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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8.화요일


내몸에 흐를류



김영희 PD가 돌아왔다.


 


과거의 명성이 무색하게도 끝없는 침체기를 겪고 있던 일밤 새단장에 꽤 적절한 듯 싶은 이번 김영희 PD의 투입은 잠깐 웃고 마는 단발성 웃음보다는 감동의 잔상이 길게 남는 휴먼 버라이어티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방송가에서 누군가를 표현하는 수식어 중에 거의 최고격으로 쓰이는 말이 '국민 머시기'다. 쌀집 아저씨야말로 이 '국민PD'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데, 김영희 PD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코너가 바로 '칭찬합시다' '양심냉장고'와 '이경규가 간다'인만큼 그간의 그의 활동과 휴머니즘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 후로도 '느낌표' 시리즈 등으로 재미, 감동, 공익을 두루 갖춘 이른바 '공익 버라이어티'라는 새로운 장르를 정착시킨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12월 6일 공개될 새로운 일밤은, 나눔을 주제로 이미 따끈한 해외 로케까지 마치고 온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단 하나의 비밀-단비'(연출 성치경·이지선)와 이 시대 아버지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우리 아버지 - 아버지 기 살리기 프로젝트'(연출 제영재), 그리고 생태계의 파괴를 막기 위해 멧돼지 개체 수 조절에 나선다는 '대한민국 생태 구조단, 헌터스!' (이하 헌터스. 연출 조희진·김영진))까지, 이렇게 총 세 종류의 포맷으로 방영될 예정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일밤에 구원투수로 다시 돌아온다는 홍보자료를 훑는 동안에 실은 반가운 마음만 들었던 건 아니다. 일선에서 벗어난 동안에 그가 예능 감을 많이 잃었을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지나친 연예인 신변잡기에 매달린 사생활 폭로 쇼, 공중파는 물론이고 케이블까지도 잠식해버린 각종 리얼리티 포맷들, 그리고 대한민국의 드라마 뿐 아니라 예능마저 덮어 버린 막장의 홍수 속에서 과연 공익 코너들만으로 승부수를 띄울 수 있을지 진심으로 걱정되었다. 최근 들어 뭘 해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프로그램에 그를 투입 시킨다는 것은 곧 그 프로그램을 살리기 위함일 터. 프로그램이 살아났음을 가장 바로 알 수 있는 수치는 바로 시청률이다. 그렇다면 김영희PD는 그의 오랜 장기인 공익적 포맷에 재미와 시청률까지 모두 다 탈환해야만 한다.


 


일단 예고편만 보면 현재 방송중인 타 프로그램 뿐 아니라 기존의 본인 코너들과도 차별화는 된 듯 보인다. 이번에 신설된 새 코너들, 대충 봐도 취지도 좋고 주제도 뚜렷한 것 같았다. 과연 작금의 예능에서 그의 웃음과 감동코드가 유효할까 싶기도 하지만, 전성기 시절의 일밤을 보면서 자란 세대라면 조금은 더디고 느리지만 사람 냄새나는, 그렇기에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는 쌀집 아저씨 표 예능에 대한 기대를 할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랬는데, 이번 코너들 가운데 멧돼지 개체 수 조절이 핵심이라는 '헌터스'가 계속해서 맘에 콕 걸린다. 방송전이라 확언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만, 아무리 공익 예능이라도 멧돼지 포획과정을 예능에서 다루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정부에서 마련한 멧돼지 사냥 대책의 정당성을 의심하고 문제점을 오히려 분석하는 프로가 나와야지 어째서 예능에서까지 그 정책과 똑같은 짓을 한단 말인가. 농가의 피해는 굳이 예능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다른 프로그램으로도 해결을 모색할 수도 있는데 왜 굳이 예능에서 무리수를 두려고  하는가.


 


고정멤버가 추려지고 앞 다투어 코너 홍보를 위한 기사들이 쏟아지는 걸 보면서도 내내 꺼림텁텁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영희 PD가 기획한 프로그램이라면 멧돼지 포획보다는 멧돼지로 인해 피해를 입은 농가를 찾아 피해실상을 확인하고 농민들을 위로하는 데에 초점을 맞출 듯한데, 의외로 뚜껑을 열기도 전부터 쏟아져 나오는 기사 내용들은 필자의 예상과 달라도 한참 달랐다.


 



 


그간 쏟아진 기사내용을 참고해서 김영희 PD의 인터뷰 내용을 살펴보자.


 


지난달 23일, 새로운 일밤의 코너들을 소개하는 기자회견에서 '경남 의령에서 맷돼지를 잡다가 왔다'는 말로 포문을 연 김영희 PD는 '인간 생태계를 위협하는 맷돼지의 위협으로부터 우리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7명의 MC 군단과 포수 자원봉사단들이 '생태구조대'를 구성해 맷돼지를 잡기 위해 나선다'는 '헌터스'의 기본 포맷을 소개했다. 김영희PD는 '지금 이 시간에도 MC들이 정부로부터 허가받은 전문 엽사들과 함께 경상도 의령에서 열심히 멧돼지를 포획하고 있다'며 뒤이어 "멧돼지 개체수를 줄이고 무분별하게 파괴되고 있는 생태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계획이다. 잡은 멧돼지는 양로원 및 어려운 이웃들에게 보내 모두 먹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내가 잘못 본건가. 잡은 멧돼지를 모두, 먹는다고? 알다시피 야생동물 시식은 명백한 불법이다. 야생동식물보호법 8조에 따르면 멧돼지는 포획은 가능하지만 먹는 것은 물론 파는 것도 금지돼 있다. 최근 환경부의 '도심 출현 야생 멧돼지 관리대책'으로 멧돼지 포획이 가능하긴 하나, 잡은 멧돼지는 모두 매몰하거나 소각 처리해야 된다.


 


어쨌거나 초기 기획 의도대로라면 방송 중에 잡은 멧돼지를 어려운 이웃들과 나눠 먹는 모습까지 전파를 탈 뻔 했다는 얘기다. 그러다 살생을 해서 잡아먹는 부분에 문제가 생길 것 같자 다시 '죽이지 않는다. 마취총으로 포획해서 119에 넘길 것이다'로 말을 바꾸었다. 그 후 '포획이나 사냥은 아니다' 라고 다시 말을 바꾸더니, 애초에 김영희 PD라면, 하고 필자가 예상했던 '멧돼지로 인한 농가피해실상을 알리는데 중점을 뒀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면 23일, 이 코너에 대해 소개했던 김영희 PD의 말들은 대부분 거짓이란 말인가. 그땐 분명 기자 회견 초입에 ‘정부로부터 허가받은 전문엽사들과 함께 경상도 의령에서 멧돼지를 포획하다가 막 오는 길’이라는 말을 했다. 또한 잡은 멧돼지는 양로원 및 어려운 이웃들에게 보내 모두 먹겠다고 공언했다. 처음부터 먹을 것도 아니면서 먹겠다고 말한 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그날이 단순한 기획 단계도 아니고 막 촬영하다가 왔다는데 어떻게 그리 말이 휙휙 바뀌나. 게다가 포획이나 사냥도 아니라면서 전문엽사는 왜 동원해서 ‘사냥전문프로그램’과 같은 이미지로 홍보를 한 걸까.


 


뭐 보통 사람인 필자가 김영희PD의 깊은 뜻을 어찌 알겠냐마는 아무리 공익 버라이어티를 표방한다지만 숲속에 숨어있는, 혹은 먹을 것을 찾아 마을로 내려와 잡히기 싫어서 길길이 날뛰는 멧돼지 포획 과정이 그리 큰 웃음을 줄 것 같지 않다. 물론 예능이라고 반드시 웃음이 주가 될 필요는 없다. 더군다나 김영희PD표 예능이라면 시청자들도 무작정 웃음만을 기대하진 않을 거다. 그렇다면 감동은 있을까? 멧돼지는 이미 사냥하는 사람에게 있어 사냥해도 아무 꺼리낌이나 제약도 없는, 잡아야 할 표적으로 인식이 되어 있는데 거기에서 무슨 감동? 멧돼지를 잡아 농가에 피해만 줄어들면 거기에서 감동코드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요즘 새롭게 등장한 넛지 다큐’(Nudge Docu) 형태일지도. (‘넛지 야생 리얼 버라이어티 다큐’쯤으로...... 길다.)


 


예컨대 농가나 민가에 내려와 한 해 농사를 모두 망쳐 놓은 몹쓸 멧돼지를 힘든 과정 끝에 잡았다 치자. 아마 인근 농가 주민들은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분명 카메라 앞에서 고마움을 표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 뿐. 아이돌스타를 포함한 예능인들의 출연구성이 난데없는 것은 그들이 생업을 포기한 채 매일 멧돼지를 잡으러 다닐 것도 아닌 말 그대로 깜짝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사다망한 연예인들도 없는 시간 쪼개어 농가 피해를 막기 위해 애쓰고 있으니 시청자들도 다음 주말쯤엔 한번 시간 내어 멧돼지 잡기에 동참하라는 건지, 멧돼지는 이렇듯 해만 끼치는 동물이니 얼마든지 잡아도 된다는 당위성을 설명하고 싶은 건지, 대체 알 수가 없다. 개체 수 조절은 정부나 지자체가 여러 환경단체와 더불어 여러 갈래로 모색해야 될 일이지 주말예능에서 다룰 문제는 아니다. 더군다나 멧돼지 대 인간의 대결구도로 매주 전파를 탄다는 것은 도무지 개체 수 조절 때문이라는 이유가 실은 핑계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자꾸만 갖게 만든다.


 


이 문제가 가장 크게 부각이 된 계기는 지난달 30일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ARA, 대표 : 임순례 감독)와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을 비롯한 환경·생명·불교·여성단체 등 18개 시민사회단체들의 기자회견 이후라고 할 수 있다.


 


해당 단체들은 이 코너의 제작 중단, 폐기를 강하게 촉구하며 ‘생태적이고 인도적인 개체 수 조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배제된 상황에서 멧돼지 사냥을 하나의 오락거리로 전락시킬 위험이 크다’고 강조했다. 또 ‘멧돼지 서식지 등 생태계 전체를 고려한 과학적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채로 이뤄졌으며 주말오락프로그램에서 동물을 직접 사냥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은 아이들에게 동물을 포함한 소중한 생명의 죽음에 대한 사회적 무감각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며 이는 ‘국민의 무의식의 세계에 생명에 대한 살해의 잠재의식을 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과학적 검증도 하지 않은 채 무대뽀로 진행해버리려는 태도와 이 코너의 그릇된 취지로 인해 생명 경시 풍조가 확산될 수 있다는 얘기다. 거기에 덧붙여 '쌀집 아저씨가 그간에 보여준 인간적인 예능을 기억하는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줄 것'이라고 비판 했다.


 


여기에 김영희PD 역시 그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동물보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좋다고 본다. 하지만 방송내용 중에는 우려할만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멧돼지 사냥은 없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큰 반발에 막히게 되자 돌연 말 바꾸기를 한 것뿐이다.(제작 발표와 동시에 나왔던 보도 자료들이 증명하고 있잖은가.) 물론 피해 농촌의 실상을 알리는 것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다만 무엇이 주가 되는지는 정말 중요하다.


 


이 코너의 가장 중요한 소재는 멧돼지다. 멧돼지가 배가 고파 농가로 내려오지 않았다면 농가의 피해도, 환경부의 독단적인 포획 발표도 없었을 것이다. 아니 애초부터 멧돼지가 스스로 먹이를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생태계 파괴 즉 콘도나 골프장 개발 등으로 인한 산림파괴, 그리고 서식지가 줄어듦으로 인한 식량 부족이 생기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처럼 멧돼지가 자주 농가로 내려왔을까. 그러니까 이것은 앞서 말한 대로 멧돼지만의 문제는 아니다. 개발투기세력에 밀려나는 것은 야생동물 뿐 아니라 농민, 더 나아가서 전체 국민으로 이어지는 문제이기에.


 


더군다나 어려운 이웃들과 나눠 먹겠다고 했다가 죽이지 않고 마취총으로 쏴서 119에 데려다 준다고 번복한 것도 그렇다. 야생동물을 소재로 한 코너를 9월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했으면서 어떻게 야생동물 시식을 하겠다는 말을 방영을 얼마 앞둔 상태에서 그렇듯 쉽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수시로 이어지는 말 바꾸기는 대운하를 파겠다고 했다가 반대에 몰리자 4대강 사업으로 말을 바꾼 MB를 떠올리게 한다.)


 


멧돼지를 죽이지 말자는 게 아니다. 잡은 멧돼지를 먹건 마취총으로 쏘건, 문제는 임순례 감독 말대로 아직 생태학적으로도 타당성이 증명되지 않은 환경부의 일방적인 정책에 편승해서 그 멧돼지의 포획과정을 굳이 예능으로 내보낸다는 데 있다. 일부에서는 현재의 개체수라는 것이 굳이 인위적으로 포획하지 않아도 자생적으로 버틸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최근 들어 부쩍 먹이 부족으로 민가에 내려오는 멧돼지로 인한 피해 사례가 빈번하게 보도되고 있는 상황이고, 작년 한 해만 해도 멧돼지로 인한 피해가 56억원에 달했으며 농작물 훼손은 물론 도심까지 출몰하는 등 심각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찌 보면 최선책으로 선택된 방법일 거다. 또한 환경부의 허가로 이미 멧돼지는 정식 포획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전국 19개 시·군에 수렵장이 개설돼 멧돼지 사냥이 합법으로 진행된다 해도 그러한 멧돼지 사냥 과정이 예능의 소재가 되는 것에 타당성을 부여할 순 없다. 그리고 그 속에 자연스레 녹아있는 사냥만능주의를 많은 시청자들이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것엔 분명 문제가 있다. 또한 예능 아니라 예능 할애비라도 멧돼지의 생태를 추적하고 생활 터전이 파괴된 현 농촌의 실상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는 많은 부분 산으로 갈 것이고, 얼마나 스펙타클하게 쫓고 쫓길 것인지,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포획할 것인지에 기대를 둘 시청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개체수가 많아 일정 수 이상을 사냥해야 돼서 어쩔 수 없이 죽이는 것과 죽이는 것이 오락화 되어 쇼로 만들어지는 건 기본적인 출발점부터 다른 얘기라고 봐야 한다.


 



그래 아마도 김영희 PD라면 멧돼지 VS 사냥꾼의 이분법으로 단순히 멧돼지를 적으로 규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일선에서 생계에 타격을 받고 있는 농가 주민들에게 있어 멧돼지는 적이면 적이지 멧돼지의 개체 수 조절 따위는 전혀 숙고할 문제가 아니다. 한 해 농사를 다 망치는 멧돼지가 적이 아니면 뭐가 적이겠는가. 그렇다 해도 이 코너가 생태계 보호의 숭고한 의미를 일깨우기 위함이 아닌, 개체 수 조절이 목적이라면 해당 지역 농가 근처에 멧돼지 몇 마리를 잡는 것으로 그들이 원하는 개체 수 조절은 이 코너가 종영할 때까지 절반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개체 수 조절은 과학적 검증은 물론 생태계 전반에 걸친 보다 원론적인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그것은 인간 아래 자연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존한다는 것을 전제에 뒀을 때에 가능한 논의다.


 


그간의 보도 자료를 보면서 든 생각은 아마도 김영희 PD는 아이돌을 비롯한 예능인들을 동원해 멧돼지 잡는 모습을 스펙타클하게 보여주고 그간 멧돼지로 인해 피해를 본 농가의 현주소와 잡고 난 후의 현재를 비교하며 잡기까지의 과정과 어렵사리 포획했을 때의 기쁨, 해당 지역 농가의 피해를 줄였다는 만족감 등을 차례로 구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웃음과 감동과 공익, 그리고 거기에 최근 대유행중인 야생 버라이어티까지 모조리 말이다.


 


다소 엉뚱한 말일수도 있겠으나 필자는 '헌터스', 그 이름부터가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임감독 말대로 예능오락 프로그램이 멧돼지 개체 수 조절을 함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상당히 위험하다. 그러니 큰 제목 ‘대한민국 생태 구조단’도 거만하기 그지없다. 거기에 지속적으로 불릴 이름인 메인 제목 ‘헌터스’. 만약 쌀집 아저씨 말대로 환경단체가 우려하는 일이 전혀 없을 거라 해도 이미 시청자들에게 각인된 처음의 기획의도와 포맷이 그대로 담긴, 그래서 충분히 반감을 살 제목인 이 ‘헌터스’를 버리지 않고 계속 가지고 간다면 설령 멧돼지를 말로 잘 구슬려서 동물원에 이주를 시킨들, 사냥꾼으로서의 이미지가 버려질 것인가 말이다


 



일부에서는 아직 방영 전부터 지나치게 성급한 비판으로 제작 중단과 폐기를 요구한 동물보호단체의 움직임이 경솔했다고도 한다. 김영희 PD의 전적을 알고 그가 가진 소신이나 제작의도에 담긴 철학을 간파했었다면 방송이 되기 전부터 제작 중단을 요구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물론 좀 더 지켜봤었더라면 어쩌면 오해(?)를 풀 수도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환경단체는 물론이고 잠재적 시청자들이 방송 전 단계에서 이정표로 삼는 것은 제작 의도가 포함된 인터뷰 기사들을 통해서이다. 그동안 수차례 개체수를 반드시 조절하겠다, 직접 사냥에 뛰어들었다, 잡아서 모두와 나눠먹겠다는 말로 방송홍보를 했었다면 그 홍보로 인한 각종 단체들의 사회적 반감 또한 예상했었어야 된다는 얘기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책임은 모두 그 프로그램을 총괄 지휘하고 공개 인터뷰에서 기획의도를 말했던 김영희PD에게 있다.


 


카라(KARA)의 임순례 감독은 ‘기본적으로 예능오락 프로그램은 멧돼지 개체 수 조절을 다룰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없다. 김영희PD 그의 휴머니즘은 오직 인간만을 향해 있다’고 비판했다. 뭐 아까도 말했듯이 아직 뚜껑을 열기전이다보니 확언은 어렵다. 그러나 그간의 보도 자료를 통해 홍보했던 멧돼지 대 인간의 모습은 또 하나의 새로운 휴먼 버라이어티를 향한 도약이라기보다는 한 편에 모든 걸 다 아우르려고 하는 지나친 욕심에서 비롯된 오기라고 본다.


 


사냥이 취미가 아닌 이상 동물들이 포획되는 모습을 침착하게 쳐다볼 사람은 없다. 당연히 다른 부가적인 요소들로 재미를 만들 것이다. 허나 천적수의 감소로 현 생태계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고 어쩔 수 없는 살생을 허가받은 멧돼지라면 애초에 그걸 예능으로 풀지는 말았어야 했다. 그건 멧돼지와 인간 모두에게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


 


아무쪼록 이왕 다루는 거, 멧돼지 뿐 아니라 야생동물의 생태를 파악하고 무분별한 환경 파괴 속에 처한 농촌의 실상과 현재 당면한 문제점들을 보여주는데 그 초점을 맞추길 바란다. 예능이라고, 반드시 웃겨야 될 필요는 없으니까.


 



 


 


내몸에흐를류(lefteye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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