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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흄과 스키너 상자

 

2009.10.05.월요일
위아더월드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년 4월 26일 - 1776년8월 25일)[1]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이며 역사가이다. 서양 철학과 스코틀랜드 계몽운동에 관련된 인물 중 손꼽히는 인물이다.
(출처 : 위키 백과)

 

오늘 여기서 흄의 철학에 대해 전반적으로 다루거나 흄이 서양 철학사에서 어느 위치를 차지하고, 누구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었나를 다루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흄의 철학 중 재미있는 부분을 잠깐 살펴보고, 그 부분이 진화의 동물로서의 인간과 어떤 점에서 맞물리는 지를 이야기해본 후,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식으로 적용할 수 있는 지를 한번 보도록 하자.

 

 인과율

 

흄의 철학중 인과율이라는 것이 있다. 인과율 하면 불교가 먼저 떠오른다. 악행을 저지른다면, 다음 생에는 사마귀로도 태어날 수 있다고 한 불교의 무시무시한 인과가..

 


나쁘게 살면 사마귀가 되어 버린다..

 

그러나 흄의 철학에서 인과율을 말할 때에는 이런 무시무시한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흄의 인과율은 인간의 세계를 향한 인식과 관련된 것이다. 인간은 세계를 맞닥뜨렸을 때 세계의 본질을 파악하지 않고, 인과관계로 파악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말로는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으니 예를 한번 보도록 하자. 흄은 당구를 좋아했는지, 당구공에 대한 예를 들었다.

 

 

검은 당구공이 흰 당구공을 때리면, 흰 당구공은 앞으로 구르는데, 인간이 관찰한 것은 흰 공이 구르는 것과, 검은 공한테 맞았다는 것 밖에 없다. 그리고 흰 당구공이 구체적으로 어떤 작용에 의해 움직이는지 까지는 알지 못한다. 단지 단순한 선후관계에 있는 때렸다는 사실과 굴렀다는 사실을 인간은 일단 인과관계로 파악하려 한다는 것이 흄의 생각이었다.

 

검은 공이 흰 공을 때리면, 당연히 흰 공은 앞으로 굴러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흄이 제기한 의문은 인간의 인식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렇게 당연하게 굴러간다고 인식하는 것 자체가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거다.

 

정말 흄의 말이 맞는다면 인간은 이걸 당연하게 여겨야 하는데, 왜 흄은 이 당연한 것에 의문을 품었을까?

 

이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는 흄이 활동했던 시대 상황을 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1711년에 태어나 12살에 대학에 입학하고, 1739년, 27살에 인과율이 담겨있는 <인성론>을 출판한 흄이 살았던 시대는 뉴턴 직후의 시대이다. 1727년에 작고한 뉴턴은 1687년 <프린키피아 -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이 책에서 만유인력의 법칙 등, 뉴턴 역학을 정리했다.

 

뉴턴역학은 당시의 일반적인 인식에 굉장히 파격적이었을 것이다. 뉴턴 이전과 이후로 근대 과학사를 설명할 정도이고고, 특히 뉴턴역학에 의한 세계의 해석은 아인슈타인이 등장하기 전까지 패러다임으로 역할을 해왔으니 말이다. 모든 물체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을 텐데, 실제로는 사과와 지구가 같이 잡아당기고 있다고 하는 것은 사실 지금도 피부에 확 와 닫지는 않는다.

 

실제 에든버러 대학에 재학시절 뉴턴의 자연과학에 대해 배웠던 흄이 뉴턴역학에 영감을 받았는지의 여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뉴턴의 과학적인 방법론을 철학에 접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개인적으로도 뉴턴을 존경한다는 말을 했다고 알려져 있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흄의 철학은 에든버러 재학시절 배웠던 뉴턴의 자연과학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흄이 뉴턴의 자연과학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식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뉴턴의 사과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자. 사과는 사과나무에서 땅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인간은 왜 사과나무에서 땅으로 떨어지는지 알지 못한다. 뉴턴에 따르면 실제로는 사과와 지구가 서로를 잡아당기지만, 사과의 무게가 지구의 무게보다 훨씬 작기 때문에 사과만 지구 쪽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이 사실을 관찰할 때에는 이런 움직임의 본질까지는 알지 못한다. 그저 사과가 떨어지는 사실만을 관찰할 뿐이다.

 

그리고 그저 경험한 것, 사과를 비롯한 모든 물체는 잡아주지 않으면 아래로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반복적으로 물체가 땅을 향해서 떨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 인간은 이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이게 된다. 모든 물체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 진실이긴 하지만, 우린 이 현상에 대한 더 진실에 가까운 설명을 알고 있다. 바로 사과와 지구가 서로를 잡아당기고 있다는 것. 하지만 물체가 서로를 잡아당기는 현상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인간으로서는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인간의 의식에는 만물은 땅으로 떨어진다는 것만 남게 된다.

 

흄은 이런 사고를 바탕으로 논지를 전개해 나간다. 하얀색을 경험하지 못한 맹인이 하얀색에 관한 사고를 할 수 없는 것처럼, 경험하지 않은 것은 의식을 이루지 못한다고 말이다.  흄이 뉴턴역학을 배우면서 발상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는 주장일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여튼 그는 경험한 것도 완전히 깔끔하게 의식에 반영된다고 마저 생각지 않았다. 앞에서 잠깐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은 인과율이라는 오성을 가지고 있어 경험한 사건의 본질을 의식에 반영하기보다 인과관계를 만들어 의식에 반영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사람들은 흄의 이런 발상이 굉장히 인간 지성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었다고 생각했나 보다.

 

당시 유럽은 흄이 주장하는 경험주의와는 다르게 의식세계에서 이성을 강조하는 합리론도 같이 유행했었는데, 인간의 지성을 신뢰하는 합리론에 비해 굉장히 회의적인 발상이라고 여겨 흄의 철학을 회의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흄의 인과율과 진화론적 인간관

 

흄의 인간관은 진화론적인 인간관에 부합하는가? 이 질문에 예라는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경험이 의식에 반영되고, 사건을 인과의 관점으로 판단하려는 형질이 개체의 생존에 더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경험을 의식에 반영하거나 인과의 관점에서 상황을 해석하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하고, 유전자를 퍼트리는 데 더 이로운가?

 

일단은 그런 것 같다. 풀이 갑자기 부스럭거릴 때에, 구체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일단은 무리해서라도 뱀이 있어 부스럭거린 거라고 무리해서 추측할 수 있다면, 만약의 위험에 일단은 피할 수 있다.
또 진짜 인과의 관계에 있는 경우에도 이 논리를 적용시켜 보자. 예를 들면 나무끼리 비비면 불이 붙는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했다고 가정하자. 발견자는 마찰력과 열의 관계에 대해서 알 수는 없을 지라도, 이 선후관계를 인과관계라고 인식함으로서 진짜 인과관계에 있는 것들을 우연한 발견에 그치지 않게 계속 시도해볼 수도 있다. 이 역시 생존에 유리해 보인다. 따라서 무조건 인과의 관계로 파악하려는 개체와 그렇지 않은 개체가 있을 때에는 전자의 생존율이 아무래도 높아 보인다.

 

그러나 이런 식의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지는 논의는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머릿속에서만 논의하기로 한다면 반대의 경우, 쉽사리 인과관계라고 단정하지 않는 경우도 생존에 유리한다는 결과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쉽사리 인과관계라고 단정하지 않음으로서 가지게 되는 신중한 선택 역시 유전자의 전파에 충분히 도움이 된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흄의 인간관은 진화론에 부합하는가? 이 질문에 깔끔하게 예라고 대답하기 어렵다는 점은 말씀드렸지만, 어느 정도의 증거가 있다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카고컬트

 

다음은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화물숭배(Cargo Cult)"는 태평양 멜라네시아와 뉴기니 지역에서 발생한 유명한 유사 종교 사례이다.

 

19세기부터 발생하여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진 것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종교의 발생과 신앙의 본질, 더 나아가 인간 심리의 본성에 대하여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근세 들어 백인들의 식민지가 된 이 지역의 원주민들은, 백인들이 가져 온 온갖 현대 문명의 이기들이 지닌 마법 같은 속성에 크게 놀랐다. 이 물건들은 모두 백인들이 배나 비행기를 통해 받는 "화물(Cargo)"을 통해 전달되었으며, 원주민들이 보기에 백인들이 이 물건들을 직접 제작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백인들은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만지작거리거나, 신기한 잡음과 목소리가 나는 작은 상자(라디오) 둘레에 모여 앉아 귀를 기울이거나, 원주민들에게 제복을 입히고는 행진을 시키는 따위의 쓸데없는 짓만 해댔기 때문이다.

 

원주민들은, 백인들의 이러한 이상한 행동들이 실은 신에게 화물을 보내달라고 올리는 의식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원주민들도 그런 의식을 올리면 화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이른바 화물 숭배 의식이라는 것이 출현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의식이 어느 특정 지역에서 발생하여 주위로 퍼져나간 것이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출현했다는 사실이다. 인류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대략 50회 이상 독자적으로 여러 지역에서 이런 숭배 의식들이 나타났으며, 대부분 서로 아무 연관도 없이 출현했다고 한다.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진 이 의식은 원주민들이 야자수로 만들어진 관제탑 안에서 나무로 만든 헤드폰을 끼거나 모형활주로에서 나무비행기가 착륙하는 모습을 연기하거나 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당연히 그 원주민이 얻은 것은 음식이나 라디오 따위가 아니고, 삽질로 인한 짜증뿐이었을 거다. 어쩌면 20세기 중반에 진실을 알게 된 원주민들이 그간의 삽질에 분노해 추장을 탄핵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도킨스는 동시다발적으로 행해진 이 의식들을 통해 종교의 기원에 대한 추측을 할 수 있다고 <만들어진 신>에서 주장하고 있다.

 

종교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흄의 인과율을 이곳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에 어떤 사건이 실제로 인과율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인과관계를 파악했다면 흄이 말한 인과율은 좀 오버한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인과관계가 있었다면, 인간이 사건을 인과관계 아래서 해석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이성으로 진실을 인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과관계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건을 인과관계로 해석했다면, 흄의 말대로 우리는 사건을 인과율로 해석하려는 오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원주민은 백인들이 식량을 기르고 비행기로 나르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 오직 라디오를 듣거나 헤드폰을 끼는 것만 경험했을 뿐이다. 라디오를 듣거나, 헤드폰을 끼는 것은 당연히 식량이 오는 것과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 그러나 흄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경험한 사건을 인과관계아래서 인식하려는 오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원주민들은 인과관계가 없는 식량과 활주로 이 둘을 인과관계라고 인식하였고, 100년이 넘도록 삽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의식이 한곳에서 출현하여 퍼져나간 것이 아니고, 독자적으로 여러 곳에서 생겨났다는 것은 이 생각을 더 신빙성 있게 만들어준다.

 

 스키너의 상자

 

재밌는 것은 흄의 인간관이 꼭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라는 데에 있다. 만약 진화론과 흄의 인관간이 같은 어떤 것을 말하고 있다면 그도 그럴 법 하다. 어떤 형질이 인간의 생존에 유리했다면, 동물의 생존에도 유리할 것이다. 스키너의 상자를 한번 보자.

 

 

 


스키너 상자와 실험대상인 쥐.

 

스위치를 누를 때 먹이가 나오는 상자에 가카 아니 쥐를 넣으면, 우연히 스위치를 눌러 먹이를 받아먹은 쥐는 이후 계속 스위치를 누른다. 이 실험과 다른 변종실험을 통해서 인간의 의식보다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행동주의를 주장한다.

 

스키너가 내놓은 결론과는 아무 관련이 없지만, 우리가 이제껏 이야기해온 흄과 진화론에 관한 이야기와 한번 연관시키도록 해보자.

 

당연하게도 스위치를 위에서 아래로 누르는 행위와 먹이는 아무 연관이 없다. 먹이를 얻기 위해서는 사냥을 하거나 동료 개체의 먹이를 빼앗는 방법 혹은 직접 생산하는 방법 외엔 없다. 하지만 쥐가 스위치를 누르고 먹이를 얻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한 결과 이 경험이 의식에 반영되고, 스위치를 누르는 행위와 먹이가 나오는 사실의 선후관계를 인과관계로 파악한다. 따라서 쥐는 배가 고플 때엔 먹이를 찾을 생각을 하지는 않고 그저 스위치를 누르기만 한다.

 

쥐의 이런 형질 역시 생존에 유리해 보인다. 실제 자연세계에서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 스키너상자가 있을 확률이 희박하다. 하지만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아닌 중간단계의 과정이 생략된 인과관계만 인식하더라도 생존에 유리할 수 있다. 사실 유전적인 단위를 따진다면, 여러 가지의 형질의 합이 이런 결과를 나타냈겠지만, 그 부분을 자세히 규명하는 것은 과학자들의 손에 맡겨두기로 하자. 어찌했건 결과적으로 보면 쥐도 흄의 말처럼 인과율이라는 오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기도 한다.

 

 스키너 상자속의 인간

 

만약 인간과 가카가 정말 흄의 말처럼 사건을 우선 인과관계아래서 판단하려는 오성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스키너 상자속의 쥐처럼 무턱대고 상황을 인과관계로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때로는 경계하기도 해야 한다. 왜냐면 사건을 인과관계로 인식하려는 형질이 DNA 수준에서 기록되어있는 만큼 우리에게는 강력한 영향을 계속해서 끼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건을 접했을 때 진실과 거리가 먼 인식을 할 수도 있게 된다. 그리고 진실과 거리가 먼 인식은 당연히 진실과 가까운 판단과 정도에 걸맞은 온당한 감정적인 대응을 힘들게 한다. 원시시대에 인간의 생존을 유리하게 해준 이 오성이 어느 순간에는 인간의 발목을 잡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검찰이 노무현을 기소했을 때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시켰다. 법에 대해서 잘 모르는 저로서는 노무현 이전에 포괄적 뇌물죄가 있었는지, 이것이 혹시 노무현에게만 적용된 케이스는 아니었는지 잘 모르겠다.

 

친한 사람이 돈을 주었다 해도, 돈을 주는 사람이 설마 그냥 돈을 주었겠느냐 하는 문제를 증거 없이 어떤 언론들은 강도 높게 끊임없이 제기했었다. 아마 이 보수언론들도 뚜렷한 증거 같은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원하는 것은 따로 있었을 테니까.

 

"뇌물죄, 5억 넘을 땐 최하 징역 7년" 노(盧)의 자승자박?
조선일보 종합언론사 | 2009.05.02 (토) 오전 3:04

 

검 "600만달러 뇌물" 노 "박연차와 오랜 후원관계" 공방
한겨레 사회 | 2009.04.30 (목) 오후 7:55

 

부인과 아들이 검은돈 받았더라도 노(盧)가 받은 뇌물로 판단
조선일보 정치 | 2009.04.27 (월) 오전 4:17

 

주목해야할 점은 이것이 실제로 먹혔다는 거다.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면 확실한 증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뭔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노무현을 지지했던 이들 조차 증거의 유무보다는 액수가 적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으니까 말이다. 비록 스키너 상자를 만든 건 검찰과 일부 언론사였지만, 어쩌면 1739년에 흄이 말한 대로 2009의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이 사건의 본질을 생각하기 보다는 진실과 거리가 있는 인과관계를 무리해서 따지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경험한 것만을 인식에 놓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라고.

 

그리고 인간의 오성에 의한 오해는 너무도 처참한 결과를 불러왔다.

 

어쩌면 인간은 다시 진화하기 전까지는 스키너 상자 속에 갇혀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스위치를 누르면 먹이가 나온다고 생각하는 쥐처럼, 끊임없이 진실과 먼 해석을 할지도 모르고,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든 스키너 상자 속에 갇히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오해나 시도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흄의 말대로 인간의 오성이거나 진화론의 해석대로 인간의 DNA에 염기서열로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오성이라면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이고, 다음 진화를 기다리기에도 너무 먼 일이다.

 

하지만 스키너 상자 속에 갇혀 사는 것이 운명으로 주어졌을 지라도, 또 누군가 또 몰래 더욱 교활해진 스키너 상자를 만들어 우릴 가두려 할지라도, 내가 상자 속에 있음을 안다면 상자 밖의 세상을 바라볼 수도 있다. 또, 우린 상자 속에 있는 거라고, 스위치와 먹이는 아무 관련이 없는 거라고 발악도 할 수 있다. 또 어젯밤 남의 집 굴뚝에 몰래 들어가 검은 연기를 피워댄 놈들도 알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사회 전반적으로 이 불행을 가져다줄 수 있는 DNA적인 운명에 저항하려는 경향이 퍼져나갈 수도 있는 일이다. 문화는 퍼져나가는 거니까. 도킨스는 이렇게 문화가 전달되는 단위를 밈(meme)이라고 표현했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우리의 이성을 억압하는 본성을 경계하는 meme이 퍼져서 사건을 진실에 가깝게 인식하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줄 수 있게 된다면, 진짜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얘기처럼 역사가 발전할지도 모를 일이다.

 

 

 

위아더월드(we_are_the_world@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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