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한국은 조금씩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는데, 캘리포니아는 5월 말까지로 자택 대피 명령이 연장됐습니다. 전에 없던 일로 여러 가지 불편을 겪고 있는 현실입니다. 

저는 캘리포니아 지역에 사는 한인, 그 중에서도 노인들께 무료급식, 간식, 마스크 등을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원 파악부터 주소와 연락처 작성, 식당 섭외를 비롯해 노인 분들과 연락을 주고 받고 불만사항도 접수합니다. 사람이다 보니 가끔 화날 때가 있지만, 젊은 저조차도 말 잘 안 통하는 이국에서 사는 게 만만찮은데 노인들은 오죽하랴 싶어 금세 차분해지곤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지금 캘리포니아는 코로나19로 인한 판데믹 상황입니다. 덜컥 겁이 납니다. 젊은 세대도 코로나19와 그로 인한 여파로 힘들어하는데, 노년 층은 오죽할까 싶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런 위기 상황에서 '의(醫, 의원 의)식주' 문제 말입니다. 

1. 식(食): 먹는 것부터가 힘들다

빵, 파스타, 타코 등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고 해도, 아프면 삼계탕이, 술 마신 다음날에는 황태국이나 콩나물국이 생각나는 게 한국 사람입니다. 김장철이면 갓 지은 햅쌀밥에 김치 쭉쭉 찢어 올려 먹고 싶고, 출출한 밤에는 족발, 순대, 떡볶이 생각이 간절하지요. 

미국에서 40년 이상 산 분들도 똑같습니다. 삼시세끼 중 한 끼는 꼭 밥, 국, 김치 아니면 안 된답니다. 나이가 들면 소화력이 약해지고 자주 입안에 쓴 맛이 돌며 예민해지니 젊을 때보다 음식에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런 이유에서인지 노인 분들은 무료급식이라도 한식이 아니면 안 받으시겠다고 합니다. 

제가 일하는 이 사업은 중국계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어, 초기에는 무료급식 사업에 참여한 한식당이 없었습니다. 얼마전에 겨우 퓨전 한식당과 고깃집 각각 한 곳이 섭외된 정도입니다. 

1인당 예산은 10불이고, 대상자는 150명입니다. 저희는 물론이고, 월세, 인건비, 식재료비 등을 따지면 식당 입장에서도 사실 빠듯한 액수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자원봉사자들이 배달을 맡아주어 예산을 조금 아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원체 봉사자의 수가 많지 않고 예산도 제한적이어서 모든 한인 노인 분들에게는 보내드릴 수가 없습니다. '한국 노인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을 우선으로 하고, 그렇지 않은 지역에 계시는 노인 분들은 제외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무료급식도 받지 못하는 분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노인 무료급식으로 제공된 $10 도시락

각각 퓨전 한식당과 고깃집에서 만들었습니다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되지 않냐고 하실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상황이 여의치 않습니다. 특히 거동이 불편한 노인은 재료 구입부터가 고충입니다.

저 같은 경우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한인마켓이 100km/h로 달려서 23분 거리에 있습니다. 설령 가까이 있다 해도 요즘은 매장 내 인원수 제한 때문에 오랫동안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그만큼 입장 대기줄이 깁니다). 거동하기도 힘든 분들이 오랜시간 대기할 수 있을 리가 없지요. 사실상 방문이 어렵습니다. (감염병에 취약한 노인을 위해 방문 시간을 전용해놓은 곳도 있지만 한인마트 중에서 시행하는 곳은 못 봤습니다)

한식자재 배달앱은 늘 매진. 배달불가 지역은 왜 이리 넓은지요. 배달이 된다는 어떤 곳은 배달비가 마일당 1불로, 우리집까지는 25불이 듭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에 결국 포기하고 맙니다.

무료급식에 의존하는 노인이 많을 수밖에 없지만, 모두에게 다 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2. 주(住): 시니어 아파트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돈을 생각하지 않고 말한다면, 노년에는 '시니어 아파트(노인 전용 아파트, 실버타운)'에 들어가 사는 게 효율적입니다. 영어 구사에 한계가 있고 인터넷 활용도가 떨어지니, 노인회든 한인회든 정보나 혜택을 얻을 수 있는 곳이 가까이에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아픈 데가 많아져 병원도 자주 가니, 여러모로 입지 좋은 곳에 위치한 시니어 아파트가 제일이라고 할 수 있겠죠. 또래가 모여 사니 덜 외롭기도 하고요. 

지역과 건물 상태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시니어 아파트의 월세는 보통 $3-400로, 샌프란시스코 평균 렌트비의 1/10 수준입니다(2020년 4월 기준). 가장 저렴한 샌프란시스코 시내 노인 아파트 렌트비는 $990이네요. 확실히 일반 아파트에 비해 렌트비가 저렴합니다.

정보도 빨리 얻을 수 있고, 입지도 좋고, 렌트비까지 (비교적) 저렴해 생활비의 가장 큰 부분인 월세를 줄일 수 있어 노인들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선택지입니다. 

문제는 시니어 아파트에 들어가는 게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맞먹을 정도로 어렵다는 겁니다. 비용이 월등히 저렴하니 사람이 몰려, 입주까지 3-5년, 길게는 10년까지도 기다려야 합니다.

입주민은 추첨으로 뽑기도 하지만 대부분 '입주 대기명단'이 있습니다. 가끔 인기 있는 시니어 아파트에서 뒷돈을 주고 대기 명단 순위를 올려주는 일이 생겨 수사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는 말입니다. 

조금이라도 당첨률을 높이기 위해 복수 신청은 기본이고, 수시로 확인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년을 기다렸음에도 (당첨되었다는) 연락 한 번 놓쳤다고 기회를 날린 사람도 있습니다.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한국일보>

금전적 여유가 있다면 보증금만 수억 원에 한 달에 4-6천 불 이상 내는 고급 시니어 아파트에 가면 됩니다. 식사, 의료 서비스, 커뮤니티 활동까지 한 번에 해결되니까요. 그런데 미국의 한인 1세대, 우리 부모님 세대 중에 이런 곳을 가실 수 있는 분이 몇 분이나 되실까요? 설령 돈이 있다 해도 자식들 물려줄 생각에 대부분 손사래를 치실 겁니다. 

3. 의(醫): 의료비 감당 가능합니까

인간생활의 3대 요소를 의식주(⾐⻝住)라고 하지만, 나이가 들면 '의'가 '의(⾐, 옷 의)'에서 '의(醫, 의원 의)'로 바뀝니다. 아픈데 옷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병원, 의료 서비스가 중요해지기 마련입니다. 

기력이 많이 떨어져 혼자 살 여력이 되지 않으면 요양원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미디어에서 미국의 노인들이 아침마다 잉글리시 머핀, 토스트, 간식으로 도넛을 먹으며 체스 두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한인 노인 분들께서 미국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매일 이것을 할 수 있을까요? 대화부터에서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따라서 이분들은 요양원도 이른바 '한국부'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요양원은 들어가기 굉장히 힘듭니다. 우선 '재활이나 장기요양이 필요하다'는 의사진단서와 5년 간의 은행출납 기록, 재산내역 등 재정 증명서가 필요합니다.

- 극빈층, 즉 보험 미가입 메디케이드 수혜 받는 영세민은 무료

- 메디케어만 받는 경우 일정액 부담

위의 두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자비 부담입니다. 4인실 쓰면서 식사/목욕 서비스 등을 받으려면 한 달에 4천 달러 이상이 든다는 말입니다. 한국부가 있는 요양원에서 자비를 지출하는 한인 노인들은 매우 드물답니다. 

<한겨레>

(여담이지만) 미국의 요양원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져,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노후를 편안하게 보내려 들어간 요양원이 되레 배양원이 되었기 때문인데요, 이 안타까움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노인이 살기 팍팍하기는 매한가지인 것 같습니다만, 적어도 팬데믹 상황 속에서는 한국이 미국보다는 지내기 나을 거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곳에서 사업 잘하고 계시는 분도 애들 교육 다 시키고 나이 들면 한국에서 노후를 보낼 거라고 하시는데, 그 말씀이 가볍게 들리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