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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로 세상살기] 늦었지만 의미 있는 사과

 

2009.9.23.수요일
김조광수

 

천재 과학자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름은 앨런 튜링(Alan Mathison Turing).

 

 

그는 영국의 수학자이자 암호학자, 논리학자로 컴퓨터 과학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 라고 부르기도 한다. 컴퓨터 과학자들에게 수여하는 가장 권위 있는 상인 튜링상은 그의 성을 딴 것이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의 20세기 가장 중요한 인물 100인에도 선정된 바 있다.

 

아주 유명한 사람이고 위인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으며 42년의 길지 않은 생을 자살로 마감했다. 그런데 최근 그에게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공개적으로 사과를 했다. 이미 고인이 된 그에게 영국 총리는 왜 공개 사과를 했을까?

 

그의 파란만장한 생을 돌아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앨런 튜링은 1912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위인전에 보면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앨런은 3주 만에 읽기를 배웠으며 계산과 퍼즐에 능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똑똑한 영재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게 총명했던 앨런은 1931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칼리지에 입학했고, 1936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 입학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38년 영국으로 돌아와 대학에서 연구를 하던 중 유명한 튜링 기계(Turing machine)의 개념을 발표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 한창이던 1939년 9월 브렛칠리 정부 암호학교에 들어가 수수께끼라는 뜻의 독일군 암호작성기 에니그마(enigma)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연구를 시작하고 결국 해독에 성공한다. 그 이론에 따른 해독기 Bombe를 개발하여 연합군이 독일을 상대로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2차대전의 접전 뒤에는 암호작성기와 해독기
사이의 머리싸움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독일의 암호작성기 이니그마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은
패전의 이유 중 하나로 회자되곤 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시되기 전 그는 독일군의 교신 내용을 수신자보다 먼저 해독하고 있었다. 그가 없었다면 연합군이 승리할 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44년엔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밍 가능 디지털 기계인 콜로서스(Colossus)를 만들었다. 이런 경험에서 만든 계산이론은 오늘날의 컴퓨터의 이론적 바탕이 되었다. 이런 업적을 인정받아 1946년 영국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블 디지털 기계인 콜러서스는
최초의 컴퓨터라고 할 에니액(Eniac)의 단초를 제공했다.

 

그런 그에게 시련이 닥친 건 그가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1952년에 동성애를 한 혐의, 공식적으로는 음란 행위 일반에 대한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다.

 

당시 영국은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하고 있었다. 미국이 매카시 광풍에 빠져 빨갱이들과 호모들의 사냥에 나섰던 것처럼 영국도 사회주의자와 동성애자에 대한 탄압의 광풍이 불던 시절이었다. 동성애자들이 사회주의에 현혹되기 쉽다는 이유로 처벌이 더욱 심했다고 한다.

 

여튼, 그의 모든 업적은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리고 순식간에 범죄자 신세로 전락한다.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감옥에 끌려간 그는 유죄 판결을 받게 되었다. 그는 10년 동안의 징역형 또는 여성호르몬제인 에스트로겐을 강제로 투여하는 화학적 거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고 결국 연구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에 화학적 거세를 택하게 된다.

 

동성애라는 질병을 고치기 위해 행해졌던 그 치료(?)는 1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급기야 발기 불능, 중추신경계 손상 등의 부작용을 동반했고 가슴이 여성처럼 커지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전쟁 영웅이자 천재 과학자로 존경 받던
튜링은 한 순간에 범죄자로 추락하기에 이른다.
사진은 Bletchley Park 에 있는 튜링의 동상.

 

생각해보라. 천재적인 수학자이며 전쟁 승리에 지대한 공을 세웠던 과학자가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되어 받아야 했을 고통을. 게다가 화학적 거세라니! 얼마나 끔찍한 시간을 보냈을 지 짐작을 하고도 남을 것이다. 육체는 물론 정신도 파멸에 이르지 않았겠는가!

 

결국 1954년에 죽은 채로 발견되었고, 주변에 한 입 베어 문 사과가 놓여 있었다. 치사량의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먹고 자살한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그의 나이 42세였다. "사회가 나를 여자로 변하도록 강요했으므로 순수한 여자 같은 죽음을 택한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55년이 지난 2009년 9월 11일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유죄 선고를 받고 화학적 거세를 당하다가 1954년에 자살한 앨런 튜링에게 공개적인 사과를 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브라운 총리는 "당시의 법에 따라 재판을 받았고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우는 매우 부당했다"고 말했으며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그에게 가해졌던 끔찍한 일에 대해 지금이라도 깊이 사과하고 그가 인류에 기여한 공로를 충분히 되새길 수 있게 돼 매우 기쁘다"고 했다. 죽은 뒤의 사과가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뒤늦게나마 일국의 총리가 공개적으로 사과를 했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가 죽은 지 55년이나 지난 지금 왜 영국 총리는 사과를 한 걸까? 뜬금없이?

 

그렇지 않다. 총리의 공개 사과를 이끌어 낸 건 한 과학자의 제안에 찬성해 움직인 네티즌의 힘이었다. 지난달 초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이자 프로그래머인 존 그레이엄-커밍은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에 대한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온라인 청원운동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한 달 남짓 지난 청원운동에 유명 과학자 등 3만여 명이 서명하면서 정부를 압박했다.

 


영국의 프로그래머 존 그래험 커밍.
그가 주도한 청원운동에는 리처드 도킨스 같은
저명한 과학자들도 가세했다.

 

이 온라인 청원운동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처벌을 받았던 앨런 튜링에 대한 명예 회복을 위한 것이었으며 또한 과거 정부가 잘못된 법제를 토대로 행했던 잘못에 대한 사과요구였다. 한 천재 과학자는 전쟁 승리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도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했다. 동성애자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회와 정부 때문이었고 냉전의 광풍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죽은 지 20년이 흐른 뒤 스티브 잡스는 인류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었고 그 이름을 애플(Apple)이라고 지었다. 그리고 한 입 베어 먹은 사과모양을 로고로 택한다.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에 대한 경의와 그의 죽음에 대한 추모의 표시로 알려져 있다.

 


컴퓨터 이름이 왜 애플이냐...
하고 궁금해하던 분들,
이제 답을 아셨을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세월이 흘러 그는 네티즌의 청원으로 총리의 공개 사과를 받게 된다. 냉전 시대에 비극적인 생을 마감했지만 컴퓨터 시대에 부활한 셈이다.

 

* 덧붙임 : 그런데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앨런 튜링과 같은 혐의로 체포되어 처벌 받았던 수많은 동성애자들에게는 사과하지 않았다. 오직 앨런 튜링에게만 사과했다. 영국의 동성애자 인권단체들이 "유명인사라는 이유로 튜링만을 선별적으로 대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부당한 취급을 받았던 10만여명의 다른 영국 남성들에게도 비슷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은 정당한 주장이다.

 


그에 대한 사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철없이 사는 영화쟁이
& 커밍아웃한 게이 김조광수 (ceope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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