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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70주년이다.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가 어떻게 6.25로 귀결됐는지에 대한 해석은 구구하지만 결론은 하나다. 70년 전 6월 25일 시작된 전쟁은 지금까지 한반도를 명확하고도 냉혹하게, 비참하고 답답하게 규정해버렸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모든 분야에서 분단과 긴장은 절대조건이었고 전쟁의 트라우마와 전쟁 재발의 공포, 그리고 현실적 위협의 존재는 사람들의 머리와 손발을 모두 옭아맸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 봤던 드라마 <전우>부터 며칠 전 우연찮게 봤던 영화 <스윙 키즈>까지, 한국전쟁은 그야말로 ‘툭하면’ 소환된다.

 

오늘은 뇌리에 꽤 깊이 남아 눈 감으면 자동으로 재생되는, 한국 전쟁 관련 영화의 고전 <돌아오지 않는 해병>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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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을 본 건 어느 현충일날 TV였다. 영화에 '빨갱이'를 형으로 둔 한 해병이 등장한다. 이 '빨갱이' 형이 다른 해병의 가족을 죽이는데, 동료들은 형을 닮은 동생을 볼 때마다 분통 터져한다.

 

어떻게든 강제로라도 화해를 시켜보려는 동료가 '이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같이 있을 수 있겠냐'며 안타까워했을 때, ‘빨갱이’를 형으로 둔 동생, 죄책감에 시달리는 해병은 이렇게 말한다.

 

“같이 있는 동안 같이 있는 거야.”

“이런 감정으로 어떻게 같이 있어?”

“이렇게 이렇게 같이 있는 거야. 우리들의 죄는 아니니까.”

 

그 후로 70년, 한반도에 살았던 7천만의 사람들은 ‘이렇게 이렇게’ 같이 있었다. 그들의 죄도 아닌데, 이렇게.

 

더구나 그들이 ‘해병대’라면 감회는 남달랐을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병력 배치도를 보면 제주도에는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1949년 12월 29일, 창설된 지 7개월 남짓된 신생 해병대 병력 1200명이 제주도 잔존 공비 토벌 작전에 투입됐다. 하지만 이미 참빗으로 이 쓸어내듯 사람을 죽였던 ‘작전’이 지나간 뒤라 상대적으로 해병대는 토벌보다는 질서 유지와 대민 지원 사업에 역점을 두었다.

 

그리고 전쟁이 터졌다. 해병대 3, 4기는 제주도민들 중심으로 구성됐다. 이 때 수천 명의 제주도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고 하는데, ‘빨갱이 섬’으로 낙인찍힌 곳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을 입증하려면 다른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한 한국군 해병의 주력은 이들 제주도 출신들이었다. 제주도민 사이에도 좌익과 우익은 있었을 테니 가족을 죽인 원수를 전우로 둔 경우도 있었으리라. 그들도 ‘이렇게 이렇게’ 같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들의 죄가 아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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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구봉서는 자칭 ‘쇳푼이나 있는 집 자식’으로 나온다. 그래서 후방을 이리저리 피해다니다가 ‘총질이 하고 싶어서’ 전방으로 왔다는 걸물로 나온다. 10년 뒤 유행할 거라는 트위스트 춤판으로 분대를 뒤집어놓기도 하고, 흰소리도 해 가면서 동료들을 웃긴다.

 

그러나 그도 총을 맞는다. 죽어가면서 동료들에게 남긴 말은 실없기 그지없지만 더없이 서글프다.

 

“내가 재미있게 말하면 너희들은 웃었지. 슬플 때에도 말이야. 내가 죽으면 너희들은 슬프겠지. 내가 없으면 누가 웃겨주니?”

 

정말 그가 ‘총질’하고 싶어서 전방에 나왔을까. 부산항에는 돈푼깨나 가진 사람들이 죄 몰려들어 여차하면 대마도로 튈 배들에 발동을 걸고 있었다. 배에서는 파티의 불야성이 이어졌다. 또래 젊은이들이 수없이 죽어갈 동안 술에 취한 ‘도련님’들이 드글거렸고, 병원에는 ‘나이롱 환자’들이 넘쳐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있는 사람들은 예상 외로 많았던가 보다.

 

그들은 그들이고, 싸울 사람들은 열심히 싸웠다. 전쟁만 아니었다면 한세상 유쾌하게, 즐겁게, 남한테 해 한 번 끼치지 않고 살았을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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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미움도 없어지니까 (시신은) 치워 줘야지.”

 

싸늘한 시신이 되어 흙에 묻히거나 불태워졌다. 장동휘 분대장의 마지막 말이 가슴을 울리는 이유다. 

 

“너희 둘만은 꼭 살아 돌아가서 증인이 돼라.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죽었다고. 인간은 반드시 전쟁이 필요한 지 물어봐라.”

 

'필요한' 전쟁이 어디 있을까. 전쟁 없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불필요한 것이 전쟁이다. 반대로, <베테랑>의 유아인의 대사,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되는데 문제를 삼으니까 문제가 된다.”를 비틀어 말해, “필요없다면 필요없는데 필요하다고 하면 필요해지는”게 전쟁이기도 하다.

 

미국의 통제권이 약화되고 일본이 독도를 기습 점령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전쟁만은 안된다.”는 평화주의자가 있다면 돌 돌을 맞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전쟁은 너무 무섭고 참담하다. 낯선 이가 나를 죽일 수 있고 나 또한 처음 보는 사람을 죽여야 살아나는 판이라는 자체가 여러 세대를 비참하게 만든다. 어떻게든 피해야 하고 경계해야 하고 여러 번 생각해야 하는 대상이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들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다.

 

목사라는 타이틀을 두른 늙은 개가 “우리는 왜 이스라엘처럼 북한을 못때리는가”를 질문하는 상황, “까짓거 전쟁 한 번 합시다.”라고 늑대 울음 소리를 내는 것들, 전단 뿌리는 것들도 비정상이지만 전단 뿌린다고 남의 나라 영토를 때리겠다는 짐승들, 모두를 경계하고 나무라고 제어해야 한다.

 

최소한 1950년 6월 25일의 재판을 막는 것, 다시는 그 어리석음을 재연하지 않는 것은 우리 세대의 의무다. 70년 전 시작한 전쟁으로부터 돌아오지 못한 모든 사람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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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이만희 감독, <돌아오지 않는 해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