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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뽕빨이너뷰] 한명숙을 만나다(1)

 

2009. 10. 07. 수요일
딴지총수

 

거인 둘이 스러졌다. 그리고 이명박은 건재하다. 상실감과 무력감, 상당하다. 이제는 그들 없이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거다. 그러나 다행이다. 처음부터 다시는 아니다. 두 거인은 유산을 남겼다. 바로 거기서부터, 하면 되는 거다. 본지는 이제부터 그 유산들을 추스르고 정리하고 그리고 거기서부터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이 인터뷰 시리즈는 그 첫 번째 시도다.

 

먼저 한명숙 전 총리를 만나기로 했다. 그녀를 통해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한 건, 그녀가 노무현이 남기고 간 사람들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다치고 지쳤을 때는 ‘엄마’가 필요한 법이다.

약속 잡기가 쉽지 않았다. 건강이 좋지 않단다. 그럴 만 했다. 결국 추석연휴 직전인 10월 1일(목) 오후 3시 30분, 그녀 남편이 운영하는 길담서원에서 만났다. 두 명의 보좌진이 배석했다.

 

 

 

 


 

 

 

 

 
 

마주 앉았다. 실물로 보니 나이보다 그리고 생각보다 곱다.

 

 

총수 : (커피와 함께 딸려 나온 작은 컵을 보며) 이게 시럽 인가요? 입맛이 촌스러워서.

 

한명숙 : 달달한 게 좋죠. (웃음) 이 커피가 맛있거든요? 고급 커피에요. 이게 네팔 커피에요? (뒤에 있던 길담서원 스태프가 킬로만자로, 안데스, 히말라야의 선물을 거론하고.)

 

총 : 공정무역으로요?

 

한 : 네... 노무현 대통령은 날마다 ‘난 달달한 커피가 좋아요.’ 하면서 만날 다방커피만 드시는 거예요. (웃음) 국무회의를 하는 데 중간에 한 번 티타임이 있어요. 날마다 나가면 이런 커피 안 주고 인스턴트 커피만 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도 덩달아서 만날 맥심커피만 마셨어. 하하하.

 

총 : 맥심. 으하하하.
한 : 설탕, 프림 든.. 그것만 드셨어...

 
 

그저 커피 이야기만 해도 노무현 생각부터 난다. 그녀는 그렇게 노무현상실증후군을 겪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보면 안다.

 

총 : 앞으로 인터뷰는 영결식, 친노 진영의 분화 그리고 총리님은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것인지. 총리님 개인 이야기. 13년 반 동안 생과부. (웃음) 그 13년 반 동안 한명숙의 마음을 흔든 남자는 대한민국에 단 한 명도 없었나. (웃음) 그리고 두 대통령의 공통점, 차이, 철학, 정책, 집무 스타일 등 지난 10년간 이야기를 할 텐데. 오늘은 그중 영결식의 뒷이야기. 친노진영의 미래까지 하고. 다음엔 한명숙은 어떻게 할 것인지, 한명숙은 누구인지. 그리고 지난 10년을 정리하는 이야기. 그렇게 총 5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 다섯 번 한다면서요?
총 : 일단 두 번까지만 알려드리겠습니다. 미리 예습하실까봐. (웃음)
한 : 예습 안 해요. 예습하면 잘 안돼요. (웃음)

 

총 : 하하. 제가 노 대통령 두 번 인터뷰 했습니다. 한 번은 부산 시장 떨어지고, 그 다음은 해수부 장관 하실 때. 대통령 되고서는 인터뷰 요청조차 해본 적이 없어요.

 

한 : 부산시장 나가셨던가?

 

총 : 부산시장 떨어졌었죠. 하여튼 우린 대통령 됐다고 이득 볼 생각은 없기 때문에. 그래서 퇴임하고 나서 2년 정도 후에나 인터뷰 해야지.. 했는데 갑자기 가시고. 김대중 대통령도 올해 안에 인터뷰 해야지.. 했는데 또 가시고.. 저부터 상실감이 크거든요. 국민들 상실감도 크고 무력감도 크죠.

 

그래서 이제는 추스르고 앞으로 정리를 하며 나가자. 일단 인터뷰를 통해 정리부터 해 나가자. 첫 번째로 한명숙 총리다. 두 분 다 모셨고, 두 분 뒤에 남은 미망인들과도 가장 친하고, 앞으로 어떻게 하실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분 중 하나고.. 해서 오늘부터 장기 뽕빨 인터뷰를 하려고 하는데.

 

한 : 오늘은 시간 정해놓고 하는데, 다음 번 할 때는 하루 종일 해도 좋아요.
총 : 가능합니다. 하하하. 제일 오래한 뽕빨 인터뷰는 김문수 의원 17대 때. 다음날 새벽까지. 소주도 먹이고...

 

한 : 다음에 할 때는 좀 여유 있게 할 수 있고요. 오늘은 요게(목) 자신 없어서.

 
 

의사가 아예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단다. 그런데 결국 그 자리에서 무려 3시간을 쉬지 않고 인터뷰하고 말았다.

 

 

총 : 다른 얘기 전에 이 것 좀 여쭤봐야겠습니다. 정운찬 총리 말입니다. 사실은 민주당에서 영입하려 했던 인물인데, 갑자기 갔단 말이죠. 왜, 갔을까요?

 

한 : 글쎄... 아무래도 자기 자신이 자기의 진로에 대해 목표가 있을 겁니다. 그것이 대선이든, 자기 목표를 달성하는 프로세스로서 이 선택이 좋다 생각했을 것 같아요.

 

총 : 제가 어제 박원순 변호사를 만났는데. 질문을 했어요. 총리 제안은 받은 적 없냐? 자기에게는 온 적도 없고, 자기는 와도 거절했을 거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정운찬 총리는 오케이 했잖아요. 평소의 주장과 철학과는 다른 정권인데. 그럼 지렛대로 삼으면 안 되는 건데. 그런데 받았어요. 어떤 사람이길래 이게 가능한 걸까요?

 

한 : 저는 정운찬과 박원순은 다르다고 봅니다. 박원순은 스스로가 이 사회 속에서 영유할 수 있는 자기 것을 많이 포기한 사람이에요. 자기 꿈을, 사회적 지위보다는 우리나라 미래에 포커스를 두고 자기를 굉장히 낮추면서 공동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버린 사람임에 반해서, 정운찬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분은 탄탄대로를 걷던 분이고 국민들에게 전혀 검증이 안 된 사람이에요. 저도 정운찬 총리는 안 지 오래됐어요. 남편 후배(결혼 6개월 만에 시국사범으로 체포되어 13년 반 동안 옥고를 치른 남편 박성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다)이고. 넓은 의미에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이 분은 국민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자신을 투신해 봤거나 고통을 당해봤거나 자신을 버려봤던 경험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저는 검증이 안 됐다고 보고 있었는데.. 이번에 총리되면서 실망한 게 뭐냐면. 두 가지 아니에요? 경제와 4대강에서 이명박 대통령하고 다른 게 없는 거예요. 좋다는 거예요. 그렇게 이야기하고 나오니까. 이건 아니구나...

 

 

총 : 그냥 이건 아니구나 생각하셨나요, 아님 이건 나쁜 놈이구나 생각하셨나요.(웃음)

 

한 : 실망했죠 뭐. 기대할 게 없다..
총 : 그렇게 곱게?
한 : 제가 원래 곱지 않습니까?

 

총 : 으하하하. 박원순 변호사는 사심이 없었던 거죠.
한 : 박 변호사는 우리가 말하는, 서울시장에 도전한다든지 할 때도, 사심이라고 표현할 순 없을 것 같아요.

 
 

무심코 던진 이 한 마디에 묻어 있는 몇 가지 정보조각.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시장에 도전할지도 모른다는 거. 그 경우 사심이 아니라고 본다는 거.

 

그녀 자신이 서울시장 잠재후보군 중 하나로 여기지는 상황에서 그렇다는 말은, 본인이 아니라 박원순 변호사를 지원할 수도 있다는 건가. 목젖까지 질문이 치밀었으나 다음 인터뷰 꺼리라 일단 눌렀다. 

 

총 : 그럼 그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위장 전입부터 병역, 세금.. 대, 여섯 가지 걸렸잖습니까?

 

한 : 아니 그런데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추천하거나 지명하는 사람들은 그냥 그게 필수이고, 기본인 것 같아요.

 

총 : 일부러 그러는 것도 같아요.
한 :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고...
총 : 위장전입 안했어? 그럼 후보 제외해.(웃음)

 

한 : 대통령 스스로도 위장 전입하고 위장 취업했던 사람이니까. 그러고도 대통령 됐잖아요. 그러니까 그 밑도 괜찮다.. 저는 사실 경우에 따라 어떤 직위에 따라서는 지나갈 수도 있다고 여기긴 하지만, 적어도 법무부 장관이나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나 총리나 대통령이나, 이런 사람들은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시오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근데 어떻게 권위가 서겠어요? 그런 분들은 엄격한 기준이 지켜져야 한다고 보는데. 근데 뭐.. 스트레스 쌓이죠.

 
 
 


본격적인 인터뷰. 두 사람의 죽음부터 시작했다. 혹여 모르고 넘어 간 이야기는 없는지, 일일이 확인해두고 싶었다. 그래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가 있을 거 같았다.

 

총 : 위장전입은 패스포트 같아요. 자기들 클럽에 가입을 위한. 하하.. 자 이제 재미없는 정운찬 이야기 그만하고 직접 내부에서 겪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야기부터 해보죠. 거기서부터 풀어야 할 거 같아요.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은 이야기 같은 것도.

 

그날이 5월 23일 토요일이었어요. 제가 뉴스로 못 보고 전화를 받았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뛰어내렸단다. 그래서 내가 뻥까지 말라고. 그럴 리도 없다고, 그럴 사람도 아니고. 노태우를 잘 못 봤겠지. (웃음) 개인적으로 굉장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는데. 언제 어떻게 처음 들으셨어요?

 

한 : 그날 아침에. 비서가 전화를 했어요. 저는 아침에 티비를 틀거나 잘 안하는데..
총 : 이명박 나오니까.(웃음)

 

한 : 예. (웃음) 집에 있었는데. 비서가 전화를 해서 노 대통령이 떨어졌다.. 그런 얘길 하는 게 아니라 ‘빨리 티비 틀어보세요!’ 그러는 거예요. ‘무슨 일이냐’ 그러니까. 그냥 ‘빨리 틀어보세요!’ 그래서 끊고 티비를 틀었어요. 그 때는 사망설 이전에 초기에 추락한 듯.. 실족.. 이래서 늘 산을 가시니까 사고가 난 줄 알았어요. 그래서 이게 한 시간 지나니까 추락, 자살설, 사망설이 이런 것이 계속 나는 거예요. 하...(깊게 한숨) 제가 그때 들고 있던 물건을 떨어뜨렸어요. 그리고 털썩 주저 앉았어요. 그래서 전화를 했어요. 안희정씨한테 했어요.

 

총 : 왜 안희정씨부터?

 

한 : 제일 빠를 것 같아서. 소식이. 안희정씨는 생각보다 담담하게 ‘사실인 것 같습니다. 빨리 내려가야 하겠습니다’ 하는데 제 손이 벌벌벌 떨려요. 하...(다시 깊게 한숨) 그래서 그대로 가방 들고 비행기를 예약해서 갔어요. 가서 양산대학병원에 내려갔더니 이미 다 많이 와 계시더라구요. 문재인 실장이 중심에 서 가지고 여러 가지 상황을... 그 사람들 보니까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동요가 돼서... 그 때부터 시작을 한 거예요. 시작을 했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이게 본인이 뛰어 내리신 건가. 실족한 것인가...

 
 

이 대목에서 그녀는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눈물을 그렁그렁 단 채.

 

 

그런데 문재인 실장이 직접 보시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자살이라고. 제가 내려갈 때만 해도 유서가 있다는 말을 못 들었는데 내려가니까 안희정씨가 ‘유서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 유서가 모든 것을 밝혀주는 구체적인 내용이 있지 않을까. 내 통밥으로는. 사건의 경위라든지, 내가 왜 떨어지게 됐다든지. 모든 프로세스나 내용에 대해서 그런 게 적혀있는 유서인가보다. 내가 판단을 그렇게 혼자 했어요.

 

그래서 ‘그것이 밝혀지면 좋겠다.. 속상하고 억울하다.. 유서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을 했죠. 근데 다음 날인가 유서를 공개한다고 해서 딱 보니까 그게 아닌 거예요. 제가 짧은 생각이었죠. 반성을 했어요. 너무 속이 상하고 너무 억울하니까 그렇게라도 풀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는데. 그런데 그런 유서였어요. 그 유서를 계속 보니까. 외우잖아요. 짧으니까. 그런데 계속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그 안에, 내가 생각했던 이 억울함을 풀어야지.. 하는 마음보다 수백 배의 함축된 함의가 그 안에 들어있다는 것을, 자꾸자꾸 보면서 깨닫게 됐죠.

 

많은 분이 오면서.. 진선? 스님이시던가. 그 스님이 오셔 가지고 그 유서는 성불한 사람의 유서라는 거예요. 짧은 문장 속에 인생의 모든 것을 담아냈다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나중에 나도 생각이 짧았다. 역시 노무현 대통령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보다 훨씬.. 음.. 뭐라고 그럴까.. 알려진 것은 직설법을 쓰고 말을 참지 못해서 팍팍 내뱉는 그런 얕은 사람으로 많이 왜곡 됐잖아요.

 

그런데 이번 장례 과정에서 자꾸 새록새록 노무현 대통령의 여러 가지 면을 보게 되는데 이 분이 참 철학적이고 내면의 세계가 깊었어요. 그런 내면의 세계는 스스로의 인생관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어렵게 살고 항상 비주류로 살고 언제나 대접받지 못하고. 우리 서민들, 백 없는 사람들과 처지와 같은데. 그런 것을 어떻게 좋게 만들까. 끊임없이 책을 보고 생각하면서 연결된 인생역정. 그것이 마지막에 몇 문장으로 축약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총 : 제가 나중에 주변 사람들한테 들은 바로는, 당시 병원에서 다들 경황이 없고 자살인지 추락사인지도 불분명하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패닉상황일 때 총리님이 가서 상황을 정리하고 회의를 주재하셨다고 들었는데, 가기 전에는 물건 떨어뜨릴 만큼 경황 없으셨다면서 어떻게 현장 가서는 그렇게 침착하셨습니까.

 

한 : 하~(깊은 한숨) 가서 나도 그랬죠.. 다들 북받쳐 오르니까.. 다들 눈이 벌게 있고 그런 상황이었는데.. 나 자신도 잘 모르는 면이 제게 있는 것 같아요. 급박한 상황이나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난관의 상황, 위급한 상황이나 이럴 때 제가 좀 담이 있는 것 같아요. 간이 큰 것 같아요. 의사가 제가 간 큰 여자라고 합니다.(웃음)

 
 

당시 주변 이야기를 종합하면, 그는 양산으로 내려가자마자 곧장 중심 역할을 했다. 누군가의 표현에 의하면 한 총리가 움직이면 ‘홍해가 갈라지듯’ 사람들이 길을 비켜주었단다.

 

총 : 하하하. 물리적으로 크십니까?
한 : 네. 물리적으로 크대요. (박장대소)

 

 

총 : 하하하

 

한 : 아니~ 간대폐소. 이런 말 못 들어보셨어요? 한의사한테 들었어요. 제가 간이 크고 폐가 작은 체형이라고. 그래서 간 큰 여자라고. (웃음) 제가 조금 담이 있어요. 담이 있다고 하나? 담대하다고 그러나.. 이건 아니다 생각하면 바로 포기합니다. 결단할 때.

 

노무현 대통령이 저 총리 시킬 때 ‘내가 한총리를 총리시킨 이유가 하나 있다.’ 하셨는데.. 제가 환경부 장관을 1년 했어요. 그 때 총선이 있었어요. 그 때 열린우리당이 47석인가 이렇게 됐을 때. 이겨야 하잖아요. 인지도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고. 그러니까 장관들 몇 사람을 포진시키고 싶으셨던 거죠.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당신 총선에 나가시오’ 직접 표현은 안 했지만 ‘큰 뜻을 품어 보시죠..’ 뭐 이런 식으로.

 

총 : 하하하. 총선 나가시죠 이렇게는 안하고.. (웃음)

 

한 : 네. 그렇게 몇 사람에게 하셨어요. 내가 알기로는 강금실, 이창동... 한명숙도 껴 있었고. 그런데 다들 엉덩짝 딱 붙이고 들썩을 안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어느 날 사직서를 써 들고 가서 대통령께. 내가 떨어지거나 말거나 그런 거 생각 안하고 내가 내려간다. 딱 결단을 하고 사직서 들고 대통령께 갔어요. 갔더니 되게 좋아하는 거예요. 좋다 말은 직접 안 하지만 내가 봤을 때, 기분이 되게 좋은 거지. 이 여자가 하는구나. 그래서 막 본인이 전화를 걸어 가지고 처리하는 데가 어디더라.. 장관을 그만 두고 처리하는 절차가 있는데.. 전화를 직접 하시고. 기분이 좋으신 거죠.

 

총 : 하하하. 그 새 마음 바뀔까봐. 당장 직접 전화. (웃음)

 

한 : 그렇게 당에 내려갔는데. 나를 써먹어야 하잖아요. 어디다 써먹을까 하다가. 영등포 가라 송파 가라. 여론조사 넣고 그러다가. 결국은 보좌관들이 홍사덕 가는 데만 피해라. 그럼 다 살 수 있다. 그랬는데 홍사덕 일산 간다고 딱 결정을 하니까, 당에서 거기에 넣어 버린 거예요. 그런데 나는 이길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져도 이겨도 이왕 이렇게 결단했으니까 하자. 그런데 보좌관들은 실망하고..

 

그래서 내가 ‘괜찮아요. 합시다!’ 하고 딱 두 달 남았는데 한 달은 인사하고, 선거운동 딱 한 달만 했어요. 그런데 이겼죠. 이변이 났죠. 내 생각에는 그때 대통령께서 ‘자기를 버릴 줄 아네.’ 이렇게 입력이 되신 것 같아요. 총리로 지명할 때 ‘내가 그 때 기억이 있습니다. 결단하고 버릴 줄 알고 그런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러셨던..

 
 

당시 보좌진들에게 물었더니, 그저 실망한 정도가 아니라 다들 필사적으로 반대했단다. 홍사덕 후보는 자신에 대해 단 한 번의 네거티브 발언도 하지 않는 한 총리에 대해 나중에 “한명숙은 흠결 없는 정치인”이라고 했단 일화가 있다.

 

총 : 그래서 노대통령이 한 인터뷰에서 ‘내게 뽑으라면 차기는 한명숙이다’고 하셨다잖아요?

 

한 : 오마이뉴스..
총 : 그 얘기는 다음에 본격적으로 물어 보겠습니다. 하하. 혹시 20여 년 전에 결혼 6개월 만에 남편 잡혀가고 혼자 생활을 꾸리며 13년 반을 버티고 나니 그 사이 간이 비대해지신 건 아닌가.. (웃음)

 

한 : 그런가 봐요.(웃음)

 

총 : 다시 봉하 마을로.
한 : 그게 토요일이었는데 아무 결정도 못하고 있는 사이에 사람들이 미어지게 오는 거예요. 봉하에. 봉하, 아시겠지만 작고 초라하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미어지게 오고. 그래서 병원에서 영정 세우고, 모시고, 봉하에다 시신을 옮겨 안치했죠.

 

총 : 그 때 병원에 안치 된 상태로 그냥 가족장으로. 그러니까 이 정권에게서 지원 받아 장례하지 말고. 이 정권에 당한 것만도 분하고 억울한데 우리끼리 장을 치르고 그 분노를 현 정권에 대한 투쟁의지로 연결하자.. 그런 의견도 분명 있었을 텐데.

 

한 : 의견이 분분했어요. 한 2,30명이 늘 모여 회의를 하고 했는데. 그때 가족장으로 하자. 말씀하신대로. 우리가 뭐 하러 이 정부에다 아쉬운 소리 하느냐. 그리고 제가 총리 때 최규하 대통령 영결식 겪어봐서 아는데 규정이 총리가 장의위원장이 되요. 그러니까 한승수총리가 장의위원장이 될 텐데 우리가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총 : 마지막까지도.

 

한 : 네 많았죠. 만약에 국민장을 하는 경우에는 이 정부가 하자는 대로 좇아가야 하는데 우리 의견이 반영되겠느냐 하는 말도 있었고. 특히 젊은 사람들이 그런 주장을 했죠.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께서, 우리한테 직접 와서 말씀 하신 건 아니지만, ‘국민장으로 해야 한다.’는 말씀이 있으셨어요.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큰 아들 노건호씨가 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국민장으로 하면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하면서까지. 결국 한 총리가 강경 친노와 그들을 달래 국민장을 받게 했다.

 

김 : 김대중 대통령이 그랬었군요.

 

한 : 네. 그런 영향도 있고. 또 한 편으로는 가족장으로 하면 모든 비용을 감당해야 되는데 이렇게 많은 국민들이 밀려드는데 어떻게 감당을 하느냐. 그런 현실적인 고민도 있었고. 그래서 원칙을 정했는데 한승수 총리 1인 장의위원장으로는 안 된다. 최규하 대통령은 퇴임하신 지도 오래 됐었지만 노 대통령은 퇴임하신지 불과 1년 밖에 안 됐고 돌아가신 연유도 다르다. 우리 측 의견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하고 우리 쪽에서 공동 장의위원장도 해야 한다. 그렇게 원칙을 세우고 정부 측과 협의를 한 거예요.

 

그리고 누가 장의위원장을 할까, 그런 얘기가 나왔었죠. 우리끼리 결정해야 하는데, 저 쪽에서는 한 명을 결정해달라고 하는데. ‘우린 총리가 둘이니 한승수 총리까지 셋으로 하자’ 그랬더니 ‘원래 한 명인데 두 사람도 아니고 세 사람이 하는 건 너무 무리다.’ 그래서 저는 이해찬 총리님 하시면 좋겠다 그랬는데, 왜냐면 딱딱 끊는 걸 잘하시고 투쟁도 잘하시고. 그런데 마지막 총리가 하는 게 관계다, 그런 말도 나오고 유시민 장관이 대통령 역정이 고단하셨는데 가시는 길이라도 편안하게 보내드리려면 편안한 분이 하면 좋겠다..

 

총 : 총리님이 ‘내가 하겠다’ 한 게 아니고?
한 : 저는 뺐죠.
총 : 내부 논의 과정에서 그렇게 결정이 된 거네요.

 

한 : 네. 뭐 그런 일은 거절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니까. 그래서 제가 장의위원장이 되고. 그 이후부터 문재인 실장이 운영위원장이시니까 실질적인 실무는 그 쪽하고 실무단이 하고. 저는 한 총리 하고 행안부 상대로 담판을 담당했죠.

 

그런데 그 사이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오는 거예요. 감당할 수가 없는 거예요. 정동영도 밖에서 막지. 한승수도 쫓겨나지. 조의라는 것은 이념이 달라도 받아들어야 하는 건데. 그래서 안에서는 걱정이 컸어요. 밖의 상황이 컨트롤이 안 되니까. 아직 장의위원장도 결정이 안 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이틀 동안 시행착오를 겪다가 장의위원장이 정해지고 나서 노사모 만나고 협의를 해서 그 다음부터는 진행이 되기 시작했는데...

 

그런데 저는 그 어마어마한 일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 역할이다 보니까, 그때는 절대 울지를 못했어요. 꼬마도 오고 할아버지도 오고 농민도 오고 별별 사람들 다 오잖아요. 그 사람들 마음, 표정, 울부짖음이 전부 다 전달이 되요. 거기 30분쯤 서 있으면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제가 질질 울고 다니면 어떻게 중심을 잡겠어요. 그래서 가슴으로만 우는 거예요. 의연하게 하려고 했어요. 담담하게 했어요.

 
 

이 대목에서 다시 목이 메어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치렀죠. 치루고... 딱 한 번.. 이광재 의원이 찾아와서 통곡을 하는데 뭐 어떻게 몸을 못 가누더라구요. 안기면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우리가 못 지켜져 드려 가셨습니다.’.. 그렇게 이광재 의원과 부둥켜안고 운 것 이외에는 제가 우는 걸 안 보인 것 같아요. 요즘 몸이 안 좋아서 그런지 자꾸 생각이 나 가지고 어제도 자꾸 그때 생각이 나니까. 나 집에 혼자 있는데.. 침대에 누워 가지고.. 소리 내서 울었어요.. 남들 다 울고 지나간 다음에.. 이제야 자꾸 생각이 나서...

 

 

총 : 그 때 못 우셔가지고..
한 : 맺혀서. 지금 우네요..

 
 

이 대목에선 내가 말을 잇지 못할 뻔 했다. 인터뷰하다 내가 울컥 한 건 처음이다.

 

총 : 정부하고 많이 부딪혔죠?
한 : 제가 정부 쪽 한승수 총리하고 행안부 장관하고만 상대를 했어요. 제가 생각할 때는 정부쪽에서도 기본적으로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걸 큰 문제없이 끌고 가야겠다는 게 있었어요. 하지만 이 일로 인해 제 2의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나 하는 의심과 두려움이 정부에는 있었어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축소하고, 될 수 있으면 막아보려고 노력을 했죠.

 

총 : 노제도 안 된다고 했었죠.

 

한 : 네. 시민광장을 장례식 전까지 차로 둘러막고. 대한문 앞에 분향소 가는 돌담길 밖에도 제가 직접 가봤는데 완전히 차로 막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많이 항의했습니다. 그리고 노제는 열어주나마나 우리는 한다고. 또 조계사에서는 만장 이 만개를 제조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도 어렵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행안부 장관에게 뭐라 했냐면. ‘그렇게 의심이 들면 2만개 만장 드는 걸 행안부가 직접 주관해라. 공무원을 뽑아 가지고, 군인을 뽑든지 당신들 마음대로 그러면 문제가 없을 거 아니냐. 당신들이 뽑아라.’

 

그때 영부인께서 저에게 - 하루에 한 번씩 영부인을 뵙고 말씀도 드리고 그랬는데 - ‘당당하게 해 달라’ ‘당당히 어깨 펴고 가게 해 달라.’ 이거 하나 하고 ‘대통령님 편히 가게 해 달라. 문제 발생하지 않게 해 달라.’ 이렇게 두 가지였거든요. 이걸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어요. 그래서 행안부 장관이, 죽창이라고 하죠?

 

총 : 대나무 잘라 무기 만든다고.

 

한 : 네. 그래서 ‘드는 사람을 행안부가 해라’고 그렇게까지 했어요. 그날 밤 12시까지도 계속 안 된다고 하다가 새벽 1시쯤 났을 거예요. ‘내일 아침 8시에 광장을 열겠다. 만장 허락하겠다. 다만 만든 걸 전부 플라스틱으로 다 바꾸고 당장 내일이라 공무원 동원하는 거 어려우니까 우리보고 알아서 하라’ 고.

 

총 : 만장이, 새벽 한 시니까, 당일에야 정해진 거네요? 그럼 노제는?
한 : 노제도 마지막 순간에 결정된 거예요. 내가 하도 안 된다고 하길래 나중에 뭐라고 얘길 했냐면 ‘수많은 국민이 가슴에 한을 갖고 있는데 그 한을 시민광장에서 풀고 가게 하는 것이 당신들에게 좋다. 한이 맺힌 채로 슬픈 사람, 억울한 사람 풀지 못하고 가게 한다면 나는 그 뒤를 책임 질 수 없다. 그러나 순조롭게 일이 잘 되면 최선을 다해 편안하게 보내드리고 싶은 게 우리 생각이다.’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결국 행안부 장관이 오케이 한 게 12시에서 1시 사이였던 걸로 기억해요. 당일 결정된 거죠.

 

총 : 혹시 마지막 순간에 오케이 하도록 만든 정부 내 인물이 누군지 아십니까? 누군가는 그렇게 주장했으니까 마지막 순간에 그렇게 결정이 됐을 텐데.
한 : 행안부 담당이니까 행안부 장관이 얘기하고 총리하고도 했겠죠.

 

총 : 이명박 정부 의사결정 구조를 가만 보면 실제 장관은 최종결정권이 없고 중요한 결정은 대통령과 주변 몇이 다 하는 것 같은데..
한 : 그건 잘 모르겠어요. 저는 행안부와 총리 라인만 접촉을 했으니까.

 
 

누굴까. 궁금하다.

 

총 : 어쨌든 안 될 수도 있었던 거네요?

 

한 : 안 열어주면 다른 방법으로 할 수밖에 없었죠. 그랬을 때 수많은 사람과 그 임펙트를 정부에서도 생각했을 거예요. 뭐 정부가 그렇게 밀려서 해줬다고밖에 할 수가 없죠. 그 수많은 사람들이.. 제가 토요일 일요일, 5월 23일 24일은, 주말이니까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고 월요일부터는 줄어들 거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 월요일에는 더 많이 온 거예요. 그 뙤약볕에 10분도 서 있기 어려운 뙤약볕에 4,5시간 정도 앉을 데도 없고 서서 기다리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나서 100명씩 그 좁은 데서 한 10초, 20초 하고 돌아가는 건데 어느 누구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중간에 집중 호우가 한 번 왔어요. 한 한 시간가량. 당시 빌라에서 회의를 하다가 집중 호우 때문에 베란다에 물이 차 가지고 방으로 물이 들어오려 해서 빠게스로 퍼 나르고 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 비를 다 맞으면서 미동도 안 해요 미동도 사람들이.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우리 모두가 의아해 할 정도로.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다... 그런 상황이었으니까요.

 

총 : 왜 청와대 안까지 운구도 논의 됐었잖아요?

 

한 : 네. 논의 됐어요. 운구 지나가는 것이 본인이 살아온 지역을 지나가니까. 운구가 지나가는데 청와대 문 앞을 돌아서 나오겠다고 정부에 제안을 했었죠. 근데 행안부 장관이 엄청난 인파가 몰리기 때문에 청와대 보안 문제로 어렵다고.

 

총 : 김해 공설 운동장 이야기도 있었잖아요?

 

한 : 네. 근데 여러 가지 문제로 한계가 있었어요. 국민장으로 안 한다면 모르지만 국민장으로 결정한다면 서울로 가야한다 이렇게 생각했죠. 그리고 교통 문제도 있었어요. 김해에서 하는 경우에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로 와야 하는 데 그걸 감당할 수가 없고..

 

총 : 전 당일 영결식은 안 보려고 했었는데..
한 : 뭘로 보셨어요?

 

총 : 티비로. 노제에 참석하려고 나가려다가. 영결식이야 나중에 보지 뭐.. 그런데 점점 집중이 되더라고요. 총리님 조사도 그렇고 백원우 의원 튀어 나오고. 하이라이트였죠. (웃음) 그런데 그 장면이 생중계 때는 잘 안 잡혔어요. 약간 소리만 나고. ‘어 뭐지뭐지’ 하는데 조금 있다가 보니까 다시 다 앉아 있고. 당시 상당히 궁금했죠. 아니 백원우 의원을 어떻게 진정시켰을까. 어떻게 하셨어요? 진정 시킨 사람이 총리님이라고 들었는데. 하하하.

 

한 : (웃음) 뭐 당시 순간순간이 위기촉발이었어요. 거기 가서 여러 가지가 참 신경 쓰였던 게 우선 김대중 대통령이 몸도 안 좋으신데, 말도 안 되는 뙤약볕이었거든요, 두 시간을 거기 계시는 게 참 신경이 많이 쓰였고. 이명박 대통령이 옆에 앉으셨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이 우리의 상황을 보고 뭘 느낄까 이런 것도 신경이 쓰이고. 또 우리 쪽 사람 중에 치밀어 오르는 사람들이 한두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무슨 일은 없을까. 예민한 안테나가 그렇게 세 갈래로 뻗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조사를 할 때... 음... 조사와 관련된 이야기부터 드릴 게요. 조사는 제가 다른 일을 하는 동안에 윤태영 전 대변인이 기초를 잡았어요. 거기에 보탠 건데, 제가 대한문 분향소를 두 번 갔어요. 거길 가면 사람들이 노란 리본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쭉 붙여놨었잖아요. 제가 돌담 끝에서 전경차가 쫙 막고 있던 그 안으로 들어가서 돌담을 따라 쭉 걸었어요. 리본도 다 풀어보고. 그러면서 ‘조사라는 게 별게 있겠는가. 시민들이 마음 담아 쓴 이게 다 조사다. 일부러 만들어서 쓸 필요가 없다.’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때 보니까 제일 많은 게 ‘못 지켜드려서 죄송합니다.’에요. 그리고 ‘당신과 함께해서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그래서 그 말을 조사에 넣었어요. 그리고 영결식장 가는 길에 보니까 노란 풍선도 많고 사람들이 엄청나게 모여 있는 거예요.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님. 대통령님 당신을 위해 모인 저 수많은 시민들이 보이십니까. 노란풍선이 보이십니까.’ 하는 말도 바로 직전에 넣었고.

 

그렇게 해서 제가 조사를 하려고 그 자리에 섰는데... 갑자기 너무나 기가 찬 거예요. 아니, 노무현 대통령님이.. 최규하 대통령 영결식(2006년) 할 때 제가 총리로 조사를 했거든요. 노무현 대통령이 그 때 제 뒤에서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었다구요. 근데 이 사람이 지금 어딨냐구요. 그래서 제가 갑자기 ‘노무현 대통령님, 지금 대체 어디 계신 겁니까?’ 이렇게 한 거예요. 그건 그냥 즉석에서. 너무 기가 차서. 그래서 대통령님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그렇게 시작을 했어요.

 

총 : 그러니까 그 조사 첫 부분은 아무도 몰랐네요.

 

한 : 네, 몰랐죠. 그리고 그때 제가 목표로 했던 게 그저 끝까지 다 읽는 거다.. 그거였어요. 끝까지 다 못 읽을까봐. 중간에 울컥해서 못 읽을까봐. ‘어떻게 해서든지 다 읽어야 한다.’ 고 다짐했었죠.

 

총 : 그 조사가 없었으면 큰 일 날 뻔 했죠. 전 그때 한승수 총리 조사 듣고는 그냥 나가려고 했거든요. 뭐야 저게~ 씨바. 그러면서. (웃음) 그러다 총리님 조사 첫마디 듣고 다시 앉았어요. 그거 없었으면 큰일 날 뻔 했다는...

 

한 : 그런데 그렇게 조사하고 앉았는데 바로 백원우 사건이 난 거예요.
총 : 갑자기 튀어나왔죠.

 

한 : 갑자기.. 상상을 못했는데. 튀어나왔는 데 보니까 백원우인 거야. 보니까 벌써 입이 딱 막혔는데 얼굴이 백지장이더라고. 그 부근의 사람들이, 제일 마지막 블록에 앉았던 사람들이 대체로 울컥하는 사람들인데 그쪽에서 소리가 나는 거야. 살인자는 물러나라고.

 

 

총 : 백원우 의원만 한 게 아니에요?
한 : 아니에요. 그 뒤에서 소리가 막 지르고.
총 : 그건 방송에선 제대로 안 잡혔는데.

 

한 : 아~ 살인자 얘기도 나오고. 어떤 할머니, 할머니인데. 눈물 흘리면서 무슨 ‘새끼..’ 한 거 같아요. 웅성웅성 소리가 나고.

 

총 : 고양이 새끼라고는 안 했겠죠. (일동 박장대소)

 

한 : 내가 이러다가는 뭐가 일어나겠구나. 그런 생각이 딱 들어서. 벌떡 일어났어요. 일어나서. 그게 담인 것 같아요... 그 사람들 앞에 서서 말은 한마디도 안 했어요. 표정으로만 호소를 했어요. ‘편안히 보내드리자. 당신들 심정은 내가 안다. 편안히 보내드리자.’ 그렇게 하니까 좀 가라앉았어요. 그래서 다시 앉았죠.

 

그런데 다시 백원우가 쫓겨 갔다가 다시 제일 앞 제자리로 돌아와서 앉는 과정에서 김현 부대변인인가가 막 소리 지르면서 경호원들은 뒤로 가라고 하면서 다시 웅성웅성 소리가 나서. 다시 일어나서 백원우 앞에 가서 손을 꽉 잡고 뭐라고 말을 했는지는... 비밀이고요. (웃음)

 

총 : 으하하하. 그걸 말씀해 주셔야죠, 그거를.

 

한 : 당신 의견이 전달됐으니 이제는 가만있자, 딱 눌러 놓고 일어났더니. 뒷줄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펑펑 우는 거야. 펑펑 우는 거야 막. 분하고 그러니까. 펑펑 우는데 일어나서 내가 손으로 ‘잠잠히 하자’ 하고 한참 그 앞에 서 있고 김현은 문재인 실장이 들여보내고. 내가 경호원 보고 우리가 자제할 테니 뒤로 가라고 해서 경호원은 뒤로 가고 정리가 됐죠.

 

총 : 그 일 직후에 이명박 대통령한테 가서 뭐라고 말씀을 하셨잖아요?

 

한 : 아니 그건 다 끝나고 일어났을 때 제가 이명박 대통령한테 ‘사람들 심정이 아파서 그런 거니 이해해 달라.’ 그 후에 문재인 실장이 와서 ‘죄송하다.’ 하니까 ‘개의치 마세요.’ 그러더라구요.

 

총 : 그때 백원우 의원에게는 뭐라고 하셨어요?
한 : 뭐라고 했을 것 같아요? (웃음)
총 : 잘했다. 하하하. 참 잘 했어요. 별표 다섯 개. (박장대소)

 

 


(뒤에 있던 보좌진이) 백원우 의원이 나중에 총리님이 나더러 잘했다고 하셨다고, 자랑했답니다. (일동 폭소)
한 : 잘했죠.(웃음)

 
 

정리하자면, 그때 이런 이야기가 오갔단다.

 

“잘했어, 잘했어. 전달됐으니 이제는 가만있어”

 

총 : 백원우 의원이 그거 안 했으면 어떡할 뻔 했어요. 그때 사람들 울화통 치유됐어요. 그나마 그것 덕분에. 한 50만 명 정도는. (웃음) 그리고 또 영결식의 결정적 장면 중 하나가 김대중 대통령이 유가족 앞에서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잖아요.

 
 

당시 수행한 이들의 전언에 의하면, DJ는 영결식 후 집으로 돌아가서도 계속해서 대성통곡 했다고 한다.

 

한 : 아휴... 난 그렇게... 하실 줄 몰랐어요. (이 대목에서 다시 목이 메어 잠긴다) 제가 당시 전화를 여러 번 했어요. 김대중 대통령하고. 전 김대중 대통령이 3개월 만에, 생각보다 빨리 돌아가신 건 노무현 대통령 서거의 충격이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6월 11일인가 615, 9주년 행사였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일 년마다 사람을 선임해요. 올해는 당신이 행사위원장이라고. 근데 올해는 저보고 행사위원장 해달라고 하셔서 준비도 있고 해서 평화센터도 가고 대통령님도 뵙고 전화도 하고 그랬었죠.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이렇게 얘기를 했었어요.

 
 

“너무 꿈만 같아요. 정말 내가 꿈을 꾸는 것 같아요. 우리가 10년 동안 해놓은 남북관계 신뢰나 남북관계 평화 이런 걸 어떻게 1년 만에 이렇게 엉터리로 돌려놓을 수가 있는가.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렇게 직설법으로 말씀하셨고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을 하시고 그랬거든요. 그 걸 세 가지로 말씀하셨는데 민주주의 후퇴, 서민경제 후퇴 그리고 남북관계의 후퇴. 어떻게 이렇게 만들어 놓을 수가 있느냐. 그러면서 본인은 ‘나는 이제 늙고 힘이 없다. 그래서 나 혼자는 안 되고 노무현 대통령과 힘을 합쳐서 목소리를 내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을 곧 만나서 협의해가지고 ‘우리 뭔가 해보자’ 이렇게 하시려고 했다는 거예요. 노무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사람들, 김대중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사람들과 함께 ‘그걸 꼭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돌아갈 수가 있느냐. 내 반이 무너졌다.’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그 때부터 김대중 대통령이 조급증이 생기셨어요.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김대중 대통령이 이러다가는 돌아가시고 말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대중 대통령 울분이 아주 여기(목)까지 올라오시고 노무현 대통령과 같이 뭔가를 하려고 했었다는 말씀만 하시면.. 우시는 거예요. 그리고 굉장히 조급해져 가지고 ‘나는 힘은 없고 늙었는데 이걸 어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항상 하셨고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젊은 너희들이 뭐 하냐. 젊은 사람들이 해야지.’ 저보고도 불러다가 제가 젊지도 않은데. (웃음) 제가 60대 중반인데.. 젊은 사람이 해야 한다고 그러시고. ‘나 같은 사람도 있잖아.’ 계속 그러시다가 615 행사 때 행동하는 양심 얘기를 말씀하신 거예요.

 

 

615 행사 때 굉장히 강하게 말씀하셨거든 독재자라는 말씀도 하시고 행동하지 않으면 악의 편이다 말씀하셨는데. 근데 말씀하시는 게 벌써 그 전에 또렷하게 발음하시던 것하고는 달랐어요. 말이 안 나오는 거예요. 정황은 너무 심각하고 그래서 말씀은 하셔야 하는데 혀가 안 돌아가는 거예요. 건강이 팍팍 눈에 띄게 나빠지시더라구요. 그러면서 ‘행동..하..하는.. 양..양심이.. 되..되어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원래 착착착착 박력 있게 말씀하시거든요. 그래서 항상 참 대단하시다 그랬었는데. 팔십 몇 살 나신 분이 웬 천팔백오십몇년 하는 식으로 년도를 다 외우고 그리고 ‘1,000명이 모였습니다.’ 그렇게 말 안 해요. 꼭 ‘1185명’ 이런 식으로 하지. 그래서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의 말씀을 듣고 나오면 항상 아이고. 하여튼 참~...

 

총 : 징해요. 하하하.

 

한 : (웃음) 그런데 건강이 탁탁 나빠지시는 게 눈에 띄는 거예요. 그 행사 끝나고 한 열흘 쯤 후에 행사위원들 고맙다고 부르셔서 모였을 때, 한 50명, 그 때 말씀을 하시는데 ‘내가 요즘 너무 처참하고 통탄스럽다’고. ‘내가 아내 손을 붙잡고 자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울면서 기도합니다.’ 그러면서 또 우시는 거예요. ‘나는 늙고 힘든데 나라는 이렇게 가고 어떡합니다.’ 당신 건강이 많이 쇠퇴해 간다는 것을 느끼신 것 같아요. 그런 후에 제가 무슨 말씀 드릴게 있어서 면담신청을 했어요. 그런데 ‘많이 안 좋으셔서 인터뷰도 취소하고 그러니 기다려라, 기다려라’ 그러다가 그렇게 병원에 들어가신 거예요.

 
 

노무현 서거 이후 DJ가 그렇게 울었단다.

 

총 : 노무현 대통령 노제 때 저도 길바닥에서 운 건 다섯 살 이후 처음인 것 같은데. 근데 제가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지는 않지만, 오색채운. 그게 한 총리님이었던 것 같은데 저거 보라고 하신 게..

 

한 : 네네. 광장에 사람이 꽉 찼는데 조그만 천막을 치고 거기 가족들 앉게 해서 노건호 권양숙 여사님 그리고 제가 앉아 있는데 제가 처음 본 게 아니에요. 옆에서 누군가가 무지개 떴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무심코 봤더니, 희한하게, 무지개라는 건 물보라가 있을 때 뜨는 건데.. 파란하늘에 하얀 구름이 있는데 거기 너~무 선명하게 떠 있는 거예요. 제가 그걸 확인하고는 여사님하고 노건호 더러 저기 쳐다보라고 손으로. ‘저기 무지개가 떴다’고 하니까 다들 신기해하면서 ‘무지개로 저기 오셨나보다’라고 여사님이 하시더라구요. 너무 반가워하면서.

 

총 : 그때 몇 마디 오가서 뭐라 했을까 했더니.. 그런 말들이었군요. 하하.

 

한 : 노무현대통령이 무지개로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오셨구나. 왜 바람이 불면 오신 줄 알겠습니다. 바람이 분다에서.. 그렇게 바람으로 오실 수도 있는데, 그날은 무지개로.. 근데 한참 떴어요. 가족들이 다 보고 다들 위안이 됐어요. 많이 위안이 됐어요.

 

 

총 : 위안이 됐군요. 다행이네요. 그리고 사람들이 못 가게 막았죠.
한 : 아휴~ 몇 시간이었어요.
총 : 거기서 차 안에서 계실 때..

 

한 : 아니에요. 거기에서 나왔죠. 나와서 만장하고 같이 걸어서 갔어요. 영부인하고는 타고, 저는 행안부 장관이랑 걸어서 갔는데 왜 걸어서 갔냐면 너무 복잡하니까 혹시라도 무슨 일이 발생할까봐 그런 일이 발생하면 즉각 처리해야 하니까 행안부 장관하고 저는 걸어서.. 그래서 문재인 실장하고 손을 꼭 붙들고..

 

이때 서원에 있던 어떤 이 : 사귀시는 줄 알았어요. 두 분이 손을 꼭 잡아서. (일동 폭소)

 

한 : 손을 꼭 붙들고 이리로 밀렸다 저리로 밀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별별 소리를 다 했어요. ‘문재인 파이팅. 한명숙 총리님 우리를 지켜주세요.’ 별별 소리가 다 있었는데.. 어떤 사람은 ‘전국정당 만드세요. 흩어지지 마세요.’ 이런 얘기들. 그렇게 몇 시간이었는지 몰라요. 걸어가다가 시간이 너무 지체되니까 화장장을 하는 시간이 세 시간인가 두 시간인가 지체한 거예요.

 

근데 앞에 어떤 팀들이 있었냐하면 ‘노무현 대통령 화장하면 안 된다’하는 무슨 인터넷 카페 무슨 회원들이 있었나 봐요. 그런 사람들이 지휘를 하는 거예요. 못 가게. 막 못 가게 지휘를 하고 앞을 가로 막고. 앞에다가 쳐 놓고 절하고.. 뭐 화장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 막는데 세 시간인가 지체를 하니까 행안부 장관하고 의논을 했어요. ‘제가 나가서 풀도록 호소할까요.’

 

총 : 행안부 장관이?

 

한 : 아니, 제가 행안부 장관하고 그렇게 의논 했다구요. 그랬더니 행안부 장관이 무전기인가로 앞의 상황을 듣더라고요. 그러니까 그 경찰 답변이 ‘여기가 상황이 너무 삼엄해서 우리가 그렇게 나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시간을 더 봐야한다’ 이렇게 답변이 와서 일단 기다리고 있었죠. 그러고 한 시간이 지나고 어두워는 지고 그러니까 내가 결단을 해서 ‘제가 나가야겠다’ 생각을 하고 있는데 노건호씨가 나갔더라구요. 생각이 같았던 거예요. 노건호씨가 나와서 부탁하니까 그제야 사람들이 물러나게 됐어요.

 

총 : 타살설 주장한 사람들이 막았던 거군요. 타살설, 그런 얘기들 들으셨죠?
한 : 인터넷에서 봤죠.

 

총 : 근데 내부에서는 그런 얘기 없었나요?
한 : 없었어요. 왜냐하면 유서가 있었고. 또 떨어지신 이유를 문재인 실장이 그걸 다 추적을 했기 때문에 그건 아니었다.

 
 

이 대목에서 또 한참 침울해 했다.

 

 

총 : 경호원들 말 바꾸고 그런 와중에도 내부에서는 전혀 그런 의심은 없었군요?
한 : 네. 없었어요.

 

총 : 그리고 중계가 어디에서 끊겼냐 하면 화장하러 들어가서 끊겼어요.
한 : 아 그랬어요?
총 : 화장장에 들어가서 소각 시작 직전 화면이 끊겼는데 그 뒤엔 무슨 일이..

 

한 : 침통하기가 한이 없었죠. 저도 화장장에는 처음 가봤는데. 영부인과 가족들이 그걸 보면서 있을 수 있는 방이 있더라구요. 소파도 있고. 저도 그 안에 같이 들어갔는데. 앞 유리너머 관이 있고 그 관이 들어가는걸 보여줘요. 화장하는데. 오열하시죠. 몸을 못 가누시고 딸이랑 붙들고... 거의 못 걸으셨어요.

 
 

여기서 다시 한 번 눈시울이 젖었다.

 

그리고 이제 화장 돼서 나온 함을 노건호씨가 안고 갔는데 그 날 저도 이제 정토원까지 갔죠. 그날 2시 30분인가 새벽? 아침 10시에 영결식하고 밤 꼴딱 새고 새벽 2시까지 갔는데 그게 이제 7일장이었잖아요. 그러보니까 7일 동안 잠을 다해서 한 10시간 정도 잔 것 같아요.

 

총 : 하루에 1,2시간.

 

한 : 네. 잠을 못 자죠. 새벽 5시에도 천주교 신부님들이 미사 드리러 수백 명씩 오시고 하면 가서 인사해야 하고. 거기 이장님 쪽방 하나 빌려서 자려고 했는데.. 뭐 잘 수가 없죠. 신체적으로는 극도로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무슨 정신력으로 견뎠는지. 마지막 날 새벽 정토원까지 갔을 때는 너무나 극도로 피로하니까 차멀미가 나더라구요.. 그런데 봉하 마을에 들어가니까.. 들어가면서부터 또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그 깜깜한데 정토원까지.. 얼마나 많이 모여 있는지.. 소리치고 울고.. 그럼 제가 또 새 힘이 나서.. 새 사람처럼 돼서.. 그렇게 일을 했어요.

 

총 : 권 여사는 당시 보도로는 시신 확인하고 실신하셨다는 거 한 번 나오고 손님들 맞이하는 장면 한 번 나오고 영결식 때 김대중 대통령 마주보고 우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장 직전에 쇼파에 주저앉는 장면. 그렇게 서너 장면 밖에 노출이 없었는데.. 원망도 있었을 것 같아요. 자연인으로, 한 사람의 아내로서 원망도 컸을 것 같은데.

 

한 : 영부인을 거기 가서 처음 뵈었을 때는 실신하신 후 거의 일어나지를 못하셨어요. 그리고 병원에서 집으로 오신 다음에는 그 방에를 못 들어가셨어요.

 

총 : 안 들어가셨다고요?

 

 

한 : 아니, 못 들어가셨어요. 그러니까 같이 주무셨잖아요. 방도 딱 하나에요. 같이 주무시던 방에 못 들어가시는 거예요. 이게 방이면, 여기 거실이 있어요. 그 거실에다가 방석 깔고 누워 계신 거예요. 얼굴은 형편없고 일어나지도 못하시고. 제가 가면 간신히 일어나셔서 얘기 좀 하고. 후들거리고 해서 아예 나오지를 못 하신 거예요.

 

총 : 안 나온 게 아니라 못 나오신 거다.

 

한 : 못 나오시기도 하고 사실 안 나오시기도 하고. 죽도 드리고 자꾸 수발을 해드리고. 그렇게 하다가.. 조금씩조금씩 회복 돼서 거실을 조금 걸으시고. 제가 처음 갔을 때 영부인에게 느낀 건.. 자책감이 너무나도 큰 거예요..

 

총 : 어쨌든 발단이 되었으니..

 

한 : 본인 자책감이 너무나도 커서 견딜 수가 없어 하시는 거죠. 그때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으신 거죠. 영부인 얼굴 한 번 보고 가려고 해도 아무도 만나질 못했어요. 그렇게 자책감이 크셨는데...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고... 지금도 그 자책감은 어떻게 지워질지 그것은 모르겠지만... 우리는 절에 가서 기도도 좀 많이 하시고 세월이 좀 가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영부인 힘내시라고 하니까 그런 얘기를 많이 전해드렸어요 제가.

 

사람들이 영부인 많이 보살펴 달라고, 힘내시라고, 그런 얘기 많이 한다고 전해드리고. 그리고 그 원망을 아무 앞에서나 막 하실 수는 없지만.. 제가 보기에.. 영부인의 이런 말씀에서 그런 걸 엿볼 수 있었어요. ‘아... 우리 아이들이랑 나를 두고 이렇게 혼자 갈 수가 있어요?’ 그런 얘기도 다른 사람 앞에서는 안 하시죠. (다시 한 동안 침울해하다 작은 목소리로) 원망도 마음속으로는 계시겠죠. 예..

 

총 : 노건호씨랑 노정연씨. 아들 딸은 어떻게?

 

한 : 노건호, 노정연 다 마찬가지인데.. 이런 얘길 많이 했어요. ‘아버지가 우리 때문에 그랬는데 우리가 잘못해서 그런 건데..’ 그래서 예를 들면 비석 만드는 문제나 화장을 하느냐 마느냐 현충원으로 가느냐 이런 문제가 논의될 때마다 ‘우리 때문에 아버지가 잘못 되셨는데. 이제는 무조건 아버지 말씀을 따라야죠.’

 

자기들 때문에 아버지께서 잘못 됐다는 것에 너무나도 아파하고 그랬죠. 그러면서 막 울고. 두 자녀들의 자책감도 너무나도 큰 것 같아요. 노건호씨는 10월 중순경.. 미국으로 돌아갑니다. 전 직장으로. 권양숙 여사님은 앞으로 누가 와서 위로하고 아들이 옆에 있고..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 본인이 보람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시도록 해야 해요. 지금은 추모 공원에 시설관리재단을 만들었어요. 거기 이사장이신데. 그거 플러스 앞으로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는 일을 만들어서 거기서 보람을 느끼신다면 아마 잘 극복하실 수 있을 것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총 : 장례 관련비용 정부 정산이 잘 되지 않았다고 보도된 걸로 기억하는데.

 

한 : 국민장의 경우 정부가 100% 부담하는 게 아니에요. 국장하면 100% 부담하지만. 저희들이 그 비용을 정산할 때, 예를 들어서 15억이 나왔다, 그러면 그 중에서 묘지 땅을 사는 것이랄지 그런 건 다 제외했고요. 그리고 사람들이 쓴 교통비 많을 거 아니에요, 먹는 것도 많고. 그런 걸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 가지고. 이런 얘기해도 되나 몰라.. 우리는 이 비용 정산을 조중동에 낸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했다는.. 무슨 말인지 아시죠?

 

 

총 : 하하하. 알죠.
한 : 요만큼이라도 꼬투리 잡힐 것들은 전부 다 빼버렸어요. 그래서 우리 쪽 비용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십시일반 내고.. 자발적으로..

 

총 : 얼마나 비었나요?
한 : 글쎄 확실히는 잘 모르겠어요.
총 : 그래도 억대일 것 아니에요.

 

한 : 한 2,3억 됐나? 그러니까 시민분향소는 시민들이 알아서 하고. 노사모는 또 자기들끼리 알아서 하고. 이런 식으로도 다들 알아서 하고. 그리고 또 49재까지 있었고. 그런 건 못 받거든요. 하여튼 비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발적으로 십시일반 내서 모았어요.

 

총 : 정부에서 다 처리해 준 게 아니네요 결국은. 그렇게 생색내더니. 아~ 치사한 새끼들. (일동 폭소) 김대중 대통령 이야기로. 좀 짧게 하죠. 김대중 대통령과 사적으로 가깝지는 않으셨죠? 워낙..

 

한 : 그래도 가까운 편이에요. 이희호 여사님과는 아주 가깝고..
총 : 이희호 여사님이 말씀하시니까 영결식 당일 광장에서 ‘내 남편의 유지입니다’ 연설 들으면서 무슨 생각했냐면, 저 분이 직접 정치했어도 거물이 됐겠다..

 

한 : 아휴~ 전 김대중 대통령 보다 더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여자라고 여자 편드는 건가.. (웃음) 김대중 대통령이 지하에서 섭섭하다고 하시겠다.(웃음)

 

총 : 하하하. 무슨 생각을 했냐면... 가려져 있었구나... 과거에 여성운동하신 지식인이란 건 알았지만 대중연설을 들은 건 처음인데 연설 듣고는 김대중 대통령 가시고 나서 본인이 직접 대중을 상대로 정치적 발언해도 괜찮겠다,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어떤 분입니까?

 

한 : 아동특별총회라는 게 유엔에서 있을 때, 국민의 정부 때죠, 제가 여성부 장관 했을 때인데 2000년이었나, 같이 갔어요. 장관이 수행을 한 거죠 영부인 모시고. 그 때 같이 있으면서 당신이 결혼한 얘기 같은 것도 들려줬거든요?

 

총 : 재밌는 얘기 없나요? 김 대통령이 어떻게 꼬셨다 이런 거..(웃음)
한 : 근데 내가 봤을 때는 영부인께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반한 것 같아요.
총 : 아, 그래요?

 

한 : 부산으로 피난 내려갔을 때, 써클 같은 게 있었나 봐요. 정치적인 뭐 그런. 지금 서영훈 선생님도 계시고. 김대중도 있었고.. 그런데 거기서 김대중이란 사람이 발표를 하는데 말을 하면 반짝반짝 했나 봐요. 잘 생긴데다 눈이 반짝반짝하고. 하여튼 독주를 하셨다는 거지. 어느 누구보다 앞장 서 가지고 말씀하시고 그렇게 하다가 피난 끝나고 서울 올라와서도 그게 계속 됐는데... 그래서 하여튼 자기는 ‘남녀 관계의 연애보다는 저 김대중이란 사람에게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누군가가 옆에서 도와줄 필요가 있는,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한 거예요.

 

 

부인 돌아가시고 그랬잖아요. 그리고 혼자 사시는데. 중개를 누가 섰는데. 본인이 의지를 가진 거지. 하여튼. 여사는 이화대학 졸업하고 서울대학 졸업했어요. 그리고 미국대학도 졸업하고. 그러니까 신여성 중에서도 최고 레벨의 여성이었고 집안도 짱짱해요. 그런데 애 둘 달린 홀아비, 고등학교, 상고 나온 남자하고 결혼한다니까 결혼식에 아무도 참석 안 했다고 해요. 그렇게 외롭게 했는데. 그런 장애를 뚫고 결혼 했다는 그 결단만 보더라도 나는 이희호라는 사람이 참 대단한 사람이다.. 자기 내면적인 주관이 뚜렷해요. 그런데 그걸 함부로 표시를 안 해요. 중심이 딱 잡힌 사람이에요. 그게 또 어디서 나타나느냐.. 영부인 비서실장 했던 여성이 제게 하는 말이 ‘영부인은 대통령에 대한 복무정신이 철저하다’는 거예요.

 

총 : 김대중 대통령이 대단한 배우자를 만난 거네요.

 

한 : 대단한 배우자를 만난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 주관 뚜렷하고 자기 전문성이 뚜렷한 여성이 대통령이라는 한 인간, 아니지 대통령이기 때문은 아니지... 김대중이라는 한 인간을 통해서 자기가 실현하려고 하는 것을 소리 하나 없이 이뤄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이희호 여사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거예요.

 

총 : 존경하고.
한 : 진짜 존경한다고 그랬어요. 나한테는.
총 : 김대중 대통령이 이희호 여사를?

 

한 : 네. 존경한다고. 저한테. 그게 나이가 들수록 더 확실해 진다는 걸 느꼈어요. 이희호 여사의 ‘복무 정신’이 강하다는 건 뭐냐면 관저에서 사람들끼리 이렇게 의논하고 바쁘게 일하고 있는데 대통령님이 들어오시는 인기척만 났다.. 자기들은 비서인데도 인기척을 모른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사님은 어떻게 인기척을 알고 바로 나가서 맞이해 대통령 곁을 떠나질 않는다는 거죠. 그걸 복무정신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웃음)

 

총 : 그렇게 좋은가? (웃음)
한 : 그렇게 철저하세요. 철저하시고. 그리고 신앙이 깊으시고. 그리고 여성인권, 아동인권 등 인권 문제에 대해 대단한 전문성이 계실 뿐 아니라 언제나 마음에 두시고 계시기 때문에 그런 역량은 서로에게 스며들어간 것 같아요.

 

총 : 본인이 앞으로 직접 대중발언을 하고 그러진 않으실까요?
한 : 전 하실 수도 있다고 보는데. 꼬셔봐야지.(웃음)
총 : 그러셔야 할 것 같은데..

 

한 : 네.. 그리고 영부인이 골격미인이에요. 굉장히 골격이 뚜렷하고.. 굉장히 미인이신데..

 

총 : 미인까지는 제가 쫌..(일동 폭소)

 

 

한 : (웃음) 악수를 하면요. 악수 안 해봤죠? 악수를 하면요. 손에도 골격이.. 마르시면서도 골격이 뚜렷한 분이셨거든요. 요즘 좀 둥둥해 지셨지만. 그 골격으로 손을 콰악 잡아요. 영부인과 악수 하는 게 참 인상적이에요. 그래서 다들 기억해요. 그리고 그 악수에도 성의를 다해요. 그게 딱 느껴져요. 그리고 박수를 치잖아요. (흉내 내며) 박수를 치면 너무 독특하게 치세요. 이렇게..

 

총 : 북한식. 하하하..
한 : 박수를 칠 때도 어찌나 성의를 다해서 치는지. 사람의 성의와 진심과 이런 것들이 배어 있어요. 어떤 발언을 하셔도 무시당하지 않으실 거예요.

 

총 : 영결식 끝나고 광장에서 잠깐 시민들하고 만난 게 유일한 대중 접점이었잖아요. 이명박 정부가 시민들하고 접촉 없애려고 그렇게 한 건데.. 그 짧은 연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짱짱하고..

 

한 : 짱짱하죠. 청와대 내에서도 많은 사람 앞에서 말씀 하실 일 많았거든요. 그런데서 하시면 정말 똑 부러지세요.

 

총 : 김대중 대통령마저 없는 시점에. 어른이 없는 이 시대에. 직접 스스로의 주장을 하셔도 김대중 대통령의 생각과 평생 결을 같이 했던 분이라 커다란 전달력, 파괴력 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던데.

 

한 :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걸 옆에서 보좌를 해드려야 되겠어요.
총 : 그러니깐요. 지금 이명박 대통령의 옆.. 아주머니가 나와서 그렇게 말하면 누가 듣겠습니까. (일동 폭소) 근데 이희호 여사는 본인 스스로 독립적인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 나서실 의사가 없으신가요?

 

한 : (웃음) 그런 얘기 타진은 안 해봤어요. 근데 철저하게 first lady의 입장을 지키시더라고요. 이번에 병원에서 병간호를 오래 하셨잖아요. 날마다 이런 노트를 가지고요. 아침에 딱 가시면 화장 곱게 하시고 머리도 곱게. 언제나 그 자태가 있어요. 그렇게 하시고 정장 입으시고 타이트 스커트 입으시고. ‘아이고, 여사님 저 같이 바지 입으시면 피곤도가 절반으로 줄어요. 하루 종일 계시니까 그렇게 하시라고’ 그러니까 이러시는 거예요. ‘대통령님이 제가 바지 입는 걸 안 좋아해요’ 이러시는 거예요. 하하하. 그런 것까지 다 지키는 거예요.

 

총 : 그래서 복무정신.. 하하.

 

한 : 하하. 다 지키시고 노트에다가 아침에 가면 ‘한명숙이 왔다 갔다.’ 다 적어요. 며칠 몇 시에 왔다 갔고 이런 저런 말을 했다. 노트를 꺼내서 뭐하는지 봤더니 딱 그렇게 적으시더라고요. 일기를.

 

총 : 찰떡궁합이네요.(웃음)
한 : 똑같다니깐요.(웃음)
총 : 비슷한 사람들끼리.

 

한 : 그렇게 하시더라고요. ‘아휴~ 내가 대통령에게 너무 미안해요. 옆에 있어서 간호도 해드리면 좋은데.. 중환자실에 계시니까 간호도 못하고..’ 그게 아쉽다는 거.
총 : 아니 평생을 했는데도?

 

 

한 : 네~ 그거 40일인가 바로 옆에서 못한 게 너무 아쉽다고. 두 번째는 말씀을 한 번만 하고 가셨으면 좋았을 것을, 예를 들면 자식은 어떻게 하라든지, 나는 어떻게 하라든지. 그렇게 말씀 못하고 가셔서 그게 너무 아쉽다고. 그러고 퇴임 이후에 두 분이 그렇게 알콩달콩 살았어요. 퇴임 이전에는 감옥가고 편지 쓰기 바쁘고 모든 일에 항상 바빴는데 퇴임 이후에는 집에 들어와서 단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다고.

 

그렇게 알콩달콩 사시다 가시니까 뭐라고 하시냐면. 어떤 사람의 얘길 하면서.. ‘아휴. 그 사람은 참 좋겠어. 혼자 사니까.’ 음... 그냥 말을 해야겠다. 이길녀 여사라고 계세요. 경원대 총장. 이길녀 여사랑 박영숙 총재이랑 다 가깝거든요. 그러니까 ‘이길녀 여사는 참 좋겠어. 독신이니까. 혼자 사니까 이런 헤어짐의 아픔이 없을 것 아니냐.’ 너무 많이 힘들다는 표현을 그렇게..

 

총 : 그 분이 들으면 화나겠죠. 하하하

 

한 : 하하하. 그런 말씀을 하시고 그랬는데.. 그러니까 두 분 돌아가시는 경위가 다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데.. 우리 이 영부인은 아직도 너무나 초췌한 얼굴로 계세요. 그리고 앞으로 1년 동안은 어디에도 안 나가시겠다는 거예요.

 

총 : 권..

 

한 : 네. 재재까지는 물론이고. 그런데 탈상하고도 1년까지는 아무데도 안 나가고 싶다고 그렇게 얘기 하시는데. 꼬시고 꼬셔 가지고 이번 9일 날 문화재 할 때 오긴 오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하고 계시는데..

 

그런데 이희호 여사님은 영결식 끝나고 다음다음날 찾아뵈었어요. 점심을 같이 했는데. 보고 너무 놀란 게 똑~같아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똑~같이 곱게 화장하고 머리 얌전하게 하시고, 그 까만 옷도 예쁘게. 몇 개를 맞추셨나봐. 까만 옷을 이번에는 원피스로 요기(팔)는 싸악 비치고. 예쁘게 입으시고 그렇게 앉아 계시는 거예요.

 

아주 ‘이분 참 대단하신 분이다.’ 사람이 가고 나면 울기도 하고 무너질 거라 생각하는데, 전혀 흐트러짐이 없으신 거예요. 제가 보니까 아직도 김대중 대통령 당신과 같이 계신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아휴~ 적적하시죠? 요즘 시간이 많으실 텐데 어떻게 보내세요?’ 그러면 ‘아니에요. 하나도 안 그래요. 할 일이 너무 많아요.’ 그러면서 지금 대통령님이 쓰시다 가신 원고 다 꺼내서 매일 읽고. 오히려 시간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놀랐어요.

 

총 : 정말 똑같은 분들... 하하하.. 징한 양반들..
한 : 이 영부인이 88세거든요. 하~ 정말 대단한 분이에요. 그래서 제가 그 마무리를 보면서 처음부터 대단한 분이라 생각했지만 역시 대단한 분이시다. 앞으로 뭘 해도 하실 분이다..

 

총 :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제 김 대통령 옆에서 역할 말고 본인 스스로 자신만의 역할을 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한 : 그걸 우리가 권해 드려야 되는데. 이번에 사랑의 친구들이라고 늘 당신이 하시는 봉사.. 1년에 한 번씩 하시는 일인데 그걸 이틀이나 나오셨거든요. 봉사 그런 거는 하시고 싶어 하세요. 그런데 정치적 발언이나 그런 건 하실 지는 의문인데. 그런데 여사님께서 생각할 때 ‘아, 좋은 모임이다’ 하는 모임에서 좋은 말씀을 하실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총 : ‘이명박 대통령은 나쁜 놈입니다.’ (일동 폭소)

 

한 : (웃음) 근데 그게 안 될 게.. 이번에 이쪽에서 국장과 현충원 내줬잖아요? 왜냐면 노무현 대통령 때 자기들이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래서 여사께서 그런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시는 게 있어요. 잘 해 줬다고.

 

총 : 저는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잘 해치웠다. 이 이명박 정권 입장에서는.
한 : 잘 해치운 거지...
총 : 국장은 내줬는데 그 핑계로 자기네들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

 

 

한 : 방송도 막았어요. 뉴스에서만 하게 했지. 어느 날 누가, 우리 다 모여 있는데 들어와서. 어떤.. 기자한테 들었나 봐요. 우리 때 방송 때문에 너무 흥분했다고. 방송제한 한다고. 그 날 3시부터 방송 아무데서도 안 나온다는 거예요.

 

총 : 코스도 보니까 대중 접점 철저하게 없애려고 짰고. 예전에는 서울광장만 막았는데 이번에는 서울광장만 열었어요. 그것도 잠깐. 그리고 영결식 당일 날 행안부 초청 문자 받은 사람 이외에 유족들 초청 문자나 민주당 초청 문자로도 못 들어가게 하고.

 

한 : 그래요..

 

총 : 그게 박정희 영결식에 박근혜가 초대한 사람 못 들어가게 하는 건데..
한 : 국장을 하면서 공동위원장도 요청했는데 안됐어요. 국장하고 현충원 얻어내느라고 그런 것들을 그쪽에서 다 주관하게 되고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때 저쪽이 경험이 있다 보니까 철저히..

 

총 : 감정이입 안 되게 만들고..
한 : 응응.. 맞아요. 그런데 인제 사람들도 김대중 대통령은 천수를 하신 거니까. 대체적으로 예상도 있었고..
총 : 상대적으로 차분했죠.
한 : 네 그랬어요. 좀 달랐죠.

 


 


 

 

 
 

 
벌써 2시간 반이 흘렀다. 목 상태가 정상이 아닌 상황에서. 마무리를 할 시간이었다.

 

총 : 마무리로 친노 진영 이야기만 짧게 하죠. 영결식 끝나고 다들 모이셨을 거 아니에요. 한자리에. 그러면 당연히 그 자리에서 ‘앞으로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이런 얘기들 나왔을 테고. 친노신당 만든다는 이야긴 이미 그 이전부터 있었던 말이고. 그런 이야기들 나왔죠?

 

한 : 네, 나왔죠. 친노신당은 대통령 서거 전에 자기네들끼리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건데.. 노 대통령은 부정적이셨대요. 그러다 서거를 하신 건데. 그런데.. 당이란 건 그래요. 몇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거기 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하니까.. 그걸 중간에 대통령님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그칠 수도 없는 것이고. 그래서 진행을 하는데.

 

한 번 언론에 나온 거예요 그게. 49제 중에. 그래서 ‘이게 뭐냐. 지금 상중인데.. 이건 안 된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저도 좀 반대쪽에 서고. 이해찬 총리도 좀 그러고. 대체적으로 분위기가 그랬죠. 그래서 일단 보류 아니 그니까 연기라고 해야 할까, 하여튼 우선 당장 논의는 안 하는 것으로 그렇게 되다가. 우리가 아무리 반대를 하고 말을 해도 그걸 하려고 하는 사람은 나름의 목적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자기들 나름대로의 확고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그걸 중간에 그만둔다거나 그럴 수 없다는 걸, 그때 확인했어요.

 

총 : 말리시는 입장이셨던 거죠?

 

한 : 저는 말렸죠. 아니 그러니까 하나로 가야한다는 거죠, 하나로 가야 된다. 우리가 하나로 가야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동의를 해요. 신당하려는 사람들도. 그런데 이제 기정사실화가 된 거죠. 자꾸 언론플레이가 되고. ‘그럼 기정사실화를 시키자. 우린 손대지 말자.’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냥 가는 것이고. 그리고 시민주권모임이란 것은..

 

총 : 네. 그게 어떻게 다른 겁니까?

 

한 : 시민주권모임이라는 것은, 지금 신당 만든다는 사람들도 있고, 민주당에 있는 사람들도 좀 많이 들어와 있고, 그리고 제 3 지대에 있는 사람도 다 해서. ‘다 하나로 가자.’ 저도 민주당에 속해 있잖아요, 안희정, 백원우 다 속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 다 합쳐서 시민정치운동을 하자.

 

 

총 : 컨셉은 신당도 포함하고 민주당도 포함하고 시민도 다 포함해서 더 넓은 걸 만들자?

 

한 : 네 그리고 옛날처럼 오프라인으로만 시민단체처럼 하지 말고, 온라인 중심으로 그렇게 해보려고 지금 생각을 하는 거고..

 

총 : 그럼 시민주권모임이 결국 정당이 된다거나 그런 건 아닌가요?
한 : 네. 절대 아니고, 정당은 민주당에서 정세균 의장이 몇 달 전에 ‘우리가 한계가 있으니 제 2 창당 수준의 대통합이나 연합을 하겠다.’는 걸 던졌어요 그 때. 그러고 얼마 전에도 그런 얘기를 했죠.

 

총 : 신당 쪽에서는 그럴 의사 없다고 하던데.
한 : 네 없다고 그러고 있고. 그 쪽에서는 민주당을 비판하고 있죠. ‘민주당으로는 안 된다.’

 

총 : 근데 논리적으로 일리가 있는 비판이잖아요.
한 : 그 쪽에서는 강하게 ‘민주당은 개혁의 의지도 없고, 개혁도 안 될 것이다.’ 이렇게..

 

총 : 기득권도 안 버릴 것이고, 지역 정당이고..
한 :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그런데 시민사회나 어떤 common part가 있어야 통합을 하든 뭐든 할 거 아니에요. 그렇지만 제가 볼 때는 빠른 시일 내에 그런 것이 형성 될 것 같지는 않고..

 

총 : 한동안은 따로 간다?
한 : 그러니까 뭐 예를 들면 선거 국면에서..
총 : 내년 지자체 같은?

 

한 : 예, 선거 국면에서 선거연합 이런 것을 통해서..
총 : 후보 단일화나 연합 공천이나..
한 : 네네 그렇죠. 지원이나 이런 걸 통해서 해 나가면서 ‘적절한 시기에 통합도 가능하지 않겠느냐.’ 그런 얘기죠.

 

총 : 총리님은 다 통합 되어야 한다고 보시는 건가요?

 

한 : 지금 당위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 도움이 안돼요. 현실이 뒷받침을 안 해주니까. 민주당에서 정운찬도 접촉을 그동안 했다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박원순도. 지금 떠오르는 사람으로는 정운찬, 박원순이 떠오르는데.. 아직 결단을 못 내리고 있고.. 그 외에..

 

총 : 정운찬은 뺏겼고..
한 : 정운찬은 가 버렸고.. 그 다음에 박원순은 어떻게 될지 모르고. 그 외에도 언론노조 사람들,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기업인들도 있고 하나 봐요. 근데 그렇게 인지도는 큰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총 : 근데 친노신당, 국민참여정당. 사실 그 주장과 논리를 보면 예전 개혁당의 문제의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고. 그렇게 따지면 유시민 장관과 맞닿는단 말이죠.
한 : 그렇죠. 시민광장. 시민광장 사람들하고..

 

총 : 그러면 유시민 전 장관도 그쪽으로 합류하게 될까요?

 

한 : 그 사람들은 유시민, 한명숙, 이해찬처럼 국민들이 알 수 있는 사람들과 결합을 해야 힘이 있다고 생각을 하죠. 그래서 지금도 이런저런 인터뷰에서 ‘한명숙도 올 것이다, 고려할 것이다, 이해찬 올 것이다.’ 얘기를 하고. 근데 신당에 합류할 것 같지는 않아요. 이 세 사람은.

 

총 : 앞으로도?
한 : 아마 합류할 것 같지는 않은데. 이 당이 굉장히 파괴력 있게, 국민적 희망을 받으면서 뜬다면.. 모르겠어요. 유시민 장관은..
총 : 가장 빨리 움직일 사람은 유시민 장관일 것이다?

 

한 :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 현재로는 합류 안 한다고 하고 있어요. 그러나 그렇게 뜬다고 하면.. 우선 당장은 조촐하게 이병완, 천호선 체제로 가는 걸로..

 

총 : 그럼 지금 시민주권모임에선 대표직을 관두셨잖아요.
한 : 아니 공동대표를 역할분담 한 거예요. 노무현 재단에서 이사장으로 역할 분담을 하고. 이쪽에선 공동대표로 되어 있었는데 제가 빼달라고 했어요. 두 가지를 다 못 하니까.

 

총 : 이해찬 전총리가 먼저 시민주권모임의 단독 대표로 이야기 되다가.. 총리님이 나중에 공동대표로..
한 : 아니 그게 아니라.. 둘이 같이..

 

총 : 처음부터?
한 : 두 총리가 해달라고 해서요. 그렇게 하다가..
총 : 처음에는 이해찬 총리가..

 

한 : 아니 거꾸로인데.. 근데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두 총리가 공동대표를 해달라고 결정이 돼서 하다가 노무현 재단이 갑자기 그래가지고 저한테 넘기는 바람에..

 
 

한명숙, 이해찬, 유시민 사이의 역학을 알고 싶어서 굳이 물었다. 이 부분은 앞으로도 계속 물을 게다. 그들 모두에게.

 

 

총 : 친노신당은 말리셨는데 결국 발족했단 말이죠. 그럼 본인 입장에서 이상적으로 이 상황을 정리한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는 겁니까? 민주당과 시민주권모임과 신당의 관계가 어떻게 정립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구도인가요?

 

한 : 그게.. 이상적인 모델은.. 이제.. 다 통합이 돼서..
총 : 민주당으로요?

 

한 : 아니죠. 민주당으로가 아니죠. 민주당은 기득권을 버리고 와야죠. 그러니까 같이 다 통합이 돼서 새로운 게 하나 탄생해야 하는데,. 지금은 시대가.. 예전에 민주화 운동해서 민주주의가 10년 동안 발전하고 특히 노무현 시대에 촛불세대로 이동한 거잖아요. 온라인 세대가 지금은 시민 주권세대가 되고 이제 누가 하향식으로 내리누른다고 컨트롤 되는 게 아니잖아요.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 되는 것 같이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곪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시민 주권의 시대가 왔다는 것을 민주당은 깨달아야 한다는 거죠. 옛날식으로 당을 운영하면 안 되고. 민주당은 많이 쇄신해야 된다고 봐요. 그럼 그 쇄신이 가능하겠는가. 기득권을 버리겠는가, 그게 문제인 거고.

 

그 다음 새롭게 형성되는, 예를 들면 시민주권은 당은 아니지만, 네티즌 연대랄지, 촛불세대랄지 이런 힘이 다 통합이 돼서.. 노무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또 다시 영웅을 찾지 말라.’ 이랬거든요. ‘깨어있는 시민주권을 통해서, 시민들을 통해서 노무현을 극복해라’ 그게 그 분의 메시지라고요.

 

이제 어떤 한 사람의 지도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깨어있는 사람들이 다 자기 몫을 할 때 가능하다.’ 그런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는 것을 나를 비롯해서 모두가 다 알아야 한다는 거죠 이제는. 그런 운동이 전 활발하게 전개되어야 한다고 보고 그것에 대한 가능성을 보고 있어요.

 

총 : 하지만 현실적인 주체가 존재해야 하는데. 민주당은 세가 있고 신당은 그 정당성은 이해가 가지만 현실적인 세는 없고.

 

한 : 신당도 하나의 세력이죠. 지금은 ‘민주당하고는 안 한다.’ 그러지만 우리가 민주당하고 둘이 하는 게 아니라 민주당도 하나의 세력으로 큰 틀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시점이 있다면.. 같이 할 수도 있다고 저는 보고.

 

총 : 그때 시민주권모임이 그 틀에 하나의 기반으로 깔리고?

 

한 : 시민주권모임은 정당이 되는 건 아니에요. 시민주권은 그냥 시민운동이에요.
총 : 그냥 인프라 역할만 한다?

 

한 : 네 그렇죠.
총 : 그럼 결국 현실적으로 남는 건 두 당이지 않습니까?

 

한 : 하~ 그러니까. 당 대 당으로 보면 그렇지만 저는 당 대 당의 통합이 아니라 세력 대 당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 거죠. 아까 제가 말씀 드렸던 그런 데서 젊은 사람들이 올바로 박혀 있고 행동이 수반되는 젊은 사람들이 하나의 세력으로 형성된다고 봐요 저는. 그러니까 이게 이상일 수도 있지만..

 

뭐 한명숙은 별건가요? 그냥 저도 시민 여성 운동하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러다 경험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는데. 정치교육을 내실 있게 시민주권모임에서도 해야 되고, 노무현재단에서도 해야 되고, 다른 데서도 해야 되고. 그런 사람들 중에서 자꾸 훈련되고 발굴되어서 나와야 한다는 거죠.

 

총 : 신당도 있고, 민주당도 있고, 시민주권모임도 그렇게 시민사회를 교육하고 차기 정치신인을 육성하는 인프라가 되고 하는 구상은 알겠는데.. 현실적으로 이제 다음 지자체가 있고 그 뒤 대선 있고..

 

한 : 총선이 있고 대선도..
총 : 네. 총선, 대선으로 넘어가는데. 현실정치에 현실로 대처하려면 구심이 존재해야 할 텐데 그 모양이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그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니까 지금 사람들이 누굴, 어디를 지지해야 할지도 모르는 건데.

 

한 : 아직은 그려지지 않았는데. 단시일 내에 앞에 닥치는 선거 준비만 급급하다가는 더 큰 것을 놓칠 수가 있다고 봐요. 그래서 조금 멀리 보고 그런 세력들을 모으는 역할을 해야죠. 그건 시민주권도 부분적으로 할 수 있고, 다른 쪽에서도 할 수 있죠. 현재 시민단체에서도 할 수 있고요.

 

총 : 민주당이 당을 해체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국고 지원도 받고 있고 국회의원도 속해있는 이 실체를. 결국은 민주당 중심으로 모일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요?

 

한 : 그러니까 단기적인, 지자체를 두고 생각하면 민주당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 하시는데. 물론 지자체 때까지 그런 통합작업이 다 이루어질 수 있을까 보면 시기적으로 만만치 않다고 봐요. 그렇기 때문에 그때는 시민사회 세력과 민주당과 또 야 4당이 있잖아요. 민노당도 있고. 그렇게 선거연합을 통해서 할 수밖에 없다.

 

 

총 : 지자체까지는 그렇고. 그 다음 총선, 대선에는 화학적 재결합?
한 :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통합작업을 위해 저도 역할을 하고 싶은 거고. 어떤 역할이라도.

 

총 : 노무현 대통령의 유산을 크게 물려받은 몇 분이 있습니다. 총리님도 그렇고 유시민 장관도 그렇고.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문재인 실장이 사람들 눈에 들어왔고. 박근혜 전 대표가 가지고 있는 강점이 있잖아요. 비련의 주인공 같은. 마치 미국에서 캐네디의 미망인 재클린을 아무도 욕하지 못하는 것처럼.

 

지지자이든 아니든. 사심도 없어 보이고 사기 치지 않을 것 같고 약속을 지킬 것 같고. 그런 이미지, 그런 강점이 분명 존재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개인적으로 볼 때 박근혜의 그런 강점은 똑같은 위치에서 상쇄시킬 수 있는 이미지를 가진 유일한 사람이 문재인 실장인 것 같습니다.

 

한 : 성실하고..
총 : 네. 말수도 적고.
한 : 욕심 없고.

 

총 : 그래서 사람들이 궁금한 게, 문재인 실장이 과연 정치적 행보를 할 것이냐. 어떻게 보세요? 나올까요?

 

한 : 나오기를 바라는 게 우리들인데요. 문재인 실장님 본인이 정치를 안 하고자 해요. 넓은 의미의 정치는 하지만 선거에 나가고 이런 것은 고사를 하세요. 너무나도. 노무현 대통령이 전에도 권했다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안 하셨거든요. 본인이 정치를 잘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전에도 제가 얘기한 적이 있는데.

 

저는 못 한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아주 최근까지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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