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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광신에 대한 몇가지 단상

 

2009.10.16.금요일
산하

 

지금까지 별의 별 사람들과 다 만났고 직간접적으로 백만 가지의 상황과 마주했는데 말이죠.  그 가운데 정말로 이건 좀 다른 방향으로 편집해서 어디 국제 호러 영화제 같은 데 출품해 봤으면 하는 아이템이 있었어요.  직접 그 엽기적인 공포와 대면한 것도 아니고, 동료 PD가 편집하는 모습을 어깨 너머로만 보면서도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었으니까요.

 

어느 작은 교회가 뭔가 수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어요.  예배를 본 다음 교인들의 얼굴에 시퍼런 멍이 든다거나 심지어는 피를 철철 흘리며 나오기까지 한다는 겁니다.  대관절 교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촬영 테잎에는 그들의 모임 현장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지요.

 

 

교인들이 둘러앉아 있는 교회 사무실.  그 모임의 주재자는 목사가 아닌 여자 집사였어요.  목사와 그 사모는 영적 능력이 탁월한 그 집사에게 감화(?)되어 있었고, 다른 신도들도 그 집사를 받들어 모시다 못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한다고 했지요.  한참 무슨 얘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문제의 집사가 벌떡 일어섰어요.

 

그리고는 손에 뭘 들고는 옆에 있던 여자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무시무시하게 두들겨 패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맞는 이는 저항의 몸짓은커녕 한 대라도 더 맞아야 한다는 듯 피하지도 않고 그 매를 받아냅니다.  매에는 장사 없다고 윽 윽 신음과 비명이 터져 나오는데도 때리는 자와 맞는 자 둘 다 초지일관이더군요.

 

"도.... 도대체 왜 저러는 거예요?"
"사람들한테 악령이 깃들어 있어서 쫓아내는 거랍니다.  저러면서 돈도 갖다 바쳐요. "  

 

악령을 쫓기 전에 사람 먼저 잡을 것 같아 우리가 확보한 영상을 근거로 부랴부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을 때 또 한 번 아연실색할 일이 벌어졌어요.  신도들 가운데 누구도 폭력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집사님의 행동은 자신들에게서 사탄을 몰아내려고 한 것일 뿐이라며 집사를 일치단결 감싸고 돈 거지요. 고관대작들은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도둑맞아도 잃어버린 것 없다고 잡아뗀다더니 피가 터지도록 두들겨 맞은 사람들이 자기는 은혜를 입은 것뿐이라며 아우성을 치니 경찰이고 제작진이고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어요,

 

그 와중에 문제의 집사가 카메라 앞에서 신도들 하나 하나에게 매우 정중하고 간절하게 사과를 하기 시작했어요.  "여러분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요."

 

개전의 정과 재발 방지의 의지를 보여 이 자리를 빨리 모면해 보자는 속셈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행동이었지요.  그런데 사과를 받던 아줌마 하나가 언성을 높이면서 집사에게 항변을 합니다.  "집사님이 뭘 잘못했어요? 집사님이 날 살렸어요.  날 살렸잖아요."  집사는 계속 잘못했다고 연거푸 고개를 숙이는데 그에 따라 아줌마의 목소리도 더욱 단단해집니다. 

 

"집사님이 날 살렸어요! 집사님 사과하지 마세요!"

 

얼굴을 보니 이전 집회에서 막대기로 두들겨 맞아 피가 터졌던 바로 그 여자였어요.  푸른 멍 자국 채 가시지 않은 눈을 크게 뜨고선, 안타까워 못 견디겠다는 듯 주먹을 꼬옥 쥐고 집사님은 죄가 없다고 외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동정의 마음이 아닌 공포의 감정이 스멀거리면서 온몸을 뒤덮더군요.  대관절 집사의 어떤 영적 능력이 그들을 휘어잡았는지 모르나 집사에 대한 믿음은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있었고, 주위에게 전염되고 있었고, 그 공동체에 모인 사람들의 인생길을 송두리째 어긋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집사는 피해자들의 일치된 증언에 따라 풀려났고, 범죄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 한 그들을 해산시킬 도리도 없었던 바, 공포의 예배는 암암리에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 목사의 사모 안에 파고든 악령(?)을 쫓아내려는 시도 와중에 목사 사모의 목뼈가 부러지는 끔찍한 비극을 맞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신을 치우지도 않은 채, 그 남편 목사를 비롯한 신도들은 썩어가는 시체 앞에서 부활을 노래하고 있었지요.

 

 

이 이야기를 들으며 "미친 사람들!"이라 일갈하지 않을 분은 드물 겁니다.  하지만 그 교회에서 집사에게 양순히 두들겨 맞던 사람들은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었어요.  정신질환자도 아니었고, 직장 생활도 버젓이 하고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단지 그들의 믿음이 지나쳤을 뿐이지요. 문제는 이런 류의 광신(狂信)이 비단 종교의 영역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오랜 동안 북한에 억류되어 있었던 현대 직원 유모씨가 국회에 불려 나와 자신의 북한 행적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여자가 생겨서 그 여자와 함께 살고픈 욕심에 "같이 남으로 가자" 정도의 탈북 음모를 꾸민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분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북한이 얘기하는 바 "반공화국 책동"을 벌인 것이 맞더군요.  "김정일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마음"에 100명이 넘는 북한 사람의 교화(?)를 시도했고 그를 추궁하는 북한 관리들에게 "차라리 사형시켜라"고 대들었다고 합니다.

 

북한과의 상생에 목숨을 건 현대 아산 직원으로서의 삶을 뿌리친 것이야 자신의 신념에 따른 것이니 고개를 끄덕여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견제와 감시를 한몸에 받고 있는 현대 직원으로서,북한 체제를 익히 아는 사람으로서 100명도 넘는 북한인들에게 일종의 남한 천국, 북한 지옥을 부르짖으며 그들의 교화를 시도했다는 것은 사람 잡는 교회 안에서 내 안에 든 악령을 축출코자 집사의 매타작을 감사히 받아내던 이들의 ‘용기’와 ‘믿음’을 넘어선다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악령을 쫓아내려다 끝내 자기 교회의 사모를 밟아 죽인 이들처럼, 유씨는 스스로의 인생을 뜻하지 않은 고통에 빠뜨렸고, 자신의 고용주를 곤경에 밀어 넣었으며 남북 관계를 파탄 직전까지 몰아갔습니다.  성경 타자 연습을 하면서 "차라리 사형시켜라"고 대들었다는 그의 과감함이 "집사님이 나를 살렸다"고 포효하던 충만함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의 행적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사탄의 정권에 핍박받는 형제들을 구원하려는 신념의 결과가 아니라,  그저 엽색행각을 감추는 도구일 뿐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일단 유모씨의 말씀으로만 그를 평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유모씨가 아직 감금 생활을 벗어나기 전, 저는 또 한 명의 불운한 영혼을 뉴스를 통해 접했었습니다.  앞길이 십팔만 리 같은 푸르른 청춘이었던 그는 자신이 신봉하는 믿음의 대상을 배신하였다는 이유로 한 사람을 증오했고, 어떻게든 그를 겁박하여 볼 심산으로 사진에 시뻘건 물감을 뿌리고 "배신자는 반드시 대가 치른다"는 경고에다가 도끼 한 자루까지 얹어 소포로 보냈다가 덜미를 잡혔습니다.

 

철부지 깡패도 코웃음을 칠 협박 소포의 주인공은 "6.15청학연대"라는 단체의 집행 위원장씩이나 되는 분이었고, 그가 사무치게 겁주고 싶어 했던 대상은 황장엽이었습니다.

 

황장엽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청학연대 집행위원장의 정치적 입장의 정당성을 차치하고, 나는 그 믿음이 두려웠습니다.   이글거리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한 늙은이의 사진에 시뻘건 물감을 뿌리고 "배신자의 대가"를 힘주어 쓰고선, 손도끼 하나를 알뜰히 동봉하는 순간의 그는 이미 신념에 투철한 운동가가 아니라, 신념의 포로가 된 광신도였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그 소포를 포장하던 순간 그의 눈은  목사 사모의 목을 밟으며 "사탄아 물러가라"를 외쳤던 이들의 눈과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그저 옥중에서는 사람 잡는 교회의 신도들처럼 목 부러진 시체가 부활하리라 우기지 말고, 자신의 행동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되짚고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만약 그가 그러하지 못한다면, 진실로 사람 잡는 교회의 핏발선 사람들과 터럭만큼도 다를 일이 없겠기 때문입니다.

 

대저 광신도란 믿음을 가로막으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 적대적이며 모든 이성과 상식을 믿음의 흙 아래 매몰시키는 이들을 지칭합니다. 흙의 두께가 두터우면 두터울수록 스스로에게 만족하며, 서로 기꺼워하며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해 가는 것이 그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흔히 생각하듯 미친 사람들이 아닙니다.다만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확신에 상식의 잣대와 회의(懷疑)의 수선이 가해지는 것을 거부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찔려 오는 것은 과연 나에게는 광신도적인 모습이 없을까 하는 다소 아찔한 반문 때문입니다.   적절한 반성과 합리적인 의문 없이 관성적으로, 그냥 이게 맞는 것 같아서, 그리고 어떤 의견이 나의 정치적 포지션에 부합하고 나의 경제적 이익에 맞아 떨어지므로 불문곡직 수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질문에 흔쾌히 난 아니야~ 라고 대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듯 합니다. 

 

 

 

산하(nasanha@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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