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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방을 다녀오다

2009-12-1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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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개인사업가 추천0 비추천0

2009.12.14.월요일


익명의 개인사업가


 


그냥 속시원히 말할게. 나 키스방 갔다 왔어. 첨부터 이 글 쓰려고 말이야.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첨엔 나름 사회 고발 같은… 그런 취지가 있었는데 말이지. 막상 갔다 오니까 생각이 복잡해졌어. 문제가 있는 건 맞는데. 사람 사는 세상이 원래 그런건지.


 


계기를 말해줄게. 요새 술먹다 보면 길거리에 전단지가 꽤 많이 보이더라고. 안 그래도 뉴스에 종종 떴잖아? 궁금하건 사실이지.


 


 
이건 아가씨들 모집한다는 전단지.


근데 요샌 생활광고지에서도 모집 중이라더군.


 


하지만 신종플루 무섭잖아. 이거 한번 갔다간, 집에서 손 자주 씻는거 아무 소용 없겠더라고. 좀 망설여졌어. 원래 그렇기도 하잖아. 첨에 유흥업소 들어갈 때 깍두기들 걱정이 되는 거처럼.


 


아무튼 사전 검색을 좀 했어.


 


요새 키스방은 체인점 식으로 확장도 하는 것 같더군. 하지만 체감상으론 군데군데 알아서 여는 곳들이 더 많은 것 같아. 그런데 키스방 있는 곳들은, 우리가 아는 유흥업 집중 지역과 좀 달라. 서울만 보면 말이지. 서울 유흥업소의 양대 산맥은 강북 북창동과 강남 선릉역 부근 아니겠어? 근데 이 지역에는 키스방이 별로 없어. 내가 못봤는진 몰라도.


 



지방 도시에서는 중심가에 등장해서 물의를 빚기도 하나 봐.
출처, 관련기사: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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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는 좀 후락한 지역에 훨씬 많지. 있잖아, 사람은 졸라게 많고 유흥업소도 많지만 간지는 안 나는 지역들… 술값도 좀 싼 그런… 그렇다는 거야. 구체적으로 쓰면 어디 가면 있다는 식인 거 같아서 좀 켕기네.


 


아무튼 들어가보자. 한 곳 정했어. 먼저 전화를 걸었지. 위치를 도저히 모르겠더군.


 


“네 키스방입니다.”
“저기 지금 가려고 하는데 괜찮나요?”
“옙 지금 오십시오.”
“…위치가?”
“##@^&& 오른쪽 4층입니다.”


 


처음 가는 손님은 예약이 필수야. 그냥 가면 잠겨 있는 데도 있다더군.
갔지. 갔어. 기본료가 30분 4만원이래.
주고 나니까 화장실을 가리키더군.


 


“먼저 양치 좀 부탁드립니다.”


 


음…?


 


화장실엔 모텔에서 많이 보던 일회용 칫솔, 그리고 1000원샵에서 팔듯한 싸구려 치약이 있더군. 양치 했지. 치카치카. 그리고 거울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어.



[청결한 키스타임을 위해 양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수염이 많으면 매니저 언니들이 싫어하니 면도도 부탁드려요]


 



웹에서 퍼왔는데, 비슷해


 


아닌게 아니라 일회용 면도기도 있더군. 키스방 가서 제일 찝찝한 순간이 이때였어. 거울로 내 얼굴이 딱 보이잖아.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인가, 졸라 후회되더라고. 난 양치할 때마다 엄마가 혀 꼭 닦으라 그랬던 거 생각난단 말야. 젠장.


 


그러니까 먼저 돈을 받는 거야. 그렇지. 나름 순서가 있는 거였어.


 


양치 끝내고 나오니까 방으로 안내하더군. 조그만 방. 창문은 없고, 3인용 쇼파와 자그마한 협탁 하나 놓여 있었지. 나름 을씨년스러울까봐 그랬는지 벽에는 레이스 커튼이 쳐져 있어. 작은 난로 하나 있고.


 



방안은 이런 식이야


 


내가 키스방을 두 군데 갔거든. 약간 디테일만 차이가 있고, 다 똑같았어. 쇼파에 털썩 앉아서 아가씨 들어오기 기다리는 그 순간까지는 말이지. 그러니 이젠 아가씨들 두 명 얘기를 해볼게.


 


A는 스물 다섯 살이었어. 낮에는 직장을 다니고(사무직은 아니야) 밤에 여기 와서 투잡을 뛴다고 하더군. 직장서 많이 못 버냐고 했더니, 120 정도 벌고 있대.


 


120…?? 20대 솔로 여성의 수입으로 그게 모자른가?


 


그걸 모자라다고 여기는 건 개인 자유겠지만, 솔직히 나같으면 굳이 이런 투잡을 뛰진 않았을 거야. 어쨌든 모르는 일이지. 마음 독하게 먹고 짧게 바싹 벌어보자는 생각일 수도 있겠고.


 


하지만 김이 샌 건 사실이야. 남자들이 유흥업소 가는 거, 오로지 판타지 때문이거든. 생각해봐. 저 아가씨가 하루에 손님을 몇이나 받을지 모르지만, 놀 때는 그런 생각 못하잖아. 냉정히 생각하면 딱 그 시간 동안만 대접받는 건데, 남자들은 마치 저 여자가 나만 바라본다는 착각에 빠지거든. 완전 허황된 판타지지. 근데 또 그게 지켜지지 않으면, 남자들은 전혀 못 놀아. 아가씨 입에서 집에 얼마 갖다주고 어떻게 산다는 식의 얘기라도 나오면 집어치우고 싶어지지.


 


그러니 수입 얘기 나오고, 투잡까지 계산하면 어라 나보다 잘벌겠네 생각 들면, 쓰바 판타지는 고사하고 구겨진 바지 같은 내 모습만 남는 거 아니겠어. 김 샜지.


 


A는 저녁반이었어. 가게는 낮반, 저녁반 아가씨들로 구분해서 출퇴근을 시키는데, 시간이 딱 부러지는 건 아니고 대충 그렇다는 거야. 새벽 4시쯤 퇴근해서 한 서너 시간 자고 출근한대.


 


 



이미 영업방식도 보도가 많이 된 상태. 사진은 기사 특정인물과 관계 없어.
(출처:
http://sisatoday.com/news/view.php?n=26218&d=20081110)


 


이때쯤 조금씩 운영 방법이 보이더군. 키스방은 유흥업소와 달리, 아가씨들이 적극적이질 않아. 뭐 이것도 사람따라 다르겠지만. 대개는 손님이 뭘 안하면 아가씨도 내내 가만히 있을 거야. 나는 이것저것 얘기하느냐고 시간이 금방 가버렸거든.


 


근데 술집 아가씨들이랑 다른 점은(안 가봤다 뻥쳐도 안 믿을테니), 확실히 키스방이 신종 업소다 보니까, 손님 대하는 법이 없다고 해야 할까, 아가씨가 너무 자유자재야. 이건 미뤄 짐작하는 건데, 술집이라고 하면 선배 언니들도 있고 하니 교육을 시킬 거 아니겠어. 손님 오면 어떻게 하고, 어떤 건 물어봐도 되지만 어떤 건 캐묻지 마라 가르쳐주겠지.


 


A는 그렇지 않았어. 나중에 나올 B도 그렇지만, 정말 집요하게 내가 뭐하고 먹고 사는지 캐묻더군. 원래 대충 얼버무리잖아… 뭐 보통 직장 다닌다… 그럼 어디 다니느냐, 많이 버느냐 까지 묻는다는 거지. 이런 거 졸라 실례거든. 그럼 못 벌면 손님도 아냐? 벌컥 화부터 낼 성질 급한 남자들 많지.


 


나는 당근 직장인이 아니야. 직장인은 직장인의 차림새와 말투가 있어. 그쯤은 다들 눈치 깐다고. 그래서 개인사업한다고 했어(아주 거짓말은 아니야). 그러니까 조낸 관심 보이더라고. 어떤 사업? 많이 벌겠네? 집은 어디?


 


결국은 30분 동안 이런 신변잡기만 늘어놓고 나왔는데. 생각해보니까 그래. 만약에 내가 진짜 돈 많은 양반이고 팁 좀 후하게 찔러주면서 꼬드겼으면? 술집은 여러 명이 왁자지껄한 분위기니까 이러기가 어렵지. 여긴 무조건 일대일이잖아. 술집처럼 관리하는 삼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 뉴스에서 변종 성매매업소 운운하는 게 무조건 거짓말은 아닐 거야. 키스방에서 성매매를 하지는 않지만, 그런 연결고리는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무슨 스폰서 식으로 말야.


 


알 수 없는 일이야. 두 번째로 만난 B같은 경우엔 전혀 아니겠지만.


 


B는 방송대 같은 거 공부한다고 하더군. 학비를 벌 겸 해서 일 시작했대. B도 역시 내 직업이 뭔지 열심히 캐물었지만, 얘는 딴 얘기를 너무 많이 했어. 공부 얘기.


 


방송대에서 부전공까지 해가면서 공부한다던데, 그렇다고 잘 풀리긴 어렵지… 4년제 졸업자도 힘든 세상인데… 그래도 나는 그런 얘길 못했어. B는 집안이 영 아니어서 혼자 벌어먹은 지 오래됐고, 그래서 늦었지만 대학 나와서 괜찮은 직장 다니고 싶다는 꿈을 정말 굳게 갖고 있었거든. 30분짜리 손님이 거기다 대고 ‘넌 아직 현실을 몰라’라고 얘기는 못하겠더라구.


 



이 사진도 특정인물과 관계 없음이야


 


이 글 읽는 사람들이 이런 데엔 관심 없겠지. 그래도 난 이런 얘기가 중요하다고 봐.


 


키스방은 알려진대로 키스를 하면서 이런저런 터치… 그 정도만 허용하고 있었어. 자기 혼자 소위 ‘자플’을 하는 건 말리지 않아. 근데 일대일 플레이가 능한 사람들이라면 또 더 나갈 수도 있겠지. 아무튼 그렇다 보니 위에서 말한 부류의 여자애들이 좀더 쉽게 이 일에 빠지게 되는 거 같아. 술집 아가씨 일은 수입이 좀더 많을 순 있는데, 술을 마시다 보니 투잡이나 학업을 같이 할 수는 없어. 노래방 도우미 일은 그것보단 좀 낫겠지만, 술에 쩔은 손님들 받아주기 싫은 사람도 있었을 거야.


 


그러니까 돈은 벌고 싶지만 투잡이나 학업을 해야만 하는 여자애들에겐 신종 업소인 키스방이 눈에 들어오겠지. 어쨌든 술은 안 마시고, 어쨌든 몸 파는 일이 아니라는 위안거리가 생기잖아.


 


추측인데 말야, 우리가 알고 있는 별의별 유흥업소들과 비교하면, 키스방은 가장 ‘생계형’ 업소가 아닌가 싶어. 안마집이며 단란주점과 비교하면 시설투자비는 거의 껌값이겠지. 그러니까 아가씨들한테도 무슨 선수금 주고 하는 체제는 아니고, 노래방 보도집들 비슷하게 그날그날 수당 챙겨주는 시스템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땅값 비싼 지역에 키스방이 잘 보이지 않았던 이유가 설명되기도 하고. 2009년 지금의 얘기에 국한된 거겠지만 말이지.


 


왜 룸에도 등급이 있다고 하잖아. 아는 사람만 간다는 텐프로가 있다며. 그리고 쩜오가 있고 클럽이 있고… 유흥업 전반도 좀 그렇게 돼가는 게 아닌가 싶어. 결국 지갑 얇은 사람들이 룸에는 못가서 단란을 가고, 거기도 안 돼서 노래방에 가고… 그렇잖아?


 


키스방은 그 문턱이 가장 낮아. 35분에 4만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야… 하지만 어떤 유흥업소든지 ‘기본’이 있는데, 가령 혼자 룸싸롱 갔다간 30은 쓸텐데(요샌 많이 내린 데도 많더만) 말이지, 그럼 기본료가 가장 싼 건 키스방이란 얘기지. 노래방도 기본료는 이거보다 많지. 조금 유식하게 말하자면, ‘진입장벽이 낮다’는 게 우리가 키스방의 출현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라는 거야.


 


B는 21살짜리 손님 받아본 적 있다고 하더구만. 뭐 소싯적에 어디 가봤다는 모험담 늘어놓는 자식들이야 우리 반 동창 중에도 있지. 호기심은 만땅이더라도, 그래도 그 문턱을 넘을 마음을 먹긴 쉽지 않았잖아.


 


키스방은 그 문턱을 더 낮췄다는 거야. 거기서 돈을 쓸 손님에게나, 거기서 돈을 벌 여자애들에게나. 영리한 상술이겠지만, 그만큼 우리 지갑이 얇아졌다는 얘기도 되지 않을까 싶어.


 


언론에선 그저 이전의 유흥업소 보도처럼 ‘퇴폐’만을 주제로 내세우는데, 그때마다 우스워. 기자들이 룸싸롱 안 가봤다고 하면 소가 웃을 걸. 그런데 룸싸롱 망하는 거 봤어?


 


싫은 건 싫은 거니까, 룸싸롱이든 단란이든 키스방이든 이름만 꺼내도 역한 사람도 있을거야. 담배 싫어하는 사람들처럼 말이지. 그냥 다 때려잡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어.


 



여성부에서는 진작부터 때려잡겠다고 나서고 있더군


 


하지만 난 이렇게 생각해. 사회악에는 사회악의 기능이 있다고. 그 기능이 사회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면 쉽게 없어지기 힘들다고.


 


가령 룸싸롱은, 어쨌든 그 돈만 싸들고 가면 호화롭고 질펀하게 놀게 해주잖아. 매일 허덕이며 사는 월급쟁이라도 거기서만은 허영심을 채울 수 있어. 그걸 반대로 말하면, 일상에서 자기 자존심을 채우지 못하는 인간들이 많다는 얘기야. 온통 쥐어짜이기만 하니까. 그러니까 가정과 직장에서 쥐어짜이는 강도가 갈수록 세지는 한, 그걸 잠깐 잊게 해줄 룸싸롱 같은 허영 덩어리는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키스방도 그런 사회악의 조건들을 갖고 있어. 우선 문턱이 낮다는 건 요즘 지갑 상황을 반영한 거기도 하겠지. 또다른 건… 글쎄, 요새 소녀 아이돌 그룹이 인기던데, 어떤 사람들이야 걔네들 보고 소년 시절의 위안을 받는 정도겠지만, 모두 그럴리는 없잖아. 하는 건 좀 그렇더라도 적당한 선에서 어린 여자애들을 안을 수 있는… 그런 욕망이 키스방에 반영된 게 아닐까 싶어.


 


첨에 글 시작하면서, 생각이 복잡해졌다고 했지. 그런 이유야. 키스방이 때려잡아야 할 퇴폐업소라기 보다는, 우리 사는 단면이 거기에 비쳐진달까, 그런 기분이 들었거든.


 


그래도 없어지는 게 낫다고 봐. 유흥업소가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들도, 고딩 때부터 아무나 막 갈 수 있게 해놔선 안된다고 할 거야. 사람들 지지를 마냥 얻을 수 있는 업종이 아니란 소리야. 그러니 키스방은 언제 철퇴를 맞을지 모르겠어. 그쯤이야 가카께서 눈 한번 찡그리면 되는 일이잖아. 일도 아니지. 순대국집 가시는 길에 전단지 한 장 못 보셨나. 분명히 좀 있으면 더 자극적인 퇴폐 키스방이 생겨날 거고, 장안동 안마시술소처럼 한바탕 단속이 이어지겠지. 괜히 거기 있다가 뒷통수 사진 찍힐 일은 하지 말라구.


 


개인적으로도 키스방은 좋은 경험이 아니었어. 난 원래 잇몸이 안 좋은데, 갔다 온 후에 더 안 좋아져서 자꾸 피가 나. 인사돌이라도 사먹어야 될 것 같아. 그러니 애당초 관심을 끊길 바래. 어차피 잘 아는 사실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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