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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15일


핑키핑키


 



 


1997년 겨울 어느 날, 나는 피카디리극장 앞을 마냥 서성이고 있었다. 한 손엔 책 한권을 꼭 쥐고서. 무슨 책이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뭔가 있어보이는 류의 제목이 달린 책이였으리라.


 


만나기로 한 사람은 온통 까만 옷을 입고 나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낭패가 있나. 주말 오후의 극장 앞은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과 영화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그해 유행이 까만 옷이였음을 깨달은 나는 단지 그 힌트만을 받아 놓은 내 자신이 한심해졌다.


 


이리저리 눈을 굴려 보니 그래도 눈에 들어오는 몇 사람이 있었다. 나보다 한 살 어리다고 했으니 갓 스무살 쯤 되어 보이고, 누군가를 찾아 나처럼 눈을 굴리고 있는 까만 옷을 입은 사람이 너 댓 눈에 들어왔다.


 



 


‘가서 한 번 물어볼까? 만약에 아니면 괜히 이상한 사람이 될텐데... 에잇, 그냥 기다려보자. 나처럼 책을 들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니, 내가 안 찾아도 날 찾을 수는 있겠지.’


 


이렇게 마음 먹긴 했지만, 잠시 동안 난 꽤 불안했다. ‘그냥 날 외모만 보고 가버리면 어쩌지?’


 


‘당신이 내가 찾는 그 사람이냐?’고 물을 용기도 없이, ‘나를 발견하면 찾아주겠지.’ 하는 확신도 없이 그렇게 20여분을 더 기다렸다. 그 동안 내가 눈여겨보던 사람들은 다른 누군가를 만나 자리를 떴고 그 동안 또 다른 까만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내 눈 안에 들어왔다.


 


‘어쩌지? 영화는 곧 있으면 시작할텐데.’ 난 영화 시간이 되어도,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그냥 집에 가리라 마음먹었다. 하루 전날, 수업도 빼먹고 와서 사놓은 예매표였지만, 환불받을 마음도 없었다. 어차피 영화는 핑계일 뿐이였고, 예매표를 사놓은 후부터 내가 느낀 설레임은 영화 한편의 가치와 비할 바가 아니였다.


 


문득, 내가 내 앞만을 주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내 뒤에도 사람들이 있었다. 한 5m 쯤 뒤에 온통 까만 옷을 입은 아가씨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적으로 난. 저 아가씨면 참 좋겠다는 생각과, 저렇게 괜찮은 아가씨가 나올 리가 없잖아 하는 생각이 동시에 스쳤다. 그리고 다시 앞을 보았다.


 


‘혹시 별이별님 이신가요?’ 금방 눈이 마주쳤던 그 아가씨가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렇게 누군가를 만났고 물론 이 이후의 스토리도 있다. 하지만 그 이후의 모든 기억을 다 합쳐도 그 첫 만남의 기억만큼은 되지 않는다. 그 아가씨와 난 그렇게 어색한 첫 인사를 했고, 같이 영화를 봤다. 유니텔에서 처음 만나고, 피카디리에서 실제 처음 만났다는 게, 그날 봤던 영화가 하필이면 [접속](한석규, 전도연 주연. 유니텔에서 만나 연인으로 발전한다는 내용. 피카디리 극장앞이 클라이맥스 배경)이였다는 사실과 맞물려 나에겐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수단은 차고 넘친다. 인터넷, 네트워크, SNS, 메신저, 모바일,,, 최근 10년을 주름잡은 IT의 화두가 ‘Connection’ 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수단이 점점 가벼워진 만큼 그 연결의 무게 또한 더해왔을까?


 


몇 년을 이웃으로 같이 살았어도 얼굴도 모르고 살고, 자그마한 주차시비조차 반드시 우격다짐으로 마무리되고야 마는 지금 우리는, 연결망의 복잡성 속에 매몰되어 그 연결의 두께 또한 실낱처럼 얇게 오그라들어버렸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단지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그만이게 됐지만, 우리의 만남들은 딱 그만큼의 불편함조차 불편함으로 느껴지게 할 만큼 그 무게를 잃어버린지 오래다.


 


이미 알고 지내는 사람이 보낸 메일이 아니면, 모두 스팸메일일 뿐이고, 전화번호부에 기록된 사람이 보낸 메시지가 아니면, 모두 스팸메시지일 뿐인 시대. 딴지는 Connection 이전에 만남이, 만남 이전에 사람이 존재한다는 그 진실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필요한 것은 오직 그 누군가와의 텔레파시 뿐.


 



 


텔레파시 베타테스터로 남녀 각각 300분을 모시고자 한다. 팟!을 날리시라. 만남이 있을지니.


 







남녀 각 300! 텔레파시 베타테스터 모집  



 


영상편집 및 모바일 및 PC수리 및 네트웍설비 및 출세목적 총수님 커피 담당
핑키핑키 (pinkypinky@ddanz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