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딴지스, 부산 가다 2009.10.19.월요일 전편의 마지막 장면. 콘도의 특수방음벽이 욕실에는 해당되지 않는지, 샤워기 물소리가 거슬린다. 이윽고 소리가 멈췄다. 간헐 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똑.똑.똑. 그리고... 철컥! ... 비포 선셋 이른 아침 눈이 저절로 떠졌다. 포근한 이불의 감촉. 어젯밤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어젯밤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나는 과연 그 일을 제대로 묘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지면에다 그것을 밝히는 게 맞는 것일까. 그 모든 게 오늘 일정에 달려있다. 오늘도 제대로 된 취재거리를 찾지 못할 경우, 선택의 여지는 없다. 어제 나는 무려 맥주와 5000원짜리 등심과 6000원짜리 육회를 먹음으로써, 이미 취재비 상한을 오버했다. 이 상태로 돌아가면 분명 총수가 먹은 거 뱉어내던가 야설이라도 쓰라고 할 거다. 무슨 수를 쓰던 부산에 온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독자들도 분명 본 기자가 오늘중으로 마땅한 취재거리를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 그 염원을 외면할 수 없다. 출발 전 거실풍경. 뭔가 풍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이다. 본 기자의 경우, 미국드라마 <프렌즈>의 로스가 첫번째 부인과 이혼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떠올랐다. 드라마 못 본 사람은 걍 패스해라. 굳이 이유를 알려고 하지 마라. 걍 본 기자의 상상이다. 떠나려고 하는데 식탁 위에 콘도 조식 부페 쿠폰이 보인다. 장당 13000원짜리다. 네장이다. 그러고보니 어제 프론트에서 쿠폰을 받으며 여기자 A양이 투덜거리던 생각이 난다. 사람이 셋에 이틀이면 여섯장을 줘야지 네장이면 하루는 한명만 먹고 하루는 셋이 먹으란 소리냐고. 음... 그녀들을 깨워 같이 갈까 했으나, 사진 보면 알겠지만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깨우기가 미안했다. 뭐 내일 같이 먹으면 되니까. 오늘부터 그녀들과는 거의 얼굴 볼 일이 없다. 그녀들은 하루 서녀편의 영화를 소화하며, 영화제 취재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본 기자는 본 기자만의 취재거리를 찾아 고독한 여정에 나서야 한다. 참고로 힘들게 프레스카드 발급 받아 본 기자가 이번 취재에서 본 영화는 개막작 단 한편이었다. 뭐 그렇다고. 첫 행선지로 남포동 가기로 결정. 올해로 14회째를 맞는 부산영화제는 그간 규모는 점점 커졌지만 관객들의 만족도까지 비례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 동선이 장난 아니다. 원래 남포동이 영화제의 중심이었는데 지하철로 스무정거장이 넘는 해운대로 그 중심이 옮겨지더니 올해는 센텀시티라는 새로운 거점까지 생겼다. 남포동이야 좁은 거리에 극장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보니 복작대기는 해도 오가며 영화에 대한 정보교류도 하고 사람 사귀는 재미라도 있었다지만, 메가박스, CGV 등의 멀티플렉스에서는 사실 이런 여지가 거의 없다. 거의 짐짝처럼 이 상영관, 저 상영관 옮겨다니기 바쁘다. 뭔가 영화제 특유의 아날로그적 로망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는 확실히 점점 규모가 커지는 영화제의 모습이 달갑지 않을 수도 있겠다. 숙소 근처에서 바라본 광안대교의 모습. 가는 도중 한컷. 광안대교. 남포동 도착. 국제시장 부근. 찍을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아주머니가 나름 포즈를. 먹자골목을 돌아댕기다 이런 거 발견. 그러고보니 부산관광지 소개하는 찌라시에서 상호명을 본듯 하다. 오 나름 유명한 맛집인가. 부산 맛집탐방 취재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점심은 여기서 해결하기로 결정. 맛은... 음... 훌륭했다. 훌륭한 복국맛 콩나물국이었다. 하나로는 맛집탐방 컨셉으로 부족하니, 부산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향토음식들을 찾아본다. 오오 돼지국밥과 밀면. 그런데... 배가 부르다. 실수다. 복국을 다 먹는게 아닌데. 할 수 없이 맛집탐방 컨셉은 포기.(돼지국밥과 밀면은 나중에 시식할 기회가 있었다. 혹시나 취재후기를 쓰게 된다면 서울 태생으로 생전 처음 맛본 돼지국밥과 밀면에 대한 시식 소감을 말씀드리겠다) 먹자골목을 나와 남포동 영화의 거리로. 중간중간 부산영화제를 알리는 홍보문구만 아니라면, 사무실 근처 명동에서 사진 찍었어도 별다를 거 없는 풍경이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한다. 이번에는 근처 자갈치 시장으로 이동. 언제 가도 정겨운 이웃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제철을 맞은 신선한 해산물이 산처럼 쌓여있는 곳. 인심 좋은 할머니의 손끝에 사람 사는 정이 묻어나고, 졸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에선 각박한 세상살이 속, 잊고 지내던 오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까지 쓰고 나니 <6시 내고향 - 부산 자갈치시장 편> 대본이다. 수심 가득한 어부는 세월을 낚는데 여념이 없고, 사연 많은 노부부의 호기심이 그들의 근심마저 덜어내는 사이, 무심한 갈매기만이 외딴 이방인을 쓸쓸이 맞아주는 곳. 이건 <영상포엠 - 그곳에 가면>. 이곳에서도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 가는길 남포동 야외무대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장혁이다. 성유리다. 전진. 앞에 기자 아저씨 ㅆㅂㄻ, 팔좀... 평지, 바닷가 이제 남은 건 산밖에 없다. 최후의 수단으로 근처 용두산 공원에 올라가 보기로 한다. 몸으로 때운 흔적이라도 남기면 그나마 낫지 않을까. 근데, 가는 길이 럭셔리다. 이런거 서너개 타니 바로 용두산 공원. 용머리라... 뭔가 심오하다. 좌 우 를 둘러보지만 어르신들 뿐. 그도 그럴게 평일 대낮에 단체관광객과 모텔비 없는 커플 외에 누가 이런델 온단 말이냐. 그래도 기왕 온거니 부산타워 전망대까지 올라가 보기로. 입장료가 4천원이다. 4천원내면 이런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내킬진 모르겠으나 이런 것도 볼 수 있다. 저 커플을 보니, 불현듯 외로움이 엄습해 온다. 그러고보니 오늘 하루종일 돈 낼때 빼곤 얘기해 본 기억이 없다. 이 고독하고 외로운 취재길, 이 높은 곳에서 나를 위로해 줄 이는 아무도 없다. 씁쓸한 마음을 달랠겸 안내원 여자사람에게 사진 한장 부탁했다. 안내원 여자사람은 예뻤다. 그리고 찍는 김에 같이 한장 찍으면 안되겠냐고 부탁(!)드렸다. 그런데 부산에서는 정중한 사양의 표시가 서울에서와 사뭇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굴에 핏기가 가시면서 웃음인지 공포인지 모를 표정을 지으면서 슬슬 뒷걸음질을 치는게, 한번 더 부탁했으면 비명이라도 지를 기세였다. 지역간 통합과 화합의 문제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을 다시 한번 실감한 순간이었다. 도촬을 할 수는 없으므로 여기서 철수. 안내원 여자사람은 예뻤다. 신씨표류기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몰려오는 먹구름이 본 기자의 어두운 심경을 대변하는 듯 하다. 내 팔자는 이 먼 부산까지 와서도 기어이 난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가를 되뇌야 한단 말인가. 감당할 수 없는 고뇌와 번민으로 하릴없이 해변가를 거닐고 있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잠시 후, 근처 노보텔에서 부산영평상 시상식이 열린다고. 소지섭이 온댄다. 그때는 몰랐다. 절망의 끝, 연예인 사진이나 하나 건질려고 갔던 시상식에서, 드디어 이 기나긴 방황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줄은. 실로 하늘이 본 기자를 도왔다. 취재의 발견 시상식이 열린 부산 노보텔 엠버서더. 부산영평상은 부산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영화평론가들이 자체의 심사기준에 따라 매년 시상하는 상이다. 올해로 10년째다. 평론가들이 주축이 된 시상식이 으례 그러하듯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작품성 위주로 심사하기에 인지도는 떨어지는 대신 공신력은 높은 편이다. 이미 수상자도 결정됐고, 딱히 대단한 취재꺼리가 있는 현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재래식 언론의 경우 간단한 스트레이트와 소지섭 사진 정도가 필요했을까. 본 기자도 별 생각 없이, 단지 그 시간에 노보텔 부근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시상식 취재에 나섰다. 그래서 이런 사진도 찍고 이런 사진도 찍고 이런 사진도 찍었다. 마침내, 시상식. 제일 먼저 각본상부터 발표된다. 이미 발표된대로 <김씨표류기>의 이해준 감독. 이해준 감독은 이미 한달전 춘사대상영화제에서도 각본상을 받은 바 있다. 습관적으로 셔터를 누른다. 흥행은 잘 안됐다던데 그래도 상복은 많은 감독이네 별 생각없이 뷰파인더를 보며 셔터질을 하는 순간... 오!!!! 저거슨...... 취재의 발견. 이때는 생각이고 뭐고 닥치고 셔터질만이 살길이다. 시상식장이 소박해서 수상자 호명에서 수상자가 단상에 오르기까지는 단 몇초! 생각이고 자시고 할 겨를이없다. 이럴땐 소박한 무대가 오히려 원망스럽다. 다행히 수상자가 수상소감 없이 단상을 내려오는 삽질(?)을 해주신 덕에, 가까이서 한컷. 사회자에게 쿠사리 맞고 다시 단상에 올라 수상소감을 발표하는 수상자. 뭔가 사자후를 토해내길 내심 기대했으나, 수상소감은 본 기자의 기대(?)에 못미쳤다. 딴지 티셔츠를 입고나갈 정도면 분명 딴지독자일텐데, 이런 장소에서 깽판 안부리고 저렇게 멀쩡하게 심지어 겸손하게 수상소감을 말할 수 있다니, 가끔은 수뇌부인 본 기자 스스로 독자 늬덜이 미스테리로 보일 때가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검은색 티에 검은색 마이 나중에는 가슴팍에 꽃다발까지 안고 있어서 본 기자와 같은 매의 눈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티셔츠의 정체를 파악하기 힘들었다는 것. 그래도 이게 어디냐. 이후에도 시상식은 진행되고, 소지섭 1미터 앞에서 이런 사진도 찍었지만 이미 소지섭은 본 기자의 마음 속에서 지워진지 오래. 소지섭이 아니라 소시 유리였다 하더라도 이번 취재기사를 통해 본 기자의 사심 없는 마음을 확인해온 독자라면, 그 누구도 본 기자의 불타는 취재의식을 막을 수 없었으리라는 것을 알 것이다. 여차저차 시상식 종료. 다이렉트하게 이해준 감독에게 접근하기로 한다. 원래 영화제 기간 내 프레스의 인터뷰 요청은 꽤 엄격하고 절차도 복잡하다. 그런데 지금 이런거 저런거 따질 때가 아니다. 딴지독자는 곧 수뇌부의 노예라는 굳은 믿음 하나로 접선 성공. 이후에 영화제 관계자들과의 거한 술자리가 예약되어있고, 다음날 정오에는 관객과의 대화가 예정되어 있단다. 결국 다음날 오후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 이해준 감독과의 인터뷰 인터뷰는 이해준 감독의 숙소에서 진행됐다. 이해준 감독빠를 자청하는 여기자 둘 동석.
굿바이 부산 외롭고도 고독했던 취재의 끝. 이제 본 기자는 조금은 가벼워진 어깨로 부산을 떠난다. 못다한 이야기는 혹시나 취재후기를 쓰게 된다면 그때 마저 하도록 하자. 본의 아니게 야설록이 될뻔 했던 본 기사를 구원해준 이해준 감독에게 감사한다. 독자 뉘덜도 분명 감사할 거라고 믿는다. 떠나기 전날. 부산 소주 시원과 회가 함께 했다. 부산이여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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