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 그러니까 1598년 11월 19일(음력)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 그 유명한,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戰方急愼勿言我死)”
란 말이 나온 거다. 이후에도 꽤 ‘광범위’하게 전래돼 정설로 인정된 걸로 보인다.
당시 기록을 잠깐 살펴보자.
이원익이 말하였다.
"이순신의 아들 이예(䓲)가 지금 충훈부 도사로 있는데, 그도 얻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왜란 때에 이순신이 죽게 되자 이예가 그를 부둥켜안고 흐느꼈는데, 이순신이 적과 대치하고 있으니 죽음을 알리지 말라 운운하였습니다. 그러자 예는 죽음을 알리지 않고 여느 때처럼 전투를 독려하였습니다."
- 인조 9년 4월 5일 승정원일기 중 발췌
이원익이 이순신 장군의 최후를 묘사한 대목이다.
이원익은 60여 년 동안 관직에 있으면서 영의정만 5번을 한 인물이다. 인조가 인조반정 직후 제일 먼저 한 인사가 이원익을 데려와 영의정 자리에 앉힌 거였다(그제야 인심이 수그러 들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이원익은 임진왜란, 정확히 말하자면 정유재란 이후 이순신이 한양으로 압송됐을 때 이순신을 변호한 인물이다(이순신의 후견인 역할을 자청하던 류성룡도 이때는 선조 편을 들었다). 이원익은 이순신을 죽이는 자리에 혼자서 좌중을 장악했는데,
“이순신을 죽이는 건 쉽다. 그런데 이후의 대안을 먼저 말해 달라. 중요한 건 그 대안에서 원균은 빼고 말해 달라.”
“원균은 왜 빼는 건데!!”
“여기서 전라 좌수영과 전라 우수영을 가본 사람 있습니까? 나는 현장을 가봤던 사람입니다!!”
(이원익이 사람 보는 눈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순신과 친분이 있어 변호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원익의 서자와 이순신의 서녀는 결혼한 상태였다. 즉 사돈지간이었던 거다. 이런 사사로운 관계를 떠나도 이때의 결정 하나만으로 이원익이 나라를 구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말에 ‘적(敵)’이란 말은 없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게, 판옥선은 왜선에서 그 안을 보기가 어려운 높이였다. 각종 총통의 사거리를 생각한다면 쉽게 접근하고 마시고도 힘들었을 거다.
조선 수군이 이순신 장군의 사망을 알았더라도 이걸 적에게 알릴까?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게 아니라 아군에게 전사 소식이 전해지면 사기가 떨어질 수 있으니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볼 수 있다(이런 유언을 했다는 전제 하에서의 생각이다).
문제는 이순신 장군의 죽음을 두고 수많은 이설(異說)이 나왔다는 거다. 너무도 드라마틱한 죽음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엄혹했던 정치환경 때문일까?
아무튼 이순신 장군의 죽음을 둘러싼 수많은 설들이 튀어나왔다. 그 설들을 하나씩 설명해 보려 한다. 그저 이설(異說)을 하나씩 확인해 보자는 거다.
➀ 이순신 장군 위장병 사망설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의 투병일기' 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아프다’란 말이 많이 나온다. 세숫대야 한 가득 위액을 토해 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고, 툭 하면 몸져 누웠다. 계사년(1593년) 무렵에는 거의 죽음의 문턱을 넘은 듯 보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순신 장군은 호방한 무인이지만, 장군의 행적을 보면 깐깐한 원리원칙주의자 혹은 관료의 모습에 더 가깝다. 이런저런 신경 쓸 게 많고, 스트레스도 엄청났을 거다.
난중일기에 '손이 안 좋다'란 말이 수차례 나온다. 이걸 근거로 이순신 장군이 위궤양이나 위산과다에 의한 속병을 앓고 있었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리고 이 병 때문에 사망했을 거란 주장인데, 농담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거다.
➁ 명나라 수군 구출작전 당시 피격설
임진왜란 최후의 결전이라 할 수 있는 노량해전. 한중일 삼국의 수군이 총출동했던 해전이다. 조선 수군은 120척의 함선과 1만 7천 명의 병력을 동원했고, 명나라는 함선 63척, 병력 2,600여 명을 파견했다. 조명 연합수군이 일본군의 길목을 막아섰다.
문제는 '명나라 수군이 조선 수군의 발목을 잡았다'는 주장이 나온 거다.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동했던 안방준(安邦俊)은, 전해들은 것들을 모아 임진왜란 직후 책으로 펴낸다. 바로 '은봉야사별록(隱峰野史別錄)'이다.
이 책은 임진록(壬辰錄), 노량기사(露梁記事), 진주서사(晋州敍事),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게 임진록, 안방준이 가장 존경하는 조헌(趙憲 : 칠백의 총의 바로 그 조헌 선생이다)에 관한 기록이다. 진주서사는 2차 진주성 전투에 대한 이야기이고, 노량기사는 바로 그 노량해전에 관한 건데, 문제는 이 책에서 이순신 장군의 죽음을 좀 다른 식으로 전했다는 거다.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함대가 일본 수군에게 선제공격을 하는데, 이때 명나라 수군이 일본 수군에 포위됐다. 명나라 진린 제독의 몸이 상했다가는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 그를 구출하기 위해 이순신 장군이 일본 수군 앞에 나섰다는 거다.
당시를 은봉야사별록에는 이렇게 기록했다.
"송희립은 선상에서 장사들과 함께 사력을 다해서 활을 쏘아 무수히 적을 죽였다. 적선은 흩어졌다 모였다를 반복하며 송희립이 있는 곳을 알고 일제히 집중사격을 가했다. 총탄이 갑옷을 입고 있는 위 부근에 빗맞아 이마에 맞고 기절하여 쓰러지자 좌우 군사들이 이순신에게 송희립이 총탄에 맞았다고 말한 순간에 크게 놀라 일어서다가 총탄에 옆구리를 맞았다."
"선상의 병사들이 크게 놀라며 이순신 장군이 총탄에 맞았다고 말하자 기절해있던 송희립이 이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다행히도 이마뼈만 상하였을 뿐 뇌는 다치지 않았다. 다시 힘을 가다듬어 얼굴과 옷깃에 묻은 선혈들을 닦아내고 옷을 찢어 이마를 싸매고 상장좌(上將座)에 오르니 이순신은 이미 전사했고 아들 회가 울음을 터뜨렸다"
일본 수군의 화망 앞으로 들어갔다가 그대로 노출됐다는 거다. 송희립 장군까지 같이 언급한 건 이순신 장군 한 명 만을 노린 ‘저격’이 아니라 ‘화망’의 집중사격에 노출됐다는 기록을 말하기 위해서다. (이순신 장군을 노리고 저격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만약 총탄에 의한 전사가 사실이라면 저격 보다는 집중 사격에 노출됐다거나 흐르는 유탄에 피격됐다는 게 더 가능성이 높다)
기록을 계속 살펴보자. 명나라 수군을 구출하기 위한 조선 수군의 무리한 진출 때문에 송희립은 중상, 이순신 장군은 다음 날 새벽 2시 경 전사. 이 밖에도 이영남, 박덕룡, 고득장, 이언량 등이 전사한다.
은봉야사별록의 주장은 간단하다.
“명나라 장수를 구하겠다고, 조선의 영웅이 대신 죽었다.”
'신빙성'은 차치하고, 그가 조정과 선조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있었다는 점, 상대적으로 이순신에 호의적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할 거다.
역사와 대조해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다. '야사'라고 치부하기엔,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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