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22.화요일
어려울 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돕는 것. 분명 아름답다.
나는 일단 연대의 조건에 대해서 쓰고 싶다.
그동안 서로 싸움박질만 하던 철수와 영희가 서로 악수를 할 때나, 남한과 북한의 정상이 만나 악수를 할 때나, 뭔가 모종의 합의는 필요하다.
악수를 해서 남은 둘 간의 약속이 단지 돈거래 정도라면, 상대방이 원수인지 지나가는 견공인지 뭔 상관이 있으랴. 하지만 그게 지붕 아래 같은 살림 꾸리기로 바뀌면, 적어도 원만한 관계 그 이상이 요구되며 서로 시시콜콜한 다짐과 기대를 벽돌처럼 쌓아올리는 게 당연하다.

그렇게 연대가 튼튼한 탑처럼 알차게 생기면 좋겠지만 다 그렇게 쉽지는 않을거다. 그렇다면 그 시작은? 우선 첫 돌이라도 괴고 시작한다 하면 바닥이 어느 정도는 받쳐줘야겠지. 그럼 그 흙바닥은 최소한 어느 정도가 돼야 할까?
그 기반은 과거에 대한 각자의 해석을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기억을 마주 대어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거다.
때린 놈은 맞을 놈이 맞을 짓했다.
맞은 놈은 아무 이유없이 맞았다.
이 둘 사이에 연대가 가능한가? 예를 들어 언제 어디서 소송절차를 밟기 위해 만나자 정도는 가능하겠지. 하지만 그건 그냥 약속이지 연대가 아니다.

이 둘이 함께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공동체를 꾸릴 수 있느냐? 잠시 어깨동무하고 길을 걸을 수 있는가? 고개를 가로저을 수 밖에.
광주의 5.18은 민주화 운동이다. 아니다. 북파공작에 의한 소요사태다.
한일합방은 부당하며 일제에 의한 수탈을 의미한다. 조선병합은 합법이며 조선은 근대화의 혜택을 입었다. 양립 불가능한 주장이고 이를 두고 대립하는 사람들이 과연 협력할 수 있을까? 아니겠지.
물론 현실에는 이렇게 완전히 엇갈리는 상황만 있지는 않다. 그리고 실제의 연대라고 하는 건 다른 사항도 고려에 넣게 된다. 맞닿뜨린 위험이 무엇인가. 어디로 같이 가는가. 어디까지 같이 갈 것인가.
위험이 클수록 목적이 낮을수록 목표가 가까울수록 과거에 대한 이해의 차이를 좁히려는 요구는 줄어들게 된다. 간단한 예로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원수끼리도 호랑이를 만나면 한 쪽으로 대피한 후 협력해서 다리를 끊는 일을 별 말없이 동의하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은 위험에 대한 경고만 차고 넘칠 뿐 다른 조건들에 대해선 별다른 생각이 없어보인다.
설사 목적에 대하여 일정 수준 합의에 이를 수 있다 할지라도 그에 대한 목표를 설정할 때도 서로의 입장에 대한 고려가 들어가야만 하는거다.
저녁식사를 같이하는데 합의했어도 넓은 접시에만 수프를 담아오면 개들은 잘먹어도 닭들은 정체성에 혼란이 올 수 있다는 얘기다.
똑같이 10걸음을 걸어도 장정이 걷는 걸음과 걸음마를 막 땐 아이가 걷는 걸음은 의미가 다르다.
반MB연대로 말하자면 개혁진영이 내건 목적은 크게는 민주주의의 복원, 좁게는 온갖 반칙과 배임행위의 중단으로 생각할 수 있다. 진보진영의 입장에서도 이는 매우 반가운 소리이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목적지는 거기서 더 멀리 가야만 한다.

한편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서로 힘을 모으기로 한 목표는 선거에 있어서 모든 세력간의 전면 연합이다. 나라밖으로도 이런 정도의 연합은 국내의 선거제도를 고려하더라도 드문 일임은 분명한데다, 이제껏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와신상담한 세월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는 위험을 떠안아야 하며, 협상 전후로 진보진영은 출마 가능한 의석수가 많게는 3분의 일 이하로 줄어들 수 있는 반면, 개혁진영은 많아야 20%이상 줄지 않는다는 점에서 양측이 공평하게 목표에 대한 부담을 지불하고 있는가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는 있어도 진보진영이 느끼는 부담감은 훨씬 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즉, 개혁진영의 목적은 진보진영의 입장에선 낮은 수준인데 반해 그 목표는 상당한 각오가 필요하다. 비유를 하자면 다가올 싸움을 위한 지참금으로 개혁세력은 적금을 깨면 되지만 진보세력은 집문서를 담보로 들고 와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면 목적지를 조금 더 좌측으로 옮기는데 합의하던가 목표에 대해서 상당한 배려를 해야 하는데 이런 고민이 과연 있는건지.
이제까지 전개한 흐름을 다시 내려와서 노동유연화를 예로 들어보자.
노동유연화에 대해서 민주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각기 진단이 다를 거다. 과거 참여정부의 실패요인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전자라면 당연히 이 점에 대해서 진보세력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타협할 수 있을 것이고, 반MB연대의 선언에 노동에 관한 항목이 더 들어가게 된다.
후자라면 합의가 어려워질 것은 자명하지만 여기에도 타협점은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현재 이뤄지고 있는 강압적인 노동운동 탄압에 대하여 제도적 보완에 대해 논의하는 거다. 불법을 피하기 어려운 파업 문제나 전임자임금 복수노조 문제 등 관련 법률의 구체적인 개정방안에 대해서 진보진영의 제안을 수용하는 것이 그 실천이 될 수 있다.
선거전문가가 되거나 정치인들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도사가 되거나 자신이 지지하는 세력을 대변하는 (이단)심판관이나 정국을 손바닥에 쥔 예언자가 된 그런 관점에서 나온 글을 보면 안타깝다.

개작두를 대령하라~!!
진정성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떤 정치세력이 가장 실리를 챙기는가 역시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어떻게 정국이 변할 것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우선해야 할 질문은 과연 어떤 연대(방식)이 우리를 위해 또는 공공선을 위해 과연 적합한가 아닌가, 필요불가결한가 아닌가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정당이 내놓은 대안들이 과연 실천가능한지, 어떻게 기회주의적 움직임을 차단할 수 있는지 점검하는 문제가 따라와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내 희망은 이 연대가 만약 이루어진다면, 정당명부비례대표제와 대통령 결선투표제가 핵심적인 사안이 되었으면 하는거다. 또 다시 이처럼 민주주의의 퇴행으로 고통받고, 그 와중에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모든 세력들이 양보를 강요당하는 상황이 반복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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