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EU에서 탈퇴하면서 군사적으로 ‘프랑스’의 중요성이 급상승 하게 됐다. 원래부터 프랑스는 EU에서 중요한 국가였다(현재도 독일과 함께 EU를 이끌고 있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러시아,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땅 덩어리가 컸고, 경제적으로도 가장 균형이 잘 잡혀 있는 국가이면서 경제 규모도 크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작은 미국’이라 불릴 정도로 경제적으로 균형 잡힌 국가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모든 산업이 골고루 잘 발전 돼 어느 한 군데 치우치는 것 없이 성장한 나라이다. 패션부터 시작해 관광, 디자인, 최첨단 과학기술에 국방기술까지... 프랑스의 GDP를 따로 떼어 놓으면 미국 텍사스 州의 GDP와 맞먹는다. 이게 우습게 볼 이유가 아닌 게 텍사스 州의 GDP는 미국 50개 주의 개별 GDP 순위에서 2~3위권을 다투는 엄청난 경제력을 자랑하는 동네다. 물론, 이러다 보니 텍사스 독립에 관한 주장이 나올 정도지만 말이다)
경제적으로도 안정돼 있고, 영국이 빠져나간 후 유럽에서 독일과 함께 유럽의 큰 형님으로 유럽을 이끌고 나가야 하는 중차대한 사명이 프랑스에게 떨어졌다(그 이전부터 프랑스는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게 ‘군사’ 부분에서 프랑스의 중요성이 엄청나게 중요해 졌다는 거다. 언뜻 이해가 안가겠지만, 지금 EU에서 나라다운 나라는 프랑스 하나 정도가 고작이다(군사적으로 말이다).
얼마 전 개봉한 프랑스 영화 울프 콜(Le chant du loup)을 보면 프랑스가 EU에서 어떤 위치인지 확인할 수 있다. 영화 내용은 그리 중요치 않다(굳이 찾아서 안 봐도 된다). 내용은 “크림슨 타이드 + 썸 오브 올 피어스 = 울프 콜” 이다.
테러 단체가 러시아 미사일을 훔쳐서 발사한다. 테러 단체는 핵전쟁을 유도하기 위해 마치 러시아가 프랑스를 공격하는 듯한 포즈를 취했고, 이에 속은 프랑스는 당연하단 듯 러시아에 대한 보복 핵공격을 하게 된다. 이걸 담당한 게 프랑스 전략원잠(르 트리옹팡급)이다. 문제는 핵미사일 발사 명령을 내린 다음에 날아오는 미사일이 핵미사일이 아니란 걸 확인하고, 핵 보복공격을 취소하려 하지만 방법이 없어서 눈물을 머금고 프랑스 전략원잠을 스스로 격파하기로 결정을 내린 후의 이야기다.
(르 트리옹팡급은 인류 역사상 말도 안 되는 ‘교통사고’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2009년 영국의 전략원잠 뱅가드와 대서양 바다에서 ‘접촉사고’를 낸 거다. 무려 대서양 바다 속에서, 그것도 여차하면 핵폭탄을 전 세계에 흩뿌리는 임무를 맡은 영국과 프랑스의 전략원잠이 부딪힌 거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사건이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의 핵심은 프랑스와 영국이 둘 다 핵무기 보유국이며, 이들이 전략원잠을 가지고 전략 초계를 하는 국가란 소리다. 미국과 러시아가 워낙 핵무기를 많이 가지고 있어서 거의 눈에 안 띄지만 영국과 프랑스 모두 핵무장을 하고 있고, 이들은 전략초계를 할 시스템을 갖춘 ‘꽤’ 잘 정비된 핵보유국이란 거다)
영화 <울프 콜>에서도 나와 있지만, 프랑스는 유럽의 군사강국이다. 영국이 EU를 탈퇴한 다음에는 EU 내 유일한 ‘핵보유국’이 프랑스다. 이건 정말 중요한 위치다. 나토가 있지만, EU가 미국의 입김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선(최소한 형식적인 면에서라도) 자신들만의 군사력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능력이 2개 등장한다.
하나, 핵 보복 능력의 확보
둘, 해외 투사력
이다. 하나씩 설명해 보겠다.
우리는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프랑스는 핵보유국이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난 후 샤를 드골 대통령이 강력한 독자노선을 말하면서 독자 핵무기를 개발한 ‘성질’있는 나라이다(2차 중동전쟁에서 소련의 ‘핵 협박’을 받은 것도 한 몫 거들었다). 드골은 NATO 내에서의 프랑스의 위치를 3강 체제(미국-영국-프랑스)의 한 축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너희는 핵 없잖아?”
이유로 거절당했다. 드골은 이때부터 이를 악물고 핵을 개발하게 됐다. 그 유산이 지금 마크롱 대통령에게 엄청난 ‘판돈’으로 되돌아오고 있다(그 이전에도 쏠쏠하게 써먹었지만, 지금 프랑스 몸값을 올리는 데 크게 한 몫을 하고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트럼프’였다. 그 이전부터(오바마 행정부) 미국은 NATO 회원국들에게 협박성 권고를 해왔다.
“너희들 국방비에 돈 좀 써라. 이거 너무 하는 거 아니냐?”
국방을 미국에게 넘기다시피 하고, 저마다 경제발전을 하는 데 집중했던 거다. 물론, 살기도 팍팍하고(리먼 브러더스 사태 직후 너나할 거 없이 군사비를 줄였으니), 딱히 러시아의 위협이 크게 와닿지 않았던 상황이라 다들 미국에 은근슬쩍 묻어가려 했다.
그런데 트럼프가 등장하더니 명확한 숫자를 내밀기 시작한 거다.
“너희들 최소한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은 국방비로 써라. 안 쓰면? 우리도 다 생각이 있다.”
라고 협박하기 시작한 거다. 역시 트럼프의 위대함(!?)은 이럴 때 나오는 것 같다. 트럼프는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입 밖에 내서는 곤란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있다. 이게 그의 최고 강점이다.
이 ‘곤란한 말’은 개인 대 개인이 하는 것도 어려운데, 조직 대 조직을 넘어서 국가대 국가가 상대하는 국제정치학 무대에서 거침없이 내뱉는 거다.
“우리는 나토 (방위비용)의 많은 부분을 지불하고 있다. 우리가 당신을 지켜주고 있다. 돈을 더 내야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바보가 되지 않겠다.”
“나토를 확장해서 중동을 포함해야 한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부터 나토 때리기에 나섰다. 미국이 유럽을 지켜주고 있고, 유럽은 안보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는 강력한 질타. 자기가 물주이니까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중동 지역을 나토에 끼워 넣겠다는) 주장도 했다. 이런 압박이 통했는지, 2014년 나토 회원국 정상회담에서 2024년까지 각국 국내총생산 대비 2% 수준까지 국방비를 올리자는 합의가 나왔다. 그러나 이게 가능할지는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2019년 기준으로 나토 회원국 29개국 중 이 2% 기준을 지킬 수 있는 국가는 9개국에 불과했고, 이중 한 나라는 나토에서 뛰쳐나갔다(영국의 멍청한 결정이다).
트럼프는 2% 국방비 지출을 지킨 국가들의 정상을 따로 모아 오찬을 열었다.
(이럴 때 보면 트럼프가 존경스럽기도 하다. 차마 우리가 입 밖에 내놓을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트럼프는 거침없이 해낸다. 50년 쯤 지난 후 트럼프가 지금 뿌려 놓은 씨앗이 어떻게 자랄지 궁금하다. 정말 궁금하다. 오바마였다면 하지 못했을 말들을 트럼프는 정말 눈하나 깜짝 하지 않고 해내고 있다. 나토와의 방위비 문제를 오바마도 거론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한쪽은 은행 창구에 있는 사무원이 전화를 거는 모양새이고, 다른 쪽에서는 쇠파이프를 들고 직접 방문하는 사채업자 같은 느낌이다)
“불행히도 많은 나라가 목표치(2% 지출)에 이르지 못했다.”
2% 지출 목표치를 달성한 8개국 정상을 아침 댓바람부터 불러서 밥을 먹이며, 이런 발언을 했던 게 트럼프였다. 대놓고 NATO 국가들을 압박하는 거였다. 마치 영업사원들 불러서 실적을 가지고 압박을 넣는 모양새다.
트럼프가 이런 모양새를 계속 보이자 EU쪽에서 슬슬 불만의 목소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트럼프 저 녀석 하는 꼴이 더러워서라도 뭔가 수를 내야 하는 거 아냐?”
“트럼프 저 자식 계속 나토를 걸고 넘어지는데... 저러다 나토 해체 하는 거 아냐?”
“욕먹는 것도 지겹다. 돈 안 내놓는다고 계속 욕하고, 우리 무시하고... 더러워서 못해먹겠네.”
다시 말하지만, 트럼프는 수면 아래에 깔려있는 차마 말하기 어려운, 그러나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놓는 재주가 있다. 이 ‘불편한 진실’을 꺼내놓자. 모두들 저마다의 계산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우리가 미국이랑 천년만년 계속 지낼 거도 아니고...”
“유럽은 유럽끼리 뭉쳐야 하는 거 아냐?”
“가겠다는 애 잡지 말자고.”
“우리끼리 살려면 뭐가 필요할까?”
“......핵?”
2017년 12월 기준으로 전 세계 핵무기 숫자는 1만 4,555개이다. 이 중 러시아가 6,800개, 미국이 6,600개를 가지고 있다.
러시아가 나토를 공격할 때 나토에게 핵우산을 제공하는 나라는 당연히 미국이다. 전 세계에서 러시아의 핵무기를 숫자로 상대할 나라는 미국 밖에 없다. 그런데 미국이 빠져나가면, 어떻게 될까?
그러나 유럽에도 핵무기가 있다. 전 세계에서 3번째로 핵무기가 많은 나라 프랑스가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게는 300발의 핵탄두가 있다!”
5번째로 핵무기가 많은 영국(215발)을 더한다면, 어찌어찌 살림을 꾸려갈 수 있지 않을까란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때가 2018년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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