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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자살공화국 대한민국의 자화상

 

 
2009.9.24.목요일
파토, 신독

 


자료 사진. 특정 기사와 관련 없음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여느 때처럼 등교를 하는데 학교 앞 골목에서 친구녀석 하나가 쫓아와 말을 거는 거다.

 

"야. 재영(가명)이 죽었단다"
"뭐?"
"재영이 있잖아 중학교 동창. 어제 죽었대. 골프 연습장에서 뛰어 내렸댄다"

 

처음엔 무슨 실없는 소린가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사실로 밝혀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의례히 따라오는 여러 가지 루머도 며칠 떠돌았지만 결국은 투신자살로 매듭이 지어졌다. 확인되지는 않은 이야기지만 즉사한 것이 아니라 뼈가 모두 부러진 채 한참을 병원에서 고통스러워 하다가 갔다는 말도 있었다.

 

이 일은 어린 나이에 나름대로 사색한답시고 까불어대던 내게 죽음의 실체를 참으로 가까이서 느끼게 한 사건이었다. 신해철에게는 얄리가 있었겠지만 내게는 그 친구가 있었다. 그리 친하지 않았고 약간 불량끼도 있었지만 그래도 인사도 하고 말을 섞던 사이.

 

왜 뛰어 내렸을까. 터프해 보이고 덩치도 크고 싸움도 곧잘 하던 녀석인데. 그 겉모습 속에 숨은 여린 내면의 감수성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큰 사고를 쳤던 걸까. 그리고 진짜로 숨이 끊어질 때까지 병원에서 고통스러워했다면 그 동안 녀석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다시 살고 싶었을까 아니면 그저 빨리 숨이 끊어져 그 고통이 끝나기만을 바랬을까.

 

나는 필시 그 답을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풀어야 할 과제 하나는 어린 내 가슴속에 남겨졌다. 사람들은 이렇게들 스스로 목숨을 끊는구나. 그 일이 일어나는 순간까지 아무도 그들을 걱정하지도 구원하지도 못하는구나. 그리고 죽은 후에야 고통을 이해하는 척, 고뇌를 연민하는 척 하면서 후회하는 거구나.

 

머 이런 느낌에 대해 굳이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거다. 다들 지난 5월에 뼈저리게 느낀 바 있으니.

 


절대 자살할 것 같지 않은 사람의 돌연한 자살은
우리를 더욱 큰 충격과 혼란으로 내 몰게 된다.

 

잊을 만하면 자살 사건이 지면을 장식한다. 특히 안재환으로 시작해서 최진실을 거쳐 노무현에까지 이른바 유명인의 자살 사건들은 사회심리적으로 큰 충격파를 동반했었다. 그러나 그런 알려진 경우와는 달리, 고민과 고통에 지쳐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하루에 35명에 이른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

 

며칠 전9월 12일에 여고생 두 명이 투신자살을 했다. 아파트 18층 옥상에서 서로의 팔과 다리를 운동화 끈으로 묶고 뛰어내린 것으로 생각되는데, 유서가 발견되지 않아 경찰은 가족이나 주변인 조사를 통해 왕따를 비관한 동반자살로 추정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직 펴 보지도 못한 젊은 아이들이 이렇게 죽어가고 있단 말이다.

 

대한민국은 자살률이 굉장히 높은 사회다. 인구 10만 명당 몇 명이 자살했나로 통계를 뽑는 게 자살률인데, 1994년 무렵 10명이 안 되던 자살률이 2008년에는 무려 26명이 되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08년 자살자는 12,858명인데, 이는 전년보다 684명이 증가한 것으로 전년 대비 5%나 증가했다. OECD가입국 중 자살률 1위인 사회가 바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75세 이상 자살률이 OECD 회원국 평균보다 8.3배나 높다.
(출처: 토마토뉴스)

 

그나마 간혹 뉴스에 나오는 청소년들의 자살도 문제지만 사실은 노인 자살률이 터무니 없이 높다는 사실은 오히려 언론의 관심 밖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래 표를 함 보자.

 

2008년의 연령별 자살자수와 자살률을 보면 이는 더욱 확연해진다.

 


[출처 : 통계청]

 

65세 이상의 자살률을 보면 갑작스레 평균 자살률 26명의 두 배를 훌쩍 넘어서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85세부터 89세까지의 자살률은 무려 124.5다.

 

노인 자살률의 심각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주목할 만한 수치들은 또 있다. 일단 여성의 자살률이 OECD 회원국 중 1위다(11.1 2007년 비교). 성별 비교로는 남자의 자살률이 여자보다 1.8배 이상 높지만, 10년 전과 비교하면 남성 자살률은 26.0% 증가한 데 반해, 여성 자살률은 무려 81.9%나 높아진 것이니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편 남자의 자살률 중 눈에 띄는 건, 20대와 30대 자살률의 증가다. 20대는 22.2, 30대는 28.3으로 전년에 비해 각각 16.7%, 9.8%나 증가했다.

 

자살률 증가의 이유는 사회학이나 심리학 등 관련분야에서 엄밀한 조사를 필요로 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무엇 때문이다라는 추정처럼 무의미한 것도 없다. 유명인의 죽음을 따라 한다는 베르테르 효과 때문에 2, 30대 남성 자살률이 상승했다는 식의 지맘대로 추정은 그저 소가 웃을 얘기다.

 

이와 같은 자살률 증가는 세부적인 연구가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해당 사회의 개인 보호 기능이 현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반증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다. 경제적 토대든, 가치관과 같은 문화적 문제든지 간에 말이다.

 

그러나 통계를 살펴보며 이상했던 건,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청소년 자살의 연령이 15-24세였다는 것이다. 선거권까지 있는 20대 초반의 직장인이나 대학생까지 통계적으로는 청소년으로 분류하고 있는 거다. 그래서 보다 상식적인 의미에서의 청소년의 상황에 대해 알아보고자15~19세 자살률 변동을 살펴보았는데, 전국적 통계로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몇 가지 수치 변화가 보였다.

 


[출처 : 통계청]

 

전국적 통계로만으로는 24세까지 포함한 통계청의 발표나 마찬가지로, 이 나이 대에서 요 몇 년 사이 자살이 크게 증가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시도별로 구분된 변동을 보니 서울시 청소년(15-19세)의 자살률은 2000년 3.9에서 2008년 8.5로 2배가 넘게 증가했다. 그 중 2002년에 5.9, 2003년에 8.4로 증가한 것이 특히 눈에 띄었다. (이 해에 입시제도가 큰 폭으로 바뀐 것으로 기억하는데 자살률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지는 단언할 수는 없다. 2002년과 2003년은 전국적으로 아이들의 자살률이 급증하기도 했는데, 충청북도의 경우 오히려 하락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또 강원도의 청소년 자살률은 1년 사이에 갑자기 늘었다. 2007년 6.3에서 2008년 11.3으로 뛴 거다. 얼마 전 강원도의 연쇄 동반자살이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는데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실은 중고생들도 여기에 포함되었던 걸까? 특별시와 광역시 중 2007년과 2008년을 살폈을 때 청소년 자살률이 제일 높은 곳은 인천과 광주다.

 

이 통계 자료가 유의미한 지역별 청소년 환경 비교의 지표가 될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고, 전문가들의 다양한 검토가 있긴 해야겠지만 우리나라의 자살 인구가 점점,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정부나 관계 당국 등의 대책과 노력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 큰 문제다. 오히려 현 상황에 대한 열라 낮은 문제의식과 무뇌아적 접근이 분통을 터뜨리게 만드는 지경이다.

 

일례로, 강원도 동반자살이 사회 문제가 되던 당시 모 공중파 방송의 심야 뉴스에 자살방지 관련된 모 협회의 나이 지극한 총재가 나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근데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앵커의 질문에 대해 그 양반은 아래와 같이 말하는 거다.

 

"승합차가 오래 주차 되어있으면 속 한번 들여다 보시고... 불필요하게 번개탄이나 연탄 사가는 사람 있으면 눈 여겨 보시고..."

 


이렇게 주차된 차 속 열심히 보란다. 혹시 속에 사람 죽고 있나.
하루에 35명이 죽어 나가는 와중에 이런 식으로 건질 수 있는
생명이 대체 몇이나 된다는 거냐?

 

머 그런 것도 특정한 상황에 따라서는 약간의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죽을려고 맘 먹은 사람이 승합차 쳐다보고 있으면 안 죽고 연탄 안 팔면 못 죽냐. 이런 건 일반인이 술자리에서 떠들어도 모자랄 수준의, 말 그대로의 미봉책에 불과한 거다. 명색이 협회쯤 되면 인간을 자살로 내모는 근본적인 이유들에 대해 보다 과학적이고 인본적으로 접근해야 하거늘, 기껏 나와서 한다는 이야기가 저런 식이다.

 

이런 식으로 어리버리하게 간다면 앞으로도 우리나라 자살률은 한동안 OECD 1위 자리를 아무 어려움 없이 유지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언젠가 그들 중에는 내 부모나 자식, 형제, 친구도 포함될지도 모른다.

 

 


 

 

 

며칠 전 영국에서 약간이나마 알던 미영(가명)이란 친구가 그만 자살을 했다는 것을 후배에게서 전해 들었다. 자그마하고 이쁘장하고 여릿여릿하던 아이로 기억하는데, 나이 서른 남짓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다.

 

사실 필자는 자살에 대해 지나치게 상식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편은 아니다. 오래 전, 딸의 자살을 겪은 선배가 그래도 딸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아직 어리던 내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말이었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모든 자살을 비겁함이나 나약함이나 현실도피 같은 것으로 마냥 몰아세우고 싶지는 않다. 굳이 모 철학자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자살이 인간이 스스로 택할 수 있는 최후의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점은 물리적인 측면에서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마음 아픈 것은 자살이라는 선택 자체보다는 거기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사람들(아마도 대부분)이 겪게 되는 고통과 외로움, 절망 같은 극한적인 감정들이다. 자유를 찾거나 고통을 끝내기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자살만이 남게 되는 삶, 그것은 어떻게 보아도 아름답고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특히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들을 대량으로 자살하게 만드는 사회라면 개인의 선택 운운하는 식으로 말하기에는 이미 어려워진다. 특히 우리나라가 향후 초고령화 사회로 진행될 거라는 예측이 설득력을 갖고 있는 이 상황에서 노인 자살률은 늘면 늘었지 절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노후대비를 위해 필요한 돈이 17억이라는 황당한 산출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이런 식이라면, 실제 생활 수준과는 무관하게 그런 정도의 돈을 갖고 편하게 노후를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평생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이룬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더욱 무서운 것은 물가 상승률 등 각종 지표를 고려했을 때 혹시라도 저 산출 결과가 사실로 나타나는 경우다. 성공적인 사업가가 아닌 한, 큰 유산을 상속받지 않는 한 정상적인 방법으로 저런 금액을 모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사회에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 열분들 중에 60세 넘어서 재산 17억을 가질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넘은 얼마나 되시나?

 

그렇다면 혹시 2,30년 후 우리에게 남는 것은 평균 이하의 생활 수준과 좌절, 또 남들이 투기와 탈세 등 갖은 수법을 동원해 한 재산 만들 때 자존심과 도덕심을 내세우며 동참하지 않았던 어리석음에 대한 후회뿐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10년, 20년 더 늙고 병들어간다면 종내에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는 지금 사람을 대량으로 자살케 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는 승합차 창문이나 들여다보는 뻘짓이 아닌 사회구성원 모두가 같이, 열라 종합적이고 구조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이 사회가 어딘가 미쳐 돌아가는 구석이 있다는, 사람을 죽이는 끔찍한 속성이 산재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두려운 것은 절망이던 포기던 무관심이던, 타인의 자살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나 연민마저 사라져 버리는 그런 세상이 되어 가는 거다. 잔인함은 반드시 폭력이나 폭언 같은 직접적인 수단으로만 표출되는 것이 아니다. 근데 요즘 우리 사회가 조금씩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닌지, 좀 무섭다.

 

글/자료 조사 : 신독(kangbika@korea.com)
글/구성 : 파토(patoworl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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