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개봉영화 일점사] <불꽃처럼 나비처럼>
- 공부 안한 학생의 처참한 성적표에 자비란 없다
 

 

2009.9.25.금요일
구경남

 



 
 

조선왕조 마지막 멜로 (불꽃처럼 나비처럼)
|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사랑이 시작된다!

 

19 세기 말, 제국주의 열강은 천주교와 신문물을 앞세우고 식민지 정복을 동아시아로 확대한다. 조선은 고종이 왕위에 오르고, 그의 아버지 대원군은 강한 쇄국정책을 취해 나라의 문을 걸어 잠근다. 온 나라는 새로움에 대한 갈망과 두려움으로 개혁과 보수의 갈등에 휘말리고 대원군은 왕권강화를 위해 왕후 간택을 서두른다. 그 곳 조선에서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난다. 조선의 운명이 될 여자를...

 

세상에 존재를 알리지 않은 채 자객으로 살아가던 무명은 어느 날,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바로, 피비린내에 찌든 자신과 너무나 다른 여인, 자영을 만나게 된 것. 하지만 그녀는 곧 왕후가 될 몸으로, 며칠 후 고종과 자영의 혼례가 치러진다. 무명은 왕이 아닌 하늘 아래 누구도 그녀를 가질 수 없다면, 자영을 죽음까지 지켜주겠다고 다짐하고, 입궁 시험에 통과해 그녀의 호위무사가 되어 주변을 맴돈다.
한편, 차가운 궁궐 생활과 시아버지와의 정치적 견해 차이로 하루도 안심할 수 없는 나날들을 보내던 자영은 무명의 칼이 자신을 지켜주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일본의 외압과 그로부터 조선을 지키기 위한 자영의 외교가 충돌하면서 그녀를 향한 무명의 사랑 또한 광풍의 역사 속으로 휩쓸리게 되는데...

 

.... 여기까지가 보도자료에 나온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주된 이야기다.

 

 

예고편까지 본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명성황후라는 비극적인 이야기에 남녀의 사랑을 교묘히 녹여서 <300> 같은 그래픽으로 만들어낸 액션으로 마무리하려던 계획이었던 것 같다.

 

재료만 늘어놓고 보면 각각의 소재가 가진 매력은 꽤나 흥미로운 축에 속한다. 구한말이라는 시기는 조선시대라는 고전적인 풍경 속에 각기 다른 여러 나라의 인종과 복식이 등장하는 다분히 환타지스러운 배경이다. 이는 역사적 사실을 뒤섞은 팩션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충분히 현실적인 느낌을 줄 수 있는 아주 적절한 배경으로 작용한다.

 

두 말하면 입이 아플 명성황후의 비극적인 이야기에 버무려진, 그녀를 사랑했던 호위무사와의 플라토닉러브는 한때 전 국민을 열광시켰던 모래시계의 이정재와 고현정 커플을 생각나게 할 정도로 익숙하고 매력적이다. 여기에 CG로 한껏 버무린 액션이 장식된다면, 블록버스터의 소재로서 이보다 더 적절한 것이 어디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이런 의도야 그저 기획의도일 뿐이다. 그것도 영화를 다 본 후에 애초에 이걸 만든 사람들이 뭘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 미루어 추정한 것일 뿐이다.

 

이 영화는 저 야심만만한 기획의도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그저 실험영화에 그치기 때문이다. 그것도 100억 가까운 돈을 들여서.

 

영화는 크게는 민자영이라는 여인이 명성황후가 되고 죽기까지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 그녀를 사랑하는 호위무사와의 사랑이 곁들여지는 것인데... 2시간 동안 구한말의 시대상황과 명성황후의 정치적 행보들, 그리고 사랑이야기와 액션까지 보여주려는, 아니 보여줄 수 있다는 계산은 도대체 누구의 자신감인지 궁금하다. 대하드라마 수준의 배경설정과 인물들을 배치해놓고 제대로 주워 담지도 못하면서, 화끈한 서사의 점프로 압축하면 관객이 모두 납득하고 빠져들 거라고 생각한 걸까?

 

빠른 요약이 불러오는 서사의 점프는 그에 상응하는 효과적인 정보량의 적절한 안배가 없으면 그저 산만한 전개일 뿐이다. 김경식처럼 걸출한 변사라도 동원하던가, 효율성을 무시한 채 그저 무식하기만 한 정보량에 그저 관객은 생뚱맞을 뿐이다. 영화라는 매체가 정보만을 이야기해주는 지식프로그램은 아니지 않은가? 정보를 통해 감정을 끌어올리고, 상업영화라면 그 감정을 영화 속으로 이입까지 시켜야하는데,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그대로 감정이입과 연관된다고 생각한 듯 영화는 작두 탄 무당마냥 열심히 점프만 해댄다.

 


한번 탄 작두는 멈추지 않는다...

 

이렇게 점프만 열심히 한 영화는 결국 각각의 인물들의 동기를 희미하게 만들고, 때문에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만 하는 인물들의 동기가 되는 감정을 담아내는 데에 실패한다.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는 장면이 나오면 그전까지 준비된 감정이 덧입혀져 관객들이 장면을 이해하고 깊숙하게 끌려들어가 공감하게 된다. 이 영화는 장면이 나오면 그전까지의 정보를 열심히 머리 굴려서 적극적으로 이해를 해야만 가능하다. 이러다보니 화면에 빠져서 감탄하거나 눈물을 흘려야 할 관객들은 그 시간에 옆자리의 사람과 쑥덕거리면서 무슨 상황인지 정리하기에 바쁜 진풍경이 벌어진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흥선대원군이 군을 끌고 궁으로 입성하려는 장면인데, 조승우가 연기하는 무명이 만명의 군사와 싸우는 장면으로 예고편에 등장할 정도로 제작사 입장에서는 야심차게 내세우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장면은 적극적으로 외국과 교역하려는 명성황후가 맘에 안든 흥선대원군이 황후암살을 꾀하다가 실패한 후, 친히 군을 이끌고 궁을 접수하려는 일종의 쿠데타장면이다. 영화를 보다보면 흥선대원군이 명성황후를 탐탁찮게 여기는 것을 넘어서 암살과 쿠데타라는 것을 결심하게 되기까지의 감정적인 상승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점이 왜 중요한 것일까.

 

단순히 의견차이가 있었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해서라도 명성황후를 해하려는 결심 사이에는 안드로메다만큼의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시아버지가 며느리 목을 따려고 한다라면, 맘에 안들고 의견충돌이 있고를 넘어서서 궁극의 감정까지 다가가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관객을 인물들의 생각에서 행동까지 이루어지는 과정에 대해 이해시키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갈등을 구체화시키고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 과정을 앞서 언급한 정보나열과 점프로 생략하다보니 각 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당위성이 떨어지고, 그 결과 산만한 전개 끝에 간신히 등장한 야심찬 대박씬은 아무것도 쌓여진 것 없이 이런 식으로 무의미하게 펼쳐지기만 한다.

 

몰입도 떨어지는 스토리 전개에 더해, 개별 장면들의 미숙한 설계 역시 영화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데에 일조한다. 눈물을 쏙 빼놓아도 모자를 장면들은 희미한 서사의 연결고리 때문에 애초에 출발부터 감정의 수위가 낮은 지점에서 시작하고, 그럼에도 눈물이 나올 듯 감정이 절정을 치는 결정적인 장면까지 애써 갔는데도 그 이후를 더 보여주기 위해 늘이거나, 아니면 채 오르지 못한 절정에서 성급하게 끝내버린다. 이미 나왔거나 나오려는 눈물을 그대로 휘발시켜 버리니 어디에서 울고 어디에서 무엇을 느껴야할지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액션신은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애초에 설정된 전투력이 후반부로 갈 수록 일관성을 상실하는 바,  영화의 절정에 가면 실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가 없다.

 

예고편에서 보이는 나루터 결투 장면만 보더라도 무명과 그의 상대인 또 다른 호위 무사 뇌전의 무공은 이미 지구인의 그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성황후를 잡겠다고 들이닥친 일본군의 총알에 속절없이 죽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 비극적인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올 지경이다. 하다못해 나루토나 드래곤볼 같은 만화에도 나름의 논리적인 일관성은 있다.

 

애초에 이런 식이었다면, 실제세계의 무협을 그리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들의 무공을 넘어서는 더 거대한 초절정 고수 혹은 무기를 등장시키던가. 매트릭스의 네오정도는 아니더라도 엄청난 무공을 지닌 그들이 기껏해야 100여년 전의 총알을 기관총도 아닌데 못 피한다는 건 너무 어이없지 않은가.

 

게다가 여기저기에서 봐왔음직한 무술장면이 얼기설기 짜깁기 되어있는 합은 보는 내내 박진감보다는 지루함을 불러일으킨다. 그 결과 앞서 언급한 서사의 점프로 영화는 바쁘고 관객은 그나마 있는 볼거리마저 흥미가 사라지니 영화는 갈수록 어디에 눈을 두어서 봐야할지 모르는 상태로 빠져들고 만다.

 

인터넷에서 말이 많은 잉어장면은 특히 가관인데, 나루터에서 서로 한방을 노리며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두 무사 사이로 물에서 튀어 오른 잉어가 지나가고, 그와 동시에 결투가 시작되는 이 장면은 꽤나 익숙하고도 자주 봐온 컨셉이다. 멀게는 무협지에 등장하는 새벽에 뜬 달을 가리는 구름이라던가, 가깝게는 오우삼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비둘기라던가. 비장한 어떤 감흥을 자아내는 이런 설정은 솔직히 그 과잉된 표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개그와 진지함의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너무 진지해서 오히려 개그가 되어버리는 이 장면은 안타깝게도 그 줄타기에서 손쉽게 개그로 갈아타버리고 만다.

 

솔직히 무명과 명성황후의 감정만 제대로 살렸더라도, 이런 단점들은 애써 무시하고 그냥 저냥 보다가 마지막에 눈물 한 방울 정도는 흘려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다보면 기묘한 것이, 이 영화는 무명과 명성황후 사이에 감도는 미묘한 성적 긴장감에 대한 암시가 꽤나 많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활용을 하지 않고 있다. 순애보에 대한 집착이라면 애초에 그런 성적암시를 줄 필요조차 없지 않았을까.

 

영화는 처음 본 남정네인 무명 앞에서 종아리를 걷고 바닷가를 노니는 민자영의 모습부터 시작해, 그녀를 지키려다 다쳐 상의를 탈의하고 댕기로 상처를 감싸는 무명의 모습. 켜켜이 쌓인 한복을 벗고 서양식 드레스를 걸친 명성황후의 파인 옷 사이로 드러나는 가슴골. 추위에 떠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옷을 벗고 그녀를 감싸 안는 무명까지. 무척이나 많은 장면에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 묘사한다.

 

게다가 NTR계(용어설명 링크) 작품들이 종종 묘사하는 장면중에서 최고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한, 히로인이 주인공이 아닌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고 그 장면을 속수무책으로 볼 수밖에 없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분명 의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이런 장면들을 아무렇지 않게 등장시키고 또 무심하게 소비하면서 성적인 긴장감을 바로 탈색시켜버린다. 차라리 이럴 거면 순애보에 걸맞는 무언가로 대체해서 그 시간에 둘 사이의 감정을 완성시켜주던가 했어야 했다. 이러다보니 결국 둘 사이의 감정 또한 아주 약하고 희미한 끈으로 연결되어 버린다. 이 영화의 목적은 결국 두 사람의 사랑 아니었던가?

 


아아... 사랑이여

 

만약, 이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개봉 전 그토록 언론에다가 수애의 첫 노출 어쩌구 하면서 떠든 것 때문에, 혹시 수애의 베드신을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안타깝게도 그 마음 접고 조용히 야동을 검색할 것을 권한다.

 

일단 수애의 노출은 단 한 컷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척 봐도 대역임을 짐작케 하는 여성의 뒷모습만 1초도 되지 않는 시간동안 빠르게 한 컷 지나가고 나머지는 수애의 신음소리와 수애의 어쩔줄 몰라하는 얼굴 클로즈업뿐이다. (어떻게 대역임을 아느냐고? 차분히 생각해보면 대역일 수밖에 없음을 알 수가 있다. 만약 당신이 감독이고 제작사인데 어떻게 구워삶았는지는 몰라도 수애를 비록 뒷모습이지만 엉덩이까지 다보이게 노출시켰다고 치자. 그럼 그 정도까지 벗겼는데 그걸 1초도 안되는 컷으로 달랑 하나 휘릭 투척하고 말겠는가? 오히려 대역이기 때문에 틀린 점이 보일까봐 빠르게 바꿨다라는 것이 더 논리적이지 않은가? 이를 증명하듯 벌써 대역논란이 여기저기서 나오지 않는가.) 이정도만으로도 즐거움에 겨워 아랫도리가 아려오는 상상력 뛰어난 관객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토록 언론을 통해 노출시킨 것에 비하면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상황이 이해가 잘 안되고, 감정은 희미하고, 액션은 그저 그런 데, 심지어 꼴리지조차 않으니... 맨 처음 짐작해본 기획의도 혹은 바람과는 아주 다른 상태로 영화가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도대체 이런 영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차린 건 많은 데, 당최 먹을만 한 게 없다.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기자 간담회에서 제작사인 사이더스의 김미희 대표가 울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내 개인적인 감상은 공부 안한 학생이 막상 성적표를 받고 보니 울음이 터져 나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좋은 재료가 있더라도 신중히 선별하고, 어울리지 않거나 너무 많다싶으면 과감하게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좋은 것들의 합이 꼭 좋다고만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영화의 완성도를 적극적으로 훼손하는 수많은 단점들은 어느 누군가의 천재적인 재능까지 가지 않아도, 치밀한 계산과 논리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백억이 아니라 천억이 들더라도 제대로 된 작품은 나오지 않는다. 블록버스터가 보여줄 수 있는 패착의 정수이자 결정체라 불릴 수 있는 이 작품은 어떻게 하면 좋은 영화가 탄생하는지 전혀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이 100억 가지고 실험영화 하나 근사하게 만든 것에 불과하다. 그것도 한국영화 망해가시는 길 앞에 장렬히 투척한 꼴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해프닝으로 말이다.

 

제발 공부 좀 하시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왜 영화가 이 꼴이 됐는지 제작백서라도 발간해서 나중에 나올 영화들을 위해 반면교사의 역할이라도 함은 어떨까?

 

구경남(acidfilm@gmail.com)



딴지 보급소
딴지 편집부
필진 모델1호헤라
취지보기
인증갤러리
추천제안게시판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