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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 해가 저문다. 올 한 해를 또 어찌 버티나 걱정하면서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왜 이리 빠르게 가는지 모르겠다. 노화현상인가?


점점 더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저 기분 탓이려니 하고 넘겨 버리고, 올 한해 여야 정치권을 관통하는 총정리를 해 보고 싶어졌다. 결단코 죽돌 부편짱이 닌자를 보내 위협해서 쓰는 것은 아니다. 절대 아니야..


보통 연말에는 올 한 해 대한민국을 뒤흔든 10대 사건 같은 것을 뽑으면서 다이제스트를 해야 제맛이긴 한데, 그런 건 다 읽어 봐야 남는 것도 없고 하니 내 맘대로 방식으로 결산을 하기로 하자. 그것은 여야를 나누고, 각각의 진영을 관통하는 흐름을 설명하는 식이 될 것이다.


그렇게 선정한 사건들의 시작은 바로,



메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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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뭐니해도 2015년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가장 큰 사건은 메르스의 유행이었다. 베타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종 중의 하나인 메르스-코로나 바이러스(MERS-CoV)에 의해 전염되며 전염 방식은 ‘접촉’이라고 알려져 있는 중동호흡기증후군(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MERS)이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버렸다.


사실 이 메르스는 21세기 초에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사스(SARS)와 유사하다고 한다. 그때 우리 사회는 위기를 기적적으로 잘 피했었다. 그러나 단지 정권이 바뀌었을 뿐인데, 이번에는 호되게 당했다.


가뜩이나 어렵던 경기를 지탱해주던 중국인 관광객의 수는 급감했다. 이로 인해 관련 업계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고, 그 여파와 함께 때맞춰 엔저를 무기로 들이댄 일본 시장이 중국인 관광객들을 싹쓸이하는 바람에 지금도 회복이 안 되고 있다. 해당 업계에 종사하던 한 지인은 “차라리 메르스에 걸려 내가 죽어버리는 게 더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표현을 해서 친지들의 마음을 써늘하게 만들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충격적인 사태였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이런 내용을 그리 잘 알지 못하고 지나가기 마련이다. 뭐 전염병이 조금 돌았나 보네, 마스크 쓰고 조금 조심하면 되겠네, 하는 정도의 인식을 가졌을 뿐이다.


그러나 현대적인 국가에서 이런 종류의 재난이 발생하고, 그 재난에 대처하는 정부 조직의 모습을 살펴보면 그 국가의 기초체력, 즉 사회적 품질이 드러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메르스 상황으로 인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기초 체력은 말 그대로 빈사 상태였다고 밖에 평할 수가 없다.


확실히 해두자. 메르스 자체로 인해 우리 사회가 입은 피해, 그 자체는 그리 크지 않다. 2015년 12월 6일 현재 메르스의 누적감염자는 186명, 누적 사망자는 38명이다. 물론 단 하나의 생명의 손실도 우주의 붕괴에 버금가는 피해지만 국가 사회적인 차원에서 봤을 때, 38명의 사망자는 그리 크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일 년에 결핵에 걸리는 환자가 35,000명이 넘고, 사망자가 2,000명이 넘는다. 가끔 유행하는 독감의 경우도 합병증까지 합쳐 2012년 통계로 2,000명이 넘는 수준이다.


문제는 대처 방식이다. 사망률이 20%에 육박하는 메르스의 경우 사회 전체에 만연하게 되면 어떤 상황이 올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또한 기존의 전염성 질환들과는 달리 새로운 종류의 질환이기 때문에 대처 방법도 그다지 잘 개발되어 있지는 않다는 점도 위험성을 더 높이고 있다.


그런 상황에 대한 이 정부의 대처 능력이 엉망이라는 것은 기타 예기치 못한 재난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 역시 바닥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해주며 이는 우리 사회 자체가 시스템적인 관점에서 전혀 능동적인 대처능력이 없는 무기력한 사회라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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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탓이나 하고 말이지..


어떤 사회라도 예기치 못한 재난에 대비한 시스템을 구성해 두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물론 그런 대비에는 재정이 소모되고, 만약 재난이 닥치지 않는다면 그 예산은 완전히 낭비라고 볼 수 있는 것 역시 상식이다. 그러나 그런 낭비는 필수적인 낭비라는 것이다. 재정의 일정 비율은 항상 유보시켜 두어야 하며 그런 재난 대처 비용으로 소모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그것은 바로 안전비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간의 경기 불황으로 인해 누적된 재정적자가 늘어나고 있고, 이 정부를 운용하는 사람들은 그런 여유분을 채워두지 않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메르스 유행은 이 정부의 또 하나의 중요한 특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즉, 말로 하는 정치는 좀 하는데, 실무적인 행정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 말이다. 정권 초기부터 장관들의 자율적인 결정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정부였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퇴 과정에서 드러난 대로, 이 정부는 정권의 핵심 의사결정 기구인 '국무회의'를 스스로 유명무실하게 만들어 버렸다. 각 부처의 장들이 모여 각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견을 조율하고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회의 체제”여야 할 국무회의는 기자회견도 안 하는 대통령의 대언론 지시문 낭독의 자리가 되었고, 국무위원들은 “적자생존” 즉 노트에 적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자세로 고개를 처박고 받아쓰기에 여념이 없는 자리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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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고, 또 적자..


장관의 재량권은 하나도 없고, 모든 일은 청와대의 비서관들이 결정해서 장관을 바이패스하고 실무국장에게 직접 지시가 내려간다. 문제는 그 몇 안 되는 청와대 비서관들이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의 모든 행정 업무를 관장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결국 정치적인 이유가 있는 안건만 관리하게 되는데 기타 각 부처의 업무들,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조직체가 운영되어야 할 업무들은 방기될 수밖에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시스템을 아무리 잘 만들어 두면 뭘 하겠는가? 실무 장관들이 스스로 '바지 장관'을 자처하면서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고 앉아 있는데 어떤 시스템이 살아 움직일 수 있겠는가?


이런 문제는 이미 메르스 이전에도 벌써 우리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던 바 있다. 바로 수많은 학생들과 승객들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사건이다. 그 사건을 그렇게 엉터리로 처리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찢어 놓고도 이 정권은 배운 게 없었다는 점, 바로 그 치명적인 부분을 입증한 것이 메르스 유행이었다.


2015년의 가장 큰 사건이며, 동시에 이 정권의 무능이 입증된 사건이 바로 '메르스의 유행'이었다고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유승민 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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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


그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여당의 원내대표 유승민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잘려 버리는 사건이었다.


좋다. 행정적으로는 무능하다고 치자. 그러면 정치적으로는 유능했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아니 그 이전부터 '선거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받았던 사람이다. 그녀가 관계하는 거의 모든 선거에서 승리했다. 유일한 실패라면 이명박 후보와 벌였던 대선후보 경선 과정이었고, 사실은 거기서도 애매한 패배를 겪고 승복했지만, 그리 큰 참패는 아니었던 걸로 봐야 할 것이다. 어찌 되었거나 단 한 번 도전한 대선에서 승리해 대한민국의 대통령에 당선되었지 않는가?


전후 사정이야 어찌 되었거나 그렇게 선거를 잘하는 사람이라면 정치적인 일, 흔히 '정무'라고 부르는 업무는 잘 처리할 것으로 기대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아니었다.


대통령으로 일단 당선이 되면 우리 헌법에 규정된 대로 단임에 그쳐야 하며, 따라서 권력은 내리막길을 걷게 마련이다. 당무에는 관여하지 말아야 하며, 당의 의견을 들을 줄 알아야 하고, 당청 간의 협의에 수완을 발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단어 하나에 의미를 두는 것이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청당이 아니고 당청인 이유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치란 그런 것이다. 다수의 의견을 취합해야 하고, 그 취합된 의견을 집행하는 것이 행정부의 수장의 역할일 뿐이다. 우리 헌법은, 그리고 우리의 국가 체제는 대통령에게 그것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은 그런 룰조차 무시해 버린다. 단 한 번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집권 여당의 원내 대표를 잘라 버렸다. 말 그대로 내쫓아 버렸다. 그 이후로 여당의 원내대표였던 유승민은 정치적 식물인간 상태를 지속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 총선에 공천이나 받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사실 이 사건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적용된 사회에서 권력이 움직이는 그렇고 그런 모습을 보여준 사건으로 이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널리 화제가 되긴 했지만 그렇게 심각한 의미부여가 되지 못했던 사건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이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 이 정권은 최소한도의 의회주의에 입각하기는커녕 민주주의자들도 아닌 그런 사람들로 밝혀졌다는 것에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상황은 이 정권이 스스로 정권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걸로 보인다. 일단 다가오는 2016년 총선에 사실상 공천권을 청와대가 쥐고 흔들려고 하는 조짐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고 있다. 유승민을 쫓아낸 것도 마찬가지고, 유승민을 지지하던 새누리당 내의 세력들에게 주어진 경고가 바로 그런 내용이었다. 그 줄에 서 있다간 공천도 못 받게 된다는 무언의 메시지가 광범위하게 살포되었다.


2016년 총선은 새누리당의 선거가 아니라 청와대의 선거가 될 것이다.


그저, 총선에서 자신이 속한 당이 잘 되길 바란다는 덕담 한마디를 하고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까지 겪게 된 대통령이 집권한 시점에서 딱 십 년이 지난 뒤, 우리는 대통령이 직접 배후 조종하는 총선을 겪게 될 것이라는 얘기이다.


그리고 그 총선에서 압승을 한 뒤 개헌을 하고, 개헌을 통해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도입해서 바지 장관을 넘어선 바지 수상을 세우고 막후에서 섭정을 하겠다는 스토리는 이미 여의도에 파다하게 퍼져 있다.


이는 실무적 무능에 비견될 만한 정치적 월권이다. 정치적 월권을 넘어선 삼권분립의 파괴이며 헌법을 초월하는 헌정파괴행위이자, 한반도의 민주주의를 붕괴시키려는 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2015년의 대한민국, 그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집권세력은 이렇게 두 가지 사건으로 딱 정리가 된다.


실무적으로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집권세력인 주제에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파괴를 시도하는 반헌법적 불법 집단이라는 점 말이다.


그런 집단이 지배하고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2015년의 대한민국 되겠다.



안철수의 탈당과 야당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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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


정부 여당의 맥락이 그럴진대, 야권의 가장 큰 사건은 역시 안철수 의원의 탈당 사건이다.


실제로 대한민국 사회의 제1야당, 수권 경험이 있는 집단이자 양당제 하의 유일한 정권 반대세력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사실상 식물정당 상태로 2015년을 보내고 있었다. 아마도 후세의 역사가들은 도대체 2015년 한 해 동안 한국사회의 야당은 무엇을 하고 세월을 보냈는지 이해하기에 무척 애를 먹을 것이 틀림없다.


사실상 정당정치가 붕괴된 상황이었고, 그 책임은 아마도 집권 세력에게 51%, 그리고 새정연에게 49%를 지워야 할 것 같다. 그게 딱 지난 대선의 지지율 아니었겠는가.


대선 패배 이후로 지리멸렬하던 야당에게 벌어진 초유의 사건은 안철수의 입당이었고, 안철수의 입당보다 더 큰 사건이 바로 안철수의 탈당이었다. 이 상황은 사실상 안철수의 공이 아니다. 야당의 전반적인 상태에 더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권과 탄핵, 그리고 이어진 2004년 총선에서의 열린우리당 과반수 달성 이후로 사실상 대한민국의 야당은 뼈대를 잃어버렸다. 그 이전까지의 야당은 삼김시대의 끄트머리에 위치하고 있었고, 김대중이라는 걸출한 정치적 거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제왕적 총재 시스템이라는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의사결정 구조가 붕괴한 이래, 야당은 아직 그 과거의 시스템을 대치할만한 새로운 의사결정 구조를 확립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제도 자체를 못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다. 당헌 당규는 수시로 바뀌고 있고, 전당대회의 룰도 지속적으로 바뀌고 있다. 없었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야권 지지자들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굳건한 룰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내 선거에서 승리해서 당권을 잡고 나면 선거 한 번 치르고 나면 잘리고, 당권을 잡지 못한 쪽은 자고 일어나면 당권집단에게 책임지고 사퇴하라는 얘기만을 반복하고 있다. 그 사람들이 당권을 잡으면 역할만 바꿔서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당대표 사퇴하라는 주장은 매우 엄중한 주장이다. 아무나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정상적인 정당이라면 당 대표 사퇴를 요구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 주장을 내뱉은 사람이 탈당을 해야 할 정도로 엄중한 말이기도 하다. 정히 당대표가 사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또 그 의견을 표출할 시스템이 있기 마련이다. 정해진 절차가 있고, 정해진 룰이 있다.


이런 모든 원칙을 다 무시하고 서로 당권을 교대로 잡아가며 서로에게 사퇴하라는 말만 늘어놓으며 비협조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모든 의원들의 관심은 차기 공천에만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쯤 되면 식물정당 이전에 미이라 정당이라고 불러야 한다. 피부와 살은 다 말라붙어 버렸고 당의 간판만 남아 버린 상황이다. 정권을 탈환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각자도생의 깃발 아래 각개약진을 하며 차기 공천만이 주 목적이 되어 버린 그런 상황이다.


결국 그 상황은 이어지고 이어져서 한때 입당하자마자 바로 공동 대표에 취임했던 한 축, 지난 대선에서 양보를 주고 받았던 강력한 야권의 대선 후보 안철수가 끝내 견디지 못하고 탈당해버리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이는 하나의 상징적 좌표가 될 수 있다. 탈당하자마자 안철수에게 몰린 지지율의 의미가 뭘까? 딱 그만큼이다. 양당제도 하에서의 이 미이라 야당의 행태에 질리고 질려 버린 사람들이 제3의 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안철수에게는 딱 그만큼의 지지율이 주어지고 있다.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고 전통적인 야당이 자신의 역할을 해야 되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지지율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 상황을 '야권의 분열'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 야권의 분열은 이미 오래전에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던 상황이다. 호남은 호남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반정권은 반정권대로 온건 보수는 온건 보수대로 갈갈이 찢어져 있는 상황이었다. 박근혜 정권이 유일하게 잘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것은 천재적으로 잘한다. 야권은 거기에 말려 들어 아무도 맥을 못 추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숨은 희망이 있다. 무엇이든지 바닥을 치면 올라갈 일만 남게 되어 있는 법이다. 정당정치가 붕괴하고 야권이 미이라화 되고 있는 이 시점이 바로 붕괴된 정당정치를 다시 재건할 기회인 셈이다.


아직 바닥을 치지 않았다면 더 내려가도 좋다. 언젠가 한 번은 쳐야 할 바닥이었고, 제왕적 총재가 사라진 이후 정립되지 않은 민주적인 야당의 의사결정 구조는 언젠가 다시 재건되어야 할 문제였다. 그런 시스템이 사라지면 어떤 종류의 국가적 재앙이 오게 되는지 우리 모두 값비싼 수업료를 내면서 공부하는 중이라고 생각을 해도 좋다.


양당제를 할 것인지, 다당제를 할 것인지, 선거제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삼권분립과 민주주의, 그리고 우리의 헌법이 제역할을 못하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우리 모두 눈 크게 뜨고 똑똑히 봐두자.


2015년의 대한민국, 야권의 상황은 우리에게는 귀중한 경험으로 남게 될 것이다. 좋은 약일수록 입에 쓴 법이다.



기본소득의 본격 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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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오늘도 역시 기본소득으로 마무리한다. 이건 정치적인 문제를 넘어선 사회적인 문제다. 아니 사회적인 문제도 넘어선 생존의 문제다.


정치권이 개판을 치고 있거나 말거나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먹고사니즘을 넘어선 차원의 생존 문제이다. 우리의 정치권이 살벌하게 정치를 잘해봤자 국제적인 현실을 넘어설 방법도 없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목을 가장 심하게 조이고 있는 것은 바로 국제적인 차원의 자본주의의 위기일 수도 있다.


그 위기의 실체는 한마디로 “일자리의 소멸에 따르는 자본주의의 붕괴 위험”이다.


솔직히 나는 그간 기본소득에 대해 떠들고 다니면서도 이거 뭐 한 십 년은 지나야 유럽에서 슬슬 논의되기 시작할 거고, 우리 사회까지 오려면 최소 삼십 년은 걸릴 것이라고 나태하게 생각해 왔다. 그러나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해 보인다.


지금 당장, 2015년 말에 이미 기본소득제도가 공개적으로 논의가 되고, 핀란드에서는 2016년 말에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집권당의 수상이 공식 선언을 하고, 스위스는 국민투표에 회부하고, 독일에서도 기본소득 지지 여론이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온다는 것, 기본소득이 생각보다 빨리 와서 다행이라는 느낌보다 훨씬 더 크게 불안감이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사건을 2015년 최대의 빅 이슈로 꼽는 것이다.


바로 저 사람들 모두 자본주의의 위기가 생각보다 빨리 오고 있다고 느끼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든다는 얘기다. 기술이 발전하면 일자리가 줄어든다. 그 동안의 역사에서는 언제나 기술이 발전해서 일자리가 줄어든 만큼 또 다른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걸로 메꿔 온 셈이다. 이제 갈수록 그렇게 새로 일자리가 생겨나는 속도보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언제나 사례로 드는 얘기들이지만 점점 더 구체화 되고 있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몇 년 안에 무인트럭이 화물을 운송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실제로 관련 법규를 개정하는 중이다. 벤츠가 양산한 무인트럭이 미 대륙에 상륙하는 순간 이백만이 넘는 미국의 에이틴 휠러, 장거리 트럭 운전수들의 일자리는 소멸한다.


구글의 무인차는 이미 사고율 0%에 도전하고 있으며, 실제로 안전성을 입증하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아이폰을 최초로 해킹해서 유명해진 GeoHot이라는 해커는 겨우 천 달러 미만의 비용으로 기존의 승용차에 자율주행 장치를 스스로 만들어 장착해서 사람들을 놀래키기도 했다.



이런 자율주행 승용차가 합법적으로 운행이 되는 순간 택시 기사들과 대리운전기사의 일자리는 사라져 버린다. 아마존의 드론 택배 시스템은 택배 기사들의 일자리를 소멸시킬 것이며, 우라까이 전문 신문기자 아니 언론알바들을 대치할 자동 기사 생성 소프트웨어는 이미 일기예보와 스포츠 뉴스, 증권 기사들을 자동으로 작성해서 쏟아내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최근 5년간의 통계를 보면 늘어난 매출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수의 일자리만이 생겼을 뿐이다. 극단적인 예측으로는 이미 몇 년 이내에 30%에 해당하는 일자리가 지구상에서 소멸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중이다.


이 빈자리를 메꿀만한 새로운 일자리가 탄생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일자리가 없으면 소득도 없다. 소득이 없다면 소비도 없다. 소비가 없다면 시장도 없다. 시장이 없어지는 순간 자본주의는 붕괴한다. 이 단순한 논리의 수레바퀴는 이미 오래 전에 굴러가기 시작했으며,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기술의 발전에서 시작하여 일자리의 소멸로, 또 시장의 붕괴로 이어지는 자본주의 붕괴의 시나리오가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증거가 바로 2015년 말에 등장한 핀란드의 기본소득 도입 소식인 것이다.


잘사는 나라의 돈지랄이 아니라, 줄어들어 가는 일자리와 그로 인한 세수의 감소, 그에 따른 국가 재정의 붕괴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 핀란드의 수상은 순순히 솔직하게 인정을 했다.


우리는 어째야 할까? 2015년의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우리가 그나마 생존권이라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2015년이여, 안녕!


그렇게 올 한 해가 마무리되어 간다. 다가오는 2016년에는 또 어떤 걸로 ‘다이내믹 코리아’의 진면목을 보여줄지 걱정이 될 뿐이다. 저게 결코 좋은 소리가 아니다. 최근 들어 한 십 년간 좋은 일로 놀라 본 적도 없고, 좋은 일로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감탄해 본 기억이 없다.


이제 막 시작하는 2016년이라고 해 봐야, 4월에 총선 있고 야당이 대판 깨질 것이 거의 확실해진 상황에서 무슨 낙으로 또 1년을 버텨야 하는가. 달도 차면 기운다는데, 도대체 이 내리막길은 언제나 끝날 것이며, 도대체 이 깜깜한 밤중이 언제 끝나고 동녘이 밝아 오게 될지 감히 상상도 잘 안 된다.


그래도 해는 또 다시 떠오를 것이다.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고 했다. 근거 없는 낙관이 역사를 움직인다고도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룰 것이라는 기대는 내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결코 놓지 않을 생각이다.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


그런 뜻에서 새해 인사를 드린다.


딴지스 여러분, 2015년 한 해, 정말 수고 많으셨고, 201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


그리고.. 새해 벽두부터 울려 퍼질 병신년 드립, 그거 절대 하지 말자. 우리도 최소한의 품위는 지키면서 살아야 덜 쪽팔리지 않겠냐는 얘기다.


끝.








[편집자의 뱀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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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물뚝심송이 신간 <어쩌다 한국은>을 발간했다고 한다.


본 기사에서 다루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순과 병폐를

구석구석 요목조목 알뜰히 살뜰히 살펴보고 있다고.


관심있으신 분들께서 작은 정성(?)을 보여 주신다면

조금 더 따듯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맘에서

오지랖을 발휘해 책 소개를 끝으로 글을 마친다. 이상.







물뚝심송

트위터 : @murutukus


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