➂ 이순신 장군 자살설
『김덕령이 죽고 난 후 여러 장수들이 저마다 스스로 제 몸을 보전하지 못할까 걱정하였다. 곽재우는 마침내 군사를 해산하고, 산속에 숨어 화를 모면했으며, 이순신도 바야흐로 전쟁 중에 갑주를 벗고 앞장서 나섬으로써 스스로 탄환에 맞아 죽었다. 호남과 영남 등지에서는 부자 형제들이 서로 의병이 되지 말라고 경계하였다.』
숙종시절의 문신 이민서(李敏敍)가 말한 것처럼 이순신 장군은 갑옷을 벗고 스스로 일본 수군 앞으로 걸어들어간 걸까? 이순신 장군 자살설이 나온 '정치적 배경', 그러니까 '선조의 의심과 불안감'을 제외하더라도 군사적인 의문이 든다.
첫째, 이순신 장군은 원거리 포격전을 위주로 싸웠다. 원균이 부득불 일본군의 수급을 노렸던 것과 달리, 이순신은 포격전으로 안전하게 전투를 수행했다. 기적이라 불리는 명량해전 당시에도 전사자는 2명이었다.
둘째, 이순신 장군은 지금으로 치면 해군 참모총장 정도인데 적탄에 노출될 (장소에 있을만 한)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순신 장군이 원거리 포격전을 위주로 싸웠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이 함대를 지휘했던 총 18차례의 전투 중 딱 3번. 선두에 서서 함대를 독전했던 전투가 있었다. 사천해전, 명량해전, 노량해전이다.
이순신 장군은 이 3번의 해전 중 2번 피격을 당한다. 사천과 노량에서다. 이순신 장군은 사천 해전 이후 스스로를 자책하는 발언을 많이 했고, 이때의 후회를 난중일기에도 남겼다.
이후 앞으로 나서는 일을 자제했지만, 명량 때는 너무도 급박했다. 또 노량은 임진왜란의 종지부를 찍는 전투였다. 일본군이 본국으로 도망가는 길목을 차단하고 섬멸전에 들어간 전투였다. 곱게 돌려보낼 순 없을 거다.
전투상황도 생각해봐야 한다. 노량해전 초반에는 조명 연합군이 왜선을 관음포 쪽으로 몰았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뒤엉켜서 난전이 됐다.
시간대별로 분석하면,
1) 전장 도착: 조명 연합수군은 1~3시 사이에 노량에 도착
2) 전투 시작: 새벽 4시부터 관음포 앞바다에서 왜선들과 일전
3) 전투 격화: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 이르러선 난전이 되어 조선수군은 육박전까지 뛰어든다
노량해전은 격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좁은 구역에 왜선을 몰아넣은 '몰이사냥 형태'의 전투라, 일본군 입장에선 조명연합 수군을 뚫지 못하는 건 죽는 것과 다름 없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결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조선 수군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7년 간 국토를 유린한 왜적들을 곱게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해군 참모총장급, 연합함대의 지휘관 격인 이순신 장군이 저격을 당할 수 있냐는 반문할 수 있는데, 내가 다시 묻고 싶다.
“그럼 넬슨 제독은?”
넬슨 제독이 다른 제독들에 비해 과감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상관의 명령을 어기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의 과감성과 저돌성을 감안해도, 그는 함대를 지휘하는 '제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르시카 전투에서 한쪽 눈을 잃고, 산타크루스 전투에서 한쪽 팔을 잘라내야 했다(오른팔을 잘라내고도 다시 함대를 지휘했다).
넬슨 뿐만이 아니다. 넬슨과 함께 나폴레옹을 격파한 걸로 유명한 웰링턴 공작은 워털루 전투 때 나폴레옹군의 공격에 노출됐었다. 특이한 일이 아니었던 게 19세기까지 수많은 명장들은 적의 공격에 노출됐고, 생명을 위협받거나 빼앗기기도 했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장군’들은 사무실에서 당번병을 괴롭히며 펜대나 굴리고 있으므로 과거의 장군들도 그렇게 살았을 것 같지만, 과거의 장군들은 물리적으로 생명을 위협받았다.
이순신 장군이 적군의 화망에 걸렸든, 저격을 받았든,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는 거다. 노량해전과 같이 특수한 상황이라면 더더욱.
(가타도 츠기오가 쓴 『이순신과 히데요시』에 이순신 장군이 ‘저격’을 당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저자의 논거는 간단하다. 새벽을 지나 아침해가 떠오를 무렵, 조선 수군의 기함이 하필이면 앞에 있었다는 거다. 해가 떴고, 돌출됐다는 걸 확인한 일본 수군들이 집중사격을 했다는 거다. 상식적으로 보면 당연하다. 적의 기함, 그것도 망루에 지휘관이 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미 사지(死地)나 다름 없는 곳에서 이순신 장군이 자살을 한다?
전쟁터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든 이상할 게 없다. 굳이 갑옷을 벗을 이유도, 앞에 나서서 총탄을 맞을 이유도 없다(그렇다면, 이순신 장군은 부하들의 안전을 방기한 것이 된다).
자살설은, 선조의 몰지각한 행보에 대한 반동이라 할 수 있다. 굳이 자살을 선택하지 않아도 총탄이 빗발쳤던 게 노량이었다.
➃ 이순신 장군 은둔설
이순신 장군을 둘러싼 ‘음모론’ 중 가장 논란이 많은 이야기다.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한 다음, 끝무렵에 작은 협선을 타고 해역을 벗어나 몸을 숨겼다.”
이순신 장군은 수차례에 걸쳐 시골 촌부처럼 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아들 면이 정유년(1597년) 9월에 아산에서 전사한 걸로 상심이 컸었다. 아들의 죽음 앞에 전쟁에 대한 환멸을 느꼈고, 시시각각으로 조여오는 선조와 정치인들의 압박 속에서 죽음 혹은 피신을 생각했다는 거다.
“자살설은 이해하겠는데, 은둔설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근거가 있는가?”
라고 반문할 수 있겠는데, 이순신 장군 은둔설을 주장하는 이들이 가장 유력하게 생각하는 게 장례절차와 이장(移葬)이다.
무술년 11월 19일 새벽녘에 왜군의 흉탄에 명을 달리한 이순신 장군의 시신은 20일 후에 아산으로 옮겨졌다. 장례는 이로부터 80일이 지난, 이듬해 2월 11일에 치러진다.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이순신이 전사하였다는 보고가 선조에게 올라간 것이 1월 23일이었고, 이때 벌써 이순신 장군의 추증(追增)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12월 4일 우의정에 증직되었고, 나라에서 장례비용을 지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0일이나 지나서 장례절차를 밟았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문제는 1614년 다시 한 번 장례를 치렀다는 거다. 15년 후 원래의 묘에서 불과 600m 떨어진 곳으로 묘를 이장하였다.
몇몇 역사가들은 1599년과 1614년까지의 15년 간을 이순신 장군의 ‘은둔설’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즉,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 막바지였던 무술년 11월 19일 새벽,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전투가 거의 종결지점에 이르른 때 협선을 타고 기함에서 탈출했고, '명목상으로' 죽었다. 안빈낙도를 즐기는 인간 이순신이 여생을 편안히 보내다 1614년에 그 생을 끝냈다는 거다.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 이순신 장군의 측근들이 대다수 노량에서 ‘전사’하였다는 사실이다.
이순신 장군을 따르던 조방장 이영남과 돌격장 이언량 등 임진란 당시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이름을 떨치던 이들이 노량에서 모두 ‘전사’했다. 노량에서 조선 수군의 피해가 격심하였다면 이해 가능한 대목이었겠지만, 노량해전은 말 그대로 섬멸전이 목적이었다. 조선 수군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전이었다는 점, 조선 수군의 피해가 왜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미하였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 전쟁영웅들의 갑작스런 사망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물론 일본군도 필사적으로 덤벼들었다. 자칫 잘못했다면 조명 연합군이 역포위될 위험성도 있었다. 시마즈의 수군이나, 고니시의 육군이나 최후의 발악을 했었으니 아무리 백전노장들이라도 목숨을 내걸고 싸웠을 거다.
중요한 것은 이 몇 가지 ‘틈새’가 '이순신 장군 은둔설'로 이어졌다는 거다.
추천
대한민국, 악의 인센티브2 : 조국 딸 조민과 장제원 아들 장용준 둥이추천
국방 브리핑 30 : 코로나와 항공모함 펜더추천
스페이스 X와 크루 드래곤의 의미: 48년 전의 꿈이, 다시 시작된다 파토추천
또 다른 일본, 야쿠자 100년사 1: 최초의 야쿠자와 현재의 야쿠자 누레 히요코추천
금태섭 레버리지 : 민주당을 까는 지렛대 둥이추천
이순신 장군, 죽음의 미스테리完: 전장에서 전사하고 정치로 죽었다 펜더추천
코로나 19 이후의 미국: 블루칼라의 몰락 씻퐈추천
대한민국, 악의 인센티브 1 : 우리는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 있다 둥이추천
[딴지만평]이것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다 zziziree추천
중국 브리핑 2: 홍콩 보안법 가결, 본토 개입이 시작된다 아홉친구추천
[수기]노가다 칸타빌레 33 : 건설노조 1 꼬마목수추천
이용수 할머니의 발언들 : 할머니도 실수할 수 있다 둥이추천
[이너뷰]김한규를 만나다下: 혼자 잘 살면 불편합니다 마사오추천
[이너뷰]김한규를 만나다上: 김한규가 민주당으로 간 까닭은 마사오검색어 제한 안내
입력하신 검색어는 검색이 금지된 단어입니다.
딴지 내 게시판은 아래 법령 및 내부 규정에 따라 검색기능을 제한하고 있어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전기통신사업법 제 22조의 5제1항에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삭제, 접속차단 등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치가 취해집니다.
2.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청소년성처벌법 제11조에 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제작·배포 소지한 자는 법적인 처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4.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 따라 청소년 보호 조치를 취합니다.
5. 저작권법 제103조에 따라 권리주장자의 요구가 있을 시 복제·전송의 중단 조치가 취해집니다.
6. 내부 규정에 따라 제한 조치를 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