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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광수 칼럽] 게이는 동정이 아닌 존중을 원한다.
-니들이나 마찬가지로.

 

2009.10.20.화요일
김조광수

 


영화 친구사이 한 장면.
밑에 나오지만 이 사람들 게이 아님.

 

배우들은 이성애자인가요? 

 

이구, 또 그 소리다. 이번 부산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에 초청, 상영되었던 <친구사이?>를 보고 기자들이 맨 먼저 물은 말이다.

 

세상 어떤 영화를 보고도 배우들에게 "이성애자인가요?" 라고 묻지 않는다. 유독 퀴어 영화의 출연 배우들에게만 묻는다. 참, 별나다. 배우들의 아랫도리 질에 왜 그리 관심이 많은지.

 

동기를 따져보면 그리 불순한 건 아니다. 동성애자 연기를 잘 했기 때문에, 정말 게이가 아닌가 싶어서 그래서 너무 궁금했기에 묻는다는 거다. 하지만 생각이 좀 모자란 경우다. 배우들이 이성애자면 거리낌 없이 "네"하고 대답하면 그만이겠지만 배우들이 동성애자면 어떡하려고 그러는가 말이다. "아니오"라고 하기엔 양심에 꺼려질 것이고 "네"하고 대답하자니 현실이 녹록치 않은데 어떤 답을 원하는가?

 

그 바탕에는 "배우들이 설마 동성애자겠어?" 하는 생각이 깔려 있다. 헐리웃에는 커밍아웃한 배우들이 꽤 많지만 한국에는 달랑 홍석천 한명 있으니 출연 배우가 동성애자일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고 미리 단정 짓고 묻는다. "당신, 이성애자 맞지?".

 

어떤 기자는 내게 슬며시 다가와서는 출연 배우들이 "참 게이 같다. 설마 진짜 게이는 아니지? 게이라면 아깝다."고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참, 모지란다. 만천하에 "나 게이요!"하고 공표하고 다니는 내게 어찌 이리도 생각 없이 말을 할까.

 

물론 그 기자도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편견 덩어리, 호모 포비아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생각이 짧을 뿐이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상대방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지 헤아리지 못했을 뿐. 사소한 그러나 사소하지만은 않은 편견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 모든 사람들이 이성애자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세상에는 이성애자가 훨씬 많다. 동성애자임을 숨기고 이성애자인 척 하며 사는 사람까지 포함한다면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성애자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100%, 모두가 이성애자는 아니다. 이성애자들에 비하면 아주 적지만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 젠더 등 성소수자들이 존재하고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편견 가득한 이성애자 중심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동성애자에게 “이성애자죠?”라고 묻는 것만큼 실례는 없다. 그건 양심을 버리라고 강요하거나 편견에 노출되는 걸 감내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의 다수인 이성애자들은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니 조심해 주면 좋겠다. 아니, 대놓고 묻지는 말라!

 


머 이렇게 드러내는 분들도 있다만
극소수에 불과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2006년에 <후회하지 않아>, 2008년에 <소년, 소년을 만나다> 그리고 올해 <친구사이?>까지 세편의 퀴어영화를 만들어오고 있지만 출연 배우는 모두 이성애자다. 동성애자 배우가 없어서도 아니고 이성애자 배우들만 편애해서도 아니다. 동성애자 배우들이 퀴어영화에 출연하는 순간 그 배우는 커밍아웃을 할 것인지 아닌지 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성애자냐?" 고 대놓고 묻는 기자들이 수두룩한 현실 때문이다.

 

그냥 커밍아웃하면 되지 않냐고? 내가 쓴 칼럼들에 주루룩 달린 댓글들을 보라. 대한민국에서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로 사는 거 쉬울 거 같나? 게다가 연예인이?

 

어림없다! 커밍아웃 이후도 문제다.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배우는 맡을 수 있는 배역이 동성애자 역할로 한정되게 된다.(물론, 우리나라 얘기다. 많은 나라의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배우들은 맘껏 연기하고 있다) 홍석천을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커밍아웃한 이후 홍석천에게는 게이역할만 주어지고 있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커밍아웃 이후 홍석천은 한때 방송에서 퇴출당했고
현재도 아주 한정된 역할만을 맡고 있다.
사람이기 전에 게이로 먼저 보는 건 아닌가?

 

-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고 말하면 좋겠다.

 

"게이라면 아깝다"거나 말끝에 혀 차는 소리는 뭔가. 앞서 말했지만 특별한 의도 없이 했던 말이다. 하지만 듣는 게이, 기가 막힌다. 이성애자가 정상이고, 이성애자가 우월하다는 사고가 깔려 있기에 무심코 나오는 말이고 행동이다.

 

그러니 조심해주라. 만약 편견 덩어리 호모 포비아가 되고 싶거나 그런 사람이라면 뭐, 할 말 없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던진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다른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입장 바꿔 생각을 하라.

 

니들이 뭔데 나보고 조심하라 마라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할 말 없으니 패스. 거듭 얘기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소수에 대한 배려는 다수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정상 운운하는 건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장애가 없는 사람을 정상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이라 불러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더 말하면 입 아프다.

 


요즘 이분 한 마디로 세상이 시끄러웠다.
멋진 남자들이 게이라서 지랑 사귈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아쉬웠다는 소린진 모르지만 듣는 게이는 참 거시기하다...

 

- 그렇다고 동정을 바라는 건 아니다.

 

동성애자들을(혹은 나를) 바라보는 시선 중에 가장 곤혹스러운 것을 들자면 동정이다. 보통 두 종류의 동정인데, 하나는 순수한 의미의 동정이다.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

 

오, 이 거 부담스러운 것을 떠나 별로 기분 좋지 않다.

 

순수한 마음은 고마운 것이지만 그것이 동정이라면 받기 싫다. 동성애자를 동정하는 건, 동성애자는 무조건 힘들고 어렵고 그래서 우울할 거라는 또 다른 편견일 수도 있다.

 

솔직히 동성애자로 사는 거? 이성애자로 사는 것보다 힘들고 어렵긴 하다. 그렇다고 우울하진 않다. 그리고 때때로 동성애자여서 행복할 때? 많다. "게이라서 행복해요" 느낄 때도 많은데 "너 정말 힘들고 괴롭지"라는 동정의 눈길, 손길, 거부하고 싶다. 동정을 바라는 게 아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자는 거지. 동정과 배려는 같은 곳을 볼 때도 있지만 하늘과 땅 차이다.

 


이 사람들 우울하고 불행해 보이냐?

 

다른 하나는 힘들고 우울한 동성애자를 통한 대리만족이다. 동성애자들이 힘들고 비참할수록 이성애자인 자신의 삶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 이건 정말 못 봐준다. 자신이 행복을 느끼기 위해 다른 이의 삶을 불행하게 바라보는(심지어 불행하기를 바라는?) 어찌 보면 놀부 심보다.

 

<친구사이?>와 같은 섹션에서 상영된 <산책가>라는 영화가 있다. 시각장애인 주인공이 나오는 예쁘고 따뜻하고 무엇보다 밝은 영화다. 그 영화를 만든 감독들(두 명이 공동 연출했다)에게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고 했다. 장애인 영화인데 너무 밝고 예쁘지 않느냐고. 현실과 동떨어진 거 아니냐고 따지는 사람들이 있더란다.

 

그 감독들도 나와 같은 대답을 했다고 한다. "장애인을 어둡고 힘들게만 보는 건 편견이에요"

 

물론 모든 장애인영화나 퀴어영화(를 포함한 소수자영화)가 밝고 발랄하기만 하다면 그것 또한 현실적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도 역시 현실적이지는 않다. 장애인도 동성애자도 비장애인과 이성애자들처럼 힘들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또 행복하기도 하다. 그리고 장애인이라서, 동성애자라서(장애인이지만, 동성애자지만이 아니다) 행복할 때도 많다.

 

누구에게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 중 하나다. 그러나 모두가 행복해지려면 소수에 대한 다수의 횡포나 차별이 아닌 배려가 필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그건 다수가 취해야 할 기본이다...

 

 

 


밝게, 즐겁게, 행복하게.
또 누구나 그럴 수 있게.

 


철없이 사는 영화쟁이 & 커밍아웃한 게이
김조광수 (ceope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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