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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성범죄] 뒷산의 추억

 

2009.09.30.수요일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은 한 여성필진

 

지난 22일 KBS 시사기획 쌈에서 방영한 나영이(가명) 사건을 독자 여러분도 알고 계실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 나 역시 이번 사건에 대해 분노했고 그 어린 아이가 겪은 끔찍한 일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나는 법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범인이 받은 12년 형은 그가 저지른 범죄에 비해 너무나도 낮은 형량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나영이가 평생 가지고 갈 몸의 상처, 마음의 상처에 비해 너무나도 턱없이 낮은 형량이라고.

 

이번에 내가 쓰려고 하는 이야기는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에게도 한 번도 말해본 적 없는 내 어릴 적 기억에 대해서다. 그 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만화 모래요정 바람돌이 에 나오는 에피소드처럼, 나는 이 기억을 내 머릿속 가장 구석진 곳에 처박아 두고 이 기억을 담은 동그란 방울이 까맣게 퇴색되어 없어져 버리길 원했다. 그러나 기억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거의 잊었다 싶다가도 TV로 내가 겪은 일과 비슷한 일에 대한 뉴스를 접하기만 하면 기억이 바로 어제같이 생생히 살아났다.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며 뉴스를 보고 있다 비슷한 사건을 보면 이상하게도 내 입 안 가득 떪은 풀 맛이 느껴졌다. 유치원 운전기사가 원생을 강제추행한 사건을 봤을 때도, 작년 일산에서 일어난 엘리베이터 여아 납치 미수사건을 봤을 때도. 그리고 지금 나영이 사건을 보고서 이 글을 쓰는 중에도 입에서 계속 풀 맛이 난다. 아마 앞으로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때 나는 국민학교(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어머니는 이른 아침에 일어나 내 도시락에 넣을 김밥을 쌌다. 나는 동생과 같이 어머니 옆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도 어머니가 김밥 꼭지를 잘라 옆에 놔두면 얼른 주워 먹곤 했다. 거실에 틀어 놓은 TV에선 일기예보를 했다. 구름이 낀 흐린 날씨지만 비는 안 온다고 했다. 비가 오면 소풍을 가지 않고 대신 학교에서 수업을 들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몹시 기뻐하며 팔짝팔짝 뛰었다.

 

어머니는 내 가방에 도시락과 과자, 음료수 등을 넣으며 가서 선생님 잘 따라다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머니 때는 소풍을 가는 날만 되면 비가 와서 못 갔다고, 어머니가 다닌 학교를 지을 때 동네 어른 하나가 뱀을 죽였는데 그 뱀이 한을 품고 해코지를 해서 그렇다고 했다. 그 말은 어제 어머니랑 같이 시장 가서 김밥 재료를 살 때도 들었던 데다가 작년 소풍 때도 어김없이 들었던 말이라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집을 나왔다. 

 

 

아침인데도 하늘이 어둑어둑했다. 학교에 가는 동안 비가 올 것 같아서 나는 조급해하며 뛰다시피 해서 교실에 도착했다. 감기가 심하게 걸려 못 온다는 애 하나만 빼놓고 다 모이자, 우리는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번호별로 서서 운동장으로 나갔다. 소풍 장소는 작년에도 갔던 학교 근처 작은 산이었는데, 단체로 하늘색 체육복을 입고 산을 향해 걷는 우리를 보며 지나가던 사람들이 소풍을 가나보다 하며 웃었다. 우리는 재잘재잘 떠들면서 거리를 지나 산에 올랐다.

 

어린 아이들이다 보니 꼭대기까지 올라가진 않고 조금만 올라가면 나오는 약수터 근처에서 멈춰 섰다. 반 별로 모여 선생님 말씀을 잠깐 들은 다음 선생님은 선생님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나는 나와 친한 여자애들과 약수터 근처 커다란 소나무 밑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김밥을 다 먹고 과자 봉지를 뜯을 때쯤 누군가 내 어깨를 만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처음 보는 아저씨가 등산복차림으로 빙그레 웃었다. 아저씨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린 채 나에게 이름을 물었다. 내가 눈을 깜빡이며 이름을 말하자, 아저씨는 역시 하며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 영희(가명)구나. 아저씨는 아빠 친군데, 본 적 있지?"

 

아저씨의 말에 나는 그의 얼굴을 빤히 보았으나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저번에 우리 집에 와서 나에게 돼지고기라고 거짓말을 하고 개고기를 먹인 후 아빠와 같이 웃었던 그 아저씨 같기도 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저씨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 손을 잡으며 잠깐 어딜 좀 같이 가자고 했다. 함께 점심을 먹던 애들을 보며 내가 망설이자 아저씨는 금방이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과자를 옆에 있던 애에게 주고 가방을 내려놓고 아저씨를 따라나섰다. 아저씨는 내 손을 잡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약수터 위쪽으로 올라갔다. 몇몇 등산객들이 나와 아저씨를 흘깃 보며 지나갔다. 아저씨는 위로 올라가다 말고 멈춰서 그 자리에 앉더니, 나를 자기 무릎에 앉혔다. 저기 저 아래쪽에 어렴풋이 나와 같은 하늘색 체육복을 입은 애들이 까불랑 대며 철봉을 타는 게 보였다. 아저씨는 한쪽 손을 내 옷 안에 집어넣었다. 나는 내 가슴을 쓰다듬는 아저씨의 손이 왠지 모르게 기분 나빴지만 아저씨가 묻는 대로 순순히 대답했다.

 

"공부는 잘 못해요"
"용돈은 엄마한테 50원씩 받아요"
"아빠는 일주일에 하루만 집에 와요"
"동생은 두 명 있어요"

 

아저씨는 계속해서 이것저것 물으면서, 손으로는 끊임없이 내 가슴을 더듬었다. 그러다 바지 안으로 손이 들어와서 나는 몸을 움츠리고 싫다고 말했다. 왜 싫냐고 묻기에 나는 엄마가 아무데서나 함부로 소변을 봐도 안 되고, 바지를 벗어도 안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싫다고 하며 내가 자꾸만 몸을 움직이자 아저씨는 갑자기 화를 내며 나를 다그쳤다.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크게 혼날 거라고 했다.

 

겁이 났다. 아저씨는 내 뺨을 한 대 쳤고 나는 아프기도 아팠지만 아저씨가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몸을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또다시 손이 바지 안으로 들어왔다. 아파서 입이 저절로 벌어지면서 볼을 찌르던 풀이 입 안도 찔렀다. 내가 또 버둥버둥 거리자 아저씨는 이번엔 내 무릎을 걷어찼다. 나도 모르게 악 소리가 났고 그때 저 밑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꺽꺽거리며 울다 보니 익숙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고개를 드니 우리 반 아이들과 선생님이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저씨는 없었다. 선생님이 나를 일으켜주고 흙이 묻은 옷을 털어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안쓰러운 얼굴로 넘어졌느냐고 물었다. 입 안에 들어간 흙과 풀을 뱉으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울지 말라고 하면서, 그러니까 약수터 근처에서만 놀아야지 왜 여기까지 혼자 왔냐고 했다. 나는 그냥 계속 울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집에 가니 어머니가 소풍은 잘 갔다 왔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뭘 하면서 놀았기에 옷이 이렇게 더러워졌느냐고 얼른 갈아입자고 했다. 갑자기 또 눈물이 나서 나는 어머니에게 안겨 엉엉 울었다. 어머니는 걱정하는 기색으로 친구랑 싸웠는지, 선생님에게 혼이 났는지, 아니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를 물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릎에 생긴 시퍼런 멍에 대해서도 뭐라 말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그 일이 뭔지도 몰랐고 그냥 무섭기만 했기 때문에 뭐라 말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에게 일어난 일이 어떤 일인지도, 그리고 만약 없어진 나를 선생님과 아이들이 찾으러 다니지 않았다면 그 뒤에 더 큰 일을 당했을 거라는 것 역시 몰랐다. 

 

나이를 더 먹고 나서야 나는 내가 겪은 일이 어떤 일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린 나에게 그런 짓을 한 그 사람에게 분노가 생겼다. 하지만 이제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너무 오래된 일이라 그 사람을 찾아내 죄를 받게 할 수도 없다. 나는 그때 일만은 생생히 기억하지만, 그 사람의 얼굴은 아무리 생각하려 해도 생각이 나지 않아서, 혹 신고를 한다고 해도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뒤늦게 이 일을 알게 될 어머니의 마음은 또 어떻고.

 

오히려 내 경우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내 주변에는, 나와 비슷한 나이에 삼촌에게 그런 일을 당한 친구도 있다. 나야 두 번 다시 그 사람과 마주칠 일도 없고, 혹 마주친다 해도 얼굴도 모르니 그냥 스쳐 지나가겠지만 그 친구는 삼촌을 지금도 본다. 그 친구 역시 어릴 적 멋모르고 당한 일이 성추행이었음을 나중에 알고 삼촌을 원망했지만 가족들에겐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 일을 말함으로써 가족끼리 생겨날 문제를 걱정해 지난 일이니 내가 잊자, 는 식으로 혼자 가슴에 담아둔다고 했다. 어쩌면 말을 꺼내봤자 그땐 니가 어렸으니 오해한 것이 아니냐 하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브라질의 아동 성범죄 근절 광고
 ⓒEuroRSCG Brasil, São Paulo, Brazil

 

이렇듯 아동성범죄는 어린 나이의 아이에게 발생하기 때문에, 그 아이 스스로 이것이 범죄이며 문제가 있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기 어렵다. 외상이 나타나 가족이 그것을 보고 아이에게 캐묻기 전엔 가족들도 모르고, 아이 자신도 모른다. 그냥 좀 이상한 장난, 아픈 장난을 나에게 했다고 생각한다. 아이 스스로 자신이 겪은 일이 범죄임을 자각하게 될 때는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난 뒤다.

 

이렇게 되면 범인을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일을 뒤늦게 알고 상처받을 가족을 생각하며 스스로 입을 다물게 된다. 반대로 사건이 발생한 직후 어떻게 가족이 알고 범인을 찾으려 할 때도 문제가 발생한다. 대부분의 성범죄가 가족이나 친척 등 주변 사람이 가해자인 것처럼 아동성범죄 역시 그렇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범죄를 알고서도 어찌 신고할 수 없어 그냥 사건 자체를 덮는다. 마치 명절날 우리 집에 놀러와 한밤중에 몰래 내 방에 들어와서 내 몸을 더듬고 간 이모부의 일을 술에 취해 그런 거라며 우리 가족이 참고 덮은 것처럼.

 

단지 처벌을 강하게 한다고 아동성범죄가 없어지진 않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 처벌이 너무 약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나는 법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이나, 적어도 내가 직접 겪어봤기 때문에 그 상처에 대해서는 잘 알고 그렇기에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린 범죄자에게 고작 12년은 너무 적다고 말하고 싶다. 이것이 그동안 정부가 아동성범죄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말한 결과인지?

 

일산 여아 납치 미수사건 당시 관할 경찰서까지 내려가 호통을 친 이명박 대통령에게, 만약 당신이 보여주기 용이 아니라 정말 어린 자녀를 가진 부모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면 어째서 지금껏 손 놓고 가만히 있었는지 묻고 싶다. 처벌 강화도 강화지만, 예방을 위한 대책 같은 것을 마련해야 하는 게 아닌지.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바쁘신 대통령께서 직접 경찰서를 방문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니 하다못해 어린이 성 교육을 유치원에서부터 단계적으로 받을 수 있게끔 제도를 마련해주길 바란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두리뭉실하거나 심지어 성교육조차 하지 않는 유치원이 많다. 일단 아이 자신이 이것은 좋지 않은 일이며 어른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끔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을 마치며, 부디 나영이와 그 부모께서 더는 상처를 받지 않기를 그리고 지금도 고통받고 있을 피해자들에게 마음 깊이 위로를 보내고 싶다. 또, 나도 이젠 그 일을 잊고 후련해지기를 바라며 이만 인사를 드린다.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은 한 여성필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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