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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벌] 민족최대의 명절, 설일까 추석일까

 

 

2009.9.29. 화요일
국론분열 중재위원회
술탄

 

 

 

추석이 귀두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워낙 불황이라 그다지 반갑지는 않지만서두, 그래도 추석이라 여기저기서 민족 최대 명절 어쩌구 저쩌구 분위기를 잔뜩 띄운다.

 

그런데 저번 설날 즈음에도, 각종 매체에서 추석을 두고 민족 최대 어쩌구 저쩌구 설레발친거 기억나실거다. 그럼, 민족 최대 명절이 두 개란 얘긴데... 이거 안될 소리다.

 

우짜자고 민족 최대 명절을 두 개씩이나 두어 민족 최대라는 희소성에 심대한 타격을 가함은 물론, 가뜩이나 없는 서민 살림 거덜나게 하려는 듯한 분위기를 비열하게 조장한단 말인가? 이래선 안된다. 이러한 관행은 민족전체를 유린하는 기만행위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모름지기 한 끗발 차이일지라도 지존과 2등은 엄연히 다른 법.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전통적으로 명절계의 쌍두마차로 인식된 설과 추석 중 한 쪽을 밀어줘야 마땅하다.

 

그런 의미에서 대보름, 한식, 단오, 동지, 구리수마수, 복날 등 일개 군소 명절 혹은 짜가 명절은 논외로 하는 것이 당연지사. 자, 오늘은 그동안 각종 매체에서 구태의연하게 써왔던 민족 최대 명절이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을 두고 설과 추석이 자웅을 가려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단, 설과 추석은 태음력을 기준으로 해서 각각 1월 1일, 8월 15일로 했다.
 

 

 

  역사적 고증

 

물론 최초가 곧 최대는 아니다. 그치만 우리 민족이 설과 추석 중 어느 것을 먼저 명절로 받아들였냐 하는 것은, 명절이 가진 역사의 길이를 보증할 뿐만 아니라 나중의 것은 먼저 것에 비해 아류성을 가지기 때문에 최대 명절 요건으로써 일단 어느 정도 먹어준다 하겠다.

 

그럼 과연 설과 추석 중 어느 것이 우리에게 먼저 명절이 되었을까?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본 기자 철두철미한 문헌고증에 나섰드랬는데 문헌마다 알 수 없다, 불분명하다, 내가 어찌 알리 투로 꼬리를 내릴 뿐이었다.

 

다만, <수서>를 비롯한 중국의 역사서에는 신라인들이 설날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각종 버라이어티 쇼를 즐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추석의 경우, 신라 제3대 유리왕 9년에 여자들이 두 패로 나뉘어 7월 16일부터 시작한 길쌈을 8월 15일 승부를 가려 진쪽이 이긴 쪽에 술과 밥을 한 턱내는 걸로 어렴풋이 그 기원을 찾는다.

 

이후, <고려사>에서는 설과 추석은 구대속절(九大俗節)-설, 정월 대보름, 삼짇날, 팔공회, 한식, 단오, 추석, 중구, 동지- 에 당당히 낑궈져 있었고, 조선시대로 넘어와서도 역시 명절계 4강- 설, 한식, 단오, 추석-에 둘 다 사뿐이 안착했으며, 현재에는 투톱체제로 굳어졌던 것이다. 역사적 고증으로 따지면 거의막상막하다.

 

 

 

  음식의 양과 질

 

이 두 명절에서 먹는걸 빼면 아쉽다. 그래서 2라운드는 음식의 빵빵함으로로 승부를 가려보도록 하겠다. 그래서 일단 설과 추석의 본 기자 맘대로 베스트 5음식의 사진을 실을테니, 독자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맛과 향을 맘껏 음미할 수 있는 소위 염력시식을 하도록.












































 
 
 

 

 

 

추석

 

 No1

 

 

 

 

 

 

 

떡국

 

송편

 

 No2

 

 

 

 

 

잡채

 

토란탕

 

 No3

 

 

 

 

 

 

갈비찜

 

닭찜

 

 No4

 

 

 

 

 

 

 

 만두

 

화양적 

 

 No5

 

 

 

 

약과

 

햇밤

 

추석우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음식대목에서 거침없이 열변을 토한다. 추석의 의미가, 풍성하게 거둬들인 곡식과 과일을 다 조상탓으로 돌리는 의미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라면, 추석과 음식은 뗄레야 뗄 수 없다는 것이다. 추석 때 나오는 음식은 기본적으로 풍성할 뿐만 아니라 햇곡식, 햇과일, 햇밤같이 처음 나왔다는 의미에서 햇자가 붙어다니기 때문에 설의 음식과는 양과 질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는 입장이다.

 

추석의 간판음식인 송편과 설의 간판음식인 떡국만 비교해도 마찬가지.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제 애기 가질 때 안됐니? 따위의 훈훈한 떡담을 나누며 햇쌀로 정성스레 빚은 송편과, 먹다 남은 떡쪼리기를 원래 하위음식으로 치는 국으로 대충 얼버무린 떡국이 어떻게 같은 레벨이냐고 주장한다.

 

이렇게 음식분야에서 추석의 압승분위기에 설우위설 설파자들은 제동을 건다. 추석음식이, 곡식과 과일이 가장 풍성한 절기에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예전과 다르게 현대에 와서는 설음식도 추석 못지 않다고 맞받아친다. 그 이유가 절기와 무관하게 비닐하우스재배는 물론, 최첨단기계와 새로운 기술, 첨단농법에 의해 설음식과 추석음식의 질에서의 격차는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TV 프로그램 풍성도

 

명절의 참된 의미를 소박하게 TV시청으로 두어, 평소 문화생활에 대한 허기를 명절기간동안 집중적으로 보상받으려는 조상없고 애인없는 외로운 영혼들. 이들을 감안하면 TV는 문명의 이기라기 전에 명절 때 더욱 가난한 영혼을 위로해주고 한줄 윤택함을 던져주는 총본산이 아니던가. 그래서 설특선 대작 시리즈, 추석맞이 명작특선 등의 다채로운 TV프로그램은 이들에게는 다름아닌 조상이요, 애인인 것이다.




 
 

 

물론 뭐털도사, 양놈들 장기자랑, 미스터 삔, 폭쏘가요청백전 등 고마 했으면 좋겠다, 이제 다 외울지경이다류의 시청자들로부터 갖은 빈축에도 불구하고 명절 프로그램계에 단골 불청객으로써 꼴갑을 과시했던 프로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외롭고 불우한 영혼을 달래는 것이 명절 프로그램의 본연의 소임인 바, 이에 초점을 맞춰 설과 추석중 어느 때가 더 우위에 있느냐를 비교토록 하겠다. 대상은 작년 추석 영화프로그램과 이번 설 영화프로그램으로 하겠다.

 

 

위의 표를 보면, 방송 3사에서 방송하는 영화편수가 지난 설 3일 연휴동안 20편, 이 번 추석 3일 연휴동안 14편으로 지난 설이 압도적으로 우위다. 

 

근데, 설(음력 1월 1일)이 최소 3일간 달력에 시뻘건 색으로 칠해지며 연휴로 지정된 것은 불과 89년 이후의 일로서, 이 때까지 음력설의 말못할 수난사가 도사리고 있었음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설의 수난사에 대한 양측의 입장차

 

음력설이 연휴가 되어 사흘정도 쉴 수 있기까지 참으로 험난하고 긴 수난의 과정이 있었드랬다.

 

음력설의 수난사는 담과 같다. 때는 바야흐로 대한제국이 선포되던 해의 다음 해인 1896년, 이 해부터 양력 1월 1일이 공식적인 양력설로 지정되었지만 대부분의 민간인들은 양력설은 대충 얼버무리고 음력 1월 1일에 조상에게 차례지내는 등 음력설에 여전히 치중했다.

 

그러다가 1910년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조선총독부는 양력설을 쇠기를 강권했지만 조선사람들은 양력설를 왜놈설이라며 독립운동하듯이 음력설을 고수했다. 아, 심지굳은 민족같으니라고.

 

해방이 되고 리씅만, 박쩡히가 차례로 대통령을 해자시던 시절 역시 음력설은 인정되지 못했지만 일반 국민들의 음력설을 고수하려는 의지는 완강했다. 그러다가 전두환 대통령시절이던 1986년, 양력설은 3일 휴가를 주면서도 음력설은 민속의 날인지 토속의 날인지로 정해져 째째하게시리 따악 하루만 쉬게 했드랬다. 그런데 몇몇 회사와 공장은 귀성차량을 배치하고 며칠간의 휴가를 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1989년 드라마틱한 반전이 일어난다. 국민들의 끈질긴 음력설 수호 의지를 권력층도 어쩌지 못했는지 음력설 이후 3일동안 휴일로 정하는 대신 양력설은 단 하루 쉬게하는 역전현상이 일어난 거다.

 

이러한 음력설 수난사에 대한 설우위측과 추석우위측은 현격한 입장차를 보인다.

 

먼저 설우위측의 입장을 들어보면, 설은 근 1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동안 민중이 끈질기게 오랑캐세력과 권력층에 투쟁으로써 쟁취해낸 쾌거이자 민주주의의 산물이라며 사자후를 연거푸 토해낸다. 우리민족 최대명절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감동적이고 쇠심줄마냥 끈질긴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추석우위측은 좀 다르게 생각한다. 음력 8월 15일은 한 해의 농사를 마무리짓고 추수가 이뤄지는 시기인만큼, 의심할 여지 없는 화끈한 축제의 분위기라 설처럼 오랑캐의 침략이고 나발이고 없이 가장 안정적이고 굳건한 민족의 명절이라는 것이다. 음력설의 명분은 냉정히 말해 그저 문화적 관성, 그 이상을 찾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을 전해들은 설우위측은 즉각적으로 격노한다. 추석이야말로 서양의 땡스기뷩데이같은 서양명절과 협잡하며 그 기세을 키워왔다며 다소 감정섞인 반박을 한다. 

 

 

 

  산 사람의 축제의 의미 vs 돌아가신 조상님에 대한 감사 의미

 

설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한 해를 시작하며 지들끼리 세배니 설빔이니 분위기를 띄우며 벌이는 축제고, 추석은 추수의 고마움을 죽은 조상께 돌리며 산자가 죽은자에게 대접하는 축제라는, 대략 이런 이분법으로 설과 추석을 구분하는 이론도 있다. 주로 추석 우위설 설파자들이 내세운 이론이다.

 

그러니까 설은 세뱃돈이라는 저속하고 세속적인 매개가 산 자들 사이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것이 걍 크게 보일 뿐이라는 거다. 현대 설의 밑바닥 정서는 탐욕적 황금만능주의를 깔고 있으며, 현대설은 결국 철 모르는 어린 것들이 국가의 경제상황, 그리고 이에 따른 어른 들의 지갑 사정은 안중에도 엄꼬 세뱃돈을 받아 챙겨 히히덕거리는, 축제치곤 하급의 축제로 변질되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세상 물정 모르고 부모심정 모르는 어린 아이들에게 설이 굉장한 축제인 것인 마냥 떠드는 것일 뿐, 추석의 정서와는 격이 틀리다고 주장한다.






 
 

 

이런 광경 추석때만 있는 건 아니다

 

그에 비해 추석시즌에 깔린 정서는 보다 고매한 것으로, 피땀흘려 농사지어 거둔 곡식과 과일을 모두 죽은 조상 탓으로 돌리는, 참으로 갸륵하고 지고지순한 효사상을 깔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설과 추석은 같은 반열에 놓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처사라고 강변한다.

 

이에 반해 설 우위측은 설에도 차례를 지내는 집이 추석 못지 않다며 위와 같은 단순무식 이분법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며 코웃음 친다.

 

  귀성객 규모

 

글타, 민족 최대 명절을 가리는데 있어, 귀성객 규모 만큼 이를 실증적으로 입증하는 것도 드물다. 근데 본 기자 자료를 찾아 본 결과 최근 것 중에, 건설교통부와 경찰청의 종합 추정치로 2008년의 추석 시즌과 2009년의 설 시즌 자료를 보면 이렇다.

 

자동차, 항공기, 열차 등으로 이동하는 귀성객과 역귀성객 합쳐서 2008년 추석연휴 때는 3, 625만명이고, 2009년 설 연휴 때는 3,509만명으로 추정한다. 엄청나다. 오죽하면 명절 나들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민족 대이동이라는 웅혼함이 듬뿍 들어간 뉘앙스로 명절귀성객들을 표현하겠는가.

 

이 자료만 보면 설과 추석 때 얼추 엇비슷하게 귀성객들이 움직이는 셈이다.
 

 
 


그밖에 위의 것들 외에도 이번 격론에는 고스톱이라는 변수도 있었드랬다. 이제 명절 전통놀이 반열에까지 오를 것만 같은 고스톱. 이런만큼 일각에서는 고스톱에 의한 전국민 화폐통화량을 통해 설과 추석의 진검승부를 가려보자는 주장도 있었던 것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민족최대의 명절이라는 것. 어쩌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앞서도 밝힌 바 있듯, 본 기자도 얼라적에 일가친척들에게 세뱃돈을 삥뜯기 위해 눈까뤼를 까뒤집고 다닐적에는 설날을 인류최대의 명절이라 의심치 않았더랬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세배 드릴 분들 못지 않게 세배 받을 얼라들도 많아지다보니 요즘은 사실 설날이 다가오는 것이 그닥 반갑지만도 않은 것이다. 솔직히 그렇다.

 

만약 현 사회의 경기지수가 민족최대의 명절을 결정짓는데 관여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국론분열 중재위원회
술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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