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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9. 수요일


필독


 


 


으음... 요즘 공사가 다망하여 축구이야기 할 틈이 없다. 연재중이던 축구문화사도 잠시 멈춰있는 상태지만 월드컵 조추첨에 결과에 대해서는 한마디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월드컵 지역예선은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웠다. 언제나 동아시아를 괴롭혀오던 중동의 모래바람이 제대로 멎었기 때문이다. 중동의 강호들, 즉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유럽에 유난히 약하고 다른 아시아팀에 유난히 강해 '얄미운' 구석이 꽤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월드컵에서 독일에 무려 0:8로 학살당한 전력이 있다. 그런데 94년도에 한국은 독일을 2:3까지 따라붙었다.


 


(개인적으로 이 시합에서 빼놓고 싶지 않은 명장면이 있다. 원조 리베로이자 독일축구의 황제인 베켄바우어. 그 베켄바우어의 후계자이자 세계축구의 2대 리베로라 할 수 있는 마테우스가 아시아의 리베로 홍명보를 만났다. 어떻게 됐을까? 마테우스는 경악했다. 그는 시합 후 "이런 선수가 아시아에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는, 홍명보 칭찬과 아시아 무시를 동시에 날리는 발언을 했다. 이 시합에서 홍명보는 골을 기록했는데, 이 골은 리베로 공격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리베로가 공을 끌고 아군팀과 상대팀이 만나는 전선을 적진으로 슬슬 이동시키다가' 터뜨린 골이었다. 홍명보는 마테우스를 앞에 두고 이 골을 넣었다!)


 


왜 이란과 사우디는 동아시아팀에 그토록 강한 걸까. 상대의 약점을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는 바로 스스로의 약점이기도 하다. 중동 팀은 유럽 팀을 만날 때마다 체력과 체력에 밀려서 물리적으로 져 버린다. 그런데 동아시아 팀보다는 자신들이 체력이 좋다. 즉 어떻게 하면 좋은 피지컬이 열세인 피지컬을 괴롭힐 수 있는 지를 아주 잘 알고 있는 중동 팀은, 이를 얄미울 만큼 알차게 활용하는 것이다.


 


물론 상대의 약점을 이해하고 이를 전술에 활용하는 것을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축구는 무척이나 심리적인 영역에 있는 스포츠이기에, 유럽에서는 밥 취급 당하면서 '아시아에서는 우리가 최고다'라고 큰소리치는 모습은 필자 개인적으로는 무척이나 고까웠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북한이나, 이 문제를 해걸하지 못해 '피지컬에 밀려' 모래바람에 고전해왔고, 말하자면 알면서 눈뜨고 당해왔다. 얄미운 점 하나 더. 중동 팀의 전술은 세련되지 못하다. 그러나 효율적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약팀들이 애용하는 구식 카테나치오(빗장수비), 혹은 카테나치오를 약간 변형한 변칙 전술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수비에 주력하면서 상대 팀의 중원을 괴롭히다가 틈을 발견하면 러쉬, 개인기를 통한 공격을 애용한다는 뜻이다. 이는 전력상으로 우위에 있는 유럽이나 남미 팀들에 대해서는 쓸 만한 전략이다. 그러나 공공연히 "모래바람이 동아시아의 황사보다 세다"고 주장하면서 피지컬에서 열세인 동아시아 팀에 이런 전술을 쓴다는 것은, 뭐 전술을 욕하기는 좀 뭣하지만, 살짝 막장인 게다.


 


덩치 좋고 잘 뛰는 선수들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상대팀은 어떤 훈련을 했고 어떤 전술을 들고 나오든지 무척 괴롭게 된다. 예를 들어 2006년 월드컵 한국-스위스전을 기억해보라. 피지컬이 확실히 좋은 스위스는 카테나치오를 약간 변형한 수비-역습 전술로 만리장성을 쳐버렸고, 실제 우리 팀의 플레이가 더 훌륭하고 추천할 만했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2:0으로 이겨버렸다.   


 


(스위스 대표팀의 전통적인 전술을 카테나치오라고 하기도 하지만, 엄밀하게는 '스위스 볼트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볼트로 고정시키듯이 상대 공격진을 꽉 막아버린다는 뜻이다. 유럽 내에서 재미없는 축구라고 욕을 먹기는 하지만, 강호가 득실거리는 유럽에서 버티려면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그런데 타 아시아팀을 상대로 한 중동의 효율적인 축구 스타일은, 그 효율성 때문에 고정되어버렸다. 즉 새로운 실험과 업그레이드를 게을리하게 만들었고, 그 사이에 한국과 일본의 축구 수준은 계속 향상되었다. 한국과 일본이 나란히 아시아를 대표하며 월드컵 본선에 올라가는 사이 사우디와 이란은 탈락. 축구문화사를 쓴다는 필자가 할 말은 아니지만, 여긴 독투니까 한마디 하련다. 깨소금 맛이다.   


 


가장 신났던 일은 북한의 진출. 한 겨레니까 응원하는 건 당연하지만, 본선에 올라간 방식과 그 상대가 필자를 더 즐겁게 했다. 그 얄미운 사우디아라비아를, 다른 전술도 아니고 얄밉기 그지없는 막장 카테나치오로 관광보내버렸다. 물론 월드컵을 향한 북한 선수들의 근성, 진출이 확정된 후의 뜨거운 눈물도 빼놓을 수 없는 감동이었지만.


 





잘했어, 북한!


 


자 그래서 한국, 북한, 일본 이렇게 동아시아 3개국은 모래바람을 통쾌하게 잠재우고 월드컵에 진출하게 되었다. 몽골리안 파티를 하는 줄 알았더니 웬걸. 남아공에 가기도 전에 조추첨 결과에 관광 갈 판이다. 먼저 B조 한국.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그리스.


 


언론에서는 "그리스를 무조건 잡고..." 운운하지만 글쎄. 2006년도의 스위스전이 보여준 바대로, 피지컬이 우세한 팀이 시전하는 카테나치오는 보통 상대하기 힘든 게 아니다. 피지컬에 밀리면 당황하는 경향이 있는 한국 팀으로서는, 체격의 열세를 체력의 우세로 전환해 상대를 압박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카테나치오가, 상대가 압박하면 기꺼이 그 압박을 받아주는 전술이라는 것. 결국 두 가지가 중요하다.


 


1. 겨우 몇 번 있을, 그러나 득점가능성이 매우 높은 그리스의 선 굵은 공격을 어떻게 잘 막는가.


2. 그리스 수비진을 어떻게 기만할 것인가. 몸으로 부딪히는 것은 안 된다.


 


어쨌든, 힘들다. 최약체라고 하는 그리스지만 지난 대회의 첫 상대였던 토고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스위스를 상기하면, 정말 대비를 많이 해야 한다.


 


나이지리아는 카메룬, 세네갈, 가나 등과 함께 아프리카의 전통적 에이스 팀이며, 세계 축구계에 언젠가부터 불어온 '검은 돌풍'의 주요 멤버다. 한국은 아프리카 팀에 매우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있다. 나이지리아의 공격은 가나처럼 기만적인 템포를 갖고 있지 않다. 이 템포에 우리 대표팀은 매우 약한 모습을 보여 왔다. 가나와 아프리카 축구에 대한 심층 분석은 얼마 전 해 둔 바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확인해보시라. http://www.ddanzi.com/news/6322.html


 


직관적인 스타일의 공격을 하는 나이지리아가 상대하기엔 더 좋을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무너지면 대량실점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개인적인 예상으로는, 그리스보다는 오히려 나이지리아가 우리에게는 더 쉬운 상대일 듯싶다.


 


그래서인지 언론에서는 나이지리아를 만난 게 다행이라는 식으로 설명한다. 최근 하락세이고, 현재의 아프리카 팀들 중에는 꽤 붙어볼 만한 상대라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전력상 카메룬보다는 낫고, 가나보다는 훨씬 낫다. 하지만 나이지리아는 2008 베이징 올림픽 은메달 팀이다. 위에 링크를 걸어둔 기사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아프리카 팀은 올림픽대표와 성인대표의 간극이 별로 없다. 올 친선 경기 결과를 읊어볼까. 프랑스를 1:0으로 이겼다. 티에리 "핸드리"의 농간에 억울하게 떨어진 아일랜드와는 1:1로 비겼다.


 


(언론에서는 하나같이 '피파가 원칙보다 흥행을 택했다'고 말한다. 프랑스가 세계적으로 더 인기 팀이었기 때문에 주심의 실수를 번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왜 이 얘기가 안 나오는지 궁금하다. 피파가 프랑스에서 설립된 단체라는 사실 말이다. 피파는 프랑스 거다. 프랑스와 프랑스 축구가 유럽에서 왕따에 가깝게 욕을 먹는 이유는 이번 결정에 국수주의, 집단이기주의가 개입되었다는 혐의가 짙기 때문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라지만, 이번엔 너무 심하게 굽었다.)


 


아르헨티나는 말이 필요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얘기할 게 있다. 1986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는 아르헨티나와 붙었더랬다. 우리의 에이스는 허정무.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였다. 허정무는 마라도나를와 어떻게 맞대결을 했을까? 걍 두들겨 팼다.


 



이것이 태권도 축구



 


허정무는 마라도나를 상대로 로우킥, 미들킥, 살인태클 등 다양한 전투기술을 시전했고 그의 활약 덕분에 한국 축구는 "태권도축구"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고 말았다.


 





마라도나, 전사하다.


 


사실 허정무를 폭력적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라도나를 저지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해야 한다면, 실력차가 현격히 나는 이상 반칙을 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마라도나의 입장에서도 무척이나 억울했을 것이다. 마라도나는 아직까지도 허정무를 잘 기억하고 있다.


 


마라도나는 수년 전 토크쇼 진행자이던 시절, 허정무를 게스트로 초청한 적이 있다. 사실 아르헨티나 국민들도 '국보'를 두들겨 팬 허정무를 기억하고 있으니, 호스트와 게스트의 만남으로는 아주 좋은 짝이었다.


 





펠레가 게스트로 초청된 모습. 두 사람을 잠깐 동안 친해지게 만든 이 쇼는 축구역사에서 보기 드문 희극 중 하나였다. 언젠가 이 쇼에 대해 디벼주도록 하겠다.



 


허정무는 초청을 수락했으나 개인 스케쥴 때문에 아쉽게도 쇼에 출연할 수 없었다. 그런데 결국 두 사람은 만나게 됐다. 적으로...


 


데자뷰현상은 하나 더 있다. 당시 세계축구의 지존이 마라도나였다면 지금의 지존은 메시다. 태권도 말고 메시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우리 선수들에게 있을까? 만약 승부에 대한 집념으로 다시 태권도가 시전된다면,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지만, 난 좀 웃길 것 같다. 이런 말 정말 하면 안 되겠지만, 둘 다 키도 작고 동글동글해서 때리긴 참 좋아 보인다... 그 악역을 만약 차두리가 맡게 된다면, 한국 축구는 한 십년 동안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원수가 될 수도 있겠다.


 


이런 농담까지 나올 정도로, 아르헨티나는 강팀이다. 이게 우리가 낀 B조의 구성이다. 참, 유럽 팀들은 B조 천국의 조라고 무적 부러워하고 있다. 물론 아르헨티나의 입장을 부러워하는 것이다. 유럽 최약체 그리스와 아시아팀인 한국이 꼈으니 물 만났다고 보는 것이다. 자존심 상하지만, 그만큼 우리로서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 일본을 볼까. 우리보다 더 심각하다. 네덜란드, 덴마크, 카메룬이다.


 


오렌지군단의 실력을 말해 무엇하랴. 게다가 덴마크의 바이킹의 후예들은 일본을 확실하게 눌러줄 것이다. 피지컬로... 일본, 우리와 마찬가지로 피지컬 차이에 맥을 못 춘다(우리보다 더 심하다.). 한국이 지금껏 일본을 성공적으로 눌러 온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미세한 피지컬 차이였다. 그렇다고 개인기와 조직력이 덴마크보다 뛰어난가 하면 물론 그렇지도 않다. 한국-그리스의 경우는 서로가 서로에게 강약이 있다. 일본-덴마크는 없다. 모든 면에서 덴마크가 위다.


 


그렇다고 카메룬이 일본보다 약한가 하면, 절대 아니지 않는가. 카메룬은 아프리카의 부동의 강호이다. 일본... 한숨 나올 만 하다. 지금 카메룬과 덴마크, 네덜란드의 반응은 <일본을 반드시(당연히) 잡고, 그 다음엔....>이다.


 


북한의 처지가 가장 심각하다.  브라질, 코트디부아르, 그리고 포르투갈. 브라질과 포르투갈만 해도 양쪽 눈알이 한 번씩 튀어나올 상황인데 코트디부아르도 북한보다 객관적/실질적 강팀이다. 한마디로 북한이 16강에 진출한다면 최소 두 번의 '이변'을 일으켜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그 이변이 포르투갈을 상대로 한 것이라면 얼마나 극적일까? 북한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사회주의 축구 돌풍"을 일으킨 바 있지 않나. 그 돌풍을 꺼뜨린 게 바로 포르투갈이다. 북한은 포르투갈을 상대로 3:0으로 앞서나가면서 돌풍을 잇는 듯 했으나 흑표범 에우제비오가 각성, 다른 포르투갈 선수들까지 연달아 각성하면서 3:5로 폭풍같은 역전패를 당하고 만다. 이 에피소드는 축구문화사 잉글랜드 3편에서 확인해 보시라. http://www.ddanzi.com/news/6216.html


 


북한은 그 포르투갈을 이제 또 만나게 되었다. 그때 포르투갈에 에우제비오가 있었다면 지금은 C. 호나우두가 있다. 북한 선수들과 호나우두는 어떤 대결을 펼치게 될까?


 


결국 내년 남아공 월드컵의 주요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남-북-일, 이 세 동아시아 팀이 강호들의 틈바구에서 얼마나 버티고, 누가 살아남는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또다른 재미 요소가 연계된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한국과 북한, 그리고 일본의 상대팀을 응원할 테니까. 응원팀이 3배수 이상이 된다. 여러모로 흥미진진하리라.


 


다음은 동아시아 3개국의 내멋대로 16강 진출 가능성 예측이다. 재미로 봐주면 될 듯하다.


 



한국


vs 아르헨티나 - 승률 1/4


vs 그리스 - 승률 1/2


vs 나이지리아 - 승률 1/2


16강 진출확률 대략 35%


 


일본


vs 네덜란드 - 승률 1/6


vs 덴마크 - 승률 1/4


vs 카메룬 - 승률 1/2


16강 진출확률 대략 15%


 


북한


vs 브라질 - 승률 1/10


vs 포르투갈 - 승률 1/8


vs 코트디부아르 - 승률 1/3


16강 진출확률 대략 3%


 


 


어떤가? 필자가 너무 부정적인가? 하지만 본인도 벌써부터 공 하나를 두고 벌어질 내년의 세계쟁투를 가슴 설레며 기다리고 있다. 축구는 그 어느 종목보다도, 정신적/심리적 요소가 경기에 많이 개입되는 스포츠다. 축구만큼 이변이 많이 일어나는 스포츠도 없다. 산술적 확률은 확률이고, 남북한 동시 16강 진출이라는 기적이 벌어지지 말란 법 없다. 생각해보라. 35%는 아시아 팀으로써는 발군의 확률이고, 북한은 어차피 최약체이므로 어느 조에 속해 있던 기적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일본은... 기적이 일본에까지 강림할 필요는 없지 싶다. 이변은 언제나 일어나지만 적당히 일어나는 법.  


 


조만간 축구문화사로 다시 찾아뵙겠다. 자꾸 연재 늦어져서 미안타. 이상!


 


 


 


 


 


 


 


 


 


 


딴지 조기축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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