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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의원이, 아니, 이제 의원이 아니니 씨라 호칭하겠다(자꾸 기자들이 의원이라고 호칭을 하니까 나까지 헷갈린다). 금태섭 씨가 정치면을 후끈 달구고 있다. 윤미향 의원과 관련한 논쟁이 조금 수그러들어 기사량이 줄어들자 금태섭 씨와 관련된 기사가 그 정치면을 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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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밝히자면, 나는 금태섭 씨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으나 금태섭 씨가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권리를 존중한다. 금태섭 씨가 공수처에 반대하는 논리 또한 미래통합당의 반대 논리처럼 어처구니없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논리와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금태섭 씨의 반대 이유는 간단하게,

첫째, 공수처 설치는 새로운 권력기관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
두 번째,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기 때문.
세 번째, 사정기관인 공수처가 일단 설치되면 악용될 위험성이 매우 크기 때문


이다. 그러나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건 금태섭 씨의 행동이나 반대 이유가 아니라 금태섭 씨와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언론과 야당의 태도다.

이런 태도는 미통당이나 조중동 같은 수구 언론 뿐만 아니라 정의당으로 대표되는 진보정당이나 한겨레, 경향 같은 진보 언론에서도 공통적으로 볼 수 있다. 

이번에 금태섭 씨와 관련해 벌어지는 논란은 공수처와 관련한 논쟁이다. 또 공수처냐 싶지만, 참고로 아직 공수처 출범도 안 했다. 공수처장 임명 때 어떤 사달이 날지 미리 경험하는 기분이다.

금태섭 씨는 20대 의원 시절 국회에서 공수처 표결에서 권은희 안에는 반대표를, 윤소하 안에는 기권표를 던졌다.

민주당의 당론은 당연하게도 공수처 찬성이었는데 금태섭 씨가 각각 반대, 기권표를 던진 것에 대해 민주당은 6개월 가까이 지나 징계를 내렸고 이를 두고 언론과 미래통합당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난리를 치고 있다.

 

조선일보.JPG

 


금태섭의 징계

 

우선 징계 수위를 살펴보자.

민주당 윤리심판원은 금태섭 씨에게 ‘경고’ 판정을 했다.

경고는 가장 낮은 수준의 징계로 금태섭 씨에게 가는 불이익은 사실상 없다. 이런 수준의 징계를 두고 이렇게 떠들어 대야 하는 건가 싶은 게 의문의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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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민일보>

 

금태섭 씨가 징계에 반발하는 건 그럴 수 있다. 본인에 대한 징계이므로 부당하다고 느낄 수 있고 그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수준의 당내 징계를 두고 언론에서 이만한 양의 기사를 쏟아낸 적이 언제인가? 과연 이 징계가 이렇게 기사를 쏟아내야 할 정도의 징계인가?

사안에 따라서 징계 수위가 낮더라도 기사가 많이 나올 수도 있고 크게 논란이 될 수도 있다. 그럼 이게 그만한 사안인가? 징계 수위가 낮더라도 논란이 될 만한 사안인지 생각해보자.

정당이란 정치적 결사체다. 모여서 취미활동을 하는 동아리가 아니다. 비슷한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관철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집단이란 얘기다. 개인의 힘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일들을 사람들이 모임으로써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집단이다.

정당에 속했다고 해서 반대 의사를 표현해선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취미 동아리가 아닌 이상, 아니 취미 동아리라고 해도 토론 등의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결정된 일이라면 따르는 게 그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가지는 의무이자 미덕이다.

특히나 정치적 의사 관철을 목적으로 하는 정당에서 민주적 절차에 의해 결정된 당론은 당연히 따라야 한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의사결정은 따르지 않아도 된다면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과정이라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민주당 내에서 이뤄진 정당한 의사결정에 따르지 않은 것으로 징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말하는 자들은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일 아니냐며 비판하고 있다.

 

민주주의 파괴.JPG

출처 - <KBS>

 

토론과 표결은 정치적 의사결정을 위한 민주주의적 절차다.

토론과 표결을 통해 정치적 의사결정이 이뤄졌는데도 그걸 따르느냐 마느냐가 개인의 자유에만 맡겨져 있다면 토론과 표결이 왜 필요한가. 그런 말을 하는 자들이야말로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씹다 버린 껌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3당 합당 때 노무현도 3당 합당이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았다. 반대 토론이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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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토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당한 절차를 거친 결정은 힘이 있고 중요하다. ‘정당’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건 민주적 정당성이다. 지금 민주당의 징계 결정을 비판하는 자들은 이런 이야기는 쏙 빼놓고 말한다.

물론 정당한 절차를 거친 결론 중에도 간혹 도저히 따를 수 없는 결정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금태섭 씨 경우에는 이런 일이 너무 잦다. 정확히는 잦아 보인다.

왜냐, 그럴 때만 기자들이 대서특필하기 때문이다. 이게 이 글의 주제다.

암튼 그런 때는 그 결정을 따르지 않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정당한’ 절차를 거친 결정이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대가가 징계가 될 수도 있다. 

 

 

책임 있는 정치란


정당의 의사결정을 따라야 할 의무가 없고, 따르지 않아도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면,

굳이 당원은 왜 필요하며 정당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
정당의 존재가치는 무엇인가?
정당한 절차를 거친 결론을 따르지 않을 거라면 선거를 치를 필요가 뭐가 있나?


자기 필요에 따라 그때 그때마다 맘대로 할 거라면 정당엔 왜 가입하는가. 공천받으려고?

우리나라 언론 중에 금태섭 씨 징계를 다루며 이런 얘기를 하는 언론은 없다.

정당 가입은 자발적으로 이뤄진다. 아무도 금태섭 씨에게 민주당에 가입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금태섭 씨 자신의 필요에 의해 혹은 자신의 신념에 의해 민주당에 가입했다.

그렇다면 민주당 내에서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을 통해 이뤄진 일에 따르는 것이 기본적으로 옳다. 평소에 소신 발언 할 수 있다. 당과 다른 의견 낼 수 있다.

하지만 당론이 정해진 후, 국회에서 표결할 때는 당론에 따라야 한다. 그게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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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YTN>

 

금태섭 씨는 그러지 않았다.

금태섭 씨는 평당원도 아닌 국회의원이었다. 게다가 당시 법제사법위원회 간사였다. 어떤 집단이든 그 집단에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권한과 의무를 지게 된다는 의미다.

금태섭 씨는 자신이 가진 권한에 따르는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 자기에게 표를 준 민주당 지지자들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귀중한 한 표를 자기 멋대로 행사했다.

백 보 양보해 그럴 수 있다 치자. 금태섭 씨가 당론에 따르지 않고 멋대로 투표할 수 있다 치자. 그렇다면 금태섭 씨에게 해야 할 질문은 하나다.

금태섭 씨에게 민주당이란 무엇인가?

본인의 의사로 가입한 정당에서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서 이뤄진 의사결정을 본인의 소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가볍게 거부해버리고 비판할 거라면 금태섭 씨는 1) 왜 민주당에 입당했는가. 2) 왜 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었는가. 3) 왜 계속 민주당에 남아있는가.

이것이 금태섭 씨에게 해야 할 질문이다. 하지만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자 중에 이런 질문을 던지는 자들은 아무도 없다.

 

 

금태섭 레버리지


아무도 금태섭이 왜 반대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 가지지 않는다. 금태섭이 반대했고, 그 반대로 인해 징계를 받았다는 사실만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민주당을 싫어하는 정당과 인사들이 민주당이 도를 넘었다는 둥, 헌법에 어긋난다는 둥 막말 잔치를 하는 것을 중계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비겁하게 자신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인용 보도를 한다.

징계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는 사람은 소신과 용기고, 찬성하는 사람은 친문이라고 딱지를 붙인다.

 

진성준 발언.JPG

출처 - <조선일보>
 

김해영 소신발언.JPG

출처 - <디지털타임스>

 

친문이라 금태섭 징계에 찬성한다는 논리다. 우습다. 일사불란을 찬양하던 그들이 획일화를 비판하고 있다.

금태섭 씨와 관련된 다른 장면을 살펴보자. 금태섭 씨 지역구(서울 강서갑)에 김남국 현 의원이 공천 신청을 한다고 했을 때 기자들은 일제히 금태섭 저격이라며 난리를 쳤다. 전략공천이라며 금태섭을 떨어뜨린 것도 아니고, 공천 신청을 했을 뿐이다. 김남국 의원이 자격이 없는 것도 아닌데, 공천신청을 하면 안 되는 건가?

하지만 기자들은 김남국 의원이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기사를 냈다. 기자라고 으스대려면 최소한 앞뒤는 맞추고 말해야 할 것 아닌가.

그거야말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 아닌가. 조국 장관 임명을 지지했다는 것이 결격사유가 되는 것인가. 더 우스운 건 그 기자 중엔 박종철 치사사건 은폐에 가담한 박상옥 같은 사람이 대법관이 되는 걸 반대하지 않은 자들이 수두룩하다는 사실이다.

결국, 김남국 의원은 금태섭 씨 지역구 출마를 포기하고 안산 단원을에 출마해서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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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경기신문>

 

금태섭 씨 지역구에는 강선우 현 의원이 공천 신청을 했고 경선에서 금태섭 씨를 누르고 후보가 되었다.

그러자 기자들은 일제히 민주당에서 조국 때문에 금태섭을 떨어뜨렸다며 난리를 쳤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전략공천 때문에 경선도 못 치러본 줄 알게 만들었다. 민주당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경선을 치렀고 강선우 의원이든 금태섭 씨든 그 룰에 따라 경선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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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동아일보>

 

금태섭 씨는 경쟁력이 없거나 민주당원, 지지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혹은 지역구 관리에 소홀했기 때문에 경선에서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언론에선 이런 모양을 원하지 않았다. 조국 때문에 민주당이 금태섭 씨를 내친 모양을 만들어 내려고 했다.

언론들은 금태섭 씨가 조국 전 장관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했을 때 금태섭 씨에게 가장 환호했다. 세상에 의인도 이런 의인이 없다는 듯 보도했다.
 
그들은 자신의 논조와 입장을 대변해줄 ‘민주당 인사’가 필요했고, 그런 사람이 나타날 때마다 환호했고, 지지했고 밀어주었다.

 

조경태 금태섭 김해영.JPG

<조경태 (좌) / 금태섭 (중) / 김해영 (우)>

 

조경태가 그랬고, 금태섭이 그랬고, 김해영이 그렇다. 그 이야기가 옳은지, 옳다면 왜 옳은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민주당 내에서 민주당의 대체적인 의견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런 사람이 나타날 때마다 그들은 그 사람을 지렛대 삼아 민주당을 비판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이번엔 지렛대가 금태섭 씨일 뿐이다. 전에 없었던 일도 아니고 앞으로 없을 일도 아니다.

그들은 금태섭을 지렛대 삼아 “민주당은 독선적이고 줄 세우기만 일삼으며 반대의견을 내지 못하게 한다.”, “민주 없는 민주당”이라는 소릴 한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여태까지 당신들이 속한 정당, 회사, 집단에서 정당한 절차를 거쳐 내린 결정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이들에게 소신이 있는 사람이라며 박수를 치고 환호했는가.

금태섭 씨에게도 묻고 싶다.

검사 시절에 수사관들의 소신을 그렇게 존중했는가. 의원이 되고 나서 보좌관이나 비서관이 자신처럼 행동했으면 소신이 있다고 박수쳤을 것인가.

대답은 안 들어도 된다. 그랬을 리가 없다.

결국 그들이 원하는 건 옳은 말이 아니라 민주당을 까게 만들어주는 지렛대다. 조경태가 민주당에 있을 때 조경태의 이야기가 얼마나 많이 기사화되었나. 조경태가 자유한국당에 입당한 이후 조경태의 말을 민주당 시절처럼 비중 있게 다룬 기사를 본 적이 없다.

결국, 그들이 원하는 건 민주당을 비난하는 것이다. 민주당을 비난하기 위해 누군가를 지렛대 삼는다.

민주당에 애정을 가지고 있어서 민주당 내에서 민주당을 비판하는 인사들은 이 점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본인은 정말로 민주당을 위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말이 민주당과 대통령을 자빠뜨리기 위한 지렛대가 돼버릴 수 있다. 노무현과 참여정부가 그런 말들 때문에 쓰러진 기억을 잊었는가? 명심해라.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