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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미스와플의 남녀마찰계수 측정보고서 (9)
-섹스하지 않는 주말 밤을 잘 넘기는 방법 


2009.10.21.수요일
미스와플


만약에 당신이 남자라면 말이다. 주말에 기분 좋게 데이트를 하고 당신의 집이나 그녀의 집으로 가서 역시나 좋은 밤 시간을 보냈다고 치자. 이제 그만 자야할 시간이 되어 잠자리에 누웠는데 여자가 까닭 없이 자꾸 몸을 뒤채거나 이불을 젖혔다 덮었다 하거나 혹은 아무 까닭 없이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고 치자.


왜 우냐고 물어봐도 대답도 않고 몸을 획 돌려서 등을 보이고 있다면, 일단 한번 하기 바란다. 섹스를 하란 말이다. 몸이 피곤하더라도 웬만하면 하기 바란다. 힘들어도 하고 자는 것이 안해서 밤새 시달리고 다음날까지 파장이 이어지는 것 보다는 낫다.


섹스의 질을 따지지 말고 그냥 닥치고 하기 바란다. 주말밤이니까. 그녀는 아직 섹스하지 않는 주말 밤을 맞을 마음의 자세가 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 밤이 언젠가는 도래한다 하더라도 일단 지금은 아니다. 왜냐면 당신에게도 역시 섹스하지 않는 주말밤을 보낼 자세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건 변명이다. 그렇다. 당신은 그 흔한 변명도 하지 않고 주말밤을 날로 먹으려 한 탓에 그녀의 히스테릭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변명이 왜 필요한지는 지금부터 차근차근 짚어보기로 하자. 


사랑하는 사람과 첫 섹스를 트는 무렵, 우리의 몸은 에너지로 넘쳐난다. 콘돔 한 박스를 사 놓으면 언제 다 썼는지도 모를 정도로 횟수는 많고 휴식기는 짧다. 이때는 바야흐로 질보다 양이 승리하는 때이다. 어떤 게 좋은 섹스이고 잘하는 섹스인가에 대한 관심은 아직은 없다. 기회가 오면 일단 들러붙고 보는 것이 최상이다.
들러붙는 공간이 숙박업소라면 주말에나, 애인의 자취방이라면 그보다는 자주 불타는 밤이 허락될 것이다. 이따금 애인은 내가 섹스 머신이야 하며 눈을 흘기기도 할 것이다. 남자는 다리를 주물러 주기도 하고 물을 떠다 바치기도 하며 안하던 애교도 부리고, 그러다 에라이 하고 한 번 더 쓰러지기도 한다.



그렇게 몇 달이 흘러간다. 그리고 어느 날 그 팽팽하던 성적 긴장감의 줄이 팅하고 끊어진다.


어느 평범한 저녁, 남자는 관성의 법칙대로 그녀를 더듬으면서도 머릿속에서 약간 갈등을 때리기 시작한다. 딱히 하고 싶은 마음은 안 들지만 매일 하다가 갑자기 안 하면 어색할 것도 같고, 그래서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슬쩍 파트너의 눈치도 본다. 가슴을 더듬던 손이 허리까지 내려와서 자리를 못 찾고 맴돈다. 여기서 더 내려가면 하는 것이고 여기서 철수하면 안 하는 것이라는 암묵적 동의란 게 있는데 그 마지노선이 대개 배꼽라인 근처이다. 3초간의 망설임 끝에 남자는 슬쩍 힘을 뺀다. 그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잠든 척 하다 진짜 잠들어 버린다.


처음에는 여자도 드디어 안 하고 자는 날도 생기는구나 싶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그동안 너무 무리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살짝 찾아드는 이 어색함과 서운함은 뭐지? 뭘까?


한번 끊어진 긴장감이 다시 팽팽해질 확률은, 한번 길어진 인터발이 다시 짧아질 확률은, 안타깝지만 거의 없다. 처음에는 한 두 번씩 건너뛰기 시작한 섹스는 어느새 일주일을 건너뛰고 일주일은 금세 열흘이 된다.


밤마다 도시에 출몰한 멧돼지처럼 돌진하던 그가, 아무리 피곤하다 해도 그럼 그냥 넣고만 있을께. 하며 자존심 없이 매달리던 그가, 어느 날 조용히 돌아누우며 묻지도 않았는데 피곤하다는 말을 먼저 늘어놓고, 그 말이 기대하던 토요일 밤에도, 레이스 남발한 슬립을 입은 밤에도 묵묵히 이어지는 때가 찾아온다. 그것은 모든 연인과 부부에게 도래하는 운명이다.


사랑에 빠진 직후에 우리 몸에서 뿜어나오는 도파민이나 페닐에틸아민같은 화학물질은 다들 알다시피 만 3년을 넘지 못하고 바닥을 보인다. 아무리 대단한 섹스를 경험하고 공유하고 있다 할 지라도 대개의 연인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섹스에 할애한 그 긴 시간들을 컴퓨터 게임이나 술, 친구들과의 정다운 수다, 후라우프 돌리기 등에 할애하는 것이다. 



그것이 에너지의 법칙이자 우주의 규칙이며 그렇게 인간의 성 에너지가 자연스레 소멸되지 않는다면 지구는 진작 뻥 터져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런 날이 가능하면 늦게 우리 사이에 찾아오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이런 순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 처녀시절과 변함없는 몸매를 유지하고 집에서 언제나 야한 옷을 입고 도발적인 포즈로 설거지를 한다고 해서 이런 날이 도래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섹스가 뜸해지면 다들 하나같이 "네가 안 꾸며서"라는 핀잔을 주기 마련인데, 사실 부부간, 애인간의 섹스 빈도는 상대의 성적 매력보다는 스트레스 정도와 체력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환갑이 넘도록 섹시한 자태를 유지하는 사람은 물론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이런 노력과 상관없이 그것은 그냥 오는 것이다.


새치나 주름살처럼, 적금 만기일처럼 찾아온다. 이제 대학 입학했는데 온 머리가 새치로 뒤덮인 수준이 아니라면 그다지 놀랄 일도 서글퍼 할 일도 아니다. 그런데 여자들은 간혹 이 문제를 다른 문제로 전이시키거나 확대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침실에 켜 놓은 무드 등의 불빛 아래 뜯어진 레이스 실밥을 묵묵히 뜯어내며 속으로 이제 내가 지겨워진 걸까? 혹은 다른 사람이 생겼을까?따위를 자문자답하다 결국은 이렇게 묻고, 물으면서 동시에 스스로 답한다.


"이제 날 사랑하지 않는 거야? 그런 거구나."


죄가 있다면 남자의 욕망을 사랑으로 생각하고 속아온 세월이 죄다. 욕망=사랑이라는 등식에 빠져 있으니 당연히 욕망이 거세된 자리에서는 사랑이 사라진 현장만 목격될 수 밖에.


사랑에 빠지면 여자는 가장 사랑받고 행복했던 순간을 그대로 펌질해 마음속에 저장해 두었다 수시로 꺼내보며 현재와 비교하는데, 그 많고 많은 순간들 중에서도 섹스 하는 순간 나를 바라보던 남자의 눈빛과 말과 행동 따위는 가장 소중한 카테고리에 담아버리기 일쑤다.


남자의 불타는 눈빛에 깜박 속아 넘어가는 와중에도 이 남자의 진짜 속셈을 궁금해 하는 여자이지만, 그러면서 그 눈빛에 눈을 질끈 감고 모든 것을 맡겨 버리는 것이 또 여자다. 누군가 나를 원하고 있다는 행복감과 소속감, 그 원시적인 순수함이 여자를 미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이 식어 성욕이 식은 사람도 있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성욕이 사랑보다 훨씬 빨리 식는 법이다. 그러니 성욕이 식은 때를 사랑이 식은 때라 서둘러 짐작하지는 말도록 하자. 


남자의 성욕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희귀새가 멸종해 가는 것을 바라보는 심정과 비슷하다. 안타깝고 서운하고 그러면서 체념한다. 어차피 모든 관계에서 찾아오는 몰락과 쇠퇴의 운명을 이겨낼 장사란 없다. 어차피 우리는 그렇게 나이 들어가는 것이다. 







#섹스하지 않는 주말밤을 잘 넘기기 위해서는


변명이 필요하다. 그럴싸한 변명. 변명은 여자를 안심시키기 때문이다. 진짜 피곤한 척 하며 "요즘 몸이 너무 안 좋아..."하고 말을 흐리는 것도 좋다. 물론 매주 써 먹어서는 곤란하다. 다음을 기약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다음 주에는 꼭 하자." 물론 이렇게 약속했으면 다음주에는 가급적 지키도록 하자. 사실은 섹스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러나 섹스를 하지 않겠다는 일념 때문에 모든 스킨십을 생략하면 그것이 진짜 화근이 된다. 사실 친밀하고 충분한 스킨십은 어설픈 섹스보다 나을 때가 있으므로. 따뜻한 키스와 사랑한다는 한 마디면, 한주를 땜빵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쉿!(She it!)> 저자 미스 와플(marun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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