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28.월요일
불타는삼겹살
‘파토’가 쓴 ‘나의 아이, 세상의 아이’ 를 읽고 나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쓴다.

저 개, 어디서 많이 본 놈이지? 상근이냐구?
자신있게 말하건데, 상근이보다 훨씬 잘 생겼다. 같은 그레이트 피레니즈라고 해도, 외모가 조금씩 다른데, 저 녀석, 정말 늘씬하게 잘 생긴 놈이었다. 그래, 지금은 이 세상에 없지만, 내 마음 속에 살아 있는 ‘루팡’이다.
나는 동물을 싫어한다. 대도시에 살 때는 동물을 키운다는 건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살아 있는 동물을 ‘애완’한다는 것은, 먹고 살기 힘들어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던 시절에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줄곧 고양이나 개를 키우지 않고 자랐기 때문에 동물에 대해 특별한 애정이 있다든가,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동물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조금씩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살아 있는 생명-그것이 무엇이든-을 절대 키우지 않겠다고 맹세한 사건이 생겼다.
열 다섯 살 무렵으로 기억하는데, 도시 변두리 단칸방에 살던 우리 가족은 문틈으로 들어오는 연탄가스 때문에 아침마다 두통에 시달렸다. 그 무렵에는 연탄가스에 질식해 온가족이 하루 아침에 몰살당하는 일이 종종 있었고, 신문이나 라디오 뉴스에도 자주 보도되곤 했다.
어느날 어머니(인지 아버지인지)가 병아리를 한 박스 사 왔다. 한 두 마리도 아니고, 스무 마리 가까운 병아리를 사 온 것이다. 나는 병아리를 키우는 것도 마땅치 않아서 병아리 사 온 것들 보고 투덜거렸다.
워낙 어린 새끼들이라 밖에 내놓을 수가 없어서 종이 박스에 담아 방에 들여놓고 키웠는데, 어느날 아침, 연탄가스 때문에 무거운 머리로 일어나 보니, 종이 박스에 오글거리던 병아리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 노란 병아리들이 떼죽음한 것을 보고 나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왜, 왜 병아리를 모두 죽게 했냐고. 어린 나이였지만, 여린 생명이 덧없이 스러진 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거다.

일부러 죽이진 않았지만, 어떻든 병아리는 모두 죽었고, 그 사건은 내 머리 속에 깊이 각인되어 그 이후에 어떤 동물도 키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세월이 많이 흘러, 대도시에서 농촌으로 이주하고 마당이 있는 곳에서 살다보니 마을 주민들이 개가 새끼를 낳았다고 강아지를 가져가라고 하셨다. 아무 것도 키우고 싶지 않았지만, 주시는 성의를 무시할 수 없고, 마당이 있으니 한쪽에서 키우면 되겠지 하고 한 마리를 얻었다. 마을 주민들은 시골집에 개 한 두 마리 있는 게 좋다고들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셨다.
개를 키우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루 두 끼 사료를 주고, 물그릇에 물을 채워주고, 아침마다 개똥을 치우는 정도의 수고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처음 데려 온 개는 진돗개 잡종이었다. 순하게 생겼다고 ‘순심이’로 이름을 지었는데, 이놈이 마침 암놈이었다. 집에서 개를 돌볼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내가 사료도 주고, 물도 주고, 똥도 치워주니까 내가 제 주인인줄은 아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강아지가 성견이 되도록 잘 키웠다. 헌데 순심이가 어느날 배가 불룩해져 있었다. 내내 마당에 묶어 놓고 한 번도 풀어놓질 않았는데, 임신을 한 것이다. 아마도 마을에서 풀린 개가 돌아다니다 눈이 맞았던 모양인데, 때가 좋지 않아서 아주 추운 날 새끼를 낳았다. 첫 출산에 새끼를 무려 8마리를 낳았다. 날씨는 몹시 추웠고, 첫 출산이어서 어미개는 무척 힘들어했다. 새끼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 매다가 결국 강아지 여섯 마리가 죽고 말았다. 그 여섯 마리를 모두 내 손으로 땅에 묻어주었다.
강아지를 땅에 묻으면서 안타까움으로 마음이 몹시 어지러웠다. 출산하는 어미개를 잘 돌보지 못한 잘못이 모두 나에게 있는 것만 같았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죽은 강아지들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그후, 살아남은 강아지 두 마리는 잘 자랐고, 순심이 한 마리에서 세 마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회사에서 강아지를 한 마리 얻어왔다. 강아지라고는 해도, 덩치가 제법 컸다.
“아파트에서는 도저히 키울 수 없다고, 우리집이 단독주택이니까, 데려가서 좀 키우라고 해서...”
아내의 직장 동료가 아파트에서는 키울 수 없다고, 마당이 있는 우리집에 맡긴 것이다. 이미 개가 세 마리나 있는 터에 새로운 개를 떠안았으니, 좀 난감했다. 게다가 이미 강아지를 여섯 마리나 잃은 뒤여서 개를 키우는 것에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다.
고민을 하다 순심이와 새끼 두 마리를 이웃에게 주고, 새로 들어온 그레이트 피레니즈 새끼만 키우기로 했다. 순심이와 새끼 두 마리는 다른 집으로 가지만 그다지 크게 섭섭하지는 않았다. 같은 동네에 있고, 절대 잡아먹지 않을 거라고 약속을 했으므로. 그리고 가끔 놀러가서 얼굴도 볼 수 있었으니 괜찮았다.
새로 온 강아지는 ‘그레이트 피레니즈’라는 종이었다.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보니, 제법 멋진 놈이었다. 혈통도 있고, 유럽에서는 귀족들이 사냥견으로도 키우고, 애완견으로도 많이 키우는 종이어서 그런지 품위가 있어 보였다.

개를 키울 때는 반드시 예방접종을 해야 하고, 심장사상충이나 다른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그런 사실을 몰랐다. 그저 우리가 똥개를 아무렇게나 키우듯 사료나 주면 되는 걸로 알았다. 그러다 어느날 심각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때 당시에 쓴 일기를 보자.
3월 4일 일요일
아침부터 비가 죽죽 퍼붓는다. 늦잠을 잤다. 아침에 아이에게 루팡 밥을 주라고 했다. 아이가 루팡에게 사료를 주었는데, 낮에 집에서 잠깐 보니 사료가 줄어들지 않았다.
저녁 약속이 있어서 준비를 하고 나가다 루팡을 봤는데, 너무나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비를 맞고 서 있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얼굴 모습이 어제 건강하던 루팡의 얼굴이 아니었다. 콧물과 침을 흘리고, 잘 걷지도 못하고, 한번 바닥에 배를 깔고 누우면 일어서지도 못했다. 숨을 심하게 몰아쉬고 있었다.
성준이네 전화해서 개 상태를 말하니까 성준이 아빠는 개가 설사를 하면 가망이 없다고 했다. 이장에게 전화해보니 지금 외출중이라 금방 올 수가 없다고 한다.
선배네 전화해서 선배에게 개 상태를 물어보니 곧 달려오겠다고 했다.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고 해도 같이 동물병원을 가보자고 했다. 그 사이에 지난번 루팡이 피보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때 갔던 동물병원에 전화했다. 한 시간쯤 뒤에 오라고 한다.
일어서지도 못하는 개를 차 뒷좌석에 밀어 넣고 읍으로 넘어갔다. 비는 쏟아지고 루팡은 차 안에서 자꾸 움직여서 자칫 사고가 날 것 같았다. 동물병원에 도착해서 한참을 기다린 다음에야 수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피보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검사하고 여러 대의 주사와 가루약을 먹였다. 호흡기 쪽에 이상이 있고, 위나 장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음식을 잘못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주인 잘못이다. 사흘 치의 약을 받았다. 전염병이 아니니 입원까지 할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동물병원에서 나와 선배를 따라 지난번 나나를 봐주었던 다른 동물병원으로 가 보았다. 읍 외곽의 산골에 있었는데, 수의사가 노인이셨다. 야생동물 지정병원이라고 했는데, 고니(백조)와 매가 병원 안에 있었고, 다친 고라니도 입원하고 있다고 했다. 루팡은 이미 처치를 끝냈기 때문에 더 이상 약을 쓰지는 못하고 설명만 해주셨다. 이 정도로는 죽지 않을테니 염려말라고 했다. 루팡을 차에 태우고 쏟아지는 빗길을 뚫고 집에 돌아와 내려 놓으니 루팡이 스스로 물을 조금 마신다. 물을 마시는 것을 보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선배와 집에서 맥주 한 잔을 마셨다.
루팡이 죽을 것처럼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워서 눈물이 날 뻔했다. 말 못하는 미물이라도 생명이 있는 것인데, 생명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3월 5일 월요일
하루 종일 눈이 흩뿌렸다. 날씨도 조금 추워졌고, 이제야 겨우 조금 겨울 날씨답다. 저녁을 먹기 전에 루팡에게 약을 주려고 내려갔더니 루팡의 상태가 다시 나빠지기 시작했다. 아침하고 점심 때도 약을 주었는데, 그때만 해도 괜찮아 보이더니 저녁 때 급격히 상태가 나빠졌다.
똥이와 함께 다시 루팡을 태우고 어제 저녁에 들렀던 가축병원으로 갔다. 눈발이 흩날리고, 산에는 눈이 약간 쌓여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루팡의 상태를 본 수의사 선생님이 어제 갔던 ‘동물병원’으로 가서 입원을 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그곳은 예전에 루팡이 한번 호되게 좋지 않은 경험을 한 곳이라 가지 않겠다고 했다. 차라리 다른 곳을 알아봐 달라고 했더니 다른 곳에 전화를 해보고는 받아줄 곳이 없다고 판단하셨는지 하는 수 없이 하루 정도 재워보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8시부터 10시까지 응급 조치를 하면서 함께 있었는데, 수의사 선생님의 손길이 인상적이었다. 개를 마치 사람, 그것도 손자를 어루만지는 듯한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손길로 다루었다. 연세가 많은 분이셨는데, 온화한 인상과 점잖은 말투 등으로 미루어 고상한 인격을 가지신 분 같아서 어제 처음 뵈었을 때 이미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두 시간 동안 있으면서 여러 조치를 취했지만 그때까지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루팡은 열이 42도를 넘었고, 열이 심해서 심하게 숨을 헐떡거렸다. 열을 내리려는 조치를 했어도 쉽게 내리지 않아서 결국 가망이 없을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면서 루팡에 대해 생각했다. 잘 돌봐주지도 못하고, 늘 묶어두기만 하고, 주인으로서 잘 한 것이 없었다.
11시가 넘어서 수의사 선생님이 전화를 주셨다. 루팡이 상태가 조금 좋아졌다는 전화였다. 열이 내리고 호흡이 가빴던 것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고 한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오늘을 넘겨봐야 하겠고, 상태가 언제 또 악화될 지 모르는 일이니 안심할 수는 없지만 그 시간까지 지켜봐 주신 수의사 선생님이 너무 고맙다.
3월 6일 화요일
오후 5시 조금 넘어 수의사 선생님이 전화를 하셨다. 루팡의 상태가 조금 좋아졌으니 어떻게 할 것인지 의논을 하자고 하신다. 곧바로 동물병원으로 갔다. 날씨가 쌀쌀했다. 동물병원에 도착하니 수의사 선생님은 잠시 외출하셨고 사모님이 맞아주신다. 루팡은 기운이 없어보였지만 따뜻한 보리차를 손바닥에 부어주니 잘 핧아 먹는다. 고열과 설사의 원인은 식중독. 마음 속에서 죄책감이 고개를 든다. 결국 내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수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루팡에 대해 의논하고, 그 밖에도 홈페이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하고,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사슴을 약 300마리 사육하고 있고, 사슴 연구에 관해서는 국내 최고라고 하신다. 고향은 평북. 이북 출신이라고 느껴지는 면이 있었다.
어제 살아 있었던 고니는 오늘 죽어 있었다. 결국 치료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던 것이다. 그렇게 죽은 야생동물은 군청에 보고를 한다고 했다.
루팡 치료비로 20만원을 드렸다. 15만원을 말씀하셨는데, 하루나 이틀 정도 더 경과를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다.
3월 7일 수요일
오후에 날씨가 흐리더니 눈발이 날렸다. 수의사 선생님이 전화를 주셨는데, 루팡이 아픈 것은 식중독 때문이었다고 했다. 위세척까지 하셨다고 했다. 루팡을 선생님께 데려가지 않았다면 아마 죽었을 것이다. 그만큼 선생님의 노력이 남달랐다.
지난번 갔었던 곳에서는 루팡의 증상을 호흡기와 장이라고 했다. 처치를 해서 일시적으로 좋아졌다가 다시 고열로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는 성의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동물에 대한 애정도 없는 것이다. 반면 선생님은 동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루팡도 운이 좋았던 것이다.
3월 8일 목요일
하루 종일 눈발이 날리고 그늘진 곳에서는 눈이 조금 쌓였다. 아침에 선생님이 전화하셔서 루팡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으니 데려가도 좋다고 한다.
루팡을 데려왔다. 루팡은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졌다. 집에 돌아와 보리차를 끓여 루팡에게 가져다 주었다. 음식을 먹지 않는다. 물은 떠 먹여주면 겨우 먹는 정도. 밤 늦게 나가보니 사료를 먹고 잠이 들었다. 다행이다.
3월 9일 금요일
가끔씩 루팡을 보러 나갔다. 루팡은 거의 물도 마시지 않고, 사료도 먹지 않는다. 손으로 물을 떠주면 조금 마시고 사료도 아주 조금 먹는다. 아마도 자기 스스로 치료를 하고 있는 것일게다.
3월 11일 일요일
루팡은 물과 사료를 아주 조금 먹는다. 하지만 가끔 컹컹 소리내어 짖기도 해서 기운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3월 18일 일요일
루팡은 사료를 거의 먹지 않고 며칠째 견디고 있다가 ‘육식’을 하는지 확인해 보라는 수의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햄과 소시지를 주었더니 그건 먹는다. 어떻게든 먹게 해야하니 당분간은 육식을 좀 주어야겠다.
식중독에 걸려서 위세척까지 해서 겨우 살아난 루팡이었다. 죽기 직전까지 다다렀던 루팡을 보면서 안타까움에 눈물이 났었다. 무릇 모든 생명은 똑같이 고귀하다. 다만, [어린왕자]에 나오는 것처럼, 서로 ‘관계’를 맺게 되면서 달라지게 된다.
우리가 파리, 모기를 망설임 없이 때려잡는 것은, 그들과 ‘특별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지, 그 생명이 하찮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개를 싫어했고, 개 뿐아니라 내가 집에서 동물 기르는 것을 싫어한 것은, 개라는 동물이 싫은게 아니라, 개를 보살펴야 하고, 나중에 죽어서 묻어주어야 하는 이별의 안타까움이 싫었던 것이다.
어쨌든, 루팡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이후 큰 탈 없이 잘 자랐다. 그레이트 피레니즈라는 종이 워낙 대형견이어서 루팡은 몸집이 나날이 커졌다. 가끔 다른 개나 마당에 내려앉은 까치를 보고 짖을 때면, 우렁찬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바리톤의 저음이 품위있게 느껴졌다.
하얀털은 자주 감겨주지 못해서 누렇게 변해있었고, 자기 집 근처를 마구 파헤쳐서 커다란 웅덩이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몹시 더운 여름날,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그때 상황을 일기로 보자.
7월 8일 화요일
몹시 더운 날. 루팡이 집을 뛰쳐나가 백씨 아주머니 댁에 있다고 전화가 왔다. 뜨거운 햇볕이었다. 루팡을 데리고 왔지만 자꾸 집 밖으로 빠져나가려고만 했다. 너무 더워서 그런가보다 하고 물을 뿌려주고 읍에 마늘과 돼지고기 한 근을 사러 갔다 왔다.
오늘이 장날이어서 마늘 두 접과 돼지고기 한 근을 사 가지고 돌아왔는데, 이미 루팡의 몸이 굳어져 있었다. 그 사이에 죽은 것이다.
루팡을 묻기 위해 수도가 옆의 땅을 파다가 도저히 팔 수 없어서 회관 앞에서 일하고 있는 포크레인 기사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땅을 좀 파 달라고 부탁했다. 5시 무렵부터 느티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물놀이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불러 루팡이 죽었다는 말을 하자 아이가 울었다. 아이의 우는 모습을 보자 참고 있었던 나도 눈물이 났다.
저녁 6시가 되어서 포크레인 기사가 와서 축대 아래 땅을 파 주었다. 루팡은 이미 사후 경직 상태로 굳어 있어서 다리를 끌어다 땅에 묻었다. 기사에게 고맙다고 돈을 2만원 주었으나 받지 않았다. 루팡을 땅에 묻으면서 한참 울었다. 루팡에게 미안했다. 주인으로서 너무나 잘 해주지도 못하고, 돌봐주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너무 정들면 헤어지기 힘들어서 가능한 정을 적게 주려고 했던 마음도 있었지만, 새끼 때 우리집에 와서 그동안 죽을 고비도 넘기고 잘 자랐는데, 이제 막 성견이 될 무렵에 갑작스럽게 죽은 것이다.
어두워질 무렵 집을 나서서 고개를 넘어 걸었다. 죽은 루팡을 생각하며, 다시 고개를 넘어올 때, 버섯 농장에서 개짖는 소리를 듣는 순간, 루팡이 생각나서 한참을 흐느끼며 내려왔다. 루팡의 죽음과 오늘 내가 처한 상황이 겹치면서 내 모습이 한없이 초라하고 어리석게 보였다. 내 스스로의 설움까지 더해져 어두운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소리내어 울었다.
아...씨바...이 글을 쓰려고 애써 외면하던 일기를 다시 보니 또 눈물이 난다. 나는 기르던 개가 죽어서 우는 사람들을 볼 때, 이해하지 못했었다. 내가 직접 겪어보니, 자식을 잃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지나 다큐멘터리 ‘워낭소리’를 볼 때, 마지막 장면에서 할아버지의 소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루팡 생각이 나서 또 엉엉 울었다. 늙은 소도 불쌍하고, 안타깝게 죽은-주인의 잘못으로 억울하게 죽은-루팡이 생각났다.
그리고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 [개를 기르다]를 보고, 루팡이 더욱 그리워졌다. 나는 예전에도 거의 개고기를 먹지 않았지만, 루팡의 죽음 이후에는 절대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루팡을 생각하면 도저히 먹을 수 없기도 하지만, 가족처럼 사랑했던 개에 대한 마지막 예의라고 생각해서다.
지금도 가끔씩 생각한다. 루팡의 그 잘 생긴 모습, 사람을 잘 따르던 순둥이, 그리고 내가 잘 돌봐주지 못한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늘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루팡, 미안하다. 나는 신을 믿지도 않고, 사후세계도 믿지 않지만, 루팡, 다시 태어나면, 부디 행복하게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평생 너를 잊지 않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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