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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5.화요일


정치불패 메리메리


 


어느 게시판에 쓰나 고민하다가


여기다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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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누구는 그랬다만


하지만 그건 종국에 기어이 성공한 소수의 이야기고.


성공을 하기 위해선 실패를 거칠 수 밖에 없는 것은 맞지만


실패한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그것이 인간에, 집단에 꼴배기싫은 흉터를 남긴다는


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내가 짧게나마 살았던 시간을 한 번 끄적여 보려고 해.


 


이것은 야권연합론에 반대한다 ,는 글을 쓴 남가좌동님에 대한 답사이기도 해.


진보는 실패하는 것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니


패배를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는 정도를 가자,하는 남가좌동의 이야기.


 


길을 가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힘을 얻으려면


충분한 승리의 경험이 필요하다.


적어도, 너무 심하게 계속해서 패배하진 않는 경험이.


 



 


1.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푸르른 꿈을 처음 꾸기 시작한 게 언제인지 기억은 안 나.


아주 어렸을 때 같고, 동기는 평범했어.


글 잘 쓰네 하고 어른들한테 칭찬 몇 번 받으면서 은연중에 뭐 작가가 될까 생각 한 번 쯤 안 해본 사람 없을 걸.


그 달콤한 칭찬 몇 마디에 속아서 어리석게 온 이십대 전부를 글연습에 몽당 쏟아붓고 서른 자락이 되도록 제대로 된 직장도 없이 빌빌대고 있을 정도로 순진하고 멍청한 축들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지만. 아이고.


 


2.


어쨋든 어린 시절에 결심했고 글쓰는 사람이 되려고 국문과에 갔어.


국문과 가면 누가 글쓰는 걸 다 가르쳐 주는 줄 알았지.


들어갔더니, 그래 물론 아무도 안 가르쳐 주더라.


그래도 갈이 글 쓸 글동무 몇은 만날 수 있었으니 영 나쁜 선택이었다곤 생각 안 해.


 


처음엔 소설을 썼어, 시는 못 쓰겠다 싶어서.


그 땐 작가는 세상에 소설가나 시인밖에 없는 줄 알았거든. (우..우...웃지 마 -_-;;;)


뭐 어쨋든. 근데 쓰다보니 존나 어렵더라고.


빡세게 고민도 하고 머리도 져 뜯어 봤지만


뭐 그게 금방 느는 것도 아니고.


 


근데 그렇게 삽질하면서도 자만이 있었던게,


야, 내가 그래도 글 쫌 쓰는데


소설은 어려워도 드라마 '따위'는 잘 쓰겠지, 했던 거야.


그래서 드라마 대본 공부를 시작했다.


재밌더라. 쉽다(?)싶기도 하고.


그 때부터 꿈을 방송작가로 전향했는데


(글 쓰는 사람이 되는 게 목적이었으니 소설가든 방송작가든 상관은 없었던 듯.)


사실 방송작가면 전부 드라마만 쓰는 줄 알았어. (저 뭐 병신, 이런 야유가 들린다)


나중에 아닌 걸 알았지만 그냥 쭈우욱 달렸지.


바꿀 이유가 별로 없어서. 또 지나치게 성실(?)해서 한 번 정하면 그냥 앞 뒤 안 보고 달리는 축이라.


뭣보다, 이게 배워보니까


정말 재밌고. 기쁘고. 신나고. 즐거웠다.


 


얘는 뭐 좃도 모르고 글을 쓴다고 깝쳤을까 의문이 들 수도 있겠는데


어렸어. 단순했고. 에너지는 넘치고. ㅋㅋ


 


3.


그 때 세운, 이십대 중반까지의 계획은 다음과 같았어.


4학년 1학기 때 일 년 휴학해서 죽어라 글만 쓰고


한 학기 남겨놓은 채 취직하고 졸업하고


사회생활 쫌 하다가 이십대 중반 넘긴 다음엔


...김수현이 되자.


 


너무 낯뜨거워서 지금 쓰면서도 손가락이 시뻘개질라 그런다.


그래, 김수현,부터 막혔어.


그 전엔 뭐 술술(? 안 될 이유도 없는 계획이었지)이었지만.


너무 비웃지 말아!!!


무모하게 순진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열심히 써제끼지도 않았을 것이야. 흑.


 


4.


예비된 첫 번째 실패-김수현이 된다-를 하고 나선 말이야,


그래도 그걸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게 (지금 역시 실패가 아니라고 생각해. 오류 수정,삭제,랄까)


엠비씨에서 무슨 시트콤작가 공모전 같은 게 있길래 냈더니 떡 붙고


(이름은 거창한데 그냥 막내작가 뽑는 거였다. 대본으론 뚫었는데 면접에서 탈락. 성격이 더러운 걸 들켰던 걸 거야, 아마. 얼굴이 더러웠다고 생각하는 건 비참하니까 아닌 셈 치자.)


다음에 바로 영화사라는데 대본을 냈더니 붙기도 하고.


3개월 정도 일하는 거였는데 고 일 끝나고 나니 어디 드라마회사에 보조작가로 뽑히기도 하고.


글 쓰자고 손 내미는 데가 꾸준히 생기더라고.


이 바닥 돌아다니다보니


아, 당선되고 능력좋다고 무조건 메인으로 치고 올라가는 구조가 아니구나,를


알았던 정도의 시기기 때문에


김수현은 되지 못했지만 만족하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


 



 


 


5.


처음 본 엔터테인먼트, 영화 제작사 뭐 이런 회사 경험은


경력이고 뭐고를 생각하기 전에


그냥 신기하고 신나고 재밌는(?) 일 연속.


처음 들어간 영화사 측근은 무술감독 이름을 달고 있었으나 조폭이었고


(서울서 활동하는00단 조폭 대장을 위한 기동대(?)같은 것이었단다.


 지금 생각하면 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싶지만 그 날렵함과 폭력을 행하는 강도, 민첩함을 보면 믿을만하다 싶기도 했었고.)


(목격은 못했지만 사기치던 사장, 매니저 등이 숱하게 우리 뒤에서 얻어 터졌다고 한다. 탁자로 맞았다나 손바닥으로 장풍을 맞았다나.. 소파에 묻은 피는 작가들이 놀랄까봐 얼른 닦았단다)


영화 대본을 쓴다는 목적으로 20대 초중반 순진한 처자의 몸으로 룸싸롱에도 놀러가 봤으며


(아무렇지 않게 남자들이 여자한테 대고 '가슴만 크고 배에는 튜브 꼈어?' '함 대 주던지.'같은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은 그 때 그곳이 아니었으면 볼 수 없었을 거야.)


어떤 투자자라는 놈을 같이 만나서 같이 설득하자고 술자리에 합류했다가


사람들이 은근슬쩍 사라진 뒤 번쩍 어깨에 들려서 납치당할 뻔도 해 봤고.


영감님들이 아무렇지 않게 같이 앉아서 손을 주물럭거리는 정도야


사회생활하면서는 다른 여자들한테도 너무 흔해서 적기도 진부한 얘기라는 건 지금와선 알지만 학교만 다닌, 연애경험도 별로 없는 몸으로서는 매일이 별세계에 있는 것 같은 나날이었어.


 


6.


다음에 들어간 드라마 회사는 거기에 비하면 양반이었지.


아니, 양반 수준이 아니라 아주 건전하고 성실한 구조의 조직이었어.


나를 포함한 보조작가 셋은


많은 돈을 받진 못하지만 일 주일에 두 세 번만 회사에 잠깐씩 나가서


사장님과 글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면 됐고


일 주일에 한 개씩 미니시리즈 시놉시스를 작성해 제출하면 됐다.


회사는 첫 드라마 제작을 마치고 연예인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막 합병해


급속도로 확장을 하고 있는 중이었어.


 


새끼 매니저 십 여남 여 명을 대거 뽑아 교육시키기도 시작했고


시작하는 연기자들 연습도 아주 열심히들 시키고 있었고.


회사는 활력 그 자체였지.


사장은 3년 계약을 하자고 계약서를 써 줬어.


한 곳에만 매여있기에 어쩌면 좀 긴 시간이긴 했지만


아무 일도 없이 떠도는 작가지망생 선배들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목도하기 시작했던 터라


그런 고민은 사치라고 생각하며 도장을 찍었어.


어느 회사가 새끼작가따위한테 무려 계약을 해 주겠어?


어떻게 보면 무척 행운이었을지도 몰라.


거기까지만 두고 본다면.


 




 


7.


그 다음에 닥쳐온 실패들은, 명백한 실패였지만


거창히 실패,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평범하고 당연하고 조용하게 닥쳐왔어.


우선 삼사개월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써내려간 영화 대본에 대해선


단 돈 한 푼 못 받았지.


처음부터 계약서를 제대로 쓰고 들어간 것도 아니었으니 뭐, 그 정도는 사기도 아니고


멍청해서 눈 뜨고 당한 정도라고 봐야되나.


스크린에라도 걸렸으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고.


작품 한 번 만들어보고싶은 의욕에 돈 안 드는 순진한 작가를 뽑아 일을 시켰던 감독님은


계속 의리를 강조하며


"우리 영화, 언젠간 꼭 돼야지!"


를 부르짖고 함께 고생해주길 원했고.


차비도 없는 우리에게, 글을 쓰는 것 외의 다른 필요를 위해 나서서 뛰어달라는 건


몹시도 염치없는 부탁이었지만


작가질하면 처음엔 돈 못 받는 게 당연하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터라


이런 천대나 부당한 대우들이


부당하다고 생각도 못했어.


 


그리고, 드라마회사?


...내가 들어간 달부터 회사가 기울었다. -_-


많지 않은, 그러나 꼬맹이 작가들에게 결코 적지 않은


한 달 백만원 돈을


나는 십 개월동안 한 번도 받지 못했어.


 


그러면 난 왜 돈도 못 받으면서


주구장창 그 회살 붙어있었느냐...?


 


8.


쨘 하고 김수현이 되리라는 호기로움은


기세가 꺾인지 이미 오래 된 후였고-


내가 그 바닥에 발을 붙이면서 (뭐 발을 붙였다고 할 수나 있을까. 한 것도 없는데, 썅)


본격적으로 목도하기 시작한 건


기똥찬 작가정신으로 작품을 구상하는 작가나 감독,


작품의 완성을 위해 혼을 불어넣는 스탭들


...이 아니라.


돈을 줄까 말까 간만 보면서 사람들 똥줄 태우는 돈 많은 회장님.


어떻게든 일을 처리해 볼 생각에 돌아서면 바로 거짓말을 하다가 하루에 백 수십번 씩 걸리는 사장.


패는 사람. 맞는 사람.


주둥이만 현란한 사기꾼. 사기꾼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주둥이만 현란한 사람.


그리고 가난한 작가. 가난한 작가. 가난한 작가들..


 


그래, 난 그냥 내가 가난한게


내 주변의 다른 작가들이랑 똑같애서


돈을, 원래 그렇다더니 역시, 못 받는 것 뿐이구나, 했던 거야.


할 수 없지 뭐, 정도의 감각.


그리고 자신의 실패와 주변인의 실패를 통해 나한테 일어난


실패의 내면화.


나가도 별 볼 일 없으니 돈 안 줘도 주저앉아 있자.


노력해봤자, 도전해봤자 뭐가 있을까?... 그런 생각들.


 


나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는지 몰라.


주변의 작가들, 아니 작가 지망생이란 이름으로 굴러다니는 그들의 생활은


정말 짜증 그 자체였지.


늦은 나이가 되도록 시집 장가도 못 가고


끊임없이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이용당하고 착취당하면서도


기회 비슷한 거 한 번이라도 준다면


또 속을 줄 알면서도 달려가는,


그리고 아주 틀림없이 다시 실망하는.


근데 등신같이 순진해서 계속 고용당하고, 사기당하고, 또 자빠져서 써제끼고 앉았는


이 불쌍한 작가놈들. 시발.


 


내가, 그리고 나와 함께 했던 이들이


충분히 출중한 실력이 없어서


바닥을 맴도느라 지랄맞은 시간들을 보냈던 것 뿐인지도 모른다.


실력 괜찮고 현명한 축들은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아도 좋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절박함을 이용해


희망의 가면을 쓴 가짜를 들이밀고 어김없이 뒷통수를 내려치던


개같은 사기꾼들의, 종이로 만든 똥구멍처럼 더럽고 가벼운 주둥이들은


무려 온 생을 바쳐 글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덤벼든 열정을


후려쳐서 시궁창에 다 처박는 걸


작가들이 글 쓰려는 것, 그 이상의 열정으로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9.


뭐 저 후로도 얻어터지고 가난하게 굴고 했던 경험은


나열하면 끝없지.


재밌는 건, 진짜 사기를 칠 준비가 된 놈들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아무 것도 없는 놈이 아니라


어느 정도 성공해서 분명한 이름이 있으나 지금은 약발이 좀 덜하게 된.


다시 말 해 '한 물 갔다기엔 너무하지만


그렇다고 현역이라고 보기엔 아주 좀 빛이 바랜' 사람들이더라는 거야.


 


유명한 모 작가는 불러다가 계약을 하자 했다.


3달 동안 아침 열시에 출근해서 오후 7시에 퇴근하며


시키는 글을 쓰는 대신에


돈은 안 주겠다는 계약을.


그걸 두고 그녀는 '기회'라고 했다.


 


유명한 모 피디는 불러다가 자기가 키워주겠다며


줄기차게 술자리에 끌고 다녀 댔었다.


같이 등산도 가고


같이 영화도 보자면서.


술자리가 끝나고 집에 갈 때 난 다른 택시를 잡아 타려 했다.


하지만 일행의 분위기에 휩쓸려 같은 택시에 타버렸다.


어김없이 손을 주물렀다.


그리고 자기 집에 내리더니


내가 다시 타고 집에 가야한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몰랐던 양 택시를 보내버렸다.


그가 날 어깨에 떠짊어매고 납치를 하려던 게 아니라 그냥 맥주 한 잔 더 하고 싶었던 것인지 몰라도


나는 그 꼴에 질려서 토가 나올 것 같아 바로 토꼈다.


생각해보면 그런 가운데서도 꾸준히 시놉시스와 대본을 요구하며 일을 시키던 그는


내게 택시비 천 원 한 장 준 적이 없었다.


 


그렇게 착취당하면서도 불안했던 건


진짜 작가가 되기 위해선 더 끔찍하게 착취당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루머들.


여자 작가는 뭐 당연히 피디랑 좀 자줘야 일을 따지, 당연하지 뭐 어쩌니 하는 말들.


정말 그런 요구를 받은 적도 없고 다행인지 주변에서 직접 목도한 일은 아니지만


계속 들려오는 그 이야기들이, 경험도 하기 전에 나를 찌그러뜨렸다.


 


그건 경험치 못한 일이니 차치하고


겪은 일만 말하자면.


 


나는 누구에게서도.


대본을 써서 단 한 푼의 돈도 받은 경험이 한 번도 없다.


내가 데리고 일 할 정도로 솜씨가 없으면 부르지나 말지


계속 여기 저기로 불려가 글을 썼지만


그러나 한.푼.도 받지 못했다.


글 쓰자 제의만 하고 같이 일 하지 않았던 사람 중에서도


돈에 대해 확실히 약속을 사람은


좃도 하나도 없었다.


 


여기에 기름을 부어줬던 건


거지같은 알바.


글로 돈을 못 버니 딴 짓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해서 알바를 했었지.


근데 알바 자체도 거지같았지만


나 자체도 거지같았던게


글을 존나 써야 된다고 스스로에게 아주 경을 치게 채찍질을 하다보니


나는 어느 새 글쓰는 거 말고는 아무 것도 노력할 필요 없다는


어리석은 착각에 빠져있었던 거야.


아이들 언어영역 과외를 해 줬는데


난 애들을 가르칠 공부도, 준비도 제대로 돼 있지 않았던 것 같아.


노력할 생각도 없었고.


 


몇몇 학생들이랑은 그래도 호흡도 맞고 성적도 올려주고 한 적도 있긴 한데


그 왜, 그 유명한 과외 알선업체들 있지?


첫 번째 달 월급 다 뺏아가고


나한테 연락도 안 하고 선생 바꿔버리고


학생이 수업 그만한다고 하거나


테스트 수업(본격적으로 수업 시작하기 전에 미팅 비슷하게 하는 거) 안 받는다고 연락하면


지들만 알고 나한테는 절대 연락 안 한다.


무거운 과외가방 메고 헛걸음 한 게 삼 년 사이 적어도 이삼십번은 족히 될 걸.


일 한 돈의 삼분의 일은 일명 '수수료'로 다 뜯긴 것 같고..


 


어렸던 그 때는 몰랐었어.


그것이 속에 어떤 상처를 남기고 있는지.


진작 알았으면 좀 더 똑똑하게 굴 수 있었을까.


 


 


10.


나이가 들면 기가 꺾이잖아.


말도 안 된 호기도 접혀들고 현실감각도 생기고 뭐 어쩌구 저쩌구.


그런데 난 기가 꺾인 정도가 아니었어.


얼굴이, 마음이 다 찌그러져 버렸다.


누구를 만나도 자신이 없었어.


돈이 없으니 여유도 없었고.


친구들도 생활 수준 자체가 다르고 대화도 안 통하고 관심도 다르고 어쩌고 하니 떨어져 나가고.


내 쪽에서 스스로가 부끄러워 만나기 싫기도 했었고.


그리고 뭣보다, 그렇게 신나던 글쓰기가


고문처럼 변해갔어.


사람도, 돈도, 사랑하는 일도 아무것도 없으니 인생이 그냥 써금써금 생채로 썩어가는 것 같았지.


내가 원래 이렇게 못 썼나, 하는 자책은


글 쓰는 사람이면 언젠가, 어쩌면 항상 품고 사는 감각일지 모르겠지만


그 괴로움이 참 스스로 느끼기에, 공포스러웠어.


이걸 못 쓰면 내 인생 전체가 진짜 휴짓조각이 될 것 같았거든.


 


미실이 그랬다, 공포를 극복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도망치거나, 분노하거나.


에너지가 남았다면 분노했겠고


안 되겠다고 좌절했다면 도망쳤겠지.


하지만 나는 아무 것도 못하고 그냥 주저앉았어.


도망칠 힘도 없었던 거겠지.


나는 계속 글을 썼지만 그건 이제 작가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뭘 해야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어.


아무 의식 없는 상태에서 그냥 관성으로 써내려가고, 관성으로 가난하고, 관성으로 무력했다.


 


그렇게 쓴 글이 좋을 리가, 나아질 리가 없었고.


더 이상 아무 것도 스스로의 인생에 기대가 되지 않았고.


아직 이십대 후반. 많지 않은 나이였지만


나는 더 이상 젊지가 않았어.


에너지 같은 건 속에 어디도 없었더랬고.


아무 계획도. 세울 수가 없었다.


 


아무 것도 아닌 사람.


꽤나 열심히 노력해 온 시간들이었는데 난 그런 사람이 돼 있었다.


또래의 친구들이 어느 회사의 누구, 어떤 일 하는 누구, 뭘로 돈 버는 누구가 되어 있을 때


나는 아---무런 타이틀도 없는, 실체가 없는 유령같은 존재라고.


일을 해도 가치를 인정받을 수도 없고


마음대로 이용당하다 버려져도 호소할 수도 없는 정도의 인간이라고.


스스로 그렇게 느꼈었어.


 




 


 


11.


보통의 이야기라면 이 쯤에서


어떻게 다시 회생했고 희망을 가졌고 하는 얘기가 등장할 거야.


그래서 그들은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짜잔!


다시 용기를 갖고 뛰어들어 기사회생하거나


은인을 만나 새롭게 마음을 다져 승리를 손에 거머쥐거나 하는 사람이


세상엔, 있겠지만.


 


나는 아니었어.


 


다시 용기를 가져?


그럴 힘이 없었다.


젊은 놈이 풀죽어서 그러고 앉아있는다고 누구는 나를 비난했지만


비난이 아프지도 않았다.


그래, 좀 억울해서 눈물은 나더라.


 


맞다. 젊은 놈이.. 아직 새파란 놈이


그러고 있기엔, 이러고 있기엔 억울했을지도 몰라.


좋은 때가 더 '있을 수도 있는데' 말야.


성공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르는데.


 


근데 그게 참. 개소리야, 성공을 해 본 적 없는데다 반복해서 엿만 먹어본 사람한테는.


언젠가 좋은 때가 와? 언젠가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어?


그래, 그럴 수는 있긴 한데 말야.


나이가 들면서


한 가지 경험만 반복해서 하면 말야,


사람한테 상상력이 없어지더라고.


꿈꾸는 것의 구체적인 모습을 상상할 수 없게 되면


더 이상 머리에, 마음에 꿈은 없다.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게 돼 버리니까.


 


12.


이후로 몇 년이 지났고 뭐 여러가지 일이 있었고 상황도 많이 바뀌었고 했는데


간략히 정리하자면


난 이제 내가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별로 생각하지 않아.


 


거만한 소리라고 콧방귀 뀔 줄 모르지만,


나, 그래도 대본이나 시놉 괜찮다는 소리도 꾸준히 들었고


날 탐내던(뭐 작가로서가 아니라 이용물로서 였던 것 같지만) 사람도 꾸준히 있었거든?


the 김수현 급은, 혹은 메인으로 뛸 급에 올라갔던 건 물론, 물론 아니었지만


'노력하면 어쩜 성공할 지도 모르는' 어떤 무리에 낄 정도는 됐던 거야.


 


그런데 다시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할 생각을 하면, 재능이 있고 없고는 신경쓰고 싶지도 않고


그냥 글을 계속 쓸 스스로가 몹시 불행하게 느껴진다.


원래 스무 살의 에너지를 끝까지 가지고 사는 사람이 얼마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될 수 있고 아니고를 떠나서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아' 져 버렸어.


 


그렇게 날 힘나게 하던 열정이


날 불행하게 하는 것으로 변했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 얼마나 슬픈지를 떠들려고


이야기를 시작한 건 아니니깐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헉헉.. 넘 많이 했다. 이게 아닌데!)


 


13.


남가좌동님에게 몇 마디 쓴다는 게 글이 겁나 길어졌네.


하고싶던 말은 요거야.


 


실패를 통해 성공하는 진보, 건강한 분열, 좋다 이거야.


그런데 그걸 위해서 지금 몇 번 더 패배하는 게 뭐 어떠냐고?


 


대한민국 정의는 그 동안 충분히 패배해오지 않았나.


최소 100년.


진보의 패배를 논하면 진보라는 세력이 제대로 된 정치세력으로 성장한 게 얼마 되지 않으니


좀 더 짧다고 해야 하나.


 


어쨋든 약한 사람에게 너그럽고 강한 사람에게 엄정한, 상식적인 사회를 건설하려는 노력이


오만가지 방법으로 상처입고 얻어맞았던 경험이


최소한. 지금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의 시간 동안 계속돼 왔고


정의는 패배하더라, 진보는 힘이 없더라,고 생각하며 살도록 만들기엔 충분했던 거겠지?


 


그리고, 그래,  간신히 십 년.


있는 놈한테 비비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고 목소리낼 수 있는 시절이,


적어도 그런 식의 사회로 회복돼가기 시작한 시간이 간신히, 십 년 있었어.


거의 기적적으로, 너무나 힘겹게 가지게 된 시간.


그 시간도 결국 고꾸라졌지.


두 어르신이 바둥바둥하시다가 원한 만큼 하고 싶던 거 다 못하시고 비참하게 돌아가셨으니.


 




 


이제 우리 국민에게 필요한 경험은 무엇인가.


더 뜨겁게 건전한 정책 토론을 하며 실패하는 진보를 목격해야 하는가?


더 더럽게 사기치며 성공하는 극우를 수수방관해야 하는가?


 


진보의 분열로 지역주의까지 확 극복해 버리자는 남가좌동님의 이야기가


무척 순진하다고 느꼈으나


뭐 이 순간엔 내 얘기도 꽤나 순진한 것으로 느껴지긴 하네.


하지만 패배가 약이 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백 년 뚜드려 맞았는데 뭘 더 맞냐고. 아이고.


 


고만 져야하지 않을까, 이제는?


수구 세력에게 정권을 또 뺏겼을 때 벌어지게 될 오만가지 참상이나 고통도 문제는 문제지만


정의로운 진보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쟁이들한테 싸다구맞는 꼴을


우리 국민들이 그만 봐야되지 않을까.


 


건강한 토론만을 통해 언젠가는 이룩할 그 날의 희망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일이


더 이상, 완벽하게 불가능해질 정도로 지치기 전에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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