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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눈에 콩깍지] 주님의 끝없는 축복. 만년소년 주성치.

 

2009.10.21.수요일
내몸에 흐를 柳

 

얼마 전 추석특집으로 방영됐던 무한도전의 무한도전 TV, 그 안에 <취권>이 편성(?)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김태호 PD와 비슷한 연배 혹은 그 이상 되시는 분들은 깊이 공감할거다. <취권>은 초기 성룡 영화중에서도 과거 명절 때 가장 많이 방영되었던 영화중 하나이기도 하고 또 지금은 성룡 영화를 방영하더라도 비교적 최근작들로 편성되기 때문에 무려 십수년 전 그 기억을 용케 끄집어내어 명절 분위기를 자아낸 김태호 PD의 재치에 그저 무릎을 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한도전 표 코믹 <취권>을 보면서 필자는 성룡이 아닌, 주성치를 떠올렸다. 원래 <취권> 자체가 코미디를 앞세운 영화가 아닌데 코믹 <취권<이라서 단순히 주성치가 떠올랐나보다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주성치가 워낙 쿵푸나 무술을 좋아하고 또 그것을 소재로 영화도 곧잘 만들었으니<취권>하면 쿵푸, 쿵푸 하면 주성치, 뭐 이런 식의 연관검색어마냥 떠오른 건가. 그것만으로도 뭔가 부족한데...
사실 <취권>, 그것도 무한도전이 웃자고 패러디한 걸 보면서 주성치가 떠오른 이유가 뭐가 그리 중요하겠냐마는 필자, 딱히 할 일 없는 관계로 그대로 필 꼽혀서 생각해보았다. 대체 왜 떠올랐을까.

 

 

다행히도, 쓰잘데 없는 궁금증은 목구멍으로 물 넘기듯 간단히 해결되었다. 열심히 머리를 굴려 얻게 된 가닥은, 최근 명절에야 주성치 영화가 심심찮게 방영되지만 홍콩 영화가 한창 안방극장을 차지했던 과거 TV에서는 유독 주성치 영화를 자주 볼 수 없었던 것. 본 필자, 어렸을 때부터 하라는 공부는 않고 TV만 끼고 살았던지라 당시 명절은 물론이고 주말 혹은 휴일 날 TV에서 주성치 영화가 차지한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았던 점을 기억해냈고, 문득 방영 비중이 크지 않았던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모르긴 해도 명절용 외화 레퍼토리 전당에 <다이하드> <터미네이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등과 함께 당당히 올라가 있을 이 <취권>을 보면서(더군다나 무한도전 패러디), 편성표에 자주 간택 받지 못했던 지난날의 주성치가 떠올랐던 거다. 물론 성룡에 비해 데뷔연도도, 활동기간도 짧기 때문에 뒤늦게 우리나라에 소개된 이유가 가장 크다 하겠지만, 그렇다고 치기에도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유덕화나 여명 등에 비해서 그의 영화가 뒤늦게 방영된 감이 있다. 적어도 명절, TV 방영 쪽으로만 본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어쩌면 과거에도 자주 방영되었는데 본 필자만 TV에서 자주 볼 수 없는 매니악한 배우로 기억하고 있는 건지도...)

 

어쨌거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주성치 본인에게 있었다. 오랜 팬으로서 차마 인정하긴 싫다만, 과거 주성치 하면 싼티의 원조 격으로만 치부되던 시절이었기에. 뭐 그렇다고 지금은 그 싼티에서 벗어났나 하면 그것도 아니지만. 주성치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늘 싼티를 지향해왔고 그 싼티의 밑바닥에서 삶의 애환, 선악의 대결, 가슴 뭉클한 감동과 드라마, 웃다보니 어느새 눈물이 흐르는 듯한 페이소스를 끌어냄과 동시에 ......그리하여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와 같은 해피엔딩 영화를 계속 만들어 왔다.

 

주성치는 슬랩스틱이 얼마나 감동적일 수 있는지를 온 몸으로 증명해 보이는 절대 절명의 희극인 이었지만, 보면 볼수록 페이소스가 샘솟는 그 슬랩스틱 때문에 늘 저급문화의 아이콘으로 평가 받기 일쑤였다. 이는 홍콩에서조차 호오가 갈릴 만큼 그의 영화 자체를 다른 영화와 차별화시키는 장치이자, 단순한 서사구조에 뒤늦게 막 갖다 붙인 억지결말이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어찌 보면 홍콩 영화 가운데서도 가장 대중적으로 팔릴 것 같은 그의 영화들이 우리나라에선 이른바 컬트 로 구분되었던 것이다. 당연히 공중파 TV에서 볼 기회는 많지 않을 수밖에. 게다가 <소림축구>이전에 딱히 우리나라에서 초대박이라 할 만한 작품이 나오지 않았던 것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산티의 대표주자인 주성치의 영화가 비디오 쪽으로 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필자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주로 주성치에 대한 언급이나 주성치표 영화에 대한 정보는 동네 비디오가게 주인아저씨와의 대화에서 비롯됐던 것 같다. (그의 초기작들은 대부분 극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케이스부터 비장함을 한껏 뽐내는 홍콩 느와르 영화들 사이에, 진지하면서도 코믹한 표정의 주성치표 영화들은 늘 소리 소문 없이 자리차지를 하고 있었고 예의 그 진지함과 익살스러움이 공존하는 얼굴로 케이스 사진을 도배하고 있었으니, 일단 한 번 보고나면 절대 헤어날 수 없게 만드는 마성의 배우. 그는 그의 영화를 빌려보는 사람들에게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슬랩스틱을 온 몸으로 보여주는 홍콩 코미디 영화의 거성과 같은 존재였다.

 

 

그 당시 대부분 그랬겠지만 필자 역시 홍콩 느와르에 푹 빠져 살 때였는데, 이전에 봤던 <도신>과 이름도 비슷하고 카드를 들고 있는 폼도 비슷해서 당연히 진지한 도박 영화겠거니 하며 주성치 주연의<도성>을 빌려봤다. 그러나 이 영화는 예상과 달리 코미디 영화였다.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그의 유머코드는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마냥 난데없었고, 한때의 친구에게 권총을 겨누는 느와르의 비장함은 고사하고 내러티브 없이 시종일관 슬랩스틱을 일삼는 통에 대체 왜 이런 영화를... 하며 그 영화를 고르는 데 힘을 실어준 비디오가게 아저씨의 안목에 적잖이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영화 초반 30분쯤 흘렀던가... ) 필자는 주성치 식 코미디에 그대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운명의 장난처럼 들이닥쳤던 주님과의 첫 만남!)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허무맹랑하기만 할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사랑, 배신, 성공 등의 이야기들이 모두 들어가 있었다. 또한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지만 드라마와 코미디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맥없이 서성대기만 하는 한국 코미디 영화들과는 기본적인 웃음코드부터 달랐다.

 

이후〈도성〉을 시작으로 비디오 가게에 있는 주성치 영화는 무조건 빌려보며 주님이 내려주시는 즐거움을 가슴깊이 아로새겼고, 주성치 영화는 무조건 저급하고 유치하다고 평하는 주변인들에게는 몸으로 부딪히고 뒹굴어야 진정한 코미디라고 설파하며 믿지 못하는 자들을 하나둘 전도하기에 이르렀다. (세상엔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 하지 않는가. 주성치를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 어쩌면 그들이 믿지 못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특히<도성>에서 <도신 : 정전자>의 주인공인 주윤발을 따라했던 인간 슬로모션 연기와 골목길에서 가래침 뱉기 대결 장면, 코로 라면가락을 뽑는 장면 등은 그를 아시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패러디 배우이자 막강 코미디배우의 반열에 올리는 지대한 역할을 하게 된다.

 

한때 코믹 패러디물이 붐처럼 인 적이 있었다.

 

패러디는 기존의 작품을 재해석하거나 풍자, 조롱을 하기 위한 작업이지만 코믹 패러디는 기존의 명장면을 재밌게 꼬는 데에만 신경을 쓰면 된다. 특히나 이 코믹 패러디물에 사활을 거는 배우들이 있었으니, 바로 레슬리 닐슨과 주성치 되시겠다. 안타깝게도 동서양을 대표하는 이 패러디 배우들에게 주로 따라붙었던 것은 3류 아류작이라 이름 붙이는 것도 아깝다는 식의 몰이해적인 악평이 대부분이었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갈 점은,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왕성한 패러디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늘 그게 그거다 싶은 영화만을 찍는 레슬리 닐슨과는 달리 할리우드 영화, 기존 홍콩 영화, 심지어 예전에 자기가 찍었던 영화 장면을 다시 자기만의 스타일로 재창조 할 줄 아는 영리한 주성치의 패러디 영화는 비록 출발점은 비슷했다 하더라도 그 둘 사이에 확연한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 내놓는 둘의 결과물을 놓고 볼 때면 더욱 그러하다.) 물론 홍콩 박스오피스만 놓고 보면 주성치의 영화는 대부분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당시 홍콩영화계에서도 느와르 장르의 인기가 독보적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주성치는 그야말로 이례적인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출연작의 대부분이 코미디물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흥행 기록을 갈아엎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의 영화를 패러디해서 그만의 스타일로 재창조하는 것은 그가 가진 놀라운 재능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홍콩 코미디 영화에 절대 강자로 통하는 그이지만 재밌게도 첫 데뷔는 정통 느와르 영화로 시작했다.(게다가 상과는 거리가 영 멀 것 같은 주성치지만 그는 첫 데뷔작으로 금마장 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무릇 갓 데뷔한 신인들 대부분이 그럴 테지만 주성치 역시 연기 초반에는 코미디, 액션 구분 없이 엄청난 다작을 해왔고, 이후 도성 도협시리즈 등을 필두로 서서히 그만의 코믹 연기의 색깔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조악한 연출과 엉성한 스토리의 작품도 마다하지 않는 다작의 시기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현재의 주성치 스타일을 완성시키는 데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

 

 




 
 

주성치(Zhou Xingchi)

 

 

1962년 중국 상하이 출생.
홍콩텔레비전 방송국(TVB)이 운영하는 액션스쿨 수학.
존경하는 사람 : 이소룡, 무협작가 김용 (<쿵푸허슬>을 비롯한 여러 영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음)
데뷔작은 <벽력선봉>(1989)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주윤발 주연의 <도신 : 정전자>를 패러디한 <도성>시리즈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도학위룡>(1991), <신정무문>(1991), <녹정기>(1992), <심사관>(1992)을 비롯해 공리와 출연한 <당백호점추향>(1993), 그 후 활동 중반기 최고작으로 손꼽히는 <서유기>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90년대 초 흥행배우로 이름을 떨쳤고, <식신>(1996), <파괴지왕>(1996), <007북경특급>(1996), <산사초>(1997), <희극지왕>(1999), <천왕지왕>(1999) 등으로 홍콩 코미디 영화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을 했다. 아울러 작품수가 늘어나고 해가 거듭될수록 그가 보여주는 코미디세계는 점점 견고해지고 탄탄해졌다는 평을 듣고 있다. 또한 주성치는 <서유기> 시리즈와 <007 북경특급>을 찍을 즈음엔 직접 채영전영공사를 설립, 연기뿐 아니라 각본, 연출, 제작까지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후 연기, 각본, 연출, 제작을 맡아 흥행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된 작품이 바로  <소림축구>(2001)다.

 

 

 

 

주성치 영화가 늘 그렇듯이 이 영화도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웃다 뒤집어지기 딱 좋은 영화로 봐도 무방하지만, 반대로 주성치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놓치지 않고 본다면 더 좋은 영화감상이 될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서구화에 밀려 천대받으며 오래된 것은 낡은 것이라 치부되던 소림 무술, 넓게는 중국 전통 문화에 대한 풍자와, 서구 문명(축구)에 전통 문화(소림 무술)를 조화 시키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가장 전통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은 옛말이고 이제는 전통적인 것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고 변형시켜야만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어찌 보면 거창할 수도 있는 메시지지만 그것을 주성치 영화 특유의 가벼운 희극으로 풀어냈고, 과장과 슬랩스틱으로만 일관됐던 이전작품들과는 달리 이 영화에서는 등장인물들과의 관계, 무엇보다 드라마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게다가 예전보다도 훨씬 매끄러운 이야기와 연출력이 더해져서 정말 괜찮은 작품이 나오고 말았다.

 

 

<소림축구>는 무엇보다 주성치 영화는 여전히 저급하다고 믿고 있던 불신자들마저 팬으로 끌어들이는 데 일조한 영화라 할 수 있는데, 당시 소림축구 한국 배급사인 시네마 서비스의 마케팅 덕에 우리나라 개봉시기도 2002년 월드컵 직전으로 맞추고 대대적인 홍보를 감행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전의 주성치 영화가 대부분 비디오로 직행한 것과는 달리 상당히 많은 수의 극장 관객을 확보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떠나서, 너무나 많은 명장면들이 있었지만 특히나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으라 한다면 본 필자는, 대사형 (황일비)과 함께 대머리 가발을 쓰고 구슬프게 노래를 불렀던 장면을 떠올리겠다. 약간의 율동을 가미하면서 노래 부르는 중간 중간 터지는 웃음을 참기 힘들어했던 두 배우의 모습이 어찌나 인상적이었던지, 하마터면 그들이 불렀던 노래 제목이 뭔지도 모르고 마냥 웃다가 지나칠 뻔 했으니, 도대체 어찌하면 그 노래가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 이라는 걸 알 수 있단 말인가...

 

 

 

 

<소림축구>를 계기로 할리우드에 진출하게 된 주성치는 3년 후 할리우드의 자본을 토대로 다시 한 번 더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게 된다. 이번엔 훨씬 더 과감하게 쿵푸를 전면에 내세운 쿵푸 액션 영화를 들고 나왔는데, 그래서 이름도 <쿵푸 허슬>(2004)이다.

 

 

 

 

이 영화 또한 주연, 각본, 감독, 제작까지 도맡아 진행했는데, 제작사는 할리우드의 콜롬비아 트라이스타로 지난 3년간 무려 300억 원에 달하는 제작비를 쏟아 부어 만든 엄청난 대작이다. 늘 남에게 떠밀기만 하고 심각하다 싶으면 발을 빼버리는 안티히어로적인 주인공 싱이 어렸을 적 야매로 익힌 여래신장이 우연한 기회에 발현되면서 정의로운 무림 최고의 고수로 등극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전작인 <소림축구>가 전통문화에 서구문명을 조화시키고 변형해야만 경쟁력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면 <쿵푸허슬>은 변형시키지 않은 쿵푸 그 자체를 세계적으로 알리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선 할리우드 영화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참신한 볼거리는 물론, 대결 시의 각종 효과음과 매끄러운 이야기 전개는 과거 주성치가 출연했던 작품들보다 훨씬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소림축구> 이전에는 거의 대부분 주성치 개인의 원맨쇼였다면 이 작품에서는 본인의 비중을 과감하게 줄이는 대신 주변인들의 캐릭터를 십분 살리는 연출력을 선보인다. 그것은 오히려 이후 결말 부분에 비겁하기만 했던 주인공이 정의로운 무림고수로 거듭나는 장면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이끌어냈다. (심지어 이 영화에서는 그간 늘 붙어 다녔던 황금 콤비인 오맹달마저 캐스팅에서 빼버렸다. 다양한 조연들의 개성이 살아나게 하기 위한 감독 주성치의 철저히 계산된 연출력 때문에 아쉽게도 오맹달을 볼 수 없었지만, 영화 전체를 놓고 보면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또한 <쿵푸허슬>은 <사조영웅전> <영웅문> 등과 같은 김용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이름과 소재를 적극 활용했고 역시 소설에 등장했던 각종 무공을 CG를 활용해서 완벽하게 재현했다. 특히 화운사신이 펼치는 합마공의 완벽한 묘사는 소설의 그것과 거의 완벽하게 적중하는데 두꺼비처럼 턱을 부풀리는 장면은 과연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오는 명장면 중의 하나다. 그 외에도 사자후, 음공, 여래신장 등 그간 책을 통해 상상할 수 있었던 무공을 영상화 시키는 데 성공했다. (<식신>에서도 합마공이 등장하지만 부족한 CG 기법으로 인해 그저 우스꽝스러운 패러디로 그친 적이 있다.) 거기에 루니툰과 매트릭스를 아무렇지 않게 가지고 오는 대담성과 할리우드 대자본 위에 차려진 밥상이라도 여전히 바탕에 깔려있는 루저의 감성, 그리고 그것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조화시켜 풀어내는 연출력 등은 주성치의 천재적인 연출력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소림축구>때도 CG 장면은 매우 훌륭했지만 할리우드 자본을 이용해 더욱 과감하게 만든 CG기법은 <쿵푸허슬>에 와서 그야말로 만개했다고 표현해야 될 것이다. 무엇보다 CG에 끌려 다니지 않고 만화적인 상상력을 표현하는 데만 사용할 줄 아는 영민함이 가장 큰 장점이다. 누구나 풀어낼 수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만화적인 내용, 즉 상황의 희비극을 강조하기 위해 엽기적인 장면을 연출할 때나 무협 판타지적인 장면을 묘사할 때만 주로 CG를 활용해 표현하고 있다. 어쨌든, 지금의 발달된 CG기술이 있어 주성치의 머릿속에만 있던 세계를 감히 우리가 들여다 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성룡과 더불어 자국 내에서만 통하는 코미디 영화 만들기에 멈추지 않고 국제적인 감각에 맞춘 오락 영화를 들고 나올 줄 아는 영화인. 그러나 단순히 할리우드의 기술만 벤치마킹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전통문화를 소재로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낼 줄 아는 내공을 지니고 있는, 그가 바로 현재 영화계의 진정한 고수라고 할 수 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저질 코미디 배우로 매도당하기도 했으나 묵묵히 자신만의 세계를 개척한 결과 이제는 연기 뿐 아니라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경이로운 스코어를 자랑하고 있다.

 

 

다소 섭섭한 소식이지만, 엄청난 양으로 물량공세를 했던 예전과는 달리 이제 주성치는 2년이나 3년에 한 번씩 영화를 들고 나온다. 작년에 개봉됐던 외계생명체를 소재로 한 감동코믹물 역시 <쿵푸허슬> 이후 3년 만에 나온 영화였다. (최근 행보라면 일본 만화 드래곤 볼 Z를 영화로 제작한 정도다.)

 

 

꿈이라는 주제에 소년의 화법으로 다가가는 만년소년 주성치. 비록 예전과 같은 컬트적인 감성은 많이 사라졌지만, 영화 자체로 볼 때 더욱 완성도 높아진 그를 보면서 다시금 격세지감을 느낀다. (역시 그때 그 비디오 가게 주인아저씨의 안목은, 괜찮았던 거다.) 그러니 님아, 언능 새 영화 쫌 들고 나오라.

 

 

 

 

 

내 몸에 흐를 柳 (lefteye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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