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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 정치지형에서 민주, 진보 진영 지지자들이 고통받는 부분 중 하나가 진보, 보수 2분법에 익숙 해있기 때문이다. 이 2분법은 보수 진영에는 유리하고 민주진영과 진보진영 둘 모두에게 괴로울 뿐 아니라 해롭다.

민주 진영 지지자 중에 많은 사람이 자신이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지녔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진보진영으로 분류되는 정당에 투표하고 있다.

이 글은 대한민국 정치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정치지형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생각되어 쓰게 되었다.

대한민국 정치지형은 위, 촉, 오처럼 3분 된 지형이다. 보수, 진보가 아닌 보수, 민주, 진보로 3분 되어있다. 선, 악이나 옳고 그름을 떠나 대한민국 정치지형은 초한지가 아니라 삼국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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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진영, 진보 진영

‘민주당과 민노당 사이에 한강이 흐른다’는 권영길 대표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수와 진보 양분론은 대한민국 정치에서 유효한 분류였다. 실제 상황과 관계없이 많은 사람이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이 양분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치 전문가 집단에서도 보수와 진보로 정당과 정치인을 분류했다. 인식은 자주 실제를 넘어선다. 국민들의 인식이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을 규정해왔다. 인식에 의한 분류와 규정은 생각보다 강력한 것이어서 쉽게 바뀌지 않는다.

 

2020년 총선까지도 보수-진보 이분법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2017년 대선을 기점으로 2018년 지선이나 2020년 총선의 과정과 결과는 민주 진영과 진보 진영이 다른 진영임을 보여준다.

지난 대선 때 ‘굳세어라 유승민’이라는 구호를 비롯해 진보 진영에 속한 정의당의 적은 종종 미래통합당이 아니라 민주당이었다.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미래통합당에 갈 표는 가져올 수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민주당에 갈 표는 가져올 수 있는 표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던 정의당이었다. 미래통합당을 때리면 적은 표일지라도 가져올 수도 있겠지만, 민주당을 때리면 가져올 수 있는 표보다 잃게 되는 표가 훨씬 많다는 것을 정의당은 몰랐다.

 

이번 총선 결과가 확실하게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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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쪽에서는 거대 양당의 폭거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 말하겠지만 거대 양당의 폭거(거대 양당의 폭거라는 말에 전혀 동의할 수 없지만, 폭거라고 할 수 있다면)를 저지르는 상황에서 ‘저들이 폭거를 저지른다. 우린 억울하다’고 목소리만 높일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어떻게 하면 의석 하나라도 더 얻어 자신들이 실현하고 싶은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것이 ‘책임 있는 정당’이 할 일이이다. 하지만 정의당은 현실적 고민 없이 ‘우리는 원칙을 지킨다’라는 편리한 보호막 뒤에 숨었고 지역 1석, 비례 5석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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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총선에서 민노당이 13.2%를 득표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16년간 진보진영의 역량은 발전은커녕 퇴보했고, 대중적 기반 또한 축소되었다는 걸 보여준다. 아쉬운 일이다.

주진형 씨가 말한 대로 “말하고 자기만 기분 좋은 얘기를 했을 뿐이지 정치적으로는 아무 실현 가능성이 없는 말만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심상정 대표의 정무적 판단 능력은 여러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

1997년으로 돌아가 보자. 그 당시 대한민국은 IMF 외환위기라는 유례없는 경제 위기를 맞이했다. 그로 인해 김영삼 대통령과 집권당인 신한국당(이후 한나라당)의 인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대선 후보 경선 이후 한나라당의 예비후보였던 이인제 씨는 경선불복 이후 독자 출마했고, 이회창 후보는 아들의 병역문제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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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전체의 행복이나 불행을 떠나 이회창 후보 입장에서만 바라보면 이보다 악재가 겹칠 수 없었고, 김대중 후보의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호재가 계속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김대중 후보는 열세였고, 결국 본인이 정치를 처음 시작했을 때 싸웠던 박정희 독재정권의 핵심인사 중 하나였던 김종필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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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고도 김대중 후보는 고작 100만 표를 이겼을 뿐이다. 득표율로는 1.6% 차이다. 당시 이인제 후보가 500만 표 가까이 득표를 했으니 만일 이인제 후보가 독자 출마하지 않았다면 김대중 후보는 400만 표 혹은 그 이상의 표 차로 완패했을 거라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보수 진영에 비해 민주, 진보 진영의 득표력은 형편없이 허약했다는 사실이다.

 

허약한 쪽은 연대할 수밖에 없다. 민주 진영은 김대중 후보를, 진보 진영은 권영길 후보를 각자 내고 갈라졌지만, 지지자들은 전략적 투표를 했다. 진보 진영 지지자들은  김대중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 실제로 자신이 진보 정치를 지지한다는 사람의 숫자보다 권영길 후보의 득표가 적었다.

 

형편없이 허약했건 70만 표 차건 1표 차건 이긴 건 이긴 것이다. 다들 민주, 진보 진영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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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선에 민주, 진보 진영은 다시 한번 승리를 거둔다.

 

노무현이라는 괴상한 정치인(이건 대단한 칭찬이다. 노무현은 기존 정치적 문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권을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의 존재, 노사모라는 전례 없는 정치인 팬클럽의 존재, 마지막으로 정몽준의 초대형 삽질이 합쳐지며 민주, 진보 진영은 다시 한번 100만 표 차이로 승리하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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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리는 97년 대선 승리와 표 차이는 비슷하지만, 내용은 다르다.

 

DJP연합처럼 보수 진영 인사와 손을 잡기는커녕 정몽준 씨가 막판에 등을 돌렸고, 이인제 씨처럼 보수 진영 인사가 독자 출마해서 보수 진영 표를 빼앗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97년과 비슷한 표 차를 거두었다.

5년의 집권을 통해 민주 진영의 실력이 그만큼 성장한 것이다.

 

진보 진영도 97년에는 1.2%를 득표했지만 2002년에는 3.9%를 득표했다. 이걸 2.7% 성장했다고 바라볼 수도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3배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다.

 

불과 2년 뒤 총선에서 민노당이 13.2%를 득표했다는걸 감안하면 2002년 대선 때도 진보 진영 지지자들의 전략적 선택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물론 2004년 민노당의 득표에는 민주 진영 지지자들의 전략적 선택도 있었다고 본다.

2020년 총선에선 전략적 투표가 거의 없었고 정의당 득표가 9.6%라는 것까지 종합해 판단해보면 대한민국에서 진보 진영 지지자는 대체 7~10% 선이라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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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사람들이나 지지자들이 정의당이 거대 양당의 희생양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런 부분이다.

 

실제 지지율대로 따지면 30석 가까운 의석을 얻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6석을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소선거구제의 문제지 거대양당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정의당의 문제 인식 또한 잘못된 면이 있다.


진보 진영의 독립
 

정당이 비례후보 1석을 얻기 위한 최소 득표는 3%이다. 3%를 득표하면 비례후보 1석을 얻을 수 있다고 바라볼 수도 있지만, 국민 중 일정 부분을 대표할 자격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바라볼 수도 있다.
 
이전까지 진보 진영은 수많은 목소리 중 하나에 불과했지만 2002년부터는 유의미한 대표성을 지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의 목소리에 불과할 때는 대표성을 가진 다른 목소리에 섞여 들어갈 수밖에 없지만, 3% 득표로 대표성을 가지게 되는 때부터는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더 이상 민주당의 그늘에 머물 필요가 없다. (이전에도 민주당의 그늘에 머문 적이 없다는 의견 또한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진보 진영으로 통칭되던 상황에서 민주당이 진보 진영의 대표 노릇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진보 진영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후부터 민주 진영과 진보 진영은 본격적으로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한다. 민주당과 민노당은 사사건건 대립했고, '민주당과 민노당 사이에 한강이 흐른다'던 민노당은 한나라당과 공조를 할 수 있다는 말까지 했다.

국민 스포츠라는 노무현 때리기에 민노당도 본격적으로 가세했다.

 

한나라당에서는 참여정부가 반시장적 좌익정부라고 비난할 때, 민노당에서는 참여정부는 친재벌 정부이며,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한다며 손가락질했다. 진보 진영의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은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 때 극대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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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떻게 이라크 파병을 할 수 있는 거냐, 왜 한미 FTA를 맺느냐. 도저히 용납할 수 있다며 목소리 높여 비판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민주 진영과 진보 진영은 다른 진영이니 의견이나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정치인들도 같은 진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다.

같은 편이라 생각했던 이들의 공격은 더욱 아프고, 분노하게 된다. 민주 진영과 진보 진영의 지지자들 또한 상대 진영을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쏟구치는 분노와 함께 인지부조화 상태에 빠져들었다.

서로 같은 진영이라는 의식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민주 진영과 진보 진영의 방향은 다르다.

 

민주 진영 사람들은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던 사람이 많다. 7-80년대에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제도권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된 사람들은 주로 민주 진영에 몸을 담았다.

 

70년대 반독재 투쟁을 하던 김대중이나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한 노무현, 문재인, 이해찬, 유시민, 임종석, 우상호 등 대부분이 민주화 운동 경력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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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진영 사람들은 노동 운동 쪽 인사들이 많다. 주로 노동 운동을 하다가 제도권 정치에 몸을 담게 된 이들이다.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등 노동 운동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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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잘라 한쪽은 민주화 운동만 했고 한쪽은 노동 운동만 했다고 말할 수 없다. 민주화 운동과 노동 운동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 둘을 딱 잘라 분류할 수도 없지만 두 운동이 다른 경향을 가진 건 분명하다.

민주화 운동은 대한민국 전체의 정치 제도를 민주화하자는데 초점을 맞춰져 있었지만, 노동 운동은 노동자들의 권리와 권익을 향상시켜 나가자는데 중점을 두었다.

 

7-80년대에는 이 두 가지를 분리해 바라보는 것이 큰 의미가 없었고 운동을 하던 두 주체가 힘을 합쳐도 독재 정권에 대항하는 데 턱없이 힘이 부족했기 때문에 두 운동은 서로 기댈 수밖에 없었다. 허나 이후에 두 진영이 각자 역량을 키우게 되면서 점점 멀어지는 것은 자연스런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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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서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달랐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