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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야지 김 씨의 一日

 

지금부터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소설 한 편 써볼 거다. 제목은 「오야지 김 씨의 一日」이다. 주인공은 목수 오야지 김 씨다. 극적 구성을 위해 다소 과장했다는 점 미리 밝힌다.

 

「최근 아파트 현장을 하나 따냈다. 6개월쯤, 현장이 없어 놀다 겨우 따낸 현장이다. 나처럼 팀 꾸려 이 현장 저 현장 다니는 ‘도급팀’은, 수는 그대로인데 현장은 갈수록 줄어든다. 하청 건설사 사장들 쫓아다니며 줄기차게 접대도 했다. 근데 그쪽 사정도 다르지 않은 터라, 영 소득이 없었다. 이 짓도 이젠 못 할 짓인가 싶던 참이었다.

 

이번에도 현장 못 따면 다 때려치우자는 생각으로 A 하청 사장을 만났다. 보름 전이다. 1평당 110원씩 하던 공사비를 100원으로 낮추겠다고 말했다. 사장은 내가 건넨 봉투를 못 이기는 척 챙기고는, 겨우 현장 하나 만들어줬다.

 

며칠 뒤, 팀원들과 현장에 미리 가봤다. 세 팀이 5개월이면 끝낼 작은 현장이었다. 이런 현장에 다섯 팀 몰아넣은 거다. 망할 사장 새끼.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열심히 해봐야 32만 원(100원 X20평 X4세대 X20층 X2개 동)쯤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장 하나 들어가서 32만 원이면 거짓말 좀 보태 밑지는 장사다. 그렇다고 마냥 쉴 순 없는 노릇이었다. 궁여지책을 쓰기로 했다. 팀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당 올려준 지도 오래됐고, 해도 바뀌고 해서 다음 현장 들어갈 땐 일괄적으로 일당 1만 원씩 올려준다고 말했었는데, 이번 현장에선 좀 어려울 것 같어. 다들 얘기 들었겠지만, 공사비도 깎인 데다가 현장에 도급팀만 다섯 팀이라, 남는 게 읎어. 솔직한 말로 내 인건비도 안 나와. 이해를 좀 해줬음 좋겄어~ 그리고 숙소는 말이여. 5명이 하나씩 쓰는 거로 하자구. 나도 먹고는 살아야 할 거 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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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한 대로 팀원들 반발이 컸다. 절반 이상이 팀을 나갔다.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요즘 같은 시기에 한국 목수만 있는 도급팀은 우리팀이 거의 유일했다. 안 그래도 아는 오야지 형님한테 베트남 애들 소개받기로 했다. 일도 곧잘 하고, 먹는 거나 자는 문제로 불평 같은 거 안 하고, 결정적으로 한국 목수보다 일당이 훨씬 적다. 오야지 형님은 전화 끊기 전, 이렇게 말했다.

 

“얌마! 요즘 누가 한국 목수 쓰냐? 일당만 비싼 고집쟁이들! 에휴 질려! 베트남 애들 일 잘하니까, 적당히 부리다가 계산 안 나오면 돈 주지 말고 내쫓아버려어. 어차피 불법 애들이니까 상관읎어~ 10명 필요하다고 했지이?”

 

내일부터 현장에 들어간다. 다시 계산기를 두드렸다. 베트남 애들 일당이랑 숙소비에서 좀 세이브하고, 팀원들한테 말은 안 했지만, 함바집도 제일 싼 곳으로 계약했다. 식비에서도 좀 세이브할 거 같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데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답이 안 나온다. 역시 1평당 100원에 계약한 게 무리였다. 이전처럼 5일에 1층씩 작업하면 진짜 ‘또이또이’다. 방법은 하나다. 베트남 애들 잡아 족치면서 분위기 끌어올리는 수밖에. 빠르면 4일, 적어도 4일 반나절에 1층씩 작업해야 쬐~금, 진짜 쬐금 남는다. 당장 내일, 현장 들어가자마자 분위기부터 조져야겠다. 한국 목수고 뭐고, 말 안 들으면 내쫓으면 그만이니까…….」

 

“오야지 나쁜 놈! 퉤퉤퉤.” 하고 말 텐가

 

거두절미하고, 내가 생각하는 우리나라 노가다판 근본적인 문제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 시스템이다. 발주처-대형건설사(=원청)-중소건설사(=하청)-오야지로 이어지는 먹이사슬 체계 말이다. 그중 가장 말단에 있는 오야지 관점으로 소설 한 번 써봤다.

 

내가 소설에서 얘기하고 싶었던 건, “오야지 나쁜 놈! 퉤퉤퉤.”가 아니다. 김 씨는 자본사회에 살아가는 사용자다. 냉정하게 말해, 김 씨는 자본사회 구성원으로서 ‘최소비용 최대마진’이라고 하는 시장 논리에 충실한 것뿐이다.

 

해서 나는, 김 씨 도덕성과 불법성을 따지기 전에(그건 다음 문제로 미뤄두고), 김 씨 날갯짓이 어떤 나비효과 가져오고 있는지, 그것부터 짚어볼까 한다. 그래야 다음 문제를 풀 수 있으니.

 

하나하나 따져보자. 수요(=도급팀)와 공급(=현장)이 불균형한 상황에서 김 씨가 택한 건 로비와 접대, 그리고 공사비 자진 삭감이다. 비용이 늘어난 김 씨는 여러 방법으로 손해를 만회하려 했다.

 

우선, 팀원들 임금을 동결했다. 숙식비도 긴축했다. 노동자의 생활임금과 노동환경 문제를 야기한 거다.

 

다음으로, 불법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국 노동자 일자리 문제와 임금 하향 평준화를 야기한 거다.

 

세 번째는 임금체불과 부당 해고 문제다. 소설에서 직접 나오진 않지만, 노가다판에선 근로계약서 없이 일하는 게 통상적이다. 채용되었다는 기록조차 없는 노가다꾼이(더욱이 평생 망치질만 해서 법과 행정에 상대적으로 어두운), 근로기준법 운운하며 임금체불과 부당 해고에 대응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제일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건, 이른바 ‘빨리빨리’ 공사다. 김 씨가 그러한 것처럼, 대한민국의 모든 공사가 급하게 이뤄진다. 필연적으로 부실 공사와 사고, 특히 생명과 직결된 안전사고를 동반한다.

 

김 씨 날갯짓에서 시작된 위 문제들이, 노가다판에서 벌어질 수 있는 거의 모든 문제다. 그리고 그 모든 문제에 관해, “김 씨 나쁜 놈! 퉤퉤퉤.”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김 씨 또한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고, 결국 김 씨를 그렇게 만든 건 불법 다단계 하도급 시스템이니까.

 

내가 처음부터 시스템 얘기 꺼낸 이유다. 이건 어느 한 노가다꾼이 오야지한테 대든다고 바뀔 문제도 아니고, 어느 양심적인 오야지 하나가 손해 감수한다고 바꿀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인심 좋은 하청 사장에게 떠넘길 문제도 아니고, 원청에만 희생을 강요할 수도 없는 문제다. 건설 산업 전반을 뜯어고쳐야 한다.

 

뭉치는 것, 뭉쳐서 대항하는 것뿐이었다

 

그건 그렇고! 왜 이렇게 무겁고 딱딱한 얘길 줄줄이 풀어놓느냐고 물으신다면, 이들 이야길 하기 위해서다. 노가다판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야 이들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

 

아, 그전에 하나만 고백해야겠다. 나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전국건설노동조합(이하 건설노조) 소속 조합원이다. 맞다. 가끔 뉴스에 나오는 그 사람들, 건설 현장 타워크레인에서 고공농성하는 그 사람들이, 바로 내 동지다.

 

그들 얘길 좀 해볼까 한다. 노가다판에서 “어휴~ 저 빨갱이 쉐끼들.”이라는 한마디로 눙쳐지고 마는 건설노조 사람들 이야기. 우리는 왜! 그런 수모 당하면서까지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는지에 관하여.

 

한강의 기적으로 상징되는 우리나라 고속 성장 뒤엔 박정희가 아니라, 노동자 희생이 있었다. 과도하고 위험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그러면서도 낮은 임금에 아무 말 하지 못했던 우리 엄마, 아빠, 삼촌, 이모들 희생 말이다.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몇몇 산업군은 여전히 쌍팔년도다. 위에서 줄줄이 얘기한 것처럼 노가다판이 대표적이다.

 

근데 이상한 건 말이다. 불합리하고 비상식적인 일이 일상처럼 벌어지는데도 다들 못 본 척한다. 심지어 매일매일 두 명꼴로 죽어 나가고 있는데, 어느 작가 말처럼 “퍽퍽퍽 몸통 깨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아무도 문제 제기 안 한다.

 

잘난 네가 한 번 나서보지 않겠느냐고. 나 또한 일용직 노가다꾼이다. “얌마. 너 내일부터 나오지 마. 어디서 싸가지 없이 눈깔 부라려. 건방진 새끼.”라는 오야지 말 한마디에 당장 오늘이라도 쫓겨날 수 있는 처지다. 에이~ 과장하지 말라고? 진짜다. 그렇게 쫓겨난 사람, 숱하게 봤다. 때려치울 거 아니면 참아야 한다. 그게 노가다꾼 삶이다.

 

그런 건설 자본 권력 앞에 힘없고 ‘빽’ 없는 노가다꾼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뭉치는 것! 뭉쳐서 대항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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