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하나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건국절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의도된 논란이었고 역사교과서를 새로 쓰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기득권에게 붙어있는 친일이라는 딱지에 면죄부를 주려는 움직임이었다. 삼대를 넘어 사대쯤 되니 자신들이 물려받은 부와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은 모양이다. 거센 반발로 그 움직임이 막아내졌지만 주도했던 이들은 다시 책을 냈다.

이 괴이한 책은 지지층에 보내는 노골적인 호소다. 식민지 시절이 있어 경제적 발전을 이룰 토대가 생겨났고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기점으로 국가정체성이 성립되었다고 주장한다. 고로 친일인사든 반민족 주의자든 국가 성립에 한발 걸친 이들은 대한민국 국가 설립의 유공자다. 독립 운동한다고 이역 땅에서 죽은 이들을 역사에서 지워내려는 수작이다. 그런 논리로 보아도 황장엽이 국립묘지에 안장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과 실제로 생각하는 것의 괴리가 있다.
선하게 살려고 하는 이들이 악인을 싫어하는 것처럼 악하게 살아가는 이들도 선하게 살려는 이들을 싫어한다. 아마도 인간은 무언가를 싫어함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내는 것 같다.
단상 둘
삶은 순간의 연속이다. 삶의 순간순간이 선택이다. 되도록 옳은 선택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모든 선택을 옳게 할 수는 없다.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겠다. 모든 선택을 옳지 않게 하는 경우도 불가능 하다. 아무리 지탄받는 악인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비록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어려울 지라도 말이다. 식민지 시절 친일을 했던 사람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개인의 입신양명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라는 변명은 먹고 살기위해 약간의 불의를 모른척하고 감수하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독립운동을 위해 모든 것을 내 놓은 사람들 앞에서 친일이 현명했고 시대적으로 옳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인류가 역사 속에서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발전시켜온 가장 큰 공동체 개념인 국가와 민족을 배신한 사람들이 옳다고 받아드리기가 쉽지 않다. 인간의 지성은 한계가 있어 반복 주입으로 세뇌도 가능하다. 그런 방식으로 북한정권이 유지되고 있고 사이비 종교가 창궐한다. 외부에서 주입된 사상이든 자생적으로 자라난 신념이든 일단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으면 때론 패륜도 기꺼이 범한다.
<반일 종족주의>의 공동저자인 이우연은 자신이 딸이 n번방 피해자라면 반성하도록 행실을 가르칠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자신의 딸이 위안부로 끌려가 강간을 당해도 일본을 용서해야하고 불매운동이 일본 수상에게 죄송한 마음이라는 그쪽계열 행동대장이 있었다. 피해자에게 항상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한결 같은 주장이다. 일본군 위안부도 힘 있는 집 아이들은 끌려가지 않았다. n번방의 피해자들도 부모가 충분히 힘이 있는 아이들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논리로는 힘이 없다는 것 자체가 죄가 되나보다.
그래도 그 발언이 누군가를 흡족하게 하였는지, 지난선거에서 특정 정당의 국회의원 후보로 낙점되었다. 그러다가 워낙 지역 여론이 안 좋아지자 물린 모양이다. 반발이 좀 덜 했으면 그녀를 국회의원으로 맞이할 뻔했다. 역시나 그 당의 대표가 호기심으로 n번방을 방문한 사람들은 너그럽게 용서하자는 투의 발언을 했었다. 사람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모이게 마련이고 동류에게 감정이입이 쉬운 법이다.
단상 셋

<반일 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책을 읽었다. <반일 종족주의>의 주장을 학술적 관점에서 반박한다. 가령 일본군 성노예 위안부는 허구라는 주장이나 식민지시절 조선의 경제가 발전했고 조선인들이 그 혜택을 받았다는 말들에 대해 근거를 가지고 반박한다. 그리고 반일 민족주의의 저자들이 일본 단체의 연구자금을 받았다고 지적한다. 학자적 양심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면 흔한 일이다. 연구비를 주는 기업이 원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학자들이 그렇지 않은 학자보다 많다.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학자가 동종업계에서 비판받거나 자격이 박탈되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하천의 역행침식이나 환경운동으로 이름을 떨친 인사가 이명박 정부의 사대강 사업에 한자리를 걸친 것도 보았다. 사대강 하니 생각이 났는데, 가부좌를 유지하고 분신한 문수스님을 기억하는 이들은 거의 없고 수자원공사에 모여 대책회의를 한 관련학자들은 무탈하다.
민족을 배반한 이들에게 이제와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겠지만 역사적 책임은 묻고 싶다.
괴서를 반박하기 위해 펜을 든 저자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괴서를 만든 자들도 역사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개인이 세포조직의 합집합이라면 국가는 국민들의 합집합이다. 애국심은 육체로 치환하면 면역력에 해당하고 정신으로 치환하면 자존감에 해당한다. 면역력이 부족하면 외부에서 침입하는 병에 걸리고 너무 강하면 몸을 구성하는 세포조직을 공격한다. 자존감은 너무 강하면 오만해지고 약하면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하게 된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가 타인을 사랑할 수는 없다.
사람의 마음에는 착한 늑대와 나쁜 늑대가 싸우고 있다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이야기가 있다. 마음의 주인이 먹이를 주는 쪽이 이긴다. 역사는 세상의 일부만을 기록한다. 언론이 그러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누락시키기도 하고 어느 부분을 조명하느냐에 따라 선과 악의 위치를 바꾸어 버리기도 한다. '반일 종족주의'라는 제목의 책과 '반일 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제목의 책을 보고 마지막에 드는 생각은 개인의 인생이든 단체의 역사든 선택들이 모여 방향을 정한다는 것이다.
단상 넷
대학에 입학한 딸아이의 개강이 미루어지더니 인터넷 화상으로 수강을 시작했다. 과제에 필요하다면서 이것저것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아이가 앞으로 읽는 책들이 살아가면서 조금 더 현명한 선택을 하는데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전에 내가 <일본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를 읽는 것을 봤는지, 과제 중에 비슷한 책이 있다고 가져다준다.

<일제 종족주의> 역시 반일 종족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책이다. 논문 형식의 공동저자가 한명 더 많은 6인이고 도서가격도 천원 더 비싸다. 조금 유치하지만 인상적인 감정의 발산이다. 우리 편이 더 많고 우리의 이야기가 더 가치가 있다는 선언 같기도 하다. 대표저자의 주장은 <반일 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에 비해 더 선명하다. 민족과 국가를 배신하는 자들에게 역사적 책임을 넘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설명들도 타당하게 들린다.
공동 저자들 각자가 맡은 부분이 달랐다. <일본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와 내용상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조금 더 무게감이 있다. 고종의 독립의지를 조명한 파트가 인상적이다. 누군가는 안전한 곳에 앉아 남들에게 싸우다 죽으라는 밀지(密旨)만 내리던 왕이라고 하던데, 그조차 죽음을 각오한 일들이라고 한다. 일본이 국권을 침탈하기 전에 이미 조선경제는 광무개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3.1운동 전까지 일제가 한일은 오직 수탈이었다.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었고 임시정부는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했다. 3.1운동은 독살된 고종의 죽음으로 촉발되었으니 고종은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을 이어주는 고리가 된다. 역사는 시대의 필요에 따라 필요한 부분을 강조하고 윤색된다. 아무리 냉소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같은 말을 쓰는 민족과 이웃을 팔아넘기던 사람들을 국가설립 유공자로 대우하려는 사람들을 용인하기가 쉽지 않다.
친일을 하던 이들이 아니라 독립운동을 하던 이들이 우리의 주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언을 들었다. 경탄이 나온다. 삶에서 온갖 쓰레기 같은 사람들을 겪어 보았을 텐데 인간에 대한 믿음과 긍정이 흔들리지 않으니 이런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긍정에서 나온다. 친일 부역 민족 반역자들을 법적으로도 처단하자는 주장들이 유의미한 지지를 받으며 세상에 나오는 배경이 되었다. 이런 책들이 건국절을 주장하던 지난 정권아래서 발간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련의 흐름들이 모인 이번 선거로 새로운 구심점을 마련했다.
부디 그 힘이 범접할 수 없는 주류가 되길. 정의가 강물처럼 유유히 흐르길. 그리하여 내 딸아이가 읽어 갈 책들에서는 나와 같이 번민 하게 만들 괴이한 문장들이 사라지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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