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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공부를 잘한다는 것의 진짜 의미

 

2009.09.28.월요일
김지룡

 

"집에서 어떤 우유를 드시나요?"

 

아이가 커나가면서 집에서 먹는 우유가 바뀐다고 한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아인슈타인 우유를 마신다.
"우리 아이가 천재일지 몰라." 라면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서울우유를 마시기 시작한다.
"천재가 아니면 어때? 서울대 가면 되지." 라면서.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 연세우유로 바뀐다고 한다.
"서울대 아니면 어때. 같은 명문대학인데." 라면서.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건국우유로 바뀐다고 한다.
"요즘은 인서울 대학이 옛날 서울대학이야."라면서.

 

아이가 고3이 되면 매일우유로 바뀐다고 한다.
"사고 치지 말고, 매일 학교나 잘 갔으면 좋겠다."라면서.

 

"여러분은 지금 어느 우유를 마시고 계십니까?"

 

 

천재인지 아닌지, 명문대를 나왔는지 아닌지, 수도권 대학을 나왔는지 아닌지가 삶의 질이나 행복지수에 기여하는 것은 무척 작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결국 매일우유를 마시게 되는 일이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부모는 등골이 휘도록 일을 해서 사교육비를 마련해왔다. 아이는 아이대로 한 겨울 밤 11시, 12시에 추위에 벌벌 떨며 학원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생활을 길게는 10년 가까이 해왔다. 초등학생에게 물어보았더니 어린이날 가장 받고 싶은 것이 하루라도 좋으니 마음껏 놀아보는 것 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결과가 매일우유라면 납득할 수 있을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웃어넘길 수 있을까.

 

그나마 고3 때 매일우유를 마신다면 다행인 편에 속한다. 그렇게 오래 버티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시기부터 매일우유를 마시며 살아야 하는 가정도 많다. 하루 종일 공부만 하는데 미치지 않는 것이 기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도 중학생에 의한 강력 범죄가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뉴스에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별로 신기하거나 충격적인 일도 아닌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근본 원인 중의 하나는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오해를 하고 있는 부모가 많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의 의미를 오해하면, 잘못된 공부 방식을 택하게 된다. 잘못된 방식으로는 좋은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 결국 부모도 아이도 울분을 터뜨릴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의미일까. 가장 많이 하는 오해는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시험 성적이 좋은 것" 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은 대개 시험 성적이다. 하지만 성적이 좋다는 것이 공부를 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루 30분 공부하는 데 평균이 90점인 아이와, 하루 6시간 공부하는 데 평균이 92점인 아이가 있다. 과연 누가 더 공부를 잘하는 것일까? 겉으로 드러난 성적을 보면 평균 92점인 아이가 잘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효율성을 따져보면 하루 30분에 평균 90점인 아이가 훨씬 더 공부를 잘하는 아이일 것이다.

 

초등 시절 하루 6시간 공부하면 최상위권 적어도 상위권에는 속할 것이다. 하지만 하루 6시간은 공부시간이 거의 한계 지점에 도달한 것을 말한다. 더 이상 공부 시간을 늘리기 힘들고, 성적도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우유가 바뀌는 전형적인 타입이다.

 

하루 30분 공부하는 아이는 성적이 좋아질 여력이 얼마든지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 하루 2시간 정도로 공부시간을 늘릴 수 있고, 성적은 비약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그다지 뛰어난 성적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빠르게 치고 올라가 최상위권에 이르는 아이는 대개 이런 경우다. 이런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하루 6시간 공부하는 아이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을 유지하기조차 힘들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단순히 성적이 좋다는 것이 아니다. 그 성적을 얻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했는지 따져봐야 한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공부를 한다는 의미다. 원하는 성적, 필요한 점수를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으로 달성하는 것이 공부를 잘하는 것이다.

 

공부를 잘한다는 의미를 오해하면 효율이 낮고 효과도 없는 공부를 아이에게 장시간 시키기 마련이다. 잘못된 공부 방식은 대개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 군대방식.
군대에서는 군인들에게 시킬 일이 없으면 삽 한 자루씩 나누어주고 땅을 파게 한다. 땅 파는 일이 끝나면 다시 메우라고 한다. 놀면 뭐 하냐?며. 이런 일에 잘 해보겠다는 동기와 의지를 갖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대개 어영부영 시간을 때운다. 30분이면 할 수 있는 일을 하루 종일 질질 끈다. 빨리 처리할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군대 방식으로 공부를 시키면 아이는 하루 종일 학원으로 뺑뺑이 돌게 된다. 놀면 뭐 하냐. 하나라도 더 배워야지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기도 의지도 없는 아이에게 학원 순례를 시킨다고 효과가 나올 수 있을까. 군인들처럼 어영부영 시간만 때울 텐데.

 

두 번째. 택시 방식.
손님이 타고 있으면 택시 요금은 계속 올라간다. 차가 빠르게 가는지, 목적지까지 최단 경로로 가는지는 상관이 없다. 아이를 무조건 책상에 앉히는 것이 택시 방식이다. 어쨌든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면 성적이 조금은 오를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아무리 책상에 오래 앉아 있어도 집중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세 번째. 논문 방식.
대개의 논문은 서론, 본론, 결론 방식을 택한다. 논문 방식은 아이 시절을 서론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다. 성인 시절인 본론을 위해 서론을 모두 희생할 것을 요구한다. 아이가 아무리 힘들어해도 개의치 않는다. 다 너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며 하루 종일 공부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 사회는 인생을 너무 서론, 본론, 결론 으로 나누어 생각한다. 본론을 위해 서론을 희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결론을 위해 본론도 희생하라고 한다. 요즘 사회에서 강요하는 결론은 행복한 노후다.

 

과연 삶이 서론, 본론, 결론일까. 삶은 항상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삶은 매 순간이 진지한 본론이다. 어린 시절도 서론이 아니라 본론이다. 열 살의 아이는 열 살에 맞는 삶을 살면서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나중을 위해 지금을 희생한다면 우리는 도대체 언제 행복할 수 있을까.

 

요즘 아이들은 평균 수명이 100살 쯤 될 것이라고 한다. 그 중 대부분의 시간을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SKY 대학을 나와도 평생직장은커녕 향후 5년이 보장되지 않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일도 60살이 아니라, 80살 정도까지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초등학생 시절에 편안하게 일상을 즐기지 않는다면, 도대체 언제 편안한 삶을 살아보겠는가.

 

그래서 어쩌라고? 공부 시키지 말라고?

 

그건 아니다. 천부적인 혹은 대단한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공부는 꽤나 중요한 변수의 하나니까.
다만 초등학교 저학년이 하루 30분 이상, 초등학교 고학년이 하루 1시간 이상 공부하는 것은 아동학대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 정도 시간만 효율적으로 사용해도 최상위권 성적을 얻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말을,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해야만 효율성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방법은?

 

얘기가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그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겠다.
나도 긴 글은 싫어하니까.

 

 

 

애 키우는 일에 미쳐서
문화평론에서 자녀교육으로 직업을 바꾼
김지룡(blog.naver.com/edu_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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