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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6.수요일


산하


 


지금도 남아 있긴 한 것 같지만, 오래도록 들르지 않았던 폴리티즌이라는 곳에 발걸음을 했다가, 재미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유려한(?) 가사 바꾸기를 통해 시조를 폼나게 읊어 대며 취흥(?)을 나누는 모습이 있더군요 ㅋ 키득거리고 웃다가 망년회 시즌도 되고 해서 한 번 옮겨 와 봤습니다. 

처음 발단은 어떤 분이 제게 그림을 jpg 화일로 올려 달라고 요청한 데서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대한 제 답글이 이거였지요. 


 




컴맹이 높다하되 산하 아래 맹이로다
올리고 또 올리면 못올릴리 없건만은
도무지 파일 못줄이고 올리기를 멈추네



컴맹의 비애가 듬뿍 담긴 고해성사입니다.  그러나 어떤 무엄한 가객이 산하의 상처에 소금을 포크레인으로 아주 골고루 깊이 알뜰히 뿌립니다.  


 



컴맹이 많다하되 산하아래 밤탱이로다
올리고 또 올려도 올라갈 리 없건마는
도무지 안 되는 거슬 용만쓰다 나자빠지네


 


 


"용만 쓰다 나자빠지네" 같은 문구를 쓴 것은 명백한 도전입니다. 노기를 억누르며 산하는 또 이렇게 준엄한 답시를 보냅니다.  

 


컴맹이 남았을제 섬기기란 다하여라
사라진 뒤면 뻐길데 없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 이뿐인가 하노라


그러자 찔끔한 상대가객은 컴맹론을 얼버무리면서 술판으로 슬쩍 전환합니다. 


막걸리 뚜껑 따서 보내노라 산하뉨께
글쓰시는 책상위에 붓어두고 마시소서
얼큰히 취하거든 내 덕인가 하쇼셔.......


원래 가객들끼리는 이쯤 되면 사과를 받은 것으로 치고 취흥에 몰입하게 마련입니다.  제가 질 수 없지요..... 임을 향한 홍랑의 애틋한 마음을 술독에 빠뜨렸으니 저 역시 황진이를 익사시킵니다. 




동짓달 기나긴밤을 한 허리 베어내어
막걸리 통 속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율전님 만난 밤이었거든 드럼으로 내리라


취흥은 도도해집니다. 밤은 깊고 언성은 높아지며 술잔은 돌고 돕니다.  그러다보니 상대 가객이 내일을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막걸리 돌고 돌제 변기잡고 토하던 나
짬뽕국물에 비운 술이 몇이던가
그 밤에 취흥이 오락가락 하여라...
 

저 기막힌 시어의 선택을 보십시오.  막걸리는 돌고 변기에는 토한다..... 상대 가객이지만 그 절창에 탄복할 뿐입니다.  국어 교과서에 실릴 명구입니다.   그러나 산하는 아직은 변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되레 술 가지고 오라 호령에 산천초목이 떱니다.


서창이 저무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술파는 아줌마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놓고 쌓인 술통을 언제 팔려 하나니



이미 주당으로서의 기세는 꺾이었으나 가객으로서의 흥은 여전한 상대 가객이  산하의 약점을 예리하게 파고듭니다.   아파 아파 마이 아파  




한산도 입에 물고 주방에 홀로 앉아
500cc손에 들고 단 숨에 들이키던 차에
옆에서 마시던 산하님은 안주발만 세우네... 


 





변기를 두려워하던 이가 변기 막힐까봐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안주빨 세운 뒤 변기로 가면 뜷어뻥이 필요하게 마련이지요.  그러나 저는 너털웃음을 웃으며 술꾼이 두려워할 것은 변기만이 아님을 설파합니다.  백두산을 찌르고 두만강을 덮는 산하의 기상은 김종서 장군을 능가합니다.  
김종서 장군의 시조를 살짝 바꿔치기합니다. 



바람은 계산서에 불고 술값은 지갑에 찬데
살기등등 주모앞에 교통카드 들고 서서
외상값 내리긋는데 거칠것이 없어라


그러자 다시 주춤한 상대 가객 율전님은 피는 나눠도 술값은 나눌 수 없다십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어느 나라 대통령같이 집요하게 지갑은 있는데 그 안에 든 것이 내 돈은 아니라고 우기십니다.  그러면서 포은을 불러뫼십니다.  아 포은이여. 그대의 단심가가 이리 쓰임을 용서하라

  
이 몸이 죽고 죽어 일 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없고
한 번 긋은 술 값이야, 나눌 일이 없으리


저승에서 펄펄 뛰는 포은 선생을 위로하려면 격에 맞는 충신의 노래에 술바가지를 끼얹어야 옳습니다.   그만 근보 성삼문이 산하의 술 세례를 받고 맙니다.


이몸이 술취하여 무엇이 될꼬하니
카스맥주 한 잔 속의 폭탄 뇌관 되었다가
오버잇 만건곤할재 독야소주 하리라


마침내 상대 가객(?)은 결정적으로 물러서는 제스처를 취합니다.  이방원의 하여가가 이렇게 불립니다.  막걸리에 양주는 타지 않는 법이고, 포도주와 위스키를 섞지는 않는 법이나, 이미 이 가객은 취했습니다.  아무 술이나 주는 대로 먹겠답니다.  이방원의 '하주가'(何酒歌)입니다.  


이 술인들 어떠하리 저 술인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으로 빚은 술인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 같이 얽혀 천 년 만 년 마시세


저 역시 기싸움(?)을 멈추고 먹고 죽자는 선동을 보냅니다.  


맹물은 어찌하여 싱겁기 짝이없고
맨밥은 어찌하여 반찬없이 못먹는가
깡으로 먹어도 되는 것 술뿐인가 하노라
 

권커니잣커니 한창 취해가던 상대 가객께서 그래도 아쉬운 듯 이번엔 민증가지고 시비를 거십니다.  곧 죽어도 자기는 나보다 젊답니다.  그리고 마누라한테 구박받는다면서 종로에서 뺨맞고 상계동 가서 화풀이합니다.


저기가는 저 산하님 술일랑 내게 주오
나는 젊었거니(?) 말 술인들 마다할까
마눌한테 구박받는 것도 서러운데 술까지 안 주시나
 

그러나 산하는 의연하게 대처하면서 연장의 체신을 세우며 취흥을 북돋웁니다.  대접 하려면 확실히 하라고 말입니다.


노땅들(?) 술 먹는데 술병을 이고 가
술상을 차려내어 눈섭에 마추도록!
친코도 고마운분이니 양주인들 아까우리

어떠십니까.  한 번 망년회 자리에서 나눠 볼만한 전통의 향기(?) 아닙니까?
윽 돌 날아오는 소리...  


 


저러고 놀 때가 벌써 5년 전입니다. 그때는 나이 마흔 되면 
노령연금 나올 줄 알았는데, 어느새 마흔이 됐습니다. 


 



 


남은 해 망년회들로 너무 취하지들 마시고...... 알차게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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