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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 30. 수요일


펜더


 



 


제 목 : Memphis Belle(한국 출시 제목 “멤피스 벨”)


감 독 : 마이클 케이튼 존스


주 연 : 매튜모딘, 해리 코닉 주니어, 션 어스틴 기타 등등


제작년도 : 1990년


제 작 사 : 워너 브러스


수 상 : 특별한거 받은 기억 없음


러닝타임 : 111분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공군 사관학교에 들어가기로 결심했어요!!]


 


[탑건 이후로 최고의 전투기 영화예요!!]


 


위의 두 카피가 뭔 줄 아시겠는가들?? 1990년이던가? 우리나라에 개봉 하였을 당시에 영화 홍보 찌라시와 신문에 나와 있는 영화 광고에 삽입된 관객들의 코멘트라고 떡하니 박혀져 나온 것들이다.


 


첫 번째 카피는 당시 [제법] 유명했던 카피였는데, 저마다 이 작품을 보고 나서 나름대로 감동을 먹었던 듯 말들 하였지만, 어쩌나? 대한민국 공군에는 [폭격기]란 게 없는걸...


 


두 번째 카피는 좀, 아니 약간 문제가 있는 카피 되겠는데, 일단 B-17은 폭격기이지 전투기가 아니란 근본적인 문제가 걸린다는 것이다. 이 작품이 개봉되기 몇 년 전에 나왔던 [탑건]의 흥행에 비하자면, 그렇게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항공모함 갑판위에 은빛날개 펄럭이며 날아오르는 F-14와 상대하기엔 B-17은 너무 늙었고, 너무 못(?)생겼다. 덕분에 이 녀석도 군사 매니아들 사이에선 [명작]대접을 받으며 나름 인정을 받지만, (나름 '폭격기 영화 중 수작'이란 평가를 받는다) 일반 대중들에게는 [탑건]만한 인상을 심어주지는 못한 작품 되겠다. 벗드 그러나...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영화사적 의미나 전쟁사적 의미는 탑건과는 비교가 안 되는 중요한 위치 되겠다. 자, 이제 시작해 보자고~


 


1. 헐리우드의 마지막 아날로그 전쟁영화


 


일단 이 작품의 영화사적 의미를 따지자면, 헐리우드 전쟁영화 중 마지막으로 아날로그로 제작된 작품 되겠다. 이게 무슨 소리냐구? 음...지금은 한국의 시시껄렁한 멜로 영화에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그 노무 CG, 즉 컴퓨터 그래픽이란 걸 안 쓰고 만든 마지막 전쟁영화란 것이다. 글타, 한때 영화 무림의 [신기]로 분류되어 몇몇 선택받은 영화들에게만 전수 되었던 CG...그러나 요즘은 CG로 시작해 CG로 끝내버릴 정도로 CG는 영화 무림의 기초 초식 정도로 대중화 된 상황!(우리나라 기술을 외국에 팔기도 할 정도니) 이런 CG의 남발은 필연적으로 제작비 상승이란 주화입마로 빠져들게 된다.


 



 


어쨌든, 이 멤피스 벨이란 작품은 CG를 쓰지 않았다. 그럼 어찌 작업을 하였단 말인가? 그렇다 바로 실물을 끌고 와 작업을 하였던 것이다!! 실제로 이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감독인 마이클 케이튼 존스는 전 세계에서 날아다닐 수 있는 B-17이란 B-17은 다 끌어 모았다. 그래봤자 5대 뿐 이였지만, 어쨌든 이 녀석들을 끌어 모았다. 그 중 1대는 B-17F형이었고, 나머지 4대가 B-17G형이었는데, F형도 여기저기 개조해 G형처럼 보이게 하려고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다. 음...좀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이 지구상 최후로 남은 B-17중 가장 쌩쌩하고, 찍기 전까지 해양 관측용 비행기로 활동하던, 가장 상태 좋았던 녀석이 이 영화 찍다가 착륙 실패로 박살이 나버렸다. 이 영화 찍으면서 지구상에 제대로 하늘을 날수 있었던 B-17은 5대에서 4대로 줄어들게 된 것이다.


 


그럼 활주로에 추락하고 격추되고 하는 것들은? 음 그거는 다시 4미터짜리 RC모형을 만들어서 대체하거나 무가 동 모형을 봉에 달아서 촬영 하였다(한 마디로 낚시질을 한 거다). 물론 주기중인 B-17들 역시 실물은 아니었는데, 모형 입간판들을 제작한 다음 이걸 세워 놓고, 카메라 앵글 조작으로 깜쪽같이 속인 것이다.


 


이런 눈물겨운 노력은 계속 되어서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나쁜놈들'도 최대한 움직이는 놈들로 채워 넣었다.


 


감독은 영화상의 대표적 'anti'라 할 수 있는 독일군 전투기...콕 찍어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루프트바페(Luftwaffe : 독일공군)의 두 깡패 형제' 중 맏형 노릇을 하던 Me 109를 실제로 영화에 투입하기 위해 이리저리 이 녀석을 구하려 뛰어 다녔다. 그러나 이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의 최고 애마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 이고, 다만 스페인에서 쓰던 녀석이 3대 남아있다는 걸 알고 이 녀석을 급거 끌고 와 영화에 투입 시켰다.


 


그러나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강남의 귤도 회수를 넘어가면 탱자가 된다고...똑같은 전투기라지만, 독일산 전투기가 스페인으로 넘어가니 약간 문제가(?) 생겼다. 이 스페인 제 메사슈미트는 이름부터가 HA1112라고 불리는 거에서 느껴지듯 실제 메사슈미트 Bf-109와는 좀 다른 모델이었다. 원래 Bf-109라면 당연히 독일제 다임러 벤츠의 DB 605 엔진이 달려 있어야 하는데, 이놈 자식은 영국제 멀린 엔진이 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날 수 있는 Bf-109가 어디인가?


 



 


감독은 이 짝퉁 Bf-109에다가 실제 B-17 폭격기들의 침공에 맞서 싸운 부대의 휘장, 부대마크, 식별부호 등등을 재현해 넣으며 최대한 '짝퉁티'를 벗겨내 보겠다는 노력을 보여줬다(이런 노력이 돋보여 멤피스 벨에 등장하는 이 Bf-109는 엔진만 빼고는 최대한 비슷하게 당시 독일공군 전투기를 재현해 낸다).


 


그럼 이런 놀라운 공력을 보여준 우리 마이클 케이튼 존스 감독은 누구인가? 역시 별로 눈에 익지 않은 이름이라고 하시겠지? 음 그렇다. 이 사람 역시 정통 헐리우드 출신 감독은 아니다. 눈치 빠른 독자제위라면 번뜩 스쳤겠지만, 영국출신 감독이다.


 


이 분은 바로 2차 세계 대전 때 치열하게 독일과 프랑스로 날아올랐던 중폭격기 편대의 다큐멘터리와 그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는,


 


- 야, 이걸로 함 만들어 보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첨언하자면, 2차 대전 폭격기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꽤 많다. 2차 대전 당시에도 군 사기함양 차원에서 숱하게 찍어 됐다. 클라크 케이블이 공군 폭격 비행대에 들어가 직접 기관총 사수로 뛰며 찍은 작품도 있다. 히틀러는 당시 클라크 케이블의 목에 현상금을 걸 정도였다. 미 공군뿐만 아니라, 영국 공군도 카메라 돌리는데에는 아낌없는 투자를 했는데...이건 넘어가자. 어쨌든 전쟁 후에도 폭격기란 소재는 영화관계자들의 흥미를 끌었기에 심심찮게 찍혀져 나왔다. 영화 '멤피스 벨'의 중간부분에 등장하는 2차 세계대전 기록필름은 실제로 미 8공군의 전투장면인데, 당시 미 공군은 떨어진 장병들의 사기진작과 대국민 홍보, 그리고 '주간폭격'에 대해 회의론적인 여론을 차단하기 위해 영화를 활용한 프로파간다를 기획했고, 실제로 이를 실행에 옮겼다. 그 핵심에 선 인물이 영화배우 클라크 케이블이었다)


 


음...느낌 안 오지? 그럼 이 사람이 만든 작품이 어떤 게 있는지 함 말해 주께, 키 작아서 서러웠던 마이클 J 폭스를 성형외과 의사에서 시골 촌구석의 가정의로 만들어 버린 헐리우드 박사란 작품, 다들 아시나?? 가끔 KBS에서 틀어주던 건데...에또...혹시 롭로이란 영화 아시나?? 1995년에 나왔다가 왕창 망한 영화 중 하나였는데, 그때 같이 걸렸던 브레이브 하트 때문에(같은 아일랜드 독립이 소재여서 딱 걸렸지. 문제는 브레이브 하트의 엄청난 물량과 초호화 배역덕택에 시작하기 전부터 밀렸다) 힘 한번 못쓰고 쓰러졌지...롭로이의 마누라가 강간당한 다음에 물속으로 기어들어가 정액을 씻어내는 장면은 아직도 본 필자의 기억 속에 멤 도는 꽤 괜찮은 컷이었는데...좀 아쉽다(18금적 상상은 금물이다 나름 연기 괜찮았다).


 


그래도 잘 느낌이 안 오지? 그렇다면 '대머리 액션 배우도 성공 할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증명한 브르스 윌리스 주연의 자칼은 어떠한가? 가빠와 후까시로 점철된 우리 브르스 형님께서 혼신의 힘을 다해 열연한 호모 캐릭터가 약간 느끼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구석이 있긴 있던 작품이었다(개인적으로 오리지널 자칼이 훨씬 좋았다고 주장하는 편이지만). 뭐 그래도 나름대로 그럭저럭 여러 독자제위들 기억 속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일 것이다. 여하튼 이런 작품을 만든 것이 바로 마이클 케이튼 존스 감독이란 사실을 알고만 있어라. 그럼 거기 출연한 배우들은?? 일단은 바른 생활 장교의 전형을 보여준 매튜 모딘...여러분들 기억 속에선 아마도 “망해도 제대로 망한” 지나 데이비스의 해적 영화 [컷 스로트 아일랜드]의 바람기 넘쳐흐르는 노예 라틴어 선생을 기억 속에서 떠올리면 될 것이다. 극중에서 제일 많이 떠벌거리던 볼터렛의 키작은 션 오스틴은 그 작은 키를 십분 발휘해서 반지의 제왕에서 영원한 푸르도의 몸종으로 그 연기 인생을 불태웠다면, 대충들 아시겠지?


 



뒤에 애가 프로도, 앞쪽의 금발머리가 션 오스틴이다


 


 


2. 전략폭격의 시작.


 


일단 이 멤피스 벨이란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기 이전에 멤피스 벨이란 폭격기가 나오고, 2차 대전 내내 [전략폭격]이란 걸 왜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음 왜? 알아두면 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니까 귀찮더라도 일다 들어둬라 알겠지? 나중에 멤피스 벨 볼 때 필요하니까 들어둬라. 그때 가서 모르겠다 어렵다 하면...정말 독자제위 열분들만 피곤 한거다.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면, 제1차 세계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니까 그때 나타난 신 병기들 중에 다음 전쟁에서 맹위를 떨친 몇 가지 병기가 있었으니, 바로 전차와 잠수함 그리고 폭격기였다. 뭐 항공병기라 말해도 무방하겠지만, 일단 폭격기 설명하는 것이니까, 이 녀석을 중심으로 설명해 보겠다.


당시 정말 기상천외한 공격이 있었는데, 바로 전선이 형성된 프랑스를 벗어나 바다 건너 영국의 런던이나 다른 대도시에 [공중폭격]을 했던 “채팰린”이란 비행선과 쌍발 복엽기 “고타”란 녀석의 등장인데,


 


- 비행선? 저거 풍선 아냐? 풍선이 영국엔 왜 와? 관광하러?


- 영국 물가 비싼데, 딴데가서 놀지...어라? 저것들 뭘 떨어뜨리는데?


 


이 녀석들이 한 짓이라곤 겨우(?) 4백 톤의 폭탄을 들고 가 영국 여기저기에 아주 골고루 흩뿌려 1400여명의 민간인들을 요단강 너머로 보내버린 일이 다였다. 1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1천5백 만 명이 죽어 나자빠지는 상황에서 1400여명의 희생은 그야말로 새발의 피였다(워낙 많이 죽어서 그런지 사람들 별 생각 없이 이걸 까먹었다).


 


자, 문제는 그 다음인데, 이탈리아의 군사이론가이던 지울리오 두에 장군이란 녀석이 1921년에 [제공권]이라는 책에서 이따구 말을 했다.


 


- 공습을 가하는 측은 군사목표보다도 공업상의 목표를 중시해야 하며, 또 적국의 도시에도 [용서 없는 타격]을 가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공포와 고통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이윽고 국민 자신이 자기보존 본능 때문에 궐기하여 전쟁종결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육해군을 동 원할 새도 없이 그날이 오는 것이다.


 


그때까지의 전쟁 상식과는 거리가 있는 [획기적인 주장]이었다. 문제는 이런 주장은 필연적으로 항공세력만을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군대, 즉 [공군]을 창군해야 했고, 그에 따른 육군과 해군의 세력축소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결론은? 그렇다 [정의를 행하면, 세계의 절반이 들고 일어난다]는 말처럼 해군과 공군은 두에 장군을 왕따 시키며, 헛소리라고 몰아세웠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는 법. 이런 두에의 [헛소리]를 증명하겠다는 듯 미 육군항공대의 부사령관이었던 윌리엄 미첼 준장은,


 


- 폭격기의 등장은 해군력의 필연적인 멸망을 초래한다!!


 


이러면서 슬슬 해군 애들에게 시비를 걸더니 급기야 미국의 폐기 전함 3척과 1차 대전 때 노획한 독일 전함 3척을 시범적으로 [격침]시킨다.


 


- 봤지? 봤지? 이게 바로 비행소녀의 힘이라니까! 땅에서 박박기고, 바다에서 백날 허우적 거려봐라. 하늘에서 폭탄 떨구면 그냥 끝이야!


 


기세등등하게 해군을 몰아 붙이던 미첼! 그러나 세상은 원래 둥글둥글하게 사는 사람의 편이었다. 미첼은 돌출발언의 연속으로 정직처분까지 받게 되고, 결국 스스로 옷을 벗고 군을 떠나야 했다.


 


- 역시 사람은 둥글게 살아야 한다니까...


 


원래 역사란 게 선구자들이 돌팔매질 당하고, 그 흘린 피를 자양분으로 해 조금씩 전진하는 것 아니던가? 미첼의 행동과 발언 이후로 각국은 자신들의 항공 전력을 정비하기 시작하는데(뭐 각국 나름의 이러저러한 사정도 있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영국과 독일 이었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을 관통하는 동안 쭉 애용했던 두개의 기체에서 보여주듯이 그들 스스로가 전략공군을 포기하고 [전술공군]으로 전쟁을 치루기로 결정한 상황이었다.


 


음...그 두개의 기체의 뭐냐고? 하나는 앞전에 설명했던 Bf-109...일명 [날으는 기관총좌]라 불리던 2차 대전 참가 전투기 중 [명작]이라 불리는 제공 전투기였다. 최대한 가벼운 중량에, 극대화된 기동성을 살린 말 그대로의 [날으는 기관총좌]인 이 녀석과 콤비네이션으로 묶여져 나온 것이 바로 Ju-87 슈투카이다. 융커스의 이 대포를 달고 날아오른 새는 독일 전격전에서 보병의 영원한 친구로써, 2차 대전 최고의 [정밀폭탄]으로 그 명성을 날렸으나, 어디까지나 국지적인 전술폭격의 모습이었지, 전략폭격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던 존재였다.


 


그럼 영국은? 영국의 초대 공군 사령관이었던 휴 트렌처드는 일찌감치 영국 공군을 육성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폭격기의 가능성, 특히 전략 폭격의 가능성에 대해서 열린 사고로 이를 받아들였다. 자, 문제는 전쟁이 터지고 나서이다. 1939년 9월 1일 이후로 약 8개월간 그 말 많고 탈 많은 [가짜전쟁]이 시작되었다. 폴란드도 넘어가고, 핀란드도 겨울전쟁으로 피폐해진 와중에 [전략폭격 역사상 획기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 터져 버린다.


 




바로 1939년 12월 18일에 있었던 영국 전략폭격기들의 [개죽음]이었다.


당시 영국은 24대의 웰링턴 편대를 끌고 나가 북해연안의 빌헬름스하펜 항구에 정박해 있던 독일함대 대한 주간공격을 감행하였다. 당시 영국군의 생각은 간단했다.


 


- 충분한 자위 무장을 갖춘 폭격기 편대는 적의 방공부대의 반격에 충분히 대적할 수 있다. 만약 적 방공망만 뚫을 수 있다면, 주간 폭격은 야간 폭격에 비해 그 정밀도가 비교도 안 될 정도이다. 결국 주간 폭격만 성공하면 이번 전쟁은 우리가 이긴 전쟁이다!!


 


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때 날아간 24대중 12대가 독일 루프트바페의 Bf-109와 Bf-110 전투기 편대에 격추 당했고, 영국 애들은 더 이상 [주간폭격]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그리고 그들이 택한 대안이 바로 야간 폭격이다.


일단 그들이 주목한 것은 [가짜전쟁]기간 동안 독일 여기저기에 날아간 그들 말로는 [휴지 보급대]로 불리던 야간의 [삐라 살포부대]들의 격추률은 2.8% 수준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뭐 열심히 날아가 폭탄 대신에 “히틀러 개새끼” 따위의 삐라나 뿌리고 앉아 있는 게 좀 서글펐지만, 그래도 이렇게 휴지배달 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었다.


 


- 야간 폭격만이 살길이다!!


 


이런 생각을 굳히게 되는데, 여기서 다시 전략폭격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터지게 된다. 바로 [코벤트리]였다. 보통 영국 본토 항공전이라 부르는 영국과 독일의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두고 벌였던 항공전의 끝 무렵 괴링은 쌍발 폭격기 He-111 437대로 구성된 폭격기들을 영국의 코벤트리로 1940년 11월 14일 밤에 날려 보낸다. 말 그대로 도시를 지워버리겠단 생각으로 500톤이 넘는 폭탄과 소이탄을 이 도시에 떨어뜨리게 된다.


 


-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확 쓸어버려!


 


독일공군은 이 작은 도시를 11시간이나 맹폭격 하게 된다.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공습 덕분에 코벤트리는 말 그대로 사라져 버린 도시가 되었고, 도시 하나를 집중 폭격으로 날려버린다는 뜻으로 “코벤트리화” 한다는 말이 새로 생겨났다.


 


자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원래 사람이란 게 당하면 돌려주고 싶어 하지 않은가?(못하면 ㅄ취급 당하기 십상이다) 당한만큼 돌려주겠다고, 1941년부터 슬슬 영국 폭격기들이 독일 본토와 점령지로 날아올랐지만, 그때는 그저 연습게임 수준이었다. 영국 폭격기 부대들은 어떤 제대로 된 폭격 전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단순히 목표에 날아가는 것 자체 만으로도 힘겨워 하던 시기였다. 그런 그들에게 독일의 요셉 캄후버 소장이 만들어낸 [캄후버 라인]까지 등장하면서 독일 본토 폭격 자체가 무산될 지경에 이른다.


 


- 이것들이 말야. 독일이 우스워? 마! 레드바론의 고향이 독일이야 인마!


 


캄후버가 만든 이 방어라인은 독일 본토 방어를 위해 본토를 지키는 게 아니라 독일 주변의 점령지인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에 폯 32Km의 긴 띠를 둘러치는 것인데, 이곳에 대공용 서치라이트와 고사포를 집중 배치해 영국 폭격기들을 서치라이트 불빛으로 중계해 가며 공격하는 것 이였다. 여기에 야간 전투기대와 레이더까지 등장하면서 영국 폭격기대들은 코너에 몰렸다.


 


- 야 지금 야간경기 뛰냐? 라이트를 왜 켜?


- 야간 경기 맞잖아!


 


핀치에 몰렸던 영국 폭격기대에 새로운 구원자(?)가 등장했으니, 20세기가 끝나고도 아직 까지 논란의 대상이 되는 인물...바로 아더 해리스의 등장이었다. 독일인들의 기억 속에서 아더 해리스란 인물은 그야말로 저주 받을 악마의 자식이었으며, 영국인들 사이에서도 아더 해리스란 인물이 영웅으로만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논란의 대상이다. 물론, 결과론적으로 영국이 2차대전에 승리하는데 일조를 한 건 사실이지만)...어쨌든 좀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다.


 



아더 해리스


 


지금도 그의 폭격방법이 [인도적 차원]에선 재론의 여지가 없는 전쟁범죄이며 학살이었다는 주장이 꾸준히 설득력을 얻고 있고, 전략적 차원에서도 굳이 그런 식의 초토화 전술을 사용해야 했는지에 대해선 의문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이런 논란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그가 1984년 사망하자 영국 공군은 그의 동상을 세우기로 결정. 아이러니컬하게 윈스턴 처칠 수상의 동상 보다 더 크게 만들겠다며 두 팔을 걷어 붙였었다. 물론 독일인들은 반대를 했었지만 말이다. 그


 


렇다면 아더 해리스의 어떤 점이 이런 상반된 평가가 나오게 만들었던 것일까?(당시 서독은 '라인 강의 기적'이라며 한참 주가를 올리던 시절이었기에 영국인들은 독일에 대한 콤플렉스를 느끼던 시점이었다. 대처가 레이건과 함께 신자유주의의 전도사로 나서도 시절이기도 했지만, 경제적으로 독일에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런 콤플렉스를 날리기 위해 아더 해리스는 너무도 '유혹적인' 캐릭터였다)


 


전략 폭격의 새로운 장을 만든 1942년 5월30일의 퀼른 공습...일명 밀레니엄 작전이라 불리는 이 작전에서 해리스는 5만 명의 독일 민간인 사상자를 뽑아냈고, 퀼른 자체를 녹여버렸다(신기한 건 이 대폭격 속에서도 퀼른 대성당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퀼른 공습으로 자신감을 얻은 해리스는 이후 1943년 함부르크 공습에서 3천대의 폭격기를 동원 4만 명을 죽였고, 아더 해리스의 학살극에 총 집결판인 1945년 2월의 드레스덴 공습에선 불과 1시간 만에 10만 명을 죽이는 엽기공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드레스덴 공습의 경우는 전쟁 막바지에 굳이 이런 대규모 폭격을 했어야 했냐는 비난과 함께 1시간에 10만 명을 죽여 버리는 지극히 감정적인 학살극을 펼쳤다는 이유로 지금까지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 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으니 말이다).


 


2차 대전 기간 동안 아더 해리스가 폭격으로 죽인 사망자 수는 50만을 헤아렸고, 그 기간 동안 영국의 폭격기 조종사와 승무원들의 사망자 수도 1만 5천을 넘어섰다.


 


음, 그럼 이 아더 해리스란 녀석이 어떻게 해서 이런 희대의 [살인마]와 [전쟁영웅]의 칭호를 동시에 얻게 되었을까? 1942년 2월 12일까지 아더 해리스의 전임자였던 리처드 피어스 중장은 몇 번의 헛발질...그러니까 브레스트 항의 독일 순양전함과 순양함들을 놓쳐 버렸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 사건이 터진다. 거기에 더해 지금까지의 폭격이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자 야간 폭격의 회의론까지 나오게 되었고, 결정적으로 폭격기의 무용론까지 대두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리처드 피어스 중장이 경질되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 아더 해리스였다. 그는 한참 영국군 폭격기들이 야간폭격에 들어서던 1941년을 미국 워싱턴에 가서는,


 


- 우리 전투기랑 폭격기 좀 주세요. 예??


 


그 짓을 하고 있었다(폭격기 구걸이다). 그리고 돌아와 보니 폭격기들은 그가 떠나기 이전하고 별반 달라질 것도 없었다. 물론 새로 18개 비행대가 조직되었으나, 폭격기의 수는 언제나 모자랐고, 그가 떠났을 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이유? 간단했다. 폭격기를 원하는 곳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당장 영국 공군 연안 초계병들은 폭격기를 가지고 U-보트의 탐지와 공격에 써야 한다며 한줌 남은 폭격기 부대를 빼갔고, 육군은 사막의 여우 롬멜을 잡기 위해 폭격기를 빼가려고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여기에 질세라 해군은 일본 놈들이 극동지방을 휩쓸고 지나가며 영국령을 넘보는 걸 막아야 한다고 폭격기대를 빼가려 하고 있었다. 당시 해리스가 하루에 출격 시킬 수 있었던 폭격기는 겨우 200여대 남짓이었고, 그 중에서 전략폭격을 제대로 실행할 수 있던 4발 중폭격기는 겨우 69대 뿐이었다.


 


- 야! 폭격기가 부르면 달려오는 다방레지냐? 이것들이 티켓 끊듯이 폭격기를 빼가네? 아니, 레지들은 돈이라도 받지! 이게 뭐하자는 플레이야?


 


음 이 상황에서 해리스가 한일은? 일단 땅에 떨어진 폭격기부대의 인기를 끌어올려야 겠단 생각을 하게 된다.


 


- 안되겠어! 이것들이 심심하면 부르는 다방레지 정도로 우릴 보고 있는데, 우리도 강남 진출한 텐프로...아니 최소한 쩜오급 부대라는 걸 보여줘야 해!


 


이런 결심을 한 아더 해리스는 영국의 주류사회를 모아서 폭격기단의 홍보와 리셉션을 열며(흔히 말하는 파티다...접대용 파티), 동시에 폭격기의 전략폭격을 보다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전술]개발에 몰두 하게 된다.


 


여기서 아더 해리스가 개발한 두 가지 전술이 있었으니 바로 영국 야간 폭격을 획기적인 방향으로 발전시켜 버린 [Pathfinder : 선도기, 유도기]의 활용과 함께 폭격기의 집중으로 말 그대로 Pattern bombing, Carpet bombing의 실행이었다.


 


전자의 경우는 패쓰파인더를 활용한 [표지법]으로 정착하게 되는데, 그 원리는 아주 간단했다. 폭격기의 선두에 선도 폭격 부대를 배치하는 것인데, 이들은 폭탄 대신에 조명탄을 폭탄 창에 가득 싣고, 예상 목표 지점으로 폭격기 부대를 이끌고 나아간다. 폭격기대를 끌고 나갈 정도이니 당연히 항법술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베테랑들로만 구성된 건 당연한 사실일 것이고, 이들은 목표 지점에 도달하면 싣고 간 조명탄을 목표 여기저기에 아주 골고루 뿌려준다. 그럼 이 뒤를 따라온 제2파 폭격대는 선도기들이 뿌려놓은 조명탄을 따라 폭격을 하고, 이탈하면서 다음 폭격대를 위해 조명탄을 뿌려 주고, 다음 폭격대는 앞전 폭격대가 뿌려놓은 조명탄을 따라 또다시 폭격하는 방식이다. 이런 선도 폭격대 인솔과 목표에 대한 조명탄 투하 전술은 [목표에 대한 확실한 접근]과 함께 목표를 확인한 다음에 폭격할 수 있기에 [폭격의 정확도]를 높였다.


 


이런 패스파인더의 구성과 함께 아더 해리스를 같은 영국군 내에서도 [도살자]로 불리게 했던 전법은 생각 외로 아주 간단한 것 이였다. 바로 단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폭격기를 최대한 빨리 날려 보내 도시 자체를 아예 지워버리는 전법이었다.


 


그전까지의 영국군 폭격기들은 개별 혹은 집단이어도,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하게 개별폭격을 하는 방식이었다. 즉, 몇 십대씩 혹은 많아야 백대 남짓의 폭격대를 띄워서 폭격을 했었는데, 그나마도 각개로 떠서 폭격을 했기에 집중적인 효과를 얻기엔 2%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폭격기 대수가 부족했다는 원인도 있었지만, 폭격기 집중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부족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한 가지가 뭐냐면, 2차 대전 당시 그나마 [정밀폭격]을 해보겠다고 노든 조준기(Norden Bombsight)를 달고 날아올랐던 B-17도 목표 하나를 파괴하는데 총 4,500회를 출격 9,070발의 폭탄을 떨어뜨려야 겨우 목표를 파괴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즉, 자유낙하 폭탄으로 목표를 명중시킨다는 것 자체가 [행운]에 가깝다는 것이다. 더구나 야간에 목표를 발견하고, 그 목표를 향해 폭탄을 떨어뜨린다면 그 명중률은 어떻게 될까?


 


결국 아더 해리스의 생각은,


 


- 목표를 폭격하겠다고 애쓸 필요 없다. 목표가 있는 도시나 공업단지의 하늘 위에 폭격기 를 빽빽하게 날려 보내서 도시 전체를 날려버리면 목표도 같이 날아가는 것이다!!


 


무식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여기에 더해서 해리스는 캄후버 라인을 넘어가는 동안 격추당하는 폭격기들의 해결책을 발견하게 된다. 즉, 엄청난 대 폭격기 전대를 하늘에 띄우면, 그 수량 자체에 압도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 몇 대를 격추 시켜도 이미 다른 편대들은 목표물 상공에 날아올라 폭격을 마치고 귀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살을 내주고 적의 뼈를 취한다는 전법이었던 것이다. 거기에 단시간 내에 폭격을 끝내는 치고 빠지는 폭격은 폭격기들이 독일 영공 안에서 있을 채공 시간을 최대한으로 줄여준다는 것이다.


 


해리스의 생각은 너무도 심플했다. 이런걸 발상의 전환이라고 해야할까?


 


- 압도적인 폭격기 편대를 짧은 시간 안에 날려 보내 잽싸게 폭격을 마치고 귀환시킨다.


 


정공법이었다. 이런 해리스의 구상을 실현시킨 것이 바로 1942년 5월 30일 날의 퀼른 대공습이었다. 밀레니엄 작전이라 불리는 이 계획은 천년제국을 만들겠다는 독일 제3제국을 1천대의 폭격기를 몰고 가 그들의 천년고도인 퀼른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는 작전이었다. 해리스는 실제로 1046대의 폭격기를 동원해서 그의 이론대로 90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이 대 폭격기를 띄워 올려 퀼른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1천대가 넘어가는 이 대 폭격기 부대를 보고, 독일의 야간 전투기들은 이 압도적인 폭격기 대수에 기가 질려 버렸고, 해리스의 전략은 멋들어지게 성공하게 된다. 이 밀레니엄 작전 이후로 영국 폭격기 부대는 퀼른 공습 때 써먹었던 전술 그대로...그러니까 아더 해리스가 구상한 그대로 2차 대전 끝날 때 까지 열심히 독일 본토를 폭탄으로 샤워시켰던 것이다.


 



 


(당시 이 작전을 승인한 이가 처칠이었는데, 뭔가 있어 보이는 걸 좋아하던 처칠은 단번에 이 작전을 승인하게 된다. 대국민 홍보와 정치적 선전을 위해서도 아더 해리스가 내민 밀레니엄 작전은 구미가 땡길 수밖에 없었다. '천년제국의 심장은 천대의 폭격기로 때려 부셨다.'란 캐치프레이즈 하나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작전! 정치인으로서는 거부할 수 없는 작전이었다. 아더 해리스가 이 작전의 예상 피해규모를 설명했지만, 처칠은 그 정도 희생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며, 입안자인 아더 해리스보다 들떠서 이 작전을 승인하게 된다. 물론, 운이 좋아 예상 피해규모보다 훨씬 적은 피해로 작전을 성공시켰지만, 군사작전이...특히나 전략적 규모의 작전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되는지...그리고 클라우제비츠가 말한 '전쟁은 정치의 연장선상'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보여준 작전이라 할 수 있겠다)


 


3. 카우보이의 등장


 


독일에 대한 야간폭격이 한참 궤도에 올라가던 1942년 5월...영국군 표현으론 [시원찮은 우군]이라 불리던 양키들이 그들이 자랑하는 B-17 플라잉 포트레스...하늘의 요새를 끌고 영국으로 넘어왔다. 이들은 1940년부터 외로운 싸움을 벌이던 영국인들에게는 정말 오랜만에 듣는 희소식이었으나, 역시 양키 특유의 고집과 쇼맨쉽은 버리지 못하고 영국으로 건너왔다(물론, 영국인들 기준으로 말이다).


 


일찌감치 주간 폭격이 [개죽음]과 동의어란 걸 파악한 영국군이 야간폭격을 하는 것과 달리 미군은 이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주간폭격]을 감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영국인들은 헛소리 하지 말라며 이 시원찮은 우군들을 말렸지만, 이들은 영국군에게 B-17의 위력을 말하며, 걱정 말라며 자신 만만하게 말했고, 그런 미군을 보며 영국 폭격기 대원들은 B-17에 대한 불만을 토해내기 시작한다.


 


- 랭커스터 보다 덩치는 훨씬 큰 녀석이 폭탄은 랭커스터의 절반도 못 들고 날아가는 게 말이 되냐?


 


영국 애들은 이미 1941년 무기 대여법 덕분에 얻게 된 B-17을 쓰면서 이 이상한 폭격기를 별로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덩치는 산만한 녀석이 겨우 6천 파운드의 폭탄을 들고 날아간다는 게 이해가 안 갔고, 폭탄 적재량을 줄인 대신에 여기저기 B-17을 도배한 기관포와 터렛들로 독일군의 전투기들을 방어해 냈냐면, 그게 또 아니었다는 것이다.


 


- 시면 떫지나 말아야지...폭탄은 폭탄대로 못 싣고, 방어는 방어대로 못하고...뭐야 이게?


 


그들은 B-17보다 작으면서도 두 배 이상인 14,000파운드의 폭탄을 달수 있던 랭커스터나, 스털링 같은 자국산 폭격기가 훨씬 쓸모가 많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여기에 대해 미군 애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 B-17의 진정한 힘은 열대 이상이 뭉쳐서 서로 사각을 없애주며 날아가야지만, 진정한 힘 을 발휘하는 것이다!! 너 네들이 이걸 제대로 못 쓴 거지 결코 B-17이 후져서 그런 게 아니란 말야!!


 


음 미군들은 자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12정의 50 캘리버 중기관총으로 둘러친 B-17들이 뭉쳐서 날아오르면 어디든 뚫고 날아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


 


- 폭격기는 어디든 뚫고 날아오를 수 있다!!


 


미군의 주장을 들으면서, 영국은 한 숨을 내 쉴 수밖에...영국에 날아온 미국의 제8공군의 지휘관이던 에이커 준장은 이 상황에서 처칠 수상을 만나서 B-17로 주간 폭격이 가능하다는 걸 말하며, 처칠을 감히(?) 설득하려 했다. 당시 에이커 준장이 설파한 논리란 것이,


 


- 생각해 보십쑈, 밤낮으로 독일애들에게 폭탄을 떨구면 독일 공군 녀석들은 잠 잘 틈도 없 을 겁니다!!


 


결국 처칠은 그 말에 구미가 동했다. 처칠은 이 겁대가리 상실한 양키 장군의 말에 설득 당하게 된다. 그 동안의 입장이던 영국군 야간 폭격기대에 미8공군을 합류시켜 동시에 밀레니엄 작전 같은 거창한 걸 같이 한번 해보자던 처칠은 만약 여기서 더 자기가 나서면, 루즈벨트가 삐져서 8공군 애들을 태평양 전선으로 빼갈지도 모른단 정치적 고려와 함께 에이커 장군의 당돌함...거기에 밤낮으로 폭격 하면 독일 공군 애들은 [잠을 못 잔다]라는 단순하면서도 구미가 당기는 제안에 슬쩍 넘어가 주었다(군사적 판단보다는 정치적 구호에 약한...정치가적 모습이다). 그때가 바로 1943년 1월 20일 이었다.


 


자기네들 총리가 승낙하자 영국군도 결국은,


 


- 한번 당해봐야 알지...쯥쯥...네들 맘대로 해봐라. 나중에 안 말렸다고 지랄하지 말고.


 


결국, 이렇게 해서 영국군은 밤에 도시 하나를 쓸어버리는 융단폭격을 하게 되었고, 좀 더 인도적인(?) 미군은 대낮에 영국군이 박살내다 만 목표물을 찾아가 그 목표만 골라서 폭격하게 된다. 에이커 장군의 말처럼 독일군은 결국 밤낮으로 폭격을 받는 입장이 되었다.


 


4. 미군 폭격기 부대의 하루.


 


멤피스 벨이란 영화를 한 문장으로 정의내리자면,


 


- B-17 폭격기의 1회 출격을 처음부터 끝까지 세밀하게 묘사한 작품


 


이 되겠다. 음 그 정도로 잘 되어 있냐구? 이게 만약 옥의 티 찾아내기 코너였다면, 100점 만점에 95점정도 줄 수 있겠다. 이 작품 하나로 당시 연합군과 독일군의 유럽 항공전의 모든 걸 대충 다 담아낼 수 있었고, B-17 폭격기의 출격과 폭격 길에(?) 오르는 모습, 폭격하는 모습, 그리고 폭격 하고 돌아오는 모습, 귀환해서 붉은색 조명탄을 터트리는 불운(!!)과 함께 착륙하는 모습...그리고 이 B-17 폭격기의 공습을 막기 위해 분전하는 독일공군의 모습까지 [극사실주의] 영화로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최대한 고증에 맞춰 제작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자 그럼 멤피스 벨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여정을 한번 따라가 보자.


 



 


① 랜딩기어 하나 고장 나서 불시착 하던 B-17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타이틀이 뜨고, 크래딧 몇 개가 올라가면, 분위기 싸~해지면 이게 전쟁영화라는 걸 말해주듯이 자막 뜬다.


 


- 1943년 여름 유럽은 치열한 전쟁을 치뤘다. 공군은 적을 물리치기 위해 매일 희생되었 고, 귀환병은 줄었다.


 


자막 지나가면서 관객들은 두 가지 정보를 얻게 된다. 하나는 이게 전쟁영화고, 좀 애들이 많이 죽었구나 하는 정보를 말이다. 어쨌든 자막 지나가면, 영국 전역 60개소에 골고루(?) 건설된 미군 시설 중 베싱번(Bassingbourn)에 주둔하고 있던 미8공군 소속 327폭격대대 91연대의 부대 전경이 보인다. 여기가 어디냐구? 어디긴 어디겠나? 이 영화의 주인공인 멤피스 벨 애들의 소속 부대이지.


 


풋볼을 하고 있는 멤피스 벨의 병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B-17 한대엔 총 10명이 탑승하는데, 조종사, 부조종사, 폭격수, 항법사를 제외한 나머지 6명은 사병들이다. 이 6명에 대한 개별신상이 나레이션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때 귀환하는 우리의 B-17 폭격기들, 그 중 한대가 랜딩기어가 나오지 않아 활주로에 쳐 박혀 박살이 나고 만다. 이 장면 보면서,


 


- 야 저거 복선 같은데?


 


이런 생각 했었던 독자제위 많았을 거라 사료 된다. 뭐 실제로 영화 몇 편보고, 드라마 끼구 살면 대충 이런 통빡은 다 돌아갈 것이다. 자자 각설하자...앞전에서 우리 미군 애네들이 주간 폭격을 한다고 그랬잖아. 그때까지 이 녀석들은 B-17이란 녀석을 믿고 있었거든 10정에서 14정까지 기관총으로 비행기를 둘러친 이 녀석을 몇 대씩 뭉쳐서 날게 하면 자연스럽게 화망이 구성되고, 그 정도면 독일군 전투기들을 쉽게 막아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실제로 독일 전투기 조종사들은 B-17의 크기에 일단 주눅이 들었고, 그 강력한 화망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 야, 저거 저거...영국애들 보다 훨씬 큰데? 어쭈...제법 방어도 되잖아??


 


그렇지만 말이다. 어디까지나 [제법]이었지 [확실한]은 아니었다. 당시 독일군은 1944년까지 전투기 한 대당 폭격기 한대의 교환비율을 유지했었다. 결국 미국의 환상이었던 B-17 편대를 뭉쳐서 당당하게 독일로 날아가 폭격을 하고 돌아온다는 것은 영국군의 말처럼 [개죽음]을 각오해야 했던 일이었다. 결국 미군은 무스탕의 등장 이후가 되어서야 말 그대로 숨통 좀 튀이고, 죽을 걱정 덜 하면서 날아오를 수 있었다. 결국 제공권이의 확보 이후에나 제대로 된 전략폭격이 가능하단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한 것이다.


 


② 출격 전날 음주가무와 파티가 웬 말이더냐?


 


간단히 말해서 이건 좀 영화적인 과장이라고 말해야겠다. 한국의 경우만 봐도 전투기 조종사는 물론, 헬기 조종사도 아침에 부대에 와서 하는 것이 비행 전 자가 진단표를 작성하고 간단한 혈압 체크를 하는 것이다. 음주는 물론, 잠은 얼마나 잤는지, 아프진 않은지 비행 전에 꼭 확인을 한다. 급격한 중력변화와 고도에 따른 기압의 변화 속에서 혈중 알콜은 그야말로 쥐약이다.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적의 영공으로 폭격을 하러 가는 이 중차대한 순간에 숙취와 피로 때문에 임무를 망친다면 어쩌겠단 것인가? 결정적으로 1회 폭격 임무 시 짧으면 4시간 길면 10시간이 넘어가는 B-17의 비행시간 동안 과연 속이 괜찮을까?


 


뭐 어쨌든 넘어가자, 영화니까...여하튼 우리 공보장교이던 대머리 아저씨 열심히 멤피스 벨을 부른다. 왜? 25회 임무를 최초로 달성하고, 전투임무에서 해제될 순간이 눈앞에 다가온 이 '행운의 싸나이'들을 데려다가, [영웅]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말이다. 원래 미국 애들이 영웅 좋아하거든...나라 자체가 역사가 짧아서 그런지 영웅에 좀 환장하는 구석도 있지만, 이때에는 그런 차원을 넘어서서 '절실하게' 영웅이 필요했던 상황이다.


 


주간 폭격이 [개죽음]이라는 여론이 들끓고 영국 애들 따라서 야간폭격 하자는 이야기가 솔솔 나오는 이 마당에 25회 출격임무를 달성 했다는 자체는 이런 여론을 잠재우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고, 주간 폭격에 대한 의구심을 날려버릴 수 있는 좋은 증거자료가 되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지만 실제 당시 B-17 승무원의 평균 생환률은 8회 출격까지였다(당시엔 멤피스 벨이 이상한 놈들이었다). 무스탕 전투기가 배치되기 이전까지 B-17 폭격기에 탄 미군들은 언제 어디서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위험에 맞서고 있었던 것이다.


 



 


공보장교가 아무리 말해도 나오지 않는 멤피스 벨의 팀원들은 결국 사회 있을 때 딴따라로 한몫했던 테일 거너(Tail Gunner : 후미사수, 꼬리날개에 달려있는 기관총 사수)인 해리 코닉 주니어를 밀어 올린다. 그리곤 oh' danny boy를 부르면서 분위기 무르익고, 그 사이 총각이라 놀림 받던 Top turret(상부 기관포탑) 사수 버지는 열씌미 총각 딱지를 떼겠다며 멤피스 벨 안에 여자를 끌고 들어가는데...여하튼 여기까지 보면, 이게 폭격하러 가기 전날인지, 제대 축하 파티인지 구별이 안 간다. 영화니까 이해하고 넘어가자. 영화잖아...글치?


 


(TIP. 미군은 어떻게 영국 여성들을 자빠뜨렸는가?)


 



 


총각 버지와 영국 여성의 섹스에 대해서 설명을 할까 말까 고민을 좀 했었다. 독자제위들이 보기엔 이 장면이 '영화적 설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 당시의 분위기로 볼 때 이 정도는 말 그대로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잠깐 시간을 돌려 1940년 7월 그 말 많고, 탈 많은 영국 본토 항공전(Battle of Britain)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영국을 정복하기 위해 독일 공군이 영국에 폭탄을 쏟아 붓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전쟁이 민간인들에게 다가온 것이다.


 


"마지노선만 잘 지키고 있으면, 히틀러도 잠잠해 질 거야. 그런 다음에 적당히 휴전협정 만들어서 사인하면 전쟁 끝이야."


그러나 그 마지노선은 독일의 전격전 앞에 허무하게 무너졌고, 독일 공군의 폭탄을 뒤집어 써야 했던 영국 국민들...그들은 전혀 새로운 전쟁에 내동댕이쳐지게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영국 여자들이다. 남자들이야 원래 전쟁 나면 총 들고 튀어나가야 한다는 걸 어렸을 적부터 배워왔고, 기질 자체가 투쟁본능에 푹 절여진 상태이기에 전쟁이 나도 그럭저럭 잘 적응 했는데, 여자들에게 이런 상황은 너무도 생소했다.


"일단, 여자들 다 모아!"


"여자들 모아서 어쩌자고?"


"지금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인데, 남자 여자가 어딨어? 그리고 지금 사지 멀쩡한 애들은 전부 다 군대 가있는데, 여자라도 끌고 와 일 시켜야 할 거 아냐!"


그랬다. 사지 멀쩡한 젊은 남자들은 전부 징집돼 군대에 가 있는 상황! 남자들의 빈자리는 여자들이 채워야 했던 것이다. 당시 영국 미혼 여성의 91%와 기혼 여성의 80%가 생산 활동에 투입 된 걸 보면, 영국 정부도 어지간히 급하긴 급했나 보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위기의 40년을 넘기고, 암흑의 41년을 넘기고 나자 41년 12월...영국에게는 꿈같은 소식이 들리게 된다. 그렇다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했던 것이다. 얼떨결에(?) 미국은 참전하게 됐고, 영국은 살아남게 된다.


 


1942년 봄부터 미군들은 영국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해 가을까지 영국에 도착한 미군의 숫자는 25만 명에 이르렀다. 이 숫자는 1944년 5월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전에 이르면 100만을 넘기게 된다.


혈기방자 한 18~22세 사이의 남자들, 그것도 꽤 돈이 많은 남자들이 25만 명이나 몰려 왔을 때에는 분명 무슨 일이 터져도 터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미군 사령부에서는 이 어린병사들이 영국에서 무슨 사고를 칠까봐 노심초사하며, 이들에 대한 정훈교육을 강화했었는데,


"일단 네들...독립전쟁에서 우리가 영국을 이겼다고 자랑하지 마. 옛날 일은 옛날일이고, 지금은 지금이잖아. 지금은 같은 편 먹고 독일 놈들이랑 싸우러 온 거니까 애들 기분 나쁘게 하지 마라. 그리고 영국은 입헌군주제 나라니까 영국 왕에 대해서 욕하거나 하지 마. 알았지?"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황이 터지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미군 사병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이런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본능적인' 문제였다.


"저기, 여자들은 어떻게 해요?"


"여자?"


"에이, 군바리들 모아놓으면 어떨거라는 거 알면서..."


"알아서들 해라. 알아서들...괜히 사고치지 말고..."


솔직히 말해서 당시 영국 주둔 미군에게 있어서 영국이란 나라는 최적의 주둔환경이었다. 경쟁자(?)라 할 수 있는 영국 남자들은 거의 대부분 군대에 끌려가 있는 상황이었고, 홀로 남겨진 여자들은 40년부터 3년 가까이 독수공방 홀로 생활해야 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1차 세계대전을 겪은 전쟁 미망인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네들이 몰라서 그러나 본데, 우리는 도시에 주둔하는 게 아니거든? 네들뿐만 아니라 미군 대부분은 한적한 시골 교외에 주둔 할 거니까. 나쁜 생각은 꿈에도 꾸지 마."


그러나 이런 생각은 지휘부의 착각일 뿐이었다. 언제 어느 때고 여자를 찾는 데에는 귀신(!)인 미군들은 영국 여자들 사냥(?)에 나서게 된다. 아니, 사냥에 나설 필요도 없었다. 영국 여자들이 알아서 미군들을 찾아오는 것이었다(멤피스 벨에서 나오는 파티장면의 여성들...이건 영화적 설정이 아니라, 당시 사회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낸 것이다. 물론 출격 전날 이렇게 파티 여는 건 영화적 설정이지만 말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숨 쉬고 있을 때만은 재밌게 놀아야 할 거 아냐."


영국본토항공전을 겪으면서 가치관 자체가 변한 영국 여자들...더구나 지난 3년간 독수공방으로 홀로 지내야 했던 그들이었기에 젊고, 잘 생기고, 거기다 돈까지 많은 미군들에게 홀딱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미군 봉급이 영국군 봉급의 4배라면서? 어머, 어쩐지 돈 쓰는 폼이 다르더라."


"걔들 PX 가봤어? 나일론 스타킹이 널려있다니까."


"본국에 연락만 하면, 통신판매로 날아오는 물건도 장난 아니야."


전쟁 덕분에 잠시 잊고 지냈지만, 그녀들은 여자였다. 그것도 한참 젊은...


"저기, 우리 다음에 영화 보러 갈까...요?"


"영화? 좋지...근데, 그럼 오늘은 뭐할 거야?"


"뭐...하다뇨?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이제 도로시는 집에 가고, 전 귀대하고..."


"그냥 이렇게 헤어지는 거야?"


"예? 아...자...잠깐...만...으아아아..."


 


영국 여자들이 미군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쉬했던 것이다. 아직 총각 딱지도 떼지 못한 미군들을 노련한(?) 영국 여성들이 함락시켰던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수십만의 미군들에 대해 영국 여성들은 열광했다. 그러나 이런 열광 뒤에는 영국 남자들의 남모를 질투가 있었으니,


"저것들 때문에 영국 여자들이 씨가 마를 거야."


"독일 놈들이 쳐들어 올 줄 알았더니만, 양키가 쳐들어 와서 우리 여자들을 다 빼앗아 가잖아. 차라리 독일 놈들이 쳐들어오는 게 낫을 지도 모르겠다."


 


당시 영국 본토에 남아 있는 영국남자들은 미군에 비해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당장 경제력부터가 밀렸고(당시 미군 이등병의 월급이 50달러에 이르렀다), 나이, 외모, 성격 등등 모든 것에서 밀렸다. 이러다 보니 미군은 여자 걱정 없는 행복한 주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여자들이 줄을 섰는데, 주말에 런던으로 외출하니까 여자들이 아주 난리가 아냐."


"피카디리 광장 가 봐라. 굿 타임 걸(Good time girl : 미군을 쫓아다니는 영국여자)들이 2열종대로 버킹검 궁까지 줄을 섰다."


보통 미군들이 주둔국이나 점령국에서 여자를 접하는 경우가 강간 아니면, 매춘부였는데...영국에서는 일반 여성들(물론 매춘부도 있었다)이 날뛰며 덤벼드니 미군으로서는 행복할 수밖에 없었다.


"쟤들도 우리랑 즐길 생각이지, 그 이상은 생각 안하는 거 같더라구."


"완전 우리 취향이잖아. 미래생각도 없고, 영어 통하니 언어 걱정없고, 이쁘고, 남자한테 굶주렸고...영국은 천국인가 봐."


까놓고 말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최전방에서 적군과 전투를 벌인 미군 병사는 6명에 1명꼴이었다. 즉, 운만 조금 따른다면 전쟁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나 42년부터 44년까지 영국에 주둔한 미군들에게 있어 영국은 천국일지도 몰랐다.


"네들 여자가 런던 역에서 만나자고 하면, 각오를 하고 가 알았지?"


"예? 그게 뭔 소리십니까?"


"자식들...네들 영국 애인 다 있지?"


"예."


"걔네들이 런던 역에서 만나자고 하면, 네들하고 섹스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거야. 그러니까...걔들이랑 데이트 하다가 런던 역 옆 지하로 내려가면, 아치 기둥이 몇 개 죽 늘어서 있을 거야. 그럼 못 이기는 척 따라가라고...그러다 보면, 갑자기 아치 기둥으로 끌고 들어갈 거야. 그러면...하는 거지."


"진짜요? 아니, 널린 게 호텔인데 왜 하필 벽 잡고 그 짓을 합니까? 우리가 짐승도 아닌데, 아무리 제가 이등병이라지만, 호텔비 정도는 있습니다."


"야야,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걔들은 그냥 거기서 하고 싶다는 거야. 여기서 중요한 게, 괜히 여자애들 옷 벗기겠다고 하지 마. 그냥 치마 올리고 벽에 기대 있으면 알아서 해. 괜히 옷 벗기겠다고 그러면 욕먹는다."


당시 남자에 굶주렸던 영국 여성들이었지만, 한 가지 걱정 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임신이었다. 그런데 옷을 다 벗지 않고, 벽에 기대어, 혹은 뒤로 돌아선 자세로 섹스를 하면 임신을 하지 않는 다는 속설이 당시 영국 여성들에게 퍼졌던 것이다. 소위 말하는 Wall job이었다(이 속설은 꽤 광범위하게 퍼져서 런던 역 지하기둥 주변은 정액범벅이 돼 있었다). 미군으로서는 호박이 넝쿨 채 굴러 들어온 느낌이었을 것이다.


영국 본토 항공전(Battle of Britain)이 시작 된 1940년부터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까지 영국에서 태어난 신생아 수는 25만 명 정도였다. 이들 중 10만 5천명이 사생아라는 통계가 발표됐을 때 영국인들의 반응은 한숨과 체념이었다.


"전쟁 통이니까...어쩔 수 없지."


"그래도 이건 아니지! 프랑스처럼 독일군이 주둔한 것도 아닌데...사생아라니!"


"당연한 거 아냐? 멀쩡한 남편들, 애인들 전부 전쟁터로 떠났는데, 누구랑 애를 만들었겠어?"


"그럼 기다려야지! 안되면, 바늘로 허벅지를 찌르던가!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왜 이렇게 문란해 진거야? 이게 다 양키 놈들 때문이야!"


"그게 꼭 양키 때문만은 아니잖아. 그쪽에서 아무리 찝적거린다고 해도, 여자들이 싫다고 거절하면 안 할 수도 있는 거 아냐?"


"유혹이 있으니까, 넘어간 거 아냐! 유혹이 없어봐 이런 일이 생기나?"


"그게...미군이 넘어 온 건 1942년부터거든?"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왜 갑자기 혼외정사 비율이 올라갔느냐 하는 점이다. 그 첫째 이유는 본토항공전을 겪으면서, 인생관이 바뀐 점을 둘 수 있다.


"언제 폭탄 맞아 죽을지 모르는데...살아 있을 적에 실컷 즐기자."


이런 감정이 들었으나, 남자친구와 남편은 머나먼 타국의 전장에 가 있는 상황! 결국 가까이에 있는 다른 남자나 미군들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머니라 할 수 있겠다. 영국이 전쟁 통에 배급경제(미국도 마찬가지였지만, 더 심했다)체제에 들어간 상황에서 영국군보다 훨씬 부유한 미군병사들...그것도 젊고 뽀송뽀송한 병사들이 들이닥치자 일순 넘어간 것이다.


"잘 생기고, 재밌잖아. 그리고...돈도 많고."


"담배도 엄청 많아!(2차세계 대전 당시 돈만큼 위력을 발휘한 게 담배였다)"


 


결국 이런 전차로 영국 여성들은 미군과 풋사랑을 즐기게 되는데...이는 곧 얼마가지 못했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벌어지고, 영국 본토에 있던 미군들이 썰물 빠지듯이 유럽으로 건너간 것이다. 그리고 영국 여인들이 향유하던(?) 미군과의 로맨스는 여타의 다른 유럽국가의 여성들...그러니까 프랑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등의 여성들에게 넘어가게 된다. 언제나 궁핍과 공포에 찌들어 있던 이들에게 있어서 미군은 하늘에서 내려온 엄친아였던 것이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을 삼자면, 영국 여자들과 미군들의 사랑 중 나름 '진지한 사랑'도 있었다는 것이다.


전쟁 후 미군 병사와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간 영국 여성이 약 7만 명 수준이었던 걸 보면, 미군과 영국여성의 관계가 원나잇 스탠드만 있었던 건 아니었나 보다.


 


③ 자, 이제 다음날이다.


 


다 좋은데, 비행기를 항로에 올려놓고 길을 알려줘야 하는 항법사...술에 쩔어서 맛이 간 상태이다. 어쩌랴...이러고도 폭격기가 뜬다면 그게 이상한 것이지만, 손가락을 목구멍이 집어넣으면 그날 먹은걸 일일이 다 확인 할 수 있다는 일상속의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사병들의 출격 전 모습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서 봐야 할 부분은, 영화상에선 그냥 스치듯 지나가는 이 장면, 이거 정말 중요한 모습이다. 이들은 출격 전에 꼭 면도를 하는 게 생활습관이었는데, 혹시 죽더라도 좀 깔끔한 모습을 하고 죽고 싶어서 그랬냐고? 아니다...원래 B-17이란 게 쫌 높은데로 날아가거든? 고도 한 6,7천 미터 정도....고도 7,600미터의 기온이 얼마일까? 음 영하 40도다. 이 상황에서 마스크와 얼굴이 꽉 밀착이 되지 않으면? 밀착 되지 않은 부분 동상 걸린다. 그래서 산소마스크와 얼굴이 착 달라붙으라고 수염은 다 밀어버리는 것이다.


 


면도하고 밥 먹으로 가는 애네들, 항법사 속도 안 좋은데 먹을 걸 산더미처럼 안겨주는 취사병, 여기서 출격 하는 애들이 한 가지 호사를 부리게 되는데, 비번일 경우엔 식사 때 분말계란이 나오는데, 출격하는 애들한테는 생 계란을 지급하였던 것이다. 분말계란이란 게 저온건조 시켜서 장기 보존 하려고 만든 것인데, 맛은 알아서 각자 상상하도록...어쨌든 출격하는 이들은 이 달걀 먹으며 출격을 생각하고, 밥 다 먹으면, 사병들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고, 조종사나, 부조종사, 항법사, 폭격수 들은 브리핑 실로 향한다. 그리고 거기서 작전참모에게 그날의 목표를 듣게 된다. 여기서 애네들이 간절히 바라는 건 오직 한 가지...


 


- 독일만 걸리지 마라


 


였다. 독일 점령지인 프랑스나 네덜란드 같은 동네는 독일 본토 보다는 방공망이 상대적으로 빈약했기에 살아 돌아 올 확률이 그만큼 높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폭격할 동네와 목료, 항로들을 브리핑 받고, 애네들은 작전참모의 지시에 따라 시계를 맞춘다. 바로 [시간조회]이다. 작전참모의 시계에 맞추고 나면, 이제 자기 폭격기로 향하는 일만 남았다. 자...여기서 본 필자가 멤피스 벨 전체 장면 중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바로 지프차에 10명이 다닥다닥 올라탄 체 로 멤피스 벨로 향하는데, 그 사이에 멤피스 벨과 다른 B-17 폭격기에 무장사들이 폭탄을 래크에 걸어 올리고, 탄약을 실어 나르기 시작한다. 보통 B-17 폭격기 한 대당 전속 정비사가 2명에서 3명이 붙는데, 애네들이 하는 일은 말 그대로 자신들이 맡은 B-17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만들어 놓는 일이었다. 영화 속에선 안 나왔지만, 일단 거의 아작 난 상태로 귀환한 B-17에 서로 달려가 부품을 떼 오고, 엔진을 떼어 다른 B-17에 붙이기 위해 그들은 또 다른 사투를 벌여야 했다. 정비사도 고생을 했다면, 무장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단 급유요원과 무장사들도 상당히 신중에 신중을 기해 폭탄을 싣고, 기름을 채워 넣어야 했었다. 왜? 위험한 물건들이니까?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게 바로 기체의 하중 때문이었다.


 


날아다니는 요새답게 기체 여기저기에 기관포를 달았기에 랭카스터나 핼리팩스, 스털링 같은 영국 폭격기 보다 훨씬 크면서도 폭탄 탑재량은 영국 폭격기의 반도 안 되는 빈약한 탑재량 때문에 미국 애들은 한발이라도 더 폭탄을 싣기 위해 머리를 쥐어 짜내야 했다. 해서 B-17의 연료량을 최대한 필요량에 맞춰서 싣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보통 이륙해서 순항고도까지 올라 갈 때까지 B-17은 시간당 1,500리터의 기름을 잡아먹지만, 일단 고도에 올라 목표까지 고고도 순항비행을 할 경우 시간당 760리터의 기름을 소모하기 때문에 이걸 일일이 다 계산을 하였던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돌아올 때는 폭탄을 다 썼기 때문에 그 만큼 무게가 줄어들고 그에 맞춰 기름 소모량도 적을 거란 계산 등등해서 어쨌든 최대한 기체 무게를 가볍게 한 다음에 그만큼 폭탄을 더 실으려고 애썼던 것이다. 물론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B-17은 언제나 수 백킬로 그램 이상씩 이륙중량을 오바하곤 했었다.


 


자, 무장사 애들이 빠져나가는 사이에 도착한 우리 멤피스 벨과 다른 폭격기의 승무원들, 저마다 장비를 챙기고 B-17에 올라타는데, 여기서 우리는 폭격기에 타는 공군 애들이 무슨 낙하산 부대 요원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게 된다. 무슨 놈의 장비가 그렇게 많은가? 실제로 그네들은 장비가 많다. 당장 산소마스크에, 방탄조끼..그것도 5센치 두께의 강판으로 둘러쳐져 대공포 유탄에도 뚫리지 않는 조끼에, 혹시 격추되면 쓰라고 외국 돈 얼마, 양털 방한복, 거기에 낙하산 등등 개인당 장비 무게만 해도 30킬로그램에 육박한다. 그런데 이런 장비를 그냥 아무렇지 않게 휙휙 폭격기 안에 던지고는 아크로바틱하게 몸을 한 바퀴 돌려서 폭격기 안으로 들어가는 우리 멤피스 벨의 요원들...정녕 그들은 체조선수였단 말인가??


 


여기서 잠깐, 우리 멤피스 벨의 노즈아트(Nose art : 비행기 기수에 탑승원들이 그려 넣은 그림이나 표식)를 잠시 주목해야겠다. 음...이 노즈아트의 실제 주인공은 멤피스 벨의 기장이었던 로버트 K 모건의 고향 친구(?) 마가릿 포크(Margaret Pok)가 모델인데, 음....별로 안 닮은 거 같다. 글치? 실제 멤피스 벨의 포크양은 원래 퍼런 코르셋을 입었다. 영화상에선 빨간색으로 나와 있지만 말이다...Memphis Belle이라 쓴 이름도 실제론 고딕체였다. 음 비교해 보시라들...뭐 옥의 티라고 하기엔 좀 뭣하지만 좀 세밀하게 가봤다.


 


여하튼 10명의 승무원들 비장한 표정으로 각자 정위치하고 나서 기장인 바른생활 장교 매튜 모딘에게 각자의 상태를 보고 한다. 보면 알겠지만, 전방의 폭격수와 항법사는 각자의 임무가 있는데도 기관총 2개씩을 맡고 있다. 기체 양옆에 한정씩 맞고 있는 두 명의 사수가 있고, 꼬리에도 기관총좌가 걸려 있는 게 보일 것이다. 탑 터렛을 맞고 있는 우리 총각 땐 버지는 항공기관사 임무까지 맞고 있다. 이 녀석은 기체 위쪽과 전방 방어를 하면서, 비행기가 날아가는 도중에 뭔가 고장이 나면 알아서 응급조치 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멤피스 벨이 여기저기 공격당해 불붙고, 기름 새고 할 때 이 녀석이 설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푸르도의 영원한 몸종이던 션도 그 작은 키에 맞춰 볼 터렛에 들어가 멤피스 벨의 아래쪽을 맞게 된다. 멋들어진 싯귀로 우리를 감동시켰던 무전사 대니도 무전만 치는 게 아니라 기체 상부의 기관포를 맡아서 여차하면 총을 들고 싸운다. 원래 B-17은 무전사는 총을 쥐지 않고, 무전만 열씌미 치게 했었는데,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되는 절박한 상황이 계속 되자 무전사도 총을 쥐게 되었다. 결론부터 보자면 조종사하고 부조종사 빼고는 전부다 총 한 자루씩 들고 날아올랐다는 것이다.


 


④ 날씨? 폭격기대를 괴롭혔던 가장 큰 적들 중 하나.


 


당시 영국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폭격기 조종사들이나 영국군 폭격기 조종사들이나 다들 날씨에 대한 불만과 공포로 밤잠을 설치곤 하였다. 일단 폭격하는 상공의 날씨가 어떤지도 중요했었고, 이륙하는 영국의 날씨도 그들의 발목을 잡는 요인 중의 하나였다. 날씨 더럽기로 유명한 게 또 영국 아니던가? 시시때때로 안개가 끼는 통에, 조종사들은 이륙에도 곤욕을 치르곤 했다. 한 폭격기 조종사는 선도기가 이륙하였으니 빨리 이륙하라는 관제탑의 명령을 받고는,


 


- 그 자식은 도대체 어디 활주로에서 이륙한거야?? 난 지금 바로 옆에 있는 부조종사 얼굴 도 안 보이는데!!


 


일단 이륙을 한다 해도 유럽의 날씨를 믿을 수 없다는 점에서 폭격기 조종사들과 폭격수는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언제 또다시 먹구름에 가려질지 모르는 상황에다가 독일 루르 지방의 매연들(괜히 공업지구겠는가?)....최악의 기상 조건이었다. 이런 기상 조건도 그나마 비행기가 뜰 수 있는 계절이면 다행이라고 느껴지는 기상상황이었다. 숫제 1,2월 달은   아예 뜰 생각을 말아야 할 정도로 최악이었기에 말이다.


 


어쨌든 날씨 때문에 잠시 대기하고 있던 사이...멤피스 벨 팀 중에서 먹물로 분류되던 우리 무전사 대니군께서 풀밭에 뒹굴고 있던 멤피스 벨 팀원들 앞에서 시를 낭독하게 되는 순간이 도래한다.


 



<대니가 낭송했던 시>


저 구름 사이 어디선가 나는 나의 운명을 만날 것이다


난 적군들을 증오하지 않고, 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저 법과 의무를 따를 뿐....


구름 사이를 거니는 이 기간에 새로운 의식이 날 자극했다


전쟁을 치루는 앞으로의 나날들은 호흡의 낭비이고, 느낌의 낭비이다.


이 인생의 균형은 바로 죽음이다.


 


이 녀석 상당한 니힐리스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찰나쯤 달려오는 지프 하나 드디어 이륙이다. 바른생활 장교, 모범군인의 표상 우리 매튜 모딘이 B-17을 몰고 가기 시작한다. 보면 좀 비행기가 삐뚤어지게 날아가는 느낌이 팍 들지? 글타...폭격기 조종사들 또 한 번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되는 시점이 바로 이때 되겠다. 이미 과적트럭들처럼 이륙중량을 오바한 상태의 폭격기를 가지고 이륙을 하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걸고 하는 미친 짓이었으니 말이다. 거기다가 폭격기가 싣고 있는 것들이 다 뭐냐? 기름에 폭탄에...전부 다 터지면 끝장나는 물건들 아니던가? 이래저래 폭격기에 탄 것들은 이륙하기 전부터 생명을 담보로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그들은 시간제한도 있었다. 후딱 올라가 기름 낭비하기 전에 전투대형 짜야하기 때문에 이들은 30초 안에 이륙해야 했었다.


 


⑤ 전투상자를 만들자.


 


- 개인적으로 독일 전투기 보다 더 무서웠던 건 구름 속에서 갑자기 튀어 나온 아군 폭격 기였다.


 


B-17 폭격기 조종사 중 한명이 했던 말이었다. 실제 멤피스 벨 초반부에도 한번 이 장면이 나왔던 걸 보면, 이게 빈말은 아니었던 거 같다. 자...그런데 왜 이것들은 그렇게 빽빽하게 뭉쳐서 날아오르는 것이었던가?? 음...애네들이 취하고 있던 포메이션은 제 305 폭격기 연대 연대장이었던 커티스 E. 리메이 대령이 만든 [전투상자]란 건데, 이 방식의 핵심은,


 


- 서로 사각을 교차하게 만들어 독일군기를 집중 공격 하면서도 서로 폭격할 때 폭탄에 맞 는 불상사는 없애는 진형


 


이 대형은 21대를 기본으로 해서 모든 방향으로의 사격이 가능하고, 특히 선도기를 노리는 독일군 전투기들의 전술에 대응하기 위해 전방 공격에 힘을 집중하는 형태로 만들어진 것인데, 서로 약간씩의 고도차와 수평차를 두었다. 이 상태에서 좌우 75미터 거리에 다시 이런 21대로 구성된 폭격기 편대가 300미터 아래위쪽에 하나씩 위치하면서 하나의 비행단을 만드는 것이다.


 


일단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오른 B-17은 각각의 소속 비행대에서 자신이 맡은 포지션으로 이동하고, 비행대는 다시 연대, 비행단의 순서로 자신이 맡은 포지션으로 이동해서 하나의 커다란 전투상자를 만든다. 이렇게 한참 전투상자의 진형을 만들기 위해서 왔다 갔다 하면, 이때쯤 호위 전투기가 붙게 되고, 이미 도버해협은 건넌 상황이 된다.


 


⑥ Little Friends들의 등장


 


멤피스 벨이 좀 날아가자, 호위 전투기 편대가 다가오자 뺀질이 부기장은 “작은 친구들”이 왔다면서 엄청 좋아한다. 음 그도 그럴것이 폭격기가 아무리 중무장을 했다손 치더라도 전투기에겐 취약한 것이 사실이니까 말이다. 실제로 B-17의 대원들은 호위 전투기들을 [Little Friends]라 부르며 이들을 좋아했다.


 


자, 이 대목에서 좀 긴 이야기를 꺼내야겠는데, 바로 영화상에서 등장하는 P-51 무스탕의 등장에 대한 것이다. 멤피스 벨이 마지막 25회째 임무를 완수한 날이 1943년 5월 17일이다. 그럼 무스탕을 유럽 전선에 배치하기로 결정한 시기는?? 1943년 8월 17일 미군 애들이 독일의 레겐스부르크를 폭격하겠다고 날아갔다가 정신 차린 괴링이 방공망을 재조직하고, 연합군의 중폭격기에 대한 요격체제와 전술을 정비하고 제대로 한번 미군을 때려잡자고 맘먹고 덤비게 된다...바로 [레겐스부르크의 학살]이었다. 이날 하루 동안 B-17 플라잉 포트레스는 60대가 격추되었고, 47대가 대파 되었을 정도였다.


 



 


결국 이 학살극 이후에 미군은 폭격기와 동행할 항속거리가 긴 전투기를 아주 절실히 찾게 되었고, 이때 등장한 게 무스탕이다. 그럼 멤피스 벨이 뜰 때에는?? 물론 없었다. 그때는 썬더볼트라 불리던 P-47이 호위 임무를 맡았으나 전투행동반경이 불과 280킬로미터였던 P-47은 독일 대륙까지 B-17을 호위해서 따라갈 수가 없었다. 영화 보면 중간에 돌아가는 호위 전투기가 바로 그런 이유에서 였다. 그럼 왜 영화에선 이 썬더볼트를 안 썼을까? 일단은 무스탕은 아직 쌩쌩하게 잘 날아 댕기는 놈이 많지만, 썬더볼트는 구하는 게 어렵다는 아주 평범하지만 확실한 이유에서 였다. 어쨌든 멤피스 벨에서 무스탕은 썬더볼트 흉내를 내면서 열심히 열연했지만, 티가 팍팍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원래 무스탕은 영국군이 P-40 키티호크를 구매하려고 폼 재고 있었을 때, 생산에 차질이 빚자, 노스 아메리카가 키티호크의 대체기로 4개월 만에 설계 제작을 끝내 내밀은 녀석이었다. 그때까지 이 녀석은 그냥저냥 평범한 녀석이었다. 고고도에서의 출력이 떨어져 영국군들은 이 녀석을 보병 지원용으로나 써야겠다고 맘먹고 그냥 들여왔는데(그 당시에는 전투기 한 대가 아쉬운 시점이었기에 날개만 달려있으면 뭐든 사가려고 안달했던 시절이었다), 아무래도 그놈의 엔진이 영 불안했던 것이다. 결국 영국 애들은 이 앨리슨 엔진을 들어내고, 거기에 영국 본토 항공전의 영웅 스핏 파이어의 롤스로이스 마린 엔진을 붙였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 이 녀석은 말 그대로 상상초월의 새로운 전투기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전비중량이 5.2톤이 넘어가는 녀석이 최고속도가 704킬로미터에 이르렀고, 고도 12,779미터나 날아 올랐다. 그 어떠한 독일기보다 속도, 상승력, 급강하 성능 면에서 앞섰고, 결정적으로 그 항속거리는 비교의 대상이 될 만 한 전투기가 없었다. 무려 2,655킬로미터를 날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연료 소모는 다른 미국 전투기의 절반 수준인데 비해, 기체의 크기는 더 커서 연료탱크가 컸던 데다가 409리터짜리 낙하식 연료탱크를 두개나 달수 있었던 무스탕은 영국에서 출발해 폴란드까지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항속력을 가지게 된다. 미군 폭격기 부대가 제대로 된 호위 전투기 부대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문제점도 몇 개 발견 되었다.


 


일단은 독일군의 주력 전투기 Bf-109랑 실루엣이 비슷해 B-17의 사수들이 독일군기로 오인해 무스탕을 공격해 아군끼리 공격하는 사태가 일어났으나, 결국 무스탕의 날개에 침공 마크를 그리고, 아예 독일군기와 구별되게 공장에서 나온 그대로 도색을 않고 은빛 날개를 펄럭이게 만들어 버렸다. 우리가 봐 왔던 무스탕 전투기의 은빛 날개의 이유는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 무스탕의 등장에 대해 가장 적절한 표현을 했던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독일 공군의 총수였던 헤르만 괴링이었다. 괴링은 무스탕의 등장을 보면서,


 


- 무스탕이 베를린 상공에 나타났을 때, 나는 우리가 전쟁에서 졌다는 것을 알았다.


 


⑦ 독일군의 반격


 


영화를 보면, 독일군 Bf-109 흉내를 내는 스페인제 HA1112가 연합군 호위 전투기가 빠져나가자 득달같이 멤피스 벨의 폭격기 편대로 뛰어드는 모습이 보인다. 자, 그런데 이 녀석들 일렬로 쭉 늘어서서 선두기만 노리는 모습이 보인다. 그 다음 공격에서도 선두기만 노린다. 왜 그런 걸까? 그렇다. 영화에서도 잘 표현되었지만, 미군도 영국군처럼 선도기에 베테랑들을 태워서 폭격기들을 인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녀석들이 최초로 폭탄을 떨어뜨리면 뒤이어 이걸 보고 나머지 폭격기들이 따라서 폭탄을 투하하는 것 이였다. 독일군들이 기를 쓰고 선두에 선 폭격기를 노리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독일군 전투기들의 공격 방법을 보면, 그것 또한 좀 이상하단 느낌이 들 것이다. 무슨 초등학생들 줄 세우는 것도 아니고 폭격기 편대 멀찍이에서 일렬로 늘어서서 기관포 쏘면서 달려드는 모습. 그런데 어쩌랴 실제로 저렇게 싸웠음을, 일단 이 녀석들이 전방에서 달려드는 건 의외로 B-17의 앞쪽이 취약하다는 걸 알고 나면서부터였다. 커다란 덩치에 고슴도치처럼 기관포를 거치해 놓은 폭격기를 상대로 정면공격이라니...파일럿으로선 피하고 싶은 상황이지만, 정면부분이 유일한 약점이라고 판단한 이후 독일공군은 기를 쓰고 앞쪽에서 공격을 시도하게 된다(나중에 가면, 전투기에 로켓포를 달아 쏘고, 폭격기 고도 위에서 폭탄을 떨구기도 하는 등 한 대라도 더 격추해 보겠다고 별별 아이디어를 다 뽑아낸다).


 


일렬로 늘어서서 집중 사격으로 선도기를 깨트리고 빠지는 모습. 그리고 한 동안 공격이 없는 것은 독일군의 주간 중폭격기 공습을 각 지역별로 중계해 가면서 공격을 했기 때문이다. 즉, A지역으로 B-17이 날아오면 그건 A지역의 관할 전투 비행단이 날아와 싸우다가 다시 기지로 복귀 하고, B지역으로 넘어가는 순간부터 B지역의 전투비행단이 이 불청객들을 인계받아 공격 하는 것이다. 그 사이 A지역 애네 들은 연료 보급 받고, 탄약 재장전 하면서, 복귀 하는 길에 또다시 이 불청객들을 사냥 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⑧ FLAK의 등장


 


자 벌떼처럼 덤벼들던 독일 전투기들이 갑자기 사라진다. 그리고 화면 여기저기에 검은색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렇다 대공포의 등장이었다. 폭격기들이 목표 근처 상공으로 접근하게 되면 전투를 벌리던 독일군 전투기 들은 사냥감을 지상의 대공포로 넘겨주고 자리를 피한다. 독일 애들이 FLAK(Fliegerab wehrkanone)이라 부르는 대공포의 등장이었다. 연합군 애들은 고사포(anti aircraft)의 철자와 기괴한 포격음을 따서 [애크애크]라 부르며 빈정거렸던 바로 그것!


 



 


- 한 사형수가 사형 당하는 방법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서 사형하는 방법을 골랐는데, “대공포에 맞아 죽겠습니다” 라고 말했거든...그러자 이 녀석을 교회 첨탑에 묶어두고 독일군 FLAK 사수들이 사흘간 신나게 쏘아대었지, 사흘이 지나서 첨탑을 보니까 사형수가 죽어있던 거야. 이 녀석들은 사격을 중지하고 나서 풀어보니까 사형수는 한방도 맞지 않았던 거야. 알고 보니까 이 녀석 굶어 죽었던 거야.


 


미군 파일럿의 유머였다. 실제로 독일군 대공포 사령부의 계산에 따르면 적기 1대를 격추하는데 쓰이는 대공포탄은 평균 3,343발이 소비되는데, 이 소비량을 돈으로 계산했을 경우 무려 27만 마르크...전투기 3대를 생산하고도 남는 금액이었다(당시 독일군 참모부는 이 계산결과를 근거로 독일에 배치되어 있던 고사포들을 철거해 동부전선에서 대전차포로 쓰자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뭐 그래도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대공포는 그 위력 하나만으로 정평이 나 있는 것이었고, 엄청나게 생산되어 맹위를 떨친 것도 사실이다. 물론 항공기 격추용도로 이름을 떨치긴 보다는 탱크를 잡는데 더 요긴하게 사용되었으니까 말이다. 사막의 여우 롬멜 장군이 프랑스 침공 때부터 이 대공포를 대전차포로 용도 변환해 사용하였는데, 그때부터 FLAK 88...88미리 대공포는 말 그대로 무적의 대전차포로 길이 이름을 날리게 된다. 음 좀 그렇지? 당시 아프리카 주둔 영국군 장교가 독일군 포로가 된 다음에 한말이 명작이었는데,


 


- 비행기 잡는 걸로 탱크를 잡는 건 반칙이다!!


 


이랬던 일화가 있었다. 음, 그럼 대공포는 정말 폭격기를 잡는데 쓸모가 없었던 걸까? 글쎄...좀 비효율 적이긴 해도 한방이 있는 녀석이었으니까 말이다. 전차도 일격에 격파하는 이 녀석을 스치기만 해도 폭격기 정도는 뼈도 못추릴 건 뻔 한 사실이지만, 문제는 역시 명중률인데, 이 녀석들은 어떤 명중률을 기대하고 쏘는 게 아니었다. 그냥 일정지역을 설정하고 그곳에 수십, 수백문의 대공포를 배치해놓고는 화망을 구성 일제히 쏘는 것이었다. 그러니 결론은 맞으면 재수고, 안 맞아도 원래 조준 안하고 쏘는 거니까 하고 넘어가는 건데, 만약 제대로 화망에 걸려들면 그걸로 끝이었다. 영국군 폭격대가 야간 공습을 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 이 화망으로 걸어 들어가게 되었고, 총 74대중 54대가 그 자리에서 격추되어버리는 일도 있었던 걸 보면, 무시 할 수만은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한참 대공 포탄이 멤피스 벨 근처에서 터질 때 멤피스 벨의 승무원들은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방탄조끼를 착용하고 있었다. 보기에는 좀 허접해 보이고, 당시 B-17 승무원들도,


 


- 이거 전쟁이 점점 중세시대로 돌아가는 거 같아...우리가 기사도 아닌데 말야...


 


이렇게 농담 삼아 한마디 던지긴 했었지만, 적어도 이 방탄조끼의 성능에 대해선 군소리가 없었다. 20미리 포탄이 60센치 옆에서 터졌는데도 이 방탄조끼를 착용한 승무원은 상처하나 없이 귀환하였고, 5킬로그램짜리 파편을 직격으로 얻어맞은 승무원도 파편을 맞은 곳에 멍만 들었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걸 보면, 방어력 하나는 확실했던 것 같다. 다만 무게가 좀 나가는 게 흠이었지만, 조금 무거운 것과 생명 중 어느 걸 택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 이런 대공포의 포화 속에서 우리의 사기꾼 의대생(?) 이었던 빌은 그 말 많고 노든 조준기 앞에 딱 눈을 갖다 맞추고, 폭탄을 떨어뜨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뒤에 있던 항법사 초조한 기색으로 빌을 바라보고 있고, 기장은 빌에게 조종을 넘긴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AFCE...자동조종장치의 등장이다. 영화 보면 알겠지만, 조종을 폭격수에게 넘기고, 폭격수가 조준 하는데로 비행기가 움직이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 종군기자 앨런 미치가 주간 폭격을 하려는 미군들에게 했던 말이 생각나는 일이 벌어진다.


미군은 주간 폭격을 주장하면서 영국군에게,


 


- 우린 6천 미터 상공에서 쓰레기통을 명중시킬 수 있다.


 


그러자 미치는,


 


- 6천 미터 고도에서 통을 명중시키려면 우선 먼저 통이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대공포화가 폭격기 바로 옆에서 터지는 상황! 매튜는 결국 기수를 다시 돌려서 제대로 폭격 하려고 한다. 승무원들 뻥진 표정, 이때 항법사 폭격수에게 달려든다. 출격 전날부터 죽을 거 같다며 우는 소리 하던 이 녀석 어여 폭탄 떨어뜨리고 뜨자는 말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힘에서 딸리는 항법사. 그리고 이어지는 바른생활 장교의 한마디,


 


- 우리가 여기서 아무렇게나 폭탄을 떨어뜨리면, 누군가 또다시 이곳에 와야 한다.


 


확실히 바른생활 장교는 생각도 바른가 보다. 멤피스 벨 승무원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또다시 대공포의 포화를 헤쳐 나가며, 결국 브레멘의 목표로 다시 한 번 접근한다. 그러나 구름은 여전히 걷히지 않은 상황. 빌 신중에 신중을 다해 목표를 찾는다. 자 여기서 다시 한 번 기수를 돌려야 할 거 같은 불안한 상황. 그 순간 구름이 걷히기 시작하고, 보이기 시작하는 공장 건물. 이어지는 폭격, 멤피스 벨을 따라 폭격을 하는 다른 폭격기들. 임무는 성공이었다.


 


⑨ 귀환 Ι


 


임무를 완수하였다고 해서 그들이 무사하게 기지로 돌아간다는 보장은 없었다. 호위 전투기가 마중 나오는 곳까지 달려가야지만 겨우 한숨을 돌리는 것이다. 그 전에는? 역시 독이 오를데로 오른 독일 전투기들에 의해 또다시 죽음의 문턱 앞까지 끌려가야 했던 것이다. 자기 조국에 폭탄을 떨구고 돌아가는 이 기분 나쁜 불청객에 대한 분노로 독이 오를데로 오른 독일 루프트바페는 사력을 다해 이 불청객들을 한대라도 더 잡아보겠다고 덤벼들고, 폭격기대는 살아보겠다고 분투하고...멤피스 벨도 귀환하는 동안에 거의 [개차반]이 된다. 당장 볼 터렛. 기체 하부의 기관총좌에 앉아있던 푸르도의 몸종 션이 그 자리에서 죽을 뻔 했고, 그나마 먹물로 분류되던 대니가 전투 중에 사진기에 한눈팔다 그 자리에서 한방 맞게 된다. 여기서 의대를 2주밖에 안다닌 빌은 대니를 낙하산에 묶어서 떨어뜨리자는 엽기적인 제안을 하게 된다.


 


최선을 다해 한번 살아보겠다고 버텨보는 멤피스 벨, 엔진에 불이 붙고, 기름은 새고, 여하튼 정신없이 두들겨 맞던 멤피스 벨, 그 사이에 기록필름 한 자락 펼쳐져 나오고, 멤피스 벨은 이제 엔진 두개로 날아가고 있었고, 그나마 두 개 중에 하나가 또 퍼져 버린다. 실제 B-17은 엔진 4개중 3개가 박살이 난 상황에서도 엔진 하나로 귀환한 기록이 있었으니 이 장면이 구라는 아니다. 대니는 빌이 그나마 마음을 바꿔먹어서 피 흘리며 누워 있고, 매튜는 필요 없는 장비를 다 버리라고 명령한다.


 


그 상황에서 랜딩기어 내리고 착륙 준비를 하려는데, 역시 멤피스 벨 첫 장면에서 바퀴 하나 안내려와 박살난 B-17의 그 장면이 괜히 있었던 게 아니었음을 보여주게 된다. 바퀴가 하나 안 내려오고, 몸 성한 멤피스 벨 대원들은 교대로 바퀴를 내리기 위해 핸들을 죽도록 돌리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언제나 죽을 거라며 재수 없는 소리만 하던 항법사가 갑자기 어떤 계기도 없이, 아무런 심경 변화의 단초도 없었는데, 갑자기 살아보겠다며 열심히 수동 조작 핸들을 돌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들은 멋들어지게 멤피스 벨을 착륙 시킨다. 달려오는 기지의 요원들과 고기차들(당시 폭격기 탑승원들은 구급차를 그렇게 불렀다) 그 사이에 실려 나오는 대니와 멤피스 벨의 대원들 각자 감회에 젖어 있는데, 갑자기 망가진(?) 바른 생활 장교 샴페인을 꺼내서 뿌려 제끼며 일탈(!!)의 모습을 보이고, 공보장교가 사진 찍자고 카메라 들이밀면, 상당히 불량스러운 자세로 사진을 찍으며 이 작품은 끝이 난다....


 


5. 뒷이야기


 


멤피스 벨의 마지막 출격 후 귀환한 사진을 보면, 멤피스 벨은 아주 멀쩡하게 돌아왔다. 귀환 후 사진도 아주아주 [건전한 포즈]로 일렬로 늘어서서 찍었던 게 보인다. 이후 이 녀석들은 미국으로 건너가 각종 모금행사나 공군지원 행사에 멤피스 벨을 끌고 날아올라 시범기동이나 행사기동을 하면서 서커스 비행대(?)가 되어야 했다.


 


(이 부분 중요했는데, 막강 경제대국 미국도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비를 구하기 위해서는 골머리를 썩어야 했다. 전시채권은 물론이거니와 배급제를 통한 자원배분 등등 아끼고 줄일 수 있는 모든 걸 다했지만, 그래도 부족했던 게 '돈'이었다. 결국 이들은 강매에 가까운 전시채권 구매를 독촉하게 된다. 아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전선에 나가있던 병사들도 지휘관들의 '꼬드김'에 넘어가 집으로 편지를 보내 전시채권을 사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애국적 열기도 전쟁이 길어지면서 차츰 식어졌고, 이런 식은 애국심을 살려보겠다고 국방부가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전쟁영웅'이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아버지의 깃발'을 보면 이런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다)


 


본 필자와 이 작품을 같이 보았던 지인들 중 몇 명이 본 필자에게 질문한 여러 가지 물음 중 상당 부분은 앞전의 글에서 설명을 했다 할 수 있겠는데, 몇 가지 이해가 안 가는 게 있다고 본 필자 옆구리를 찌르던 필자의 지인의 질문이 타당한 물음 같아서 일단 그 질문에 대한 답부터 하고 마무리를 짓기로 하겠다.


 


① 부기장이 꼬리까지 걸어가 후미사수 자리를 꿰찰 수가 있나?


 


일단 조종사와 부조종사는 B-17의 이륙과 함께 거의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B-17과 씨름하여야 한다. 그 말 많고 탈 많은 전투상자의 한 축이 되어야 하기에 이들은 고도와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조종간을 붙잡고 고도를 확인하며 자신의 위치를 찾고, 그 위치를 고수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한다. 그들이 잠시 잠깐 짬을 낼 수 있었던 때는 폭격수에게 B-17의 조종을 넘길 때의 그 짧은 순간이 다였다.


 


② 전투기 날개로 폭격기 동체를 자를 수 있는 것인가?


 


부기장이 꼬리 쪽으로 이동해 첫 사격으로 첫 번째 격추를 하는 장면이 보인다. 그러나 재수 없게도 그 격추되던 Bf-109는 다른 B-17의 꼬리부분을 잘라 버리게 된다. 실제로 2차 세계 대전 초반기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었던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영국 공군기가 총 한발 안 쏘고 두 대의 독일 폭격기를 격추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나란히 붙어 있는 폭격기 사이를 고속으로 급강하 하면서 양쪽 날개로 폭격기를 [잘라] 버렸던 것이다. 실제로 이런일은 가능했던 것이다.


 


③ 샴페인을 이상한 헝겊에 넣더니 스위치를 올리던데?


 


음, 간단히 말해서 [전기장판]이라 보면 되겠다. 앞전에 고도 7천미터 정도면 영하 40도가 넘어간다고 말했었지?? 당시 제8공군은 승무원들의 [근무여건] 개선 차원에서 이들이 추위에 좀 덜 노출 되게 하기 위해 별별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양털 점퍼로는 추위로부터 승무원들을 지켜내는 게 한계가 있었고, 결국 승무원들의 옷에 [열선]을 넣어서 전기로 보온을 하게 된다. 승무원들 사이에선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단, 여기에 오줌을 싼다거나 하면...).


 


④ B-17이 활주로에 착륙하기 전에 붉은 조명탄을 쏘는 이유는?? 기분 좋아서 쏘는 거다?


 


음 별로 기분 좋은 거라고 하긴 그런건데...B-17이 조명탄을 쏘는 이유는, 현재 자신들의 폭격기 안에 [부상자]가 있음을 알리고, 먼저 착륙 하겠다는 의미이다. 이 조명탄을 보고 지상의 구급차들은 대기하고 있다 그 폭격기로 달려가 부상자를 인계 받는 것이다.


 


6. 마치며,


 


멤피스 벨은 제작 당시 실제 멤피스 벨의 탑승원들의 연령대에 맞춰 18~24세 사이의 배우들을 뽑아서 만들 정도로 최대한 고증에 충실하려고 애썼던 작품이었다. 덕분에 거의 무명에 가까운 배우들이 이 작품을 통해 우리들 곁으로 다가왔었고, 나름대로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연기 세계를 표출하려 했었다.


 


감독 역시 최대한 고증에 맞추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 했었고, 덕분에 B-17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 중에서 수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작품 자체의 구성을 B-17 폭격기의 폭격임무 1회 동안 겪을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부여하는 쪽으로 나갔기 때문인지, 멤피스 벨의 마지막 출격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내용을 연출 했지만, 필름에 담아낸 B-17 폭격기 승무원들의 모습은 사실적이며 충격적이다 할 수 있겠다.


 


2차 대전 당시 B-17은 유럽에 떨어뜨린 폭탄 5개중 2개를 떨어뜨렸고, 총 291,508회 출격해 64만톤 이상의 폭탄을 유럽 상공에 골고루 뿌려 주었다. 그들이 자랑하던 B-17에 달려있던 기관포와 밀집대형의 전투상자도 나름대로의 효과를 거두어 대전 기간 중 6,659대의 독일군기를 격추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독일은 영미의 합동 폭격이 있기 전보다 폭격이 시작되면서 공업생산량이 더 증대되었다. 지상에 있던 공장들은 지하, 반 지하로 여러 지역에 분산해 운영하였고, 절치부심 연합국의 폭격기대를 몰아내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근본적으로 그들의 저항은 패전을 조금 더 뒤로 미룰 수는 있었어도 승리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영미군의 폭격기대를 저지하기 위해 독일 루프트바페는 분전하였다. 폭격기 1대를 격추하는 동안 전투기 1대를 던져주는 교환률로 분전하였으나, 연합국의 항공기 생산력과 독일군의 항공기 생산력은 2:1의 격차를 보였기 때문에 1:1의 교환률은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당시 독일군의 항공기 수리 시설은 연합국의 그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였다. 대전 후기에 들어서자 독일의 단발 전투기 중 1/3은 수리와 정비의 미비로 출격 불능 상태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물론 갈란트 같은 독일공군의 대부는,


 


- 적의 폭격기 부대를 유럽 상공에서 몰아내기 위해선 적의 폭격기 부대의 3~4배 정도의 전투기가 필요 합니다!!


 


이렇게 외쳤으나, 독일 상층부는 전투기 제작에 필요한 알루미늄을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차지했을 때를 대비한 흰개미 방어용 [알루미늄 오두막]을 만들겠다면서 공군의 금속 소요량을 우선순위에서 밀어내고, 우선순위 5위에 배번했었다.


독일 전투기 생산을 총괄하던 에르하르트 밀히 원수가 대전이 끝나고 나서 독일이 패전한 이유에 대한 답을 들어보면, 당시 독일 공군의 참담한 상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14만대나 되는 전투기가 미 생산으로 끝났다...


 


독일 U-보트와 마찬가지로 독일공군 역시 압도적인 물량에 밀렸던 것이다. 항공유와 전투기의 부족 속에서도 독일 전투기 조종사들은 출격을 위해 날아올랐고, 1일 2, 3회 출격을 예사로 생각하며 조국의 하늘을 침범하는 불청객들을 몰아내기 위해 분투 하였으나, 그들은 세계 최대의 공업 생산국을 적으로 두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아야 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