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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통령이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첫 번째 승리”를 외쳤다. 그리고 프랑스는 데콩핀느멍(déconfinement, 이동제한조치 해제) 세 번째 단계를 시작했다.

한때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를 “전쟁”이라고 표현했던 마크롱 대통령.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프랑스는 어떤 성공을 거둔 것일까? 새롭게 펼쳐지는 단계3에서는 어떤 상황을 마주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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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만에 얻은 첫 승리, 무엇이 달라졌기에?

바깥 풍경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마크롱 대통령이 “지금은 전쟁 중”이라며 국민에게 (공식적으로) 엄포를 놓았던 3월 중순과 이제 막 데콩핀느멍이 순차적으로 시작되어 단계3을 알리는 담화를 내놓은 6월 중순의 파리는 거의 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전시임을 강조하며 국민들의 외출을 경솔하다 비판하던 대통령은 이제 “코로나바이러스를 상대로 첫 번째 승리를 얻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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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파리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외출을 하고 있고, 유흥가의 바와 레스토랑은 밤늦은 시간까지 붐빈다.

앙발리드 광장과 센느강변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엄청난 인파가 몰려 발 디딜 틈이 없다. 2달여간의 이동제한조치에 지친 시민들이 필사적으로 밖으로 나오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6월 21일 음악 축제도 거리에 음악이 울려 퍼지고 사람들이 춤을 추며 신명 나게 보냈고, 지난 27일 토요일에는 앙발리드 광장에서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 약 2천 명이 각자의 음료를 들고 소셜파티를 펼쳤다고 한다.

누가 기획한 게 아니라 그 장소에 온 사람들이 함께 즐긴 것이라고. 시민들이 느끼는 기본적인 일상은 거의 회복된 모양새다.

그사이에 코로나에 감염되거나 이로 인해 사망한 인구는 엄청나게 늘었다. 코로나19로 가족을 잃거나 가족이 병중에 있어 고통받는 사람까지 생각하면 그 인원은 상상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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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코로나19(COVID-19) 추이>

 

이동제한조치가 해제되었고, 대부분의 상업시설이 재개했지만, 대중교통에서는 마스크가 강제되고, 회사나 실내 공공장소에서는 거리 두기가 철저하게 시행되고 있다.

르몽드에서는 르포기사를 통해 여러 회사의 사례를 다루었는데, 커피기계에 2인 이상 동시에 있을 수 없고, 서로를 마주 볼 수 없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영상 회의를 하며, 격일로 출근하며 출근하는 길목에서 건물 보안요원이 매일 사용할 마스크를 배분하는 등 상당한 제한이 있다고 한다.

정부의 정책에 우선 반대를 외치고 보는 청개구리 성향의 프랑스 사람들에게 이 상황이 달갑게 다가오지 않을 건 자명하다.

사실 신체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 그 어떤 사람에게 쉬울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려와 달리 대규모 반발 시위도 없이 대부분의 국민들이 성실하게 따라줬다는 점이 눈에 띈다.

마스크 착용 역시 상당히 생경하고 몹시 적응하기 힘들어했지만 공공장소와 실내에서만큼은 최대한 따라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시각에서는 프랑스인들의 모습이 많이 부족하게 보일 테지만, 이 나라의 사회 특성을 고려해본다면 각 개인의 엄청난 희생이 따르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프랑스 언론에서는 이동제한조치에 따르는 국민들의 모습을 쏠리다리떼(solidarité, 연대)라고 칭하며 찬양한다. 성숙한 시민의식에 대해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는 것이다.



마크롱 "우리는 잘 해냈습니다"

이날 마크롱 대통령은 담화에서 첫 번째 승리를 거론하며 “우리는 아주 잘해왔다”며 정부, 의료진, 개인의 희생과 연대에 대한 깊은 감탄과 찬사를 보냈다.

이 격려는 불안정한 현재 상황을 헤쳐나가고 있는 본인과 행정부에 대한 자화자찬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국민에 대한 존경을 보였다.

우선 각 국민이 겪는 이동제한조치로 인한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다른 국가들과 유사하다.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과 막막함은 기본이다.

국가 경제의 큰 축인 관광산업과 항공산업이 마비되는 현 상황에 경제적 붕괴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이미 많은 실업이 일어났고, 수입은 감소했으며 소비심리는 얼어붙었고, 가까운 미래조차 내다볼 수 없다.

이동제한조치가 시행되는 기간 동안 정부는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국민의 생명을 먼저 지키겠다”며 국가재정을 총동원해 기업, 자영업자, 개인 등을 지원해 왔다.

실업급여, 인건비 지원, 세금유보 등 이 제도는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이제 바닥난 재정을 어떻게 회복할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는 건 모두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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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신체의 자유를 국가에 내어주며 연대 의식을 보여준 것에 대한 보상도 필요하다. 이동제한조치가 시행되는 내내 몇몇 언론에서는 이동제한조치가 필수적인가에 대한 토론과 어떻게 단계별로 해제하면 좋을까에 대한 토론이 줄을 이었다(불필요하다 여기는 계층도 확실했고, 대부분 되게 싫어했다). 그 누구도 이 상황에 만족한 이는 없었다.

당연하다. 상황이 엄중하니 어쩔 수 없이 사회에 대한 리스펙트를 보여준 셈이다. 서로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하루 이틀 사이에 갑작스레 모든 일상을 중지해야 했던 개개인은 불만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런 국민들에 대해 존경을 표시하는 것은 대통령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승리를 외친 이유, 정부에 날아올 불화살이 두렵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이 말한 첫 번째 승리는 정부와 국민을 격려하기 위한 미사여구에 가깝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펼쳐진 모든 사안을 정부의 탓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치명적이다.

사실 이동제한조치를 취한 약 3개월간의 시간 동안 프랑스 정부는 팬데믹이 오기 전에 준비했어야 했던 문제들을 뒤늦게 그리고 급하게 해결해왔다.

검사키트와 마스크, 방호복과 같은 기본적인 의료물자 확보부터, 환자를 선별해 내는 검사 능력, 환자를 수용할 병상확보, 물적/인적 교류에 대한 정책과 관리 등에 있어서 말이다. 앞선 기사에서 언급했듯이 이동제한조치가 시작된 이후 꽤 오랜 기간 감염자 관리를 우리나라 119에 해당하는 SAMU가 전담했다.

이것만 봐도 프랑스 정부가 코로나19에 대해 얼마나 안일한 대응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국민들이 이동의 자유를 제한받고 각자의 집에 갇혀 있고, 많은 수의 국민이 감염되고 사망하는 동안,

또 병상과 치료능력의 부족으로 그 병을 고스란히 개인이 홀로 이겨내는 동안,

프랑스 정부는 뒤늦게 코로나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을 만들고, 법적 근거를 만들고, 제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바이러스 감염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하나씩 마련됨에 따라 순차적으로 이동제한조치를 해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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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1일, 1차적으로 이동제한조치가 일부 해제되고, 6월 22일에 최종 해제를 논하게 된 것이 이 맥락이다.

대응이 늦은 결과로, 4월께나 신규 환자 수, 활용 가능한 병상 수 및 의료기관의 대응 가능 수치, 감염 사슬에 대한 추적 여부 등을 따라 녹색, 오렌지색, 적색으로 지역을 구분하는 기준을 마련하며 이에 따라 데콩핀느멍 일정을 예고할 수 있었다.

이 밖에도 일반인은 5월 말이 되어서야 원할 때 검사받을 수 있었다. 확진자와의 접촉 여부를 알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StopCovid(스탑코비드)도 6월이 되어서야 배포됐다(이마저도 부실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모든 것이 너무 늦었다. 바이러스 초기대응에 실패한 정부에게 화살이 날아와 꽂히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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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프랑스 전역에서는 의료 환경이 열악하여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이 이것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고, 조지 플루이드 사건으로 촉발된 인종차별반대 시위 역시 열리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 생상드니 지역의 대부분이 유색인종이며, 가난한 노동자가 대부분인 이들은 이동제한조치 동안에도 노동을 피할 수 없었다.

코로나 취약계층으로서 상당한 불평등을 느꼈을 터다. 정부가 예의주시하는 건 당연하다. 프랑스 정부는 이 분노들을 가라앉혀야만 했다.

 

또한 주변국인 독일과 영국에서 이동제한조치에 지친 시민들이 경찰을 공격했다는 사례가 나오는 가운데, 자국 내의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국민의 분노와 희생, 고생에 대한 최소한의 공치사는 있어야만 했다.

게다가 6월 28일 일요일은 지방선거 2차 투표일이었다. 3월에도 1차 투표를 강행했던 마크롱 대통령이다(그러고 욕을 있는 대로 먹었다).

정권 후반을 향해가는 마크롱 대통령에게 이번 지방선거는 중요하다. 2차 투표는 갑작스런 이동제한조치와 함께 미뤄졌었는데, 이동제한조치가 해제되자마자 재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크롱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국민의 마음을 달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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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선거일에 마스크도 안 쓰고 대중을 만나 대중과 언론에게 혼나는 중이다)
 

 

프랑스 vs 코로나, 단계3의 시작

마크롱 대통령의 담화만 보자면 히어로 무비가 따로 없다. 불가항력적인 위기가 다가오고, 영웅은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이내 강력한 리더십과 든든한 모습을 보여주며 위기를 헤쳐가다 승리를 거뒀다며, 이제 공을 국민에게 돌리며 고결한 성정까지 보여주는 모양새다.

그렇게 6월 22일을 기해 프랑스 코로나 유니버스의 공식적인 단계3이 시작됐다.

지난 15일 EU 간의 국경이 개방된 데에 이어 오는 1일부터는 EU가 선정한 14개국과의 국경도 열 예정이다. 한국은 이 14개국에 포함되었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 바이러스가 통제되지 않는 국가나 유럽국가의 출입국을 제한한 국가는 제외됐다. 내수 경제 소비 진작과 더불어 관광산업을 통해 얻을 수입에 대해 기대하는 눈치다.

실제로 현재 샹젤리제에 있는 유명 과자점의 매출은 전년 매출액의 20% 수준이라고 한다. 관광객의 소비가 간절한 이유다.

한편, 여러 대학교와 그랑제꼴(Grands Écoles)은 9월에 있을 새 학사년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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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대표 ‘그랑제꼴’인 국립행정학교>


외국인 학생의 유치가 어려워지면서 재정적인 타격이 상당히 큰 이유다(자국 학생은 수업료가 상당히 싼 편이다. 학비가 비싼 사립학교조차 자국 학생은 경제적 사정에 따라 퍼센테이지가 다르게 적용된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따르자면 강의당 학생 수를 급격히 줄여야 해 수업을 온라인으로 오픈할지 오프라인으로 오픈할지조차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이런 점들 때문에 교육 분야에도 타격이 제법 크다. 현재 프랑스에 체류 중인 학생의 비자 연장을 최우선으로 처리한다는 담당 기관의 대응이 이해된다.

이외에도 프랑스의 경제는 여러모로 얼어붙었다. 물적/인적 교류가 끊어진 세상에서 비즈니스는 그대로 멈췄다. 이미 폐업한 회사가 줄을 이었고, 특히나 청년들은 순식간에 실업자가 되었다. 신규채용은 불투명해 실업 기간은 길어질 전망이다.

이동 제한 기간 동안 억눌렀던 소비를 하는 것조차 꽃놀이 같은 이야기로 들릴 사람들이 많다. 이례적인 경제 위기에 모두가 불안해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지출을 고려해 세수를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정부에게도 큰 위기일 수밖에 없다.



첫 번째 승리? 두 번째 세 번째도 있을 거란 말인가

여전히 프랑스에서는 적지 않은 수의 확진자와 사망자가 나오고 있다. 미대륙을 비롯해 바이러스 확산을 잡지 못하는 나라가 많고, 중국을 비롯해 2차 웨이브가 시작된 국가도 왕왕 있다.

실험 중이라는 치료제와 백신에 대한 말은 많아도 언제쯤 배포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동안 바이러스는 변형되고 진화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 내에서도 올 하반기에 2차 팬데믹이 오면 다시 이동 제한이 시작될 것이라 보는 시각이 즐비하다. 상당히 합리적인 의심이다.

이런 상황에 프랑스의 코로나 대응 단계3에는 개방과 교류라는 키워드가 있다. 프랑스 국내의 상황이 최악의 시점과 비교해 상당 부분 안정되고 있고, 유럽의 다른 국가들을 비롯해 많은 나라들과 교류를 점차 늘려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가 아님은 분명하다. 마크롱 대통령이 “첫 번째”를 말한 것처럼, 지금의 전반적인 안정세와 이동제한조치 해제는 최악의 상황을 벗어난 1단계의 성공일 가능성이 크다.

바이러스의 급격한 확산과 함께 국민 개개인의 이동을 제한했던 단계1, 국내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점차적인 자유를 보장한 단계2까지는 어느 정도 프랑스 정부의 예상대로 흘러간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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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마크롱 대통령은 국경이 개방되고 인적 물적 교류가 확대될 단계3에도 적절한 대응을 해나갈 수 있을까? 미사여구라도 좋으니 두 번째, 세 번째 승리 종래에는 완전한 승리라는 말도 들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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