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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4.월요일


정치불패 강호의주윤발


 


부모님의 눈물과 여자친구의 떨리는 목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보무 당당히2004년 시작의 그 때 강원도로 입대를 했다. 나는 좀 돌아이 기질이 있어서 내가 군인이 된다는 사실에 너무 뿌듯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근데, 어라. 이러저러 하다보니 난 충주의 경찰학교에서 전투경찰로 만들어 지고 있었다. 그래. 착출된거다 ㅡ.ㅡ;;


 


진압중대에 배치받고 정신없이 얻어 맞고, 정신없이 욕 먹고, 정신없이 갈굼 당하다가 보름 만에 첫 시위진압에 나섰다. 그 닭장차 안에서 이뤄지는 수 많은 구타들과 분위기에 감상 따위는 없이 그냥 악몽을 꾸는 것 같은 느낌으로 첫 시위현장에 도착했고,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쇠파이프로 얻어 맞는 고참들을 지켜보며 다리가 후들후들 거리는 '죽음의 공포'를 대면했다. 저 멀리 방송차에서 들려오는


 


"철의 노동자~~" 


 


눈 앞에는 마스크 쓴 아저씨들이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지옥이 따로 없었다.


 



 


이런 지옥불 같은 상황에 내가 왜 서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첫 시위현장을 경험하고 부대로 복귀하면서 닭장차 안에서는 다시 피바람이 불었다.


 


"풀어 주니까 긴장을 안한다"는 말로 고참에서 중간으로 중간에서 막내로 계속 퍽퍽 소리가 났다. 부대에 도착하니 바로 훈련..


 


말이 훈련이지 몇 시간을 연병장 뛰면서 고참들에게 얻어 맞는게 훈련이다.


 


대략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서 대부분의 전의경들은 노동권, 진보에 대한 적개심이 커 진다.


 


나도 초반에는 그랬다. 우리가 먼저 때리는 것도 아니고 정말 가만히 서 있는데 와서 몽둥이 찜질을 하고 조금이라도 정당방위하면 "폭력경찰 물러가라"며 난리가 난다.


 


중대장도 소대장도, 무전으로 듣는 그 높은 현장지휘자도 대부분


 


"시위대한테 말하지 말 것", "인내진압", "성추행 시비 붙을 모든 진압 금지" 등등..


 


지휘부는 전의경에게 일방적 인내를 지시했고 거기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경찰이 시위대를 조심하는..


 


한 두달에 한번은 경력(군대의 병력)보다 시위대의 숫자와 폭력이 너무 심해서 도저히 안전하게 막을 수 없는 데모가 발생했다. 이런 날도 많은 경우


 


"공격적 진압"을 할 수 없었고 출동할때 120명이 복귀하면 80명 되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의 부상은 다뤄지지도 않고 시위대 몇명의 입원은 크게 보도 되었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경찰은 맞아도 관심 받지 못하는..


 


짬밥이 안될때는 군기에 숨도 못 쉬고 새벽부터 밤 까지, 때로는 숙영을 하면서 때로는 닭장차 안에서 몇일을 보내는 일이 계속 되니까 시위대에 대한 적개심만 가득했다.


 


근데, 시간이 지나고 나도 고참이란게 되고 두명이 나를 쇠파이프로 때려도 방패로 거뜬히 막을 수 있는.. 써먹지 못할 경력이 쌓이고 나니 슬퍼지기 시작했다.


 


 "왜 진보는, 왜 노동권은 아직도 쇠파이트와 죽봉을 흔들어 대는가??"


 


어떤 날은 시위가 너무 격해서 현장 지휘부에서 시위대에 공격적 진압을 하고 흩어버리고 몇명을 연행하라는 지시가 떨어 졌다. 옆에서 피흘리며 주저 않은 동료와 장시간의 폭력에 독이 올라버린 대원들은 "공격 앞으로"를 외치며 튀어 나갔고 결국 5명 정도를 잡아서 경찰서로 보냈다.


 



 


시위대도 해산되고 우리는 부대로 복귀하는 닭장차에서 눈을 감았다.


 


무전기 : "띠리리~ xx중대 xx경찰서 정문 상황 출동"


 


닭장차에서 씨바씨바 욕이 튀어나오고 현장에 도착했다. 아까 그 민주노총 깃발을 흔들던 그 무리가 그대로 경찰서 앞에 와서 닫혀있는 철문을 부수고 있었다. 폭력경찰 물러가고 연행자 석방하라며 경찰정문을 부수고 페인트를 뿌리고 불을 붙이고 난장판이었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경찰서 정문에 방화 해도 문제가 안되는..


 


늦은 밤이 되자 시위대가 박수를 치면서


 


"민주노동당 누구누구 의원님이 지금 내려 오신다"며 우리에게 조롱을 보내고 정말 거짓말 처럼 우리는 닭장차에 타서 사람들 눈에 안보이는 곳으로 이동하고 연행자들은 모두 석방되었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민노당 국회의원 온다고 하면 경찰이 바로 꼬리내리는..


 


제대를 얼마 안남기고 여의도에서 농민대회가 있었고


이전과 비슷한 지옥의 하루를 보냈다. 쇠파이프 돌맹이 각목을 막아 가며 그 수 많은 농민과 전문 데모꾼들에게 둘어 쌓여 후임병들이 쓰러져가는 걸 봐야했다.


 


그 넓은 공간에서 벌어진 "활극"은 전의경 수백명이 부상당하고 시위대는 두명이 사망하는 엄청난 사건으로 번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는 나중에 알았다.


 


과연 사과할 일인가?  아니다. 사과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면 누구도 경찰을 그렇게 죽도록 때려도 된다는 권리도 없고 우리가 죽을때 까지 맞고만 있어야할 의무도 없었다.


 


당시 전경인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제대후 읽은 대통령 사과전문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만.


 


근데 노무현 대통령은 사과를 했다. 그리고 우리가 좋아했던 박준형 경찰총장은 사퇴하게 된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어떤 상황이라도 사고가 생기면 대통령이 사과하는..


 


농민대회 다음 날이던가 .. 우리는 중대원 30여명을 병원에 두고서 나머지를 끌어 모아 부산으로 갔다. 삼국지 "장판교"의 대결처럼 에이펙 정상회의 장소로 들어가는 다리를 막아섰고 시위대와 우리 사이에는 컨테이너가 막고 있었다. 컨테이너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공포와도 같은 소리가 계속 들려왔고 컨테이너 뒤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진압중대들은 각자 고유의 구호를 외치며 서로 기죽지 않겠다는 긴장감을 표현했다.


 


결국 컨테이너는 시위대가 준비한 갈고리에 바다로 떨어졌고.


 


컨터이너가 바다에 떨어지는 소리 들어 본적 있는가? 꽤 무섭다.


 


눈 앞에서 컨터이너 위에서 물을 쏘던 대원이 아스팔트로 추락하는 것을 봤다. 곧 죽봉이 날아들었고....


 


이렇게 전쟁터에서나 자주 등장한다는 아드레날린의 흥분을 실컷 겪고나서 나는 제대를 했다.


 


나는 왜 나의 군생활을 이야기 하는가?


 


너무도 명예롭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안그랬는데 지나보니까 그렇더라. 우리는 인내했고,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고통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게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둔 공권력 최말단의 비극이었고 이 비극은 나에게 명예로 남아 있다.


 


권력이 극단적인 물리력으로 대드는 세력에 대해서 인내하고 관용한다는 것.


세상에 이것 만큼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는가?


 


'약자에게 약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의로운 행동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기만한다. 그걸 때로는 정신승리법이라도고 부른다. 지금은 아무도 쇠파이프를 들지 않는다. 아무도 중앙매체에 나와 대통령을 조롱하지도 않는다. 다만, 자기들만의 골방같은 매체에 갇혀 자신을 기만한다.


 


"이명박 정권이 불쌍하다"


 


"2년을 못넘길 것이다"


 


노무현정부에 쇠파이프를 들고 저항했을때는 분명 대의가 있었을 것이다.


대의가 살아 있으면 권력의 탄압이 강해지면 저항도 같은 강도로 강해져야 한다. 그런데 어떤가? 쇠파이프들고 노무현퇴진을 외치고 노무현을 조롱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자신들끼리 토론회랍시고 모여서 정신승리의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있지 않는가?


 


"이명박은 노무현 시즌2일 뿐이다" 이렇게..


 


내가 지옥같았지만 명예스러운 군생활의 끝에 내린 결론은 진보, 보수의 옳고 그름이 아니었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 이게 결론이다.


 


세상을 가진 권력은 약자에게 약해야 한다.


세상을 바꿀 진보는 강자에게 강해야 한다.


 


이 원칙만 있으면 민주주의, 개혁은 자동으로 이루어 진다.


 


우리 자기기만은 그만하자. 현실적인 권력의 방향은 한나라당의 장기집권을더욱 공고히 하고 있는데 겨우 세상에 한 발짝 나온 유시민을 표적 삼아 


"다시 노무현으로 돌아가는게 옳은거냐?"


라며 개꿈 꾸고 있다.


 


우리는 인간이다. 인간은 한 없이 나약하다.


그래서 우리는 정신적으로는 이명박에게 가혹해도 현실적으로는 전혀 그를 막지 않는다. 왜냐면 "강자한테 약하"거든.. 그걸 또 인정하기 싫으니까 자기들끼리 모여서 "노무현이나 이명박이나 똑 같다" 며 서로 공감하고 등 두드린다.


 


기만적인 이런 부류들이 다시 "약자에게 약한" 관용의 정권이 들어서면 다시 양지로 나와 쇠파이프를 들고, 모욕의 펜대를 들고 "관대한 권력"을 조롱할 인간들이다.


 


사회를 발전시키고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건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그건 각 개인의 인간적 성숙, 인격이다.


 


먼저 우리의 격이 얼마나 낮아서 강자에게 약하면서 또 그걸 기만하는 자기연민에  흠뻑 빠져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이명박정권의 억압에 행동으로 항거하지도 못하는 지금,  나는 내가 너무 부끄럽고 처참하다" 


 


여러분들은 안 부끄러운가?


다들 어찌 그리 당당하신가 모르겠다.


 


난 부끄럽고 처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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