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modeljun 추천0 비추천0

2009.12.10.목요일


연예불패 modeljun


 


 


제목은 저래도 내용은 사뭇 진지하다... 지금 봉투에 넣어 우표 붙이기 직전이다


 


그대들은 이런 나의 손모가지를 잡을텐가... 직접 우표에 침을 발라주겠는가...


 


 


=====================본문====================


 



 


혜진씨


 


대전은 지금 비가 내립니다


야심한 밤에 한 손으론 커피잔을 만지작 거리며 한쪽 귀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음악을 들으며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는 혜진씨에게 글을 쓰는 제 마음이 마치 지금 내리는 비처럼 으슬으슬한 것이 살짝 오금마저 저려옵니다


 


실은 전에도 한 번 편지를 쓴 적이 있더랬습니다


첫 눈이 내린 날이라고 쓰고 보고 싶었던 날이라고 읽어봅니다


그 때가 혜진씨랑 마지막 통화하고 약 한 달 정도 되던 날이었는데 한 달이 지났는데도 안 잊혀지는 것을 보고서 뭐라도 해봐야겠다 싶어 펜을 들었었습니다


물론 다음 날 다시 읽어보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민망함에 두 볼이 붉어지며 혜진씨에게 부치려던 제 치기 어린 마음을 접긴 했지만요


 


이번 편지도 그리 될 가능성이 크겠지만 늦은 밤 사무실에 홀로 앉아 있다 맑은 공기를 쐬러 잠시 밖에 나갔다가 내리는 비를 보며 문득 센티한 마음이 일어 부치지도 못할 편지, 저에게 혼잣말하든 써 내려갑니다


혜진씨는 글을 항상 옆에 두고 계시는 분이고 그런 연유로 보고 싶은 사람에게 글로써 마음을 전해보고자 하는 경험이 있었을거라 짐작하며 혹시나 제가 이 편지를 부치게 되더라도 부디 편집자의 눈이나 스토커를 바라보는 눈으로 읽지는 말아주시길 간절히 부탁 드립니다


 


 


한 달의 시간, 다섯 번의 만남


이 시간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요?


지금까지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이 의문에서 아직까지 전 명확한 해답을 못 얻고 있습니다


한 번으로 끝나는 소개팅이나 선자리처럼 그렇게 단순한 것이었다면 지우개로 하얗게 지우고선 홀가분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두 달 동안 연락 한 번 조차 안 하고서 이렇게 제가 혜진씨에게 편지를 쓰게끔 만드는 미지의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아마도, 많은 이유가 있을테지만, 그건 아쉬움이라고 작은 답을 내어봅니다


세상일에 정답은 없다지만 제 안에서 일어난 일에 답을 내려주지 않으며 계속 혼란스러울 것 같아서 말이죠


가만히 작은 답 속에서 의미를 찾아갑니다


아쉬움은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은 추억이 되며, 추억은 다시 그 것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 혜진씨의 생각을 미루어 짐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의 입장만큼이나, 아니 그것보다 더, 혜진씨의 입장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혜진씨에겐 홀가분한 존재가 되어버린 저의 존재가 갑자기 자신의 머리 속을 스캔이라도 하듯이,


편지를 쓰며 그 소리가 들릴까 크게 쿵쾅거리지도 못 하는 심장을 꺼내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나는 평생 정복하지 못 할 여자가 좋다며 오만 방자하게 큰 소리치던 그 남자가


지금은 어찌 그리 호언장담하던 관계 속에서의 약자가 되어 잘 쓰지도 못 하는 글씨로 이런 편지를 쓰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혜진씨를 떠올리니 손끝이 떨리고 머릿속이 아득하여 도중에 그만두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약한 마음 가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순간에도 혜진씨에게 감사합니다


저에게 아직도 십 년 전 첫 사랑에게 고백하는 편지를 쓰던 그 두근거림이 남아있음을 알게 해 주었으니까요


처음에는 안부만 물어볼 요량으로 펜을 들었는데 이젠 힘을 조금 보태어 고백까지 하려 하는 저를 봅니다


결자해지라는 말로 애써 두근거리는 저의 펜 끝에 동력을 전합니다


 


 


혜진씨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계속 좋아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행했던 이성으로 생각하는 혜진씨와 저와의 관계가 아닌, 마음으로 좋아하는 혜진씨와 저의 관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사람 좋아하는데 이유 없다더니 지금 제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눈 덮인 크리스마스 거리를 함께 걸어보고 싶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오락 모른 척 한 판 지고도 싶습니다


숨을 깔딱거리며 북한산에 올라보고도 싶습니다


내가 조금 더 공부해서 램브란트, 고흐이야기로 오래도록 대화 나누고도 싶습니다


 


저에게 이런 기회 주실 수 있으신가요?


혜진씨에겐 조그마한 마음의 배려가 저에겐 큰 사치가 될 수도 있음을 조심스레 알리며 이만 편지를 줄이고자 합니다


오늘은 비가 내렸습니다 날씨도 점차 추워질 듯 합니다.


부디 건강 조심하시고 다시 뵐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저의 못난 글 매조짓겠습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편집자 주


 


위 글은 12월 10일 독투불패에 오른 글이며, 인증갤러리에 위 사진을 남긴 주인공이 실재 글쓴이이기도 하다.


 


밤에 쓴 편지가 부끄러워 지가 스스로 삭제할까봐 미리 본지 마빡에 기록을 남긴다.


 


부디 혜진씨랑 잘 되길 기원하는 바이다.


 


근데 편지 마지막에 '매조짓겠습니다'는 무슨 말이냐. 설마 밤세워 쓴 연애편지에 오타를 날렸을 거 같지는 않아서 걍 놔두긴 했다만 당췌 뭔 말인지는 모르겠다. 덧글로 대답해주시라. 


 


그리고 조만간 '연애불패' 만들 터이니 혜진씨랑 같이 게시판 관리할 그런 날이 오기를 기원하마.


 


 


연예불패 modeljun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