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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육아는 최고의 리더십 훈련이다.

 

2009.10.26.월요일
김지룡

 

세상에는 좋은 아빠들이 많다. 돈 많이 벌어다주는 아빠가 아니라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아빠 말이다. 좋은 아빠들은 아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정겹게 대화를 나누고, 아이의 고민을 풀어주고, 아빠의 지혜를 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세상이 아빠를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경쟁은 치열함을 지나 혹독함을 넘어 살벌한 상황에 접어들었다.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그러다가는 경쟁에서 뒤쳐지고 생계를 책임지는 일이 위험해 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경쟁에서 살아남고 아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늦게까지 일을 하고 술자리에도 참석한다.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늘 심사가 불편하다. 모처럼 아이와 함께 있을 때 자신도 모르게 짜증을 낸다. 차라리 아이를 피하는 것이 아이를 위한 일인 것 같다. 살벌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신을 계발할 시간이 필요하고, 다시 전장에 나갈 힘을 얻으려면 휴식도 취해야 한다. 세상에는 아빠를 가정으로부터 겉돌게 만드는 이유들 천지다.

 

 

물론 가족을 책임지려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더욱 더 아이와 접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0년 넘게 주말마다 10시간 넘게 아이들을 대하고 돌보아왔다. 합치면 1만 시간이 넘는다. 그 긴 시간 동안 아이를 마주해오면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리더로서의 품성과 기술을 익히는 리더십 훈련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대에는 진로를 선택하고 그에 필요한 공부를 한다. 30대에는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 팀장이 되는 시기인 30대 후반과 40대 초반에는 리더십을 갖추어야 한다. 이 시기의 경쟁력은 상당 부분 리더십에서 나온다. 아이를 대하는 일은 아빠에게 존경받는 리더가 갖추어야할 덕목과 기술을 길러준다. 게다가 즐겁게 그리고 공짜로 할 수 있다.

 

아이는 자라면서 수많은 어른들을 만난다. 부모, 교사, 친척, 동네 사람들. 아이는 기본적으로 어른의 말을 듣지 않는 존재로 태어난다.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는 아이에게 어른들은 어떤 행동을 할까.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며 자랐다.

 

어른들은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지시하고(하라면 해. 이유는 몰라도 돼), 경고하고 협박하고(안 하면 혼날 줄 알아), 훈계하고 설교하고(사람은 모름지기 이래야 해), 비난하고 비판하고(한심한 놈. 못 쓸 놈) 무시하고(어린것이 뭐 그리 말이 많아), 피의자처럼 심문하고(왜 그랬어. 빨리 이유를 말해), 욕설을 하고 비웃고(멍청한 놈. 고작 한다는 짓이 그거냐?), 내 말을 회피하기 일쑤였다(잔말 말고 내 말을 들어).

 

이런 말을 써 놓으면 내가 무척 이상한 인간으로 보이겠지만 어린 시절 나는 꽤나 모범생이었다. 그런데도 어른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으며 살았다. 운이 없어서 나쁜 어른들을 많이 만났던 것일까. 아니다. 이런 것이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보편적인 방식이다. 욕하면서 배운다고 성인이 되면 만만한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대하기 일쑤다. 아이에게도 부하직원에게도.

 

아이나 부학직원에게 뭐라고 하는 것은 뭔가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문제해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 문제를 더 크게 만들기 시작한다. 이런 말들은 듣는 사람의 영혼을 갉아 먹고 몸속에 분노라는 폭탄을 쌓아놓는 말이다.

 

 

첫 아이를 낳으면서 아이에게 이런 식의 말투를 절대로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그 일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어리더라도 자신만의 생각과 개성이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했을 때 아이가 네하고 대답하는 것은 두 살까지였다. 세 살이 되면서 네가 왜?로 바뀌고 싫어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내 말을 듣지 않는 아이를 대하는 일이다. 그 어떤 부하직원보다 힘든 상대를 마주하는 일이다. 아이는 그 어떤 거지발싸개 같은 직원보다도 아빠를 더 화나게 만들고, 머리를 아프게 만들 수 있다. 아무리 거지같은 직원도 잘리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며 자기 방어를 한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그런 동기가 없다.

 

이런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지 않고 영혼을 갉아먹는 말을 하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설득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빠는 그 어떤 사람하고도 잘 지낼 수 있고, 그 어떤 부하직원에게도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과 회사가 별개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를 대하는 것과 부하직원을 리드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같은 일이다. 아이를 능숙하게 대하는 아빠는 회사생활도 사회생활도 잘 할 수 있다.

 

나는 직장 경험이 4년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긋지긋할 정도로 이상한 상사, 황당한 상사, 나쁜 상사를 만났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나쁜 상사는 나쁜 아빠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을 대하는 습관이나 태도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나쁜 상사가 내게 한 행동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 칭찬할 때 꼭 토를 단다.
나는 회사 일을 잘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가끔 잘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나쁜 상사는 이런 말을 했다. "잘했어. 근데 말이야, 진작부터 잘할 것이지." 칭찬은 조건 없이 해야 한다. 칭찬에 토를 달면 칭찬을 받아 모처럼 좋아진 기분을 망친다.

 

아이의 성적을 칭찬하며 토를 다는 아빠는 나쁜 아빠다. "영어 점수가 많이 좋아졌네. 그런데 수학 점수는 왜 이 모양이냐?" 칭찬을 할 때는 잘한 부분만 집중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다음에도 잘할 거지”도 불필요한 말이다. 아이에게 중압감만 준다.

 

* 직접 야단치지 않고 들으라는 듯이 말한다.
신입사원 시절 여직원이 경비 전표를 올렸다. 아무 생각 없이 결재 도장을 찍어 대리에게 올렸다. 그런데 대리는 일일이 계산기를 두드리며 내역과 금액을 확인하고 과장에게 올리는 것이었다. 아차! 내가 실수한 것이다. 과장에게 야단맞을 각오를 했다. 그런데 과장은 대리를 부르더니 내게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말했다. "재는 왜 확인 안 하는 거야. 명문대 나온 놈은 이런 허드렛일 못한다는 거야 뭐야?"

 

과장과 나는 불과 2미터 거리였다. 그런 거리에서 큰소리로 말하면 내가 못들을 리가 없다. 실수를 반성하는 마음이 머릿속에서 사라지며 대신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마터면 과장에게 달려가 이렇게 소리칠 뻔했다.
야, 인간아, 야단을 치려면 직접 불러놓고 쳐라.

 

아이의 성적표를 보고 화가 났다. 나쁜 아빠는 아이가 옆에 있는데도 엄마에게 고함을 친다. "도대체 재는 공부를 하는 거야 마는 거야. 공부하기 싫으면 학원 때려치우라고 해. 학원비 벌어오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야단이나 꾸중은 얼굴을 맞대고 해야 한다. 그리고 단 둘이 있는 자리가 바람직하다. 다른 직원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상사에게 야단을 맞을 때 혹시 상사를 죽여 버리고 싶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자.

 

* 사람의 말을 대놓고 무시한다.
신입사원 시절 하도 과장이 나를 싫어하기에 친해지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한 적이 있다. 그 과장은 주식 투자에 열심이었다. 과장이 신문에서 증권시세를 읽고 있기에 다가가서 물었다. "과장님, 어제 주가 많이 올랐던데요. 기쁘시겠어요" 과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다시 신문으로 눈길을 돌렸다. 민망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속으로 이렇게 소리쳤다.
야, 인간아. 차라리 야단을 쳐라. 회사 일이나 신경 쓰라고.

 

나쁜 아빠도 이런 행동을 한다. 아이가 "아빠, 주말에 같이 축구하면 안 돼?"라고 물을 때 잠시 아이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외면해 버린다. 좋은 상사와 좋은 아빠는 부하나 아이의 말에 일단은 반응을 하는 사람이다. 어떤 반응이든 무시보다 낫다.

 

* 다그치듯이 많이 묻는다.
한 여름 더운 날 땀을 뻘뻘 흘리면 거래처에 다녀왔는데 나쁜 상사는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됐어? 잘 됐어? 상대가 뭐라고 해?" 혹은 이런 말도 한다. "어디 갔다 왔어? 뭐하다 온 거야?" 좋은 상사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더운데 수고 많았네. 시원하게 찬물 한 잔 마시며 숨 좀 돌리게."

 

영어 등급 시험이나 수학 경시대회는 대개 일요일에 시험을 치른다. 시험장에 오는 아빠들도 많다. 시험을 치르고 나온 아이에게 나쁜 아빠는 이런 말을 한다. "잘 봤어? 몇 개 못 풀었어? 한 문제 틀리는 데 한 대씩 맞는 거 알고 있지?" 이건 아빠가 아니라 악귀다. 좋은 아빠는 어깨를 토닥거려주며 이렇게 말한다. "고생 많았지. 수고했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좋은 아빠가 된다는 것이 매 순간 올바른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 것은 신이나 가능한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주의를 하고 있지만, 지금도 무심결에 아이에게 부적절한 말을 사용할 때가 있다.

 

 

 

 

얼마 전 집에 놀러온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딸아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나도 모르게 "어른들 말하고 있는데 불쑥 끼어들면 쓰니?"라고 했다. 말을 뱉자마자 후회했다. 양해를 구하지 않고 끼어든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어른들이라는 말은 부적절한 말이었다. 아직도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들었던 말을 나도 모르게 사용할 때가 있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은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아이를 대할 때 좋은 직장 상사처럼 대하겠다는 마음가짐이다. 자신의 상사가 내게 이렇게 대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아이에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각각의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기 쉽고, 잘못을 했을 때 쉽게 알아차리고 반성할 수 있다. 이런 태도를 지니면 아이와의 관계가 극적으로 좋아질 것이다. 그리고 아빠는 저절로 좋은 상사의 자질을 갖추어가게 될 것이다. 훌륭한 리더로 성장한다는 말이다.

 

 

 

 

 

애 키우는 일에 미쳐서
문화평론에서 자녀교육으로 직업을 바꾼
김지룡(http://blog.naver.com/edu_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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