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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문화사] 잉글랜드편 4 - 종주국 흥망사


2009.09.24.목요일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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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문화사 잉글랜드편 3 - 경기 끝났습니다!





월드컵 우승으로 기세가 오른 삼사자군단은 1968년 유럽 선수권에서 3위에 올랐다.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좋은 성적이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는 전 대회 우승팀이니 만큼 강력한 우승후보로 지목되었다. 이번엔 8강에서 서독과 맞붙게 된다.


2:0으로 이길 때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그러나 우베 젤러와 카이저 프란츠 베켄바워에게 한 골씩을 내주며 동점이 된다. 4년 전의 결승전에서 베켄바워는 약관의 신인이었다. 이제 한 층 완숙해진 그는 중원을 장악하며 잉글랜드를 압박했다. 결국 잉글랜드는 연장전에서 당시 유럽 최강의 공격수로 떠오르고 있던 폭격기 게르트 뮐러에게 골을 내주며 2:3으로 역전패하고 말았다. 1966년의 혈투로 원수가 된 서독은 잉글랜드 추락에 가장 앞장섰다. 1972년 유럽 선수권대회에서는 영국을 3:1로 대파한다. 서독에 두 번 연속 물을 먹은 잉글랜드는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는 본선 진출에마저 실패했다. 갑자기 강호가 된 잉글랜드가 수년 만에 갑자기 약해진 이유는 뭘까.


약체를 단기간에 강호로 만든 알프 람지의 처방은 세상에 처음 선보일 때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킥 앤 러시는 정통파 축구가 아니다. 이런 비장의 전술은 깜짝쇼를 연출할 수는 있지만 다른 팀들에게 한 번 파악되고 나면 위력이 급감된다. 게다가 서독이 잉글랜드를 어떻게 상대하면 되는지를 몸소 보여주었다.


이 시기 알프 람지는 잉글랜드를 현대축구의 적응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 자신도 자국 월드컵에서의 우승을 위해 자신이 추구한 킥 앤 러시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성적이 바닥을 기게 되자 FA는 람지를 경질하고 만다. FA의 눈에 람지는 훌륭한 대표팀을 망치고 있는 인물로 보였다. 이것은 실수였다. 람지는 조국에 우승컵을 안겨준 인물이다. 그는 잉글랜드를 망치기는커녕 오히려 추락의 속도를 늦추고 있었던 것이다.


람지의 공백이라는 치명적인 조건에서 잉글랜드는 76년 유럽 선수권과 78년 월드컵에서 모두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이 시기 잉글랜드에는 훌리건이 급증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1980년 이탈리아 선수권, 잉글랜드 훌리건들은 대회가 열리는 현지로 날아가 각종 폭력사건을 일으킨다. 이탈리아 경찰은 잉글랜드 훌리건들을 무력 진압하는 강수를 두었다. 자국 훌리건들이 이탈리아 경찰에게 최루탄을 맞는 동안 잉글랜드는 이탈리아와의 8강전에서 0:1로 패배했다. 잉글랜드 훌리건은 2년 뒤 스페인 월드컵에서도 기승을 부렸다.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는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2차 대전 종전 이후 경제, 사회 등 다방면에서 추락해가던 영국의 상황은 사회에 불만을 가진 젊은 마초들을 생산해냈다. 선택받지 못한 수컷들은 체제 이상의 체제를 지향하고 결국 극우적인 세계관에 빠져들게 된다. 영국에서 이들의 왜곡된 심리는 스킨헤드족이라는 형태로 표출되었다. 스킨헤드는 히틀러와 나치의 가치를 신봉하는 갱이다. 영국의 극우주의가 전쟁 당시 적대국이 내건 기치와 손을 잡은 이유는 나치즘이 게르만 순혈주의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영국인인 앵글로-색슨 인종은 로마 멸망 이후 잉글랜드에 진출한 앵글족, 색슨족, 주트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부족들은 모두 게르만족의 일파다(영어는 독일어의 방언이다. 독일어는 고지 게르만어, 영어는 저지 게르만어에 속한다.).


나치를 조롱하는 축구팬들이 어떻게 한편으론 나치가 될 수 있을까? 움베르토 에코의 말처럼 파시즘은 비논리적이며, 우파라는 혼합체는 사상의 동지가 아니라 이익집단이고, 이들은 태생적으로 내부의 모순보다는 적과 아군의 구분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스킨헤드는 정치적 분노를 축구라는 매개체를 통해 풀기 시작하고(스포츠는 언제나 좋은 핑계가 된다.), 이들은 곧 훌리건 세력에 흡수되기에 이른다(물론 스킨헤드 문화가 훌리건에 완전히 흡수통합된 것은 아니니 주의하자.). 70년대 들어 사회불안세력으로 지목된 스킨헤드-훌리건은 경찰의 표적이 된다. 훌리건은 체포를 피하기 위해 이전의 패션-파괴적 헤어스타일, 전투화 형태의 가죽부츠(한때 강남에서 대유행했던 브랜드인 닥터 마틴이 대표적이다.), 금속 액세서리-을 버리고 얌전한 옷으로 위장한다. 유순해보이면서도 쌈박질하기엔 편한 이중적인 옷차림을 추구하다보니 전혀 새로운 패션이 등장했다. 바로 우리가 캐주얼이라고 부르는 패션의 조류다.



이것이 훌리건 스타일의 오리지널 캐주얼.
청바지에 운동화, 단정한 셔츠, 그 위에 가죽점퍼 등 갑옷 역할을 하는 겉옷.


잉글랜드 훌리건들은 캐주얼을 유럽에 소개했고 유럽의 유명 브랜드들은 캐주얼을 세계에 보급시켰다. 르꼬끄 스포르티브, 버버리, 라코스테, 팀버랜드, 랄프로렌, 아베크롬비 등의 의류회사는 영국 훌리건들에게 많은 빚을 졌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캐주얼하게 입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전쟁터(경기장)로 출전하는 훌리건이 생각난다.


축구에 뒤틀린 욕망을 배출하는 훌리건의 전성시대는 곧 축구리그 자체의 전성시대를 만들었다. 현재 잉글랜드의 1부 축구리그를 EPL(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이라고 하지만 원래는 그냥 ‘풋볼리그’였다.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이름인 FA처럼 세상의 모든 축구를 포괄하는 단순한 이름이었다. 풋볼리그는 7, 80년대 리버풀을 중심으로 최전성기를 맞았다. 캐주얼 패션의 진원지를 굳이 고른다면 바로 리버풀 팬들이라고 볼 수 있다. 리그가 이상열기에 달떠 있을 때 잉글랜드 대표팀의 수준이 저점을 쳤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잉글랜드가 유럽 선수권 본선 진출에 실패한 84년은 리버풀과 훌리건들의 해였다. 리버풀은 국내리그뿐 아니라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했다.


85년에는 헤이젤의 비극이 벌어진다. 헤이젤의 비극이란 1985년 5월 29일 벨기에 브뤼셀의 헤이젤 스타디움에서 열린 리버풀과 유벤투스간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열린 참사를 말한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리버풀 훌리건들과 유벤투스의 팬들은 무차별적인 패싸움을 벌였다. 그 결과는 39명의 사망자와 400명이 넘는 부상자들.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심지어 프랑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불리는 미셸 플라티니는 이 때의 충격으로 이른 나이에 은퇴를 하기도 했다. 다음은 그의 말이다.
"그날 밤, 나는 축구를 동경하는 마음이 사라졌다. 그 이후 나는 순수한 마음으로 축구를 좋아할 수 없게 되었다."



헤이젤의 비극



세 마리 사자는 스타의 등장과 함께 부활했다. 잉글랜드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본선에 진출하지만 여느 때처럼 전망은 좋지 않았다. 66년 월드컵 우승 후 잉글랜드는 20년 가까이 약체였다. 게다가 포르투갈과의 조별예선 경기에서 주장 브라이언 롭슨이 어깨가 빠지는 부상을 당했다. 잉글랜드는 0:1로 패배했다. 약체 모로코와의 2차전에서 다시 롭슨의 어깨가 빠졌고 결과는 0:0 무승부였다. 이런 잉글랜드가 3차전에서 강호 폴란드를 잡고 16강에 진출할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주장이 전력에서 이탈하자 잉글랜드는 한마디로 가망이 아예 없는 팀이 된다. 결국 바비 롭슨 감독은 주력 선수 4명을 신인으로 교체하는 파격적인 선택을 한다. 말이 파격이지, 사실은 이판사판이었다. 그런데 이 도박이 성공했다. 신인 4명에 포함된 무명의 공격수 게리 리네커가 사고를 친 것이다.


리네커는 폴란드 수비진을 유린하며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3:0의 대승을 거둔 잉글랜드는 폴란드를 골득실차로 누르고 16강에 진출했다. 잉글랜드의 새로운 영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리네커는 강호 파라과이와의 16강전에서 두 골을 기록, 잉글랜드의 3:0 승리를 이끌었다. 국보급 에이스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셈이다.



파라과이전에서 골을 터뜨리고 있는 게리 리네커


게리 리네커만큼 특이한 선수는 드물다. 유순하기로 소문난 리네커의 별명은 그라운드의 신사. 그는 20년의 현역시절 동안 단 한 장의 경고도 받지 않았다. 이는 축구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기록이다. 게리 리네커는 유럽 정통파 스트라이커와는 달리 매우 섬세한 플레이를 했다. 키가 크지 않고(177cm) 달리기도 빠르지 않았지만, 탁월한 위치선정과 순발력으로 득점을 양산해냈다. 특히 남미 선수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볼 터치는 일품이었다. 그는 정확한 헤딩의 전문가였고 양 발을 완벽하게 사용했다. 게리 리네커는 역사상 가장 공격적이지 않은 공격수였다.
그는 너무 착한 탓에 그라운드에서 상대 선수들의 샌드백 노릇을 했다. 그래서일까. 게리 리네커에게는 충격적인 소문이 있었으니, 바로 그가 게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영국 훌리건 사이에서 ‘게이’ 리네커로 통했다. 게이로 의심받는 것만으로도 거친 축구팬들의 먹잇감이 되기엔 충분했다. 훌리건들에게 많은 고초를 당한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관중이 욕설을 던지면 그냥 들으면 된다."
남성관중이 그의 얼굴에 침을 뱉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이렇게 말했다.
"관중이 얼굴에 침을 뱉으면 삼키면 된다."
이 묘한 발언 때문에 그가 게이라는 의혹은 더욱 증폭되었다. 사실 그가 게이인 것 같지는 않다. 그는 결혼했으며 이혼 후 젊은 모델 다니엘과 사귀었고 지금은 그녀와 결혼한 상태다.



게리 리네커와 다니엘 벅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가 게이인지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다니엘과의 관계는 이성애자임을 과시하는 위장이라는 것이다. 설마 그럴까 싶지만 아직도 영국의 게이들은 미중년으로 늙은 게리 리네커의 커밍아웃을 기대하고 있다.



잉글랜드는 8강전에서 운명의 상대 아르헨티나를 만난다.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서 10년 이상 계속된 포클랜드 제도의 영유권 갈등은 결국 82년 전쟁이라는 형태로 폭발되고, 영국은 왕자까지 참전하는 등 총력을 다한 끝에 전쟁에서 이겼다. 포클랜드 제도는 다시 영국의 소유가 되었다.


누구도 물러설 수 없는 잉글랜드-아르헨티나전은 2차 포클랜드 전쟁으로 불렸다. 물론 패전국인 아르헨티나가 더 절박했을 것이다. 그러나 잉글랜드도 승리가 간절했다. 전쟁에서 이긴 상대를 축구에서도 이기면 얼마나 좋은가. 그리고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군도 많이 죽었다. 게다가 영국인들은 포클랜드 전쟁을 아르헨티나가 일으킨 침략전쟁으로 이해하고 있다(당시의 사실관계만을 놓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따라서 잉글랜드로서는 자국의 전몰장병들은 억울한 희생자다.


이런 정치적 배경 때문에 경기는 초유의 관심을 끌게 된다. 관전 포인트는 혜성같이 등장한 게리 리네커와 아르헨티나의 작은 거인 마라도나의 득점 대결. 승자는 마라도나였다. 그런데 마라도나가 승리한 방식이 참으로 극적이었다. 아르헨티나 편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마라도나는 후반전에서 핸들링 반직으로 득점하는 ‘신의 손’ 사건을 일으킨다. 그래도 이 골은 억울하게 먹었다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마라도나의 두 번째 골은 잉글랜드 입장에서는 더 속상할 만하다.


마라도나는 환상적인 드리블로 잉글랜드 선수 6명을 제치고 축구역사에 길이 남는 전설적인 골을 터뜨렸다. 잉글랜드는 한 경기에서 한 선수에게 역사상 가장 비겁한 골과 가장 아름다운 골을 헌납하는 참사를 당했다. 마라도나의 두 번째 골 장면은 축구와 관련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영상이다. 이때 마라도나를 놓친 6명은 해당 영상을 볼 때 어떤 기분이 들까.


잉글랜드는 리네커의 헤딩골로 아르헨티나를 추격했지만 승부를 뒤집지는 못했다. 참으로 억울한 월드컵이었지만 한 가지 위안거리는 있었다. 게리 리네커가 월드컵 득점왕을 차지한 것이다. 게리 리네커는 이 때의 활약으로 3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바르셀로나로 이적한다. 당시 바르셀로나의 감독은 토털풋볼의 사령관이었던 그 전설적인 네덜란드의 요한 크루이프였다. 크루이프에 대한 설명은 네덜란드 편을 위해 남겨놓고, 여기서는 리네커와 크루이프의 악연에 집중하자. 
크루이프는 잉글랜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자신의 팀에 입성한 리네커를 선발로 기용하지 않았다! 워낙 괴짜인 크루이프의 속을 알 수는 없으나 어쨌든 잉글랜드에서는 난리가 났다. 나라를 대표하는 에이스가 외국에 나가서 벤치신세라는 것은(그것도 월드컵 득점왕인데) 무척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게다가 선발출장을 하지 않으면 경기감각도 떨어진다. 이는 곧 잉글랜드 대표팀의 전력 손실과 직결되는 일이기도 했다. 대표팀의 바비 롭슨 감독은 다음과 같이 분통을 터뜨렸다.


"요한 크루이프는 잉글랜드 축구를 죽이려고 하고 있다. ... 리네커는 잉글랜드의 재산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지켜줄 필요가 있다. 이런 상태라면 하루 빨리 잉글랜드로 돌아오는 편이 낫다."


리네커는 후에 벤치 신세에서 풀려나지만 크루이프는 그를 최종공격수가 아닌 윙 포워드로 기용해 잉글랜드인들을 계속 실망시켰다. 그래서인지 1988년 유럽선수권에서 네덜란드와의 8강전은 꽤나 공교롭다. 당시 네덜란드의 감독이 요한 크루이프의 직계 스승이자 토털풋볼의 창시자, 현대축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누스 미헬스였기 때문이다. 이 경기에서 리네커가 무득점으로 침묵하는 동안 네덜란드의 마르코 반바스텐은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잉글랜드는 1:3의 완패를 당한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는 1966년의 우승 이래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친다. 게리 리네커와 브라이언 롭슨의 건재에 더해 폴 게스코인과 데이비드 플레트 등 양질의 젊은 피를 수혈 받은 결과다.
폴 게스코인은 잉글랜드 축구사상 가장 재능있는 선수로 꼽힌다.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그는 섬세한 드리블과 날카로운 패스로 스트라이커들의 성공신화를 도왔다. 프리킥 실력도 굉장했다. 게스코인의 별명은 가짜(Gazza). 게스코인의 스펠링과 발음을 적당히 바꾼 것이다.



자신의 별명이 적힌 응원용 머플러를 들고 있는 폴 게스코인


게스코인은 현실에서는 현명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그는 불행하게도 알콜중독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북아일랜드의 전설적인 공격수 조지 베스트는 게스코인에 대해 냉담하게 말했다.
"그의 등에는 10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다. 나는 그 번호가 포지션을 나타내는 줄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지능지수인 것 같다."
어쨌든 게스코인은 그라운드에서는 훌륭했다. 16강에 오른 잉글랜드는 벨기에를 꺾고 세계축구에 최초로 분 아프리카산 검은 돌풍 카메룬을 만난다. 잉글랜드는 3:2로 돌풍을 잠재웠다. 4강전 상대는 서독이었다. 경기는 1:1로 끝나지만(게리 리네커가 1득점) 결국 승부차기에서 지고 만다. <서독에는 진다>는 공식이 재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대표팀이 부활하는 동안 거꾸로 풋볼리그는 침체기를 맞게 된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국내리그에 확연히 밀려 있었고 팀들의 수준도 제자리걸음이었다. FA는 여러 가지 변혁을 시도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승점제의 변화다. 승리하면 2점, 무승부에는 1점을 주던 승점제를 포기하고 3-1-0(승리-무승부-패배) 승점제를 채택, 공격축구를 유도했다. 특히 1992년 수익성 창출을 위해 1부 리그를 EPL로 재탄생시킨 것은 대성공이었다.


풋볼리그에서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로 변한 이름이 재미있다. 모든 축구리그가 아니라 잉글랜드만의 리그라는 것을 인정한 명칭이다. 그러나 EPL 출범은 영광의 몰락이었다. 해외리그에서 뛰던 국내선수들이 복귀했고 북유럽에 의존했던 용병도 전 유럽으로 확대되었다. 프리미어리그는 10년이 못 되어 이탈리아, 스페인리그와 함께 세계 1위를 다투는 고급 리그로 성장했다.


그런데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한 92년 잉글랜드는 유럽 선수권 조별예선에서 꼴찌로 탈락했다. 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본선 진출도 하지 못했다. 다시 추락일로에 있던 잉글랜드에게 자국에서 열리는 96년 유럽 선수권 대회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이 해는 월드컵 우승 30주년이기도 했다. 잉글랜드는 좋은 경기를 펼치며 4강에 올랐으나 4강전 상대는 독일이었다. 이번 상대는 서독이 아니라 통일독일이었다. 이 경기에서 잉글랜드는 1:1로 경기 종료 후 승부차기로 패배, 6년 전 월드컵을 연상시키는 데자부를 경험하게 된다. 이 패배로 베나블스 감독의 목이 날아간다.


잉글랜드를 4편으로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우려했던 대로 지면이 모자란다. 다음 편에서 확실하게 마무리하겠다고 약속한다. 잉글랜드 마지막 편에서는 베나블스 감독의 후임인 글렌 호들의 진상짓과 최초의 외국인 대표팀 감독인 에릭손의 비화, 굵직한 잉글랜드 선수들과 잉글랜드 축구의 현재를 이야기할 계획이다.


 


필독(the.dog.on.the.fiel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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