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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4.수요일
필독


 


 


 


 



 


브라질은 치안이 안 좋기로 악명 높은 나라다. 브라질에서 강도를 당하는 법은 수도 없이 많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는 차를 운전하다가 차를 강도당하는 일. 빨간 불에 멈춰 섰을 때 어디선가 나타난 강도에게 차를 뺏기는 집까지 걸어가는 것이다. 브라질에서는 이런 식의 강도 사건이 빈번해, 야간에는 신호 무시가 법적으로 허용된다.


 


펠레도 이 수법에 걸렸다. 그런데 강도는 왕년의 축구황제 펠레를 알아보고 차를 빼앗는 대신 사인을 받아 흡족하게 돌아갔다고 한다. 펠레가 모는 차라면 값이 상당할 게 분명할 터. 강도에겐 펠레의 차보다 그의 사인이 더 횡재였던 거다.


 



사인을 원해?


 


브라질 국민들은 왜 그토록 축구에 열광하는가. 잉글랜드와 마찬가지로, 브라질 역시 역사 이야기로 시작한다. 브라질이 축구왕국이 된 내력을 살펴보자.


 


 



 


식민지가 다 그렇듯, 브라질 역사도 비극으로부터 시작된다. 현재 브라질이라 불리는 광대한 땅은 포르투갈 군대에 점령된 후부터 학살과 노예제로 붉게 물들었다.


 


포르투갈 인들은 땅을 개간하기 위해 인디오 원주민들을 쫓아내고 살육했으며, 개간한 땅에서 작물을 생산하기 위해 그들을 노예로 삼았다. 그러나 인디오만으로는 노동력이 부족했다. 여기서 중요한 게 아프리카 국가인 앙골라다.


 


앙골라 역시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 앙골라의 흑인을 사냥해 노예로 만들었고, 노예를 브라질로 수출해 일을 시켰다. 이 노동력으로 생산된 농산물을 세계에 수출해 부를 축적했다. 이것이 포르투갈 제국주의의 기본 전략이었고, 포르투갈은 곧 유럽에서 가장 잘 나가는 국가가 된 것이다. 물론 스페인과 영국의 바다 진출로 포르투갈 제국의 전성기는 곧 끝나게 되지만. 아무튼 포르투갈은 제국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제국주의의 기본 모델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 열강에 비해 훨씬 적은 식민지를 가졌음에도 이를 알차게 이용해 먹었기 때문이다.


 


브라질 독립은, 그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하층민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좀 외람되지만, 역사상 보기 드문 개그였다. 개그는 나폴레옹의 야심에서 시작됐다. 전유럽 통일을 목표로 한 나폴레옹 군대가 포르투갈을 침략했다. 포르투갈은 이베리아 반도 끝에 매달려 있다. 한마디로 육지에서는 튈 곳이 없다. 포르투갈 군대는 식민지 원주민들을 겁주는 데는 선수였지만 나폴레옹의 정예군에 박살나고 만다. 봉건전제국가에서 왕실과 국가는 거의 등치를 이룬다. 왕실을 보전하는 것이 곧 나라를 보전하는 것이었다. 포르투갈 왕실은 집안 전체가 바다로 도주, 일단 브라질로 이사한다.


 


상황이 안정된 후 포르투갈 왕은 나폴레옹과 협상하고 본국을 재건하기 위해 본국으로 돌아간다. 황태자 돔 페드로는 일단 브라질에 남겨놓았다. 왕가의 씨를 보존하려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브라질에 남은 돔 페드로는 이 틈을 타 브라질 독립을 선언하고 스스로 브라질 황제에 등극, 본국에 돌아가 있던 아빠의 뒤통수를 제대로 친다.


 



아빠 미안ㅋ 역사적 후레자식 페드로 1세.
프리메이슨의 회원이기도 했던 그는 여러모로 4차원 군주였다.


 


이렇게 포르투갈은 부의 원천을 날려버리고 만다. 이후 포르투갈 제국은 급속히 몰락, 다시는 예전과 같은 위세를 회복하지 못한다. 반면 브라질은 엄청난 부를 축적하며 자본주의가 걷잡을 수 없이 팽창하게 된다. 그러나 의식 있는 엘리트들과 민중의 투쟁에 의한 주체적 독립이 아닌 가족싸움에 의한 우발적 독립은 브라질의 내부 모순을 해결하기는커녕 더욱 고착, 가속화시킨다. 브라질 민중은 대지주, 대자본가를 위해 엽기적일 만큼 가혹하게 착취당해 왔으며 현재도 브라질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노예노동이다. 현재 브라질에서 노예제는 법적으로는 폐지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더욱 공고해진 상태다.


 


진보는 응당한 투쟁과 희생을 통해서만이 진정 성취된다. 브라질이 전제군주국가에서 공화국으로 ‘진보’하는 과정도 왜곡된 것이었다. 후대 브라질 황제 페드로 2세는 세계적 추세를 먼발치에서 뒤따라갈 만큼의 진보성은 있었다. 그는 1850년 아프리카 노예수입을 금지했다.


 


1888년에는 드디어 노예제를 폐지했다. 그러자 부의 기반을 잃게 된 지주 기득권세력이 반발, 쿠데타를 획책했고 데오도루 장군이 이끄는 반란군이 나라를 전복하고 황체를 축출해버렸다. 이렇게 공화국이 되었으니, 겉으로만 민주국가다.


 


브라질은 예나 지금이나 절대다수가 1%의 부자를 위해 착취당하는 비극의 땅이다. 현재 브라질의 검은 시장에서, 커피농장에서 부려먹는 노예 한 명의 값은 100불에서 300불 사이다. 쓰다 버리면 되는 재료에 불과하다(필자는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브라질에 비가 내리면 스타벅스 주식을 사라는 말이 있다. 스타벅스는 인간성을 상실한 자본이 노예산업과 결탁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따라서 브라질의 국민적 감성이란 극빈자, 피착취자의 감성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원류는 앙골라 출신 노예들의 슬픔과 분노다.


 


 



 


앙골라 노예들의 신체는 노동력뿐만 아니라 고향의 언어와 문화도 달고 왔다. 앙골라문화는 브라질이라는 용광로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브라질 축구대표팀을 삼바군단이라고 한다. 삼바는 리듬이자 세계에서 가장 요란한 축제의 이름이고, 그네들 특유의 카오스적인 열정이기도 하다. 브라질문화를 특징짓는 이 말은 앙골라 토속어 셈바 혹은 므셈바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축구에 관한 한, 삼바보다 중요한 단어는 징가(Ginga)다. 징가는 앙골라어 겡가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말은 브라질에서 복합적이고 특별한 의미를 얻게 된다. 징가는 세계의 모든 말 중 외국어로 번역하기 가장 어려운 단어 중 하나다. 도대체 징가란 무엇인가. 징가란 사전적으로는 브라질의 전통무술 카포에이라의 기본 스텝을 뜻한다. 태권도가 기마자세, 권투가 가드 올리기로 시작된다면 카포에이라를 배우는 사람은 징가부터 시작한다.


 



 이 스텝이 징가


 


이 스텝에서 카포에이라의 모든 동작이 나온다. 훈련을 겸한 카포에이라 대련 영상을 보시라. 영상에서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글을 읽어도 좋을 듯.


 



 


보다시피 카포에이라는 무술이기도 하지만 춤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징가와 삼바는 형제지간이다. 그런데 흑인노예들은 왜 이렇게, 극단적으로 손동작을 배제한 무술을 개발했을까?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두 손이 쇠사슬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손을 쓰지 못하는 대신 킥의 위력을 극대화한 무술이 카포에이라다. 삼바가 고달픈 현실을 피해 열락으로 도피하기 위한 것이라면, 카포에이라는 무술인 만큼 더 공격적인 목적을 갖고 있다.


 


카포에이라는 무기를 든 착취자들에게 맞서기 위해 자생한 무술이다. 극단적으로 불리한 환경에서 탈출을 하거나 파업 등의 집단행동을 하려면 역시 극단적인 수단이 필요하다. 연속된 회전과 점프에 이은 발차기는 원래


 


1)당연히 두 손이 자유롭고
2)총을 들고 있고
3)말을 타고 있는 감시병과 군인을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낙마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 때 발뒤꿈치는 철퇴의 역할을 하게 된다. 실패는 곧 죽음으로 이어진다.


 


당연히 정부와 경찰은 카포에이라를 금지했다. 대련하거나 연습하는 모습이 발각되면 현장에서 총살되었다. 그러나 탈출에 성공한 고수들은 정글로 숨어들어 후진을 양성했다. 또한 카포에이라는 곧 춤으로 위장되었다. 카포에이라를 춤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징가다. 이렇게 징가는 약자가 강자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과정과 방식, 재능, 태도를 총괄하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징가의 뜻은 실로 다양하다.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살지 않으려는 방법,난관에 맞서는 적절한 몸짓 등을 뜻하기도 하고 귀여운 거짓말을 뜻하기도 한다. 약자가 기지를 발휘에 강자를 속여 넘기는 모습을 보고 느끼는 고소한 쾌감도 징가에 속한다. 재치를 발휘해 강자를 이길 줄 아는 사람, 근성과 유머감각을 겸비한 사람을 징가가 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삼바의 춤동작도 징가이며, 삼바축제 행렬에서 춤추며 전진하는 반라의 여성들의 걸음걸이도 징가라고 한다.


 


카포에이라와 축구는 강력한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발로 한다. 브라질에서는, 축구선수들의 플레이에도 징가가 있어야 한다.


 


 



 


무술인 카포에이라도 춤인데 축구도 춤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브라질의 대표적인 스타플레이어 중 하나인 카카가 한 말이다.


 


"브라질 사람들에게 축구란, 말하자면 골을 위한 댄스다."


 


전설적인 미드필더이자, 1998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주장으로 뛰었으며 현재 브라질 대표팀의 감독인 둥가는 이렇게 말했다.


 


"일은 공이 하도록 내버려 두어라."


 


즉 선수들은 그라운드 위에서 놀아야 한다는 뜻이다. 논다는 것은 열심히 뛰지 않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열심히 놀라는 뜻이다. 축구는 놀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축구는 승리를 위한 놀이이므로 전략이 필요하다. 놀면서 이기려는 태도와 방법, 즉 징가가 필요한 것이다.


 


물론 징가는 본래 스텝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에, 드리블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브라질 사람들에겐 자기 편 선수가 상대 선수를 체력이나 체격이 아닌 페인트 동작으로 제치는 것이야말로 짜릿한 징가의 즐거움이다. 골의 희열만큼은 아니더라도, 징가가 한 번 성공할 때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승리가 되는 것이다(브라질인들은 파워풀하고 직선적인 슛으로 얻는 골보다는 골키퍼를 바보로 만들며 딱 슛에 필요한 힘만을 사용해 얻는 골에 더 열광한다. 호나우도의 득점 스타일을 생각해보라.). 그래서 브라질인들은 경기가 계속되는 내내 오르가즘을 느낀다. 축구에 미치지 않을 수가 없다.


 


드리플과 패싱, 슛만이 징가는 아니다. 징가는 브라질 축구의 혼이자, 브라질인들이 축구를 대하는 정신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들에게 축구는 곧 징가일지도 모른다. 브라질 대표팀을 가리키는 ‘삼바군단’이라는 말은 아쉬운 표현이다. 사실은 ‘징가군단’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징가 : 브라질 축구의 혼> 이라는 문구를 사용한 나이키의 광고.


 


그렇다면 "잉글랜드는 축구를 발명했지만 브라질은 축구를 예술적으로 완성시켰다.”는 말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브라질 축구에 대한 "예술적이다", "우아하다"는 표현은 철저히 유럽인들의 관념이 반영된 것이다. 징가의 아름다움은 발레나 클래식처럼 조직된 규범을 토대로 하지 않는다. 징가는 창조적이되 불규칙하고 돌발적이며 약삭빠른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호나우딩요의 전매특허인 헛다리짚기를 들 수 있다. 헛다리짚기는 원래 플립플랩(flipflap), 엘라스티코(elastico) 라고 불리는 기술인데, 발목을 연속적으로 꺾어 공의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꾸며 상대를 속이는 기술을 말한다. 플립플랩의 원조는 호나우딩요가 아니라 70년대 브라질 스타 히벨리노다. 


 




전지현은 엘라스틴하고 호나우도는 엘라스티코한다.
찰랑찰랑, 휘적휘적. 같은 어원이다.


 


브라질 선수들의 동작이 속이는 것은 본질적으로 상대 선수의 몸에 입력된 본능적인 동작이다. 예를 들어 슈팅이나 패스를 하기 직전의 자세는 정해져 있다. 따라서 상대 공격수가 이런 정해진 자세를 취할 때 수비수는 수만 번을 반복했듯이 반사적으로 멈춰 서게 된다. 이때 수비수를 제치고 드리블을 이어가는 식이다. 프랑스의 스포츠신문 <레큅>은 이렇게 말했다.


 


"수비수는 자신을 농락한 호나우딩요의 플레이를 이해하려면, 비디오 재생 버튼을 반복해서 눌러야만 한다."


 


엘라스티코에 가장 심한 굴욕을 당한 선수는 독일 축구의 황제 베켄바우어다. 카이저 베켄바우어는 히벨리노의 원조 엘라스티코에 깜짝 놀란 나머지 엉덩방아를 찧는 대망신을 당했다. 징가는 황제를 바보로 만들기도 한다.


 


 



 


징가의 감성은 철저하게 서민적, 아니 빈민적이다. 징가는 체제와 운명으로부터 버림받은 불우한 민중이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창안한 수단이자,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기 위한 감정적 자구책이다. 이것이 극대화된 행위가 바로 축구다.


 


브라질 축구의 징가는 예술적이지만, 그 예술성은 빈민가의 길거리에서, 더 멀리로는 노예들의 슬픈 몸짓에서 유래했다. 모든 재능과 노력을 동원해 살아남으려는 술책. 그래서 징가는 예술과 쌈마이 사이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감히 브라질 축구역사는 노예노동에서 시작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브라질 선수들의 화려한 기술에 감탄할 때, 한편으로는 그들의 슬픈 역사가 생각난다. 그들에게 축구는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보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생(生)에 대한 그런 끝없는 의지가 있기에 브라질 축구는 세계 최강이 아닐까.


 


그래서 징가는, 쌈마이일지언정 아름다운 쌈마이라고 말하고 싶다.


 




꼭 이 아름다움 말고...


 


 


 


 


 


필독(the.dog.on.the.fiel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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