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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미스와플의 남녀마찰계수 측정보고서 (8) - 남자와 여행하는 방법


2009.10.09.금요일
미스와플


첫 연애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리 사이에 꽤 큰 싸움이 발생했다. 첫 싸움인데도 불구하고, 그냥 투닥 투닥 수준의 사랑싸움이 아니라 마음이 꽤 상할 정도의 큰 싸움이 되고 만 탓에, 나는 이걸로 우리 관계는 이제 끝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혼자서 실연을 짐작하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만난 선배, 그런데 선배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헤어지긴 뭘 헤어져.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거구만."
울락말락 하다 선배 말에 놀라서 쳐다보니 한심하다는 표정이다.
"그전에 너희 둘이서 한 건 연애라기보다는 그냥 찧고 까분 수준이고, 이렇게 싸우기 시작하면서 진짜 연애가 시작되는 거야. 성숙한 관계가 만들어지는 거라고. 여기서 그만둔다고? 그럼 너는 평생 교실 안에는 못 들어가고 복도에서 놀다가 집에 가는 학생이 되는거야."


아, 그렇구나. 이 싸움은 우리가 교실로 들어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소중한 징표 같은 것이구나. 그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물론 일단 교실로 입장한 뒤에는 끊임없이 맞짱을 떠야 한다는 사실은, 그것이 연인의 숙명이라는 사실은 그 선배가 이야기 해 주지 않았다.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은 물론이고 모든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분쟁의 궁극적 원인은 네 맘이 내 맘 같지 않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 다름 의 운명은 연인 관계에 절대적이고 숙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물론 처음부터 바로 발생하는 문제는 아니다. 처음에는 선배 말처럼 찧고 까부는 시즌을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본게임을 시작하기 전에는 이렇게 다들 행복하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저 좋기만 했던 마음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다시 말해 온통 그에게 가 있던 내 마음의 자치권을 되찾게 되면서, 그때부터 상대가 제대로 보이고 그와 동시에 내 마음이 꼬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다행히, 우리는 대화의 기술을 가졌다. 이해력과 포용력도 어느 정도 타고 났다. 싸우더라도 서로의 입장을 전해 들으면서 조금씩 상대를 이해하게 된다. 진정한 소통의 맛을 알아가게 되는 때이기도 하다.
그런데 또 복병이 나타난다. 이번엔 서로의 마음속에 도사린, 관계에 대한 로망이 복병이다. 관계에 대한 로망? 그 로망의 실체는 말하지 않아도 아는 관계라는 것이다.


여자도 남자도 하나같이 바란다. 내 연인은,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내 맘을 아는 사람이었으면, 내가 아무리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하고 말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 그냥 바라보면 마음속에 있다는 거... 이런 CF 흉내를 내고 싶은거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현실은 말하지 않아도 알기는커녕, 목에서 피가 나오도록 말해줘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경미한 우울증을 앓던 친구가 있었다.
어느 늦은 밤, 친구들끼리의 술자리에서 친구는 그 사실을 털어놓았다. 사는 게 재미가 없단다. 뭘 봐도 재미있는 게 없고, 좋은 게 없단다. 개콘을 봐도 웃음이 안 나온다니 다들 할 말을 잃었다.


"네 상태를 남편도 아니?"
누군가 물었을 때 친구는 고개를 젓더니 이렇게 말한다.
"말하면 뭐 해."
그녀의 한 마디는, 그녀가 이미 오래전에 남편과의 진지한 소통을 포기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말하면 뭐하나는 잠자리 문제를 말할 때도 자주 사용된다. 서로의 욕망을 솔직하게 밝히기 보다는 속으로 투덜대는 것에 더 익숙한 사람들이 많다. 여자들은 대부분 인생의 진짜 비밀은 모두 친구들과 공유한다. 그에 비해 남자들은 삶이 힘들수록, 털어놓아야 할 고민이 커질수록 입을 더 꼭 다문다. 그런 행동이 또 여자의 오해를 증폭시켜 상황을 악화시키기 부지기수다.


흥미로운 것은 말하면 뭐하나의 이면에는 다들 말하지 않아도 알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알아주기만 기다리다 세월이 다 가고, 결국 서운함이 쌓여 파경을 맞게 될 무렵에는 하나같이 말한다. "진작 말하지 그랬냐!"


2002년 월드컵 때 우리 팀 경기 중에 있었던 일이다. 상대팀에게 먼저 한 골을 먹고 난 뒤 우리 선수들이 주눅이 들었는지 몸놀림이 좀 경직되는 듯 보였다.
그때 차범근 해설 위원이 이런 말을 했다.


"이럴 때 일수록 말을 해야 합니다. 말을 해서 의사소통을 하고 분위기를 바꿔가야 합니다. 이럴 때 일수록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말을 해야 한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은 독심술사나 갓 신내림 받은 무당 밖에 없다. 갑자기 찾아온 우울증에 관해 말하고, 좌절된 꿈에 관해 말하고, 비어버린 지갑에 관해 말하고, 섹스가 끝난 뒤 먼저 돌아눕는 등짝에 대해 말하고, 외로운 주말에 관해 말을 해야 한다. 마음이 식어갈 때일수록, 꼴 뵈기 싫어질 때일수록, 상대가 같잖아 보일 때 일수록 말을 해야 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거라는 오해를 가지고 몇 년을 버티다 보따리를 싸기 보다는, 더 늦기 전에 진심을 말하고 제대로 소통해야 한다.


여자와 남자의 여행이란, 싸우고 지지고 볶는 과정의 끊임없는 반복일 것이다. 초장부터 그것이 두려워 도망치는 사람은, 교실에는 못 들어가고 복도만 헤매다 가는 바보 학생처럼 진정한 여행의 참맛도 평생 느껴볼 수 없을 것이다. 싸울 것을 알면서도, 교실에 일진 학생이 앉아 있는 것을 알면서도 문을 열고 들어서야 한다. 그리고 끝없이 맞짱을 뜨면서, 싸움 끝에 찾아드는 관계의 참 맛을 벌교까지 내려가 겨울꼬막 맛을 보듯 맛보아야 한다.


그리고 싸우면서도 계속해서 함께 여행하기 위해 필요한 유일한 준비물은 대화이다. 대화하고 대화하고 또 대화하면서, 서로의 진심을 알아가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그래야 여행이 재미있고, 그래야 끝까지 여행할 수 있다. 나이 들수록 입만 산다는 말이 왜 있겠는가.







# 남자와 여행하는 법


힘들 때일수록 대화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둘이서 대화하는 것이 힘들면, 제3자를 개입시켜서라도 대화해야 한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는 기대는 절대 하지 마라. 특히 남자는, 여자가 말하지 않으면 절대 모른다.



<쉿!(She it!)> 저자 미스 와플(marun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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