를 잡아두는 요인이 될 수도 있고.

 

이와 같은 완전한 부산 뉴스는 방송에서는 없지만 신문에서는 옛날부터 있었다. <부산일보>, <전남일보> 등이 그것이다. 이 신문들의 헤드라인은 국회의사당의 삽질과 같은 전국뉴스도 있지만, 그 지역 버스요금인상이나 지역의 재개발문제가 장식하기도 한다. 전국지의 기사선정에서 서울만을 위한 뉴스를 걸러내고, 그 지역의 중요한 현안이 위로 올라간다고 보면 맞다. 이런 기사배치. 지상파 뉴스에서도 지금 당장 실행 가능하지 않겠나. 서울보도국은, 부산보도국 입장에선 부산일보의 서울지사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거다.

 

나는 연고도 없고 전세금도 없는 관계로 서울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 월급쟁이를 계속 하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서울로 가는 경우가 많지만, 그 월급쟁이 짓도 근로조건이 심히 열악하지만 않으면 부산에서 하고 싶은 사람이다. "사람은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에 나는 별로 동의하지 못하고, "아마추어는 어리석은 것, 프로가 되라"에도 나는 동의하지 못한다. 아마추어면 어떻고 촌동네면 어떤가. 밤이면 개구리 울어대는 진짜 시골에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 운동을 하려 했던 노무현처럼, 어느 위치에서든 그곳에서 일 할 사람이 필요하고, 나는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이란 말이다. 그래서 나는, 평생 살고 싶지도 않은 서울중심적 기사를 보는 게 오늘도 불편하다.

 

평생 부산에서만 살아 온
듀이(blog.naver.com/soribe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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