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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문기사] 조상만 챙기지 말고, 군인 옵하들도 신경써줘!

 

2009.10.07.수요일
빼드라

 

민족 대명절 추석이 지나갔어. 유난히 연휴가 짧았던 탓에 오고가다 날 샜다며 볼멘소리 내시는 분들이 많아. 그런데, 진짜 아쉬워해야 할 이들은 따로 있어. 추석 덕에 지대로 묻힌 게 하나 있지. 바로 국군의 날이야. 국가공휴일에서 밀려 난 것도 서러울 텐데, 올해엔 추석과 겹쳐 존재감마저 미비해져버린 국군의 날, 그리고 국군 장병 옵하들.(내 나이, 더 이상 옵하라 부를 수 없지만 편의상 옵하라고 할게) 옵하들을 생각하며 늦게나마 군대 얘기를 해 보려고 해.

 

어쭈구리, 군대도 안 다녀 온 뇨자가 어따대고 감히 군인들 얘기 부라리냐고 콧방귀 뀌시는 이병, 일병, 상병, 병장, 개말년, 군필자, 미필자, 예비역 옵하들 잠시만 들어 봐. 그래도 이 필자, 군인이셨던 아버지 덕에 군인 옵하들 득실거리는 군인아파트에 산 뇨자야. 적어도 군대 언저리도 안 가본 뇨자맹크로 군대사정 일자무식 모르는 뇨자는 아니라는 말씀이지. 그렇다고 거국적인 야그를 하려는 건 아니야. 다만, 어릴 적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군인 옵하들을 지켜보며 느꼈던 소소한 것들을 얘기해 보려는 거니, 눈에 안 차더라도 대가리 박는다 실시!는 자제 해줬음 좋겠어.

 

군인 옵하들은 전투화에 불만이 많지 말입니다.

 

초등학교 때 내가 살던 군인아파트는 해군 모 사단 내에 있었어. 고러니까, 경비아저씨 대신 군인 옵하야들이 아파트를 지키고, 슈퍼마켓 대신 PX가 자리했으며, 헌병 옵하들이 지키는 작은 철문 하나만 지나면 군대로 바로 직행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지닌 아파트였어. 특히 군대 내에 교회‧절 등이 있었는데, 군인 가족 대부분이 그 곳을 이용했기 때문에 군인 옵하들이 웃통 벗어던지고 삽질하는 모습, 신삥 줄 세워놓고 갈구는 모습, 군대스리가 특유의 개떼축구하는 모습,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저주하며 눈 퍼 나르는 모습들을 보는 건 일상이었어. (역시 군 생활의 팔할은 훈련이 아니라 노가다야)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해. 놀다가 집에 들어가는데, 아파트 통로에서부터 이상한 꼬린내가 후각을 자극하는 거야. 화생방 훈련을 아파트 통로에서 하는 줄 착각할 뻔 했어. 마빡 지끈거리게 하는 엄청난 냄새였지. 사람도 죽일 냄새라고 씨부리며 코를 막고 3층에 위치한 집으로 향했어. 그런데 이상했어. 계단을 오를수록 냄새의 농도가 짙어지는 거야. 불길한 예감은 항상 적중률 백쁘로야. 맞아. 그 냄새의 진원지는 우리집이였어. 군인 옵하 대 여섯 명이 아빠를 만나고 있었는데, 활짝 열려있는 현관에 그네들이 벗은 전투화가 그득했어. 저것이 바로 전투화에 기생하는 무좀 곰팡이들이 내뿜는 스멜이로구나 본능적으로 알아챘지. 그 가공할 냄새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찰나, 더 당황스러운 광경을 목격하고야 말았어. 죽음의 냄새가 그득한 사지 한 가운데에서 과일을 나르는 엄마가 호호호 웃고 있는 거야. 공포스러웠어. 엄마는 이미 후각 신경 마비증상에 도달해 있었어. 그 때,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갔어야 하는데, 하필이면 어무이와 눈빛 박치기를 하는 바람에 집안으로 들어 갈 수밖에 없었어. 무좀약 회사와 군대는 분명 자매회사일거라는 생각을 하며 말이야.

 

 

그 때의 기억 때문에 나는 전투화 신고 있는 휴가병 옵하들을 경계하는 버릇이 생겼어. 그런데 요즘엔 부츠 신는 여자들 발 냄새도 죽음이야. 그러니 전투화 신은 군인과 그의 여친으로 추정되는 롱부츠 신은 뇨자가 신발 벗고 앉는 좌식 식당에 들어서면 주의하도록 해. 사정거리 10미터 이상 띄어서 앉을 일이야. 그렇지 않으면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혼란스러울지 몰라.

 

옵하들에게 전투화 두 켤레는 너무 적지 말입니다.

 

당시, 나의 절친 중 한명은 아파트 안 PX에 근무하는 군인 옵하였어. 남들이 팔자 좋은 땡보(편한 보직)라고 평하는 PX병 말이야. 그런데 내가 보기에 PX병만큼 불쌍한 옵하도 없었던 것 같아. 오죽 심심했으면 나 같은 초딩하고 농담 따먹기 했으려고. 까탈스러운 군싸모님들 상대하는 건 또 어떻고. 게다가 군에 입대해서 한 주요임무가 밀린 외상값 받는 것이었으니, 분명 소속감과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을 거야. PX병과 함께 땡보로 불렸던 운전병 옵하 역시 안쓰러운 건 마찬가지였어. 싸이코패스같은 지휘관을 만나 하루하루 공포영화를 찍어대고 있었거든. 땡보도 땡보 나름인 것 같아.

 

암튼 PX병 옵하는 내 궁금증을 긁어주는 정보망이었어. 그 옵하를 통해 휴가 받고 나가는 군인 옵하들의 전투화가 유독 빤딱빤딱 빛나는 이유를 알았어. 군 입대 할 때 두 켤레를 배당받는 군인들 대부분이 휴가 나갈 때를 위해, 전투화 하나를 개인 사물함에 고이 모셔둔다고 PX병 옵하가 알려줬어. 그 말인즉슨, 군인 옵하들이 1년 365일 신는 전투화는 단 하나라는 거. 그리고 전투화가 상당히 귀하다는 거. (그러니 신발에서 쩌는 냄새가 날 수 밖에.)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당시 옵하야들에게 전투화는 꽤나 소중했어. 몇 년 전에 군 생활을 그린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장교용 전투화로 선임을 매수하려는 주인공의 꼼수를 보고 얼마나 캐 공감했는지 몰라. 군대에서 나이키보다 나이스한건 신형 전투화잖아. 옵하들의 좀 더 청결한 발을 위해 전투화를 좀 더 보급해 줬으면 좋겠어.

 

 

아닌 게 아니라, 국방부에서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나봐. 얼마 전에 국방부가 전투화를 세 켤레 보급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소식을 들었거든. 그런데 예산 부족을 이유로 모두 말짱 도루묵이 됐어. 그러니 무좀으로 고생하고 있을 군인 남친이 걱정되는 곰신들은, 주목해 봐. 사탕 사서 보낼 돈 있으면 차라리 실용적인 전투화를 보내도록 해. 남친만 좋아? 휴가 나온 남친과 차 끊기면 가는 곳(정확히 말하면 차 끊기길 기다렸다 가는 곳이지)에 갈 때, 꼬린내 안 맡아도 되니 그대들도 좋잖아. 참고로 그렇다고 무조건 보내는 게 능사는 아니야. 짬밥 얼마 안 된 쫄병 남친에게 보냈다가, 이병 주제에 사제 쓴다고 갈굼당할 위험이 있으니까 말이야.

 

군인 옵빠들에게 두발자유를 허하지 말입니다.

 

누군가가 군복은 사람을 어리버리로 만드는 마법의 망토 같다고 했어. 그 말에 기대 생각해 보면, 군대 헤어스타일은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매직 왕관 같아. 군복과 군대식 머리는 옵하들의 개성을 싸그리 발라내는 마술을 부려. 다른 엄마, 아빠의 염색체를 지니고 태어나고 자란 환경도 다르데, 군에 가면 빵틀로 찍어 낸 붕어빵처럼 비스무리 해 지는 게 참 신기해. 이 마법은 소싯적 한 인물 했다는 연예인들이라고 비켜가지 않아. 군에 간 연예인 옵하들... 참, 굴욕적이야.

 

 

하지만 신도 가끔 인간적이셔. 치밀하지 못한 빈틈을 보이거든. 봐봐. 인성이 오빠의 자체 발광하는 모습을. 본판의 우수함을 널리 알리고 있어. 아~ 안구가 자동 정화되는 기분이야. 훈훈해. 진정 걸어다니는 화보. 우월한 기럭지. 잠시 2009F/W 국방옴므콜렉션 을 감상해봐.

 

 

문제는 군에 간 옵하들이 모두 조인성이 아니라는 거야. 친구 녀석 중에 롹한답시고 머리를 기르던 넘이 있었어. 테리우스를 연상시키는 곱상한 외모에 탐스러운 헤어까지 갖춰서 인기가 와방 좋았어. 적어도 첫 군 휴가를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야. 까까머리가 된 그 녀석의 머리를 보고 우린 할 말을 잃었어. 머리를 자르면 힘이 사라지는 삼손처럼, 그 녀석에게 머리카락은 미모의 원천이면서도 치명적인 약점이었던 거야. 난, 아직도 그 녀석의 뒤통수 한 가운데를 가르던 땜빵을 기억해. 지금 생각해 보면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만한 명곡도 없는 것 같아,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보여 주긴 싫었어~" 캬~ 죽음이야. 가끔 휴가 나온 옵하들이 파르라니 깍은 짧은 머리를 감추려 비니를 쓰고 다니는 게 보이는데 참으로 안쓰러워. 군인 옵하들에게 두발자유를 허하면 안 될까? 안됨 말구.

 

촌티 나는 활동복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헤어스타일만큼이나 옵하들 간지를 죽여 놓는 건, 떡볶이라고 불렸던 주황색 활동복이었어. 에러도 이런 에러가 아닐 수 없었어. 떡볶이 활동복을 입은 오빠들이 주황 슬리퍼 질질 끌면서 빗자루 질 하는 걸 보면 초큼 웃겼어. 거기에 깔깔이까지 더 하면 완전 작살이었지. 몇몇 옵하들은 주황색 활동복이 네덜란드 오렌지 군단의 유니폼과 비스무리해서 좋아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 옵하들은 미친것 같아.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참, 운동복 색깔을 눈에 잘 틔는 주황색으로 정한 건 탈영을 방지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괴담과 체육복을 입고는 창피해서 절대 못 도망간다는 한탄은 지금도 나도는지 모르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 논리들은 오나전 개 쩔어. 이만한 설득력은 없다고 생각해.

 


활동복 변천사

 

근데, 떡볶이 활동복이 정말 튀긴 튀어. 아실랑가 모르겠네? 지난 6월 각 포털 사이트와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것이 군대 하극상이라는 제목으로 유포된 8분 30초짜리 영상 말이야. (선임병과 후임병이 싸우는 장면을 몰래 촬영한 영상) 이 영상 속 주인공의 신분을 알아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게 바로 저 떡볶이 활동복이었어. 군 관계자들이 "화면 중 주황색 체육복을 입은 사람이 있어 육·해·공군 사이버수사팀에서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어. 어디가도 신분을 감출 수 없게 하는 떡볶이 체육복. 짱이야, 짱!

 

 
그나저나, 2007년에 육군 활동복이 바뀌었어. 최신 운동복 트렌드와 장병 설문조사 결과를 반영해 신세대 취향에 맞춘 세련된 스타일로 바꿨대. 어떤 스타일일까, 궁금했어. 그래서 찾아봤어. 바로 이거래.

 

 

자, 이제 최신 트렌드의 옷을 보여줘! 음.. 이건 말이지. 호박에 밑줄 하나 그어 놓은 딱 그 짝이야. 이게 정녕 신세대 취향? 소령, 중령, 투 스타, 쓰리 스타 아저씨들 취향 아니고? 차라리 기존 떡볶이에 그림 튜닝하고, 카라 부분 접어 넣은 게 더 간지 났던 것 같아. 또 주황색 활동복 위에 깔깔이 겹쳐 있는 레이어드 룩도 잘만 매치하면 봐 줄만한데, 저 옷과 깔깔이의 매치는 상상이 안 가. 갑자기 군인 옵하들 활동복이 아디다스 저지였으면 좋겠다는 상상이 드네. 

 

군대스리가, 짜고 치는 고스톱이지 말입니다.

 

군 아파트에 살 때, 옵하들의 군대스리가 경기를 본 적이 있어. 전국에 약 60만명을 보유하고 있다는 그 전설의 리그 말이야. 근데, 그건 축구가 아니라 몸 개그였어. 실력의 유무는 상관없어 보였어. 군대스리가에선 짬밥이 곧 실력이었어. 짬밥 높은 옵하가 공을 몰고 가니까, 앞에 있던 쫄병 옵하가 건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넘어져 줘. 다들 오노의 후손들이고, 남우주연상 감이야. 할리우드 액션 죽여들 줘. 골을 넣는 사람은 병장, 막는 사람은 이병, 일병. 짜고 치는 고스톱이야. 포상휴가가 걸린 소대, 중대별 축구의 경우, 실력으로 승부한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이건 보지 못했으니 일단 패스. 여자들이 싫어하는 이야기 3위가 축구 얘기. 2위가 군대 얘기, 1위가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라며? 그런데 나는 남자들이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를 해 줄 때가 참 재밌어. 잘날 척 하려고 구라 뻥 까는 게 다 보이거든. 쫄병 때 4-2-3-1 포메이션으로 최전방에 나서 팀을 전두 지휘했다는데, 믿어야해 말아야 해? 군대스리가의 묘미는 공 주위에 선수 절반이 집중적으로 몰려다니는 이른바 개떼 축구 아니었나? 포메이션이 어딨어. 개뿔.

 

 

우정의 무대 보이는 게 다라고 생각하십니까~

 

뽀빠이 아저씨가 진행했던 우정의 무대에 관한 추억도 있어. 역시 또 군인아파트에 살 때야. 일요일마다 즐겨보던 우정의 무대가 드디어 우리 부대(?)에 왔어. 그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있나. 구경하러 갔어. 처음에는 TV에서 보는 거랑 다를 게 없었어. 섹쉬한 언니들의 안무에 정신 줄 놓는 옵하, 그리운 엄마 코너에서 홀짝이는 옵하, 애인 불러 놓고 휴가 배틀 하는 옵하 등등 봤다면 다 알거야.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어. 진짜 리얼 버라이어티 놀음판은 방송이 다 끝나고 시작됐어. 앞에 했던 건 방송용이고, 진국은 따로 있었던 거야.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는 무대 위는 정말 후끈거렸어. 특히 애인과 함께 무대 위에 서서 장기자랑 하는 코너. 생각해 봐, 멀리서 애인 불러 놓고 방송에서처럼 포옹만 했겠어? 서로 쪽쪽 빨고, 쓰다듬고, 19금스러운 장면이 연달아 연출됐어. 구경하던 옵하들 미쳐 죽드만. 춤추는 언냐들의 댄스도 한결 더 쎄끈해. 몸만 흔드는 게 아니라, 옷도 살짝 살짝 들춰 줘. 그럼 군인 옵하야들 정신은 이미 혼미, 머리에서 입대 전 즐겨봤던 야동들을 마구마구 떠올려.

 

그 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우정의 무대를 보지 않았다. 시시해서 볼 수가 있어야지. 그리고 평생 남자들의 환호를 못 받아 본 언냐들에게 남동생이나 오빠가 군에 있다면 우정의 무대에 함 출연해 보라고 강추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대가 단지 치마를 둘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생가도 누리지 못할 뭇 남성들의 환호를 받을 테니 말이야.

 

 

옵하들 군대얘기 나오면 날밤 까는 줄 모른다고 하던데, 간접체험한 필자도 얘기하다 보니, 떠오른 게 너무 많으네. 미처 꺼내지 못한 추억들이 많지만 눈꺼풀이 무거워 와. 나만의 점호시간이 온 것 같아 여기서 줄일게. 아무튼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안 간 군대 가서 나라 지키느라(그리고 지켰을) 옵하야들 수고가 많아. 특히, 올 추석을 군대에서 처음 맞이한 옵하들, 파이팅이야. 거꾸로 매달려도 국방부의 시계는 돌아간다는 말이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돌긴 돈다잖아. 후임들의 축하를 받으며 전역할 그 날을 위해 충성! 필승! 단결!

 

 

보너스 샷이지 말입니다.

 


가카! 제대로 쏘면 딱 눈탱이 밤탱이 되기 좋은 자세이지 말입니다.

 


빼드라(siwoorain@hanmail.net)
시네티즌(cinetiz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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