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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몰카와 부메랑

2009-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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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몰카와 부메랑

 

2009.9.23.수요일
산하

 

 

한때 신문 기자라는 직업을 꿈꾼 적은 있지만 부러워한 역사는 없었다. 그런데 신문 기자와 유사한 일을 맡아 사람들이나 기관들을 취재하고 다니면서, 팩트를 찾아 헤매고 잠입취재도 해 보고, 콩당콩당 뛰는 가슴 억제하며 숨 가쁜 현장에 뛰어들면서 나는 신문기자의 작업을 적잖이 부러워하게 되었다. 물론 제대로 된 이해 없이 뭔가를 부러워한다는 것이 얼마나 속없는 짓인지를 모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구멍 난 타이어에서 바람 나오듯 부럽다 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을 주체하지 못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보자. 한 마을의 방앗간에 지적장애인이 수십 년 동안 월급은 커녕 자기 명의의 생활 수급비까지 횡령당한 채 무지막지한 폭력과 참혹한 의식주에 시달리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하지만 가해자는 동네 이장이고, 괄괄한 성미에 눈 밖에라도 나면 국물도 없는 동네 유지라 온 동네 사람들이 쉬쉬하는 입장이라고 치자.

 

취재진을 벌레 보듯 슬슬 피하는 동네 사람들에게 하늘 아래 이럴 수는 없지 않겠냐고 인간적으로 호소하고, 여러분들도 학대의 동조자라고 근엄하게 훈계하기도 하면서 머뭇거리는 사람들의 증언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고 하자. 취재 내용이 사실과 부합하는 것을 확인한 순간의 기분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며느리도 모르고 사위도 알 일이 없다. 여기까지는 신문 기자 부러워할 일이 하나도 없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신문 기자는 녹음기 끄고 하직 인사 올린 후 물러나와 노트북 켜고 일필휘지 두드려서 기사를 만들면 된다. 하지만 내가, 자 그럼 우리 그 얘기를 촬영해 볼까요? 하고 카메라를 꺼내들면 상황은 도로아미타불 내지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는 파국을 맞기 십상이다. "왜 찍어? 말로 다 했는데."

 

즉 기자는 글로 쓰면 되지만, 거기에 사진 몇 컷을 추가하면 금상첨화지만, 방송 기자나 PD는 그 내용을 그림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사용되는 불완전하고 불안전하며 불유쾌하며 불친절한 도구가 있으니 그것이 몰래카메라다. 정상적인 취재가 어려울 때, 카메라 둘러메고 신분증 목에 걸고 갔다가는 동구 밖에서부터 사실이 은폐되고 그에 대한 접근이 차단될 것이 뻔할 때, 우리의 신분을 속이고 잠입하여 사실을 취재할 수 밖에 없을 때 몰카는 그 이상 요긴할 수 없는 도구가 된다.

 

그러나 요긴한만큼 위험한 도구다. 이를테면 부메랑이다. 부메랑은 칼이나 창 같은 무기가 거의 없던 시대와 지역에서 요긴하게 쓰이던 무기이지만,  던진 사람에게로 돌아오는 부메랑은 손으로 잡으려 들다가는 중상을 입을만큼  불안하며, 그 궤적이 큰 만큼 엉뚱한 표적을 때려잡을  수도 있는 탈 많은 무기다.

 

무분별한 몰카의 사용의 폐해 역시 잘못 던진 부메랑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취재 내용과 관계 없는 부분에 몰카를 들이댄다거나 비밀스럽게 촬영된 상황을 여과없이 드러내어 피해를 입힌다던가,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되는 사람의 인권을 무시할 수 있다던가 하는 문제는 몰카를 사용하는 이들이 끊임없이 경계하고 삼가야 할 일종의 부작용이다. 그런데 그 부작용을 이유로 몰카의 사용 자체를 막는다면 이는 카메라를 삶의 도구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 시사나 고발 따위에는 신경을 끄라고 강요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아이들에게 유통 기한 지나도 한참 지난 음식을 먹이고 있다는 유치원 내부 고발자 (나는 정말로 그분들을 존경한다. 그 업계에서 그런 고발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천직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의 제보를 받았다고 치자. 

 

자랑스러운 신분증 목에 걸고 방송사 로고 대문짝만하게 붙이고 가서는 원장의 인터뷰를 정식으로 요청하고 거절당하면 안녕히 계시라고 정중히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것이 양식있는 언론인의 자세일까. 해당 원장의 펄쩍 뛰는 인터뷰를 정중히 경청한 후 그들의 업무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원장이 정한 시간에 주방을 폼나게 촬영하는 것이 과연 당당한 자세일까. 혹 누구 눈에 띄지 않을까 간이 콩알만해져서 몰래 카메라의 스위치를 누르고, 누군가 들이닥치는 바람에 장롱 속에 숨고, 혹 들킬세라 가슴에서 북 소리가 나는 일은 음험하고 비도덕적이며 그 자체로 업무 방해가 되는 일일까.

 

참고 기사 : 검찰, MBC 불만제로 몰카 수사

 

누구에게나 상식이며, 심지어 정권에 반대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좀스럽기로 악명 높은 유전자를 보유한 경찰조차도 무혐의로 처리한 일에 검찰이 발을 들이밀고 수사중이란다. 하나 하나 하늘만큼 귀한 아이들에게 유통 기한 지난 음식을 퍼먹인 유아 교육 시설에 위장 취업을 해서 몰카를 돌린 행동이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지난 달 입사해서 처음으로 카메라를 잡고 몰카를 찍고 있는 후배가 나에게 묻는다. "선배님 검찰은 그럼 시사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나는 이렇게 답했다. 

 

"불만 제로라면 이렇게 만들어야겠지. 딱 유치원 문 앞에 들어가는 모습까지는 카메라로 받고, 그 다음엔 네가 방송 출연해서 변사가 되는 거야. 참혹한 정경이 펼쳐졌습니다. 유통 기한은 석 달 지나 있었습니다. 그걸 컵에 따라 아이를 먹입니다...... 아 웬일입니까 빵에 곰팡이가 핀 걸 이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관련자의 증언입니다 (목소리 바꿔서) 아 지 새끼라면 그런 거 먹이겠어요?..........니라블라니라....." 그리고 같이 웃었다. 무슨 개그 콘서트 같다고 했다.

 

개그 콘서트에 이 아이디어 한 번 팔아 볼까.

 

산하(nasanha@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