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0일. 트럼프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18년, EU는 본격적인 ‘포스트 나토’ 체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저 자식 툭 하면 우리 협박하고...”
“돈이 있어야 국방비를 투자할 거 아냐. 지금 나라가 거덜나게 생겼는데 어디서 돈을 끌어와? 그리스 안 보여? 저것들 걷어 먹이는 거도 힘들어 죽겠어.”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아니 트럼프는 협박을 계속하고 있었다. GDP 대비 2%의 국방비 지출을 요구하는 트럼프 앞에서 EU 각국은, 특히나 EU를 이끄는 독일, 프랑스를 비롯해 힘 깨나 쓰는 나라들이 저마다의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유럽은 유럽끼리 뭉쳐야 하지 않을까?”
“미국이랑 언제까지 이러고 살 순 없잖아? EU가 완전한 독립체로 살아남으려면, 군사적으로도 완벽하게 독립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이야기가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이때 가장 고민됐던 게 ‘핵’이었다. 재래식 군비야 계속 투자를 하고, 훈련을 하면 증강할 수 있지만 핵무기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고, 이걸 섣불리 가져오거나 생산 할 수도 없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기존에 가지고 있는 국가의 핵역량을 확장하는 거였다.
다행스럽게도 EU에는 프랑스와 영국이 있었다. 둘 다 핵보유국이다. 물론, 두 나라 다 ‘수동적인’ 의미의 핵만 가지고 있다. 이들은 지상의 핵미사일을 모두 철거했다. 이들이 보유한 건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ubmarine-Launched Ballistic Missile) 밖에 없다. 이들이 세계 종말을 원하며 핵전쟁을 벌일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들은 핵 공격이 들어올 때 반격할 수단만 가지고 있는 거다.
영화 <울프 콜>에서 러시아 핵 공격(으로 보이는 테러리스트의 공격)에 대비해 잠수함을 출동 시킨 이유가 여기에 있다. 르 트리옹팡 급에서 사정거리 1만km 짜리 M51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16발이 탑재 돼 있다.
프랑스의 핵 개발과 사용전략을 보면,
“역시 엘랑비탈(élan vital : 베르그송의 ‘삶의 약동’을 말할 수도 있지만, 군사적으로 보자면...돌격정신정도로 생각하면 된다)의 나라다.”
라는 걸 느낄 수 있다. NATO에서 찬밥 대접을 받은 직후부터 드골은 핵무기 개발에 목숨을 걸었고, 한때 국방예산의 25%를 핵무기 개발에 쏟아부을 정도로 핵에 집착했다. 그 결과 1960년 2월에 알제리에서 핵실험을 성공했다. 문제는 이후에도 계속 핵무기의 정밀화를 위해 핵실험을 했는데, 문제는 대기 중에서 계속 핵실험을 하면 방사능이 퍼져 나간다는 거다.
이에 미국은,
“우리 네바다 실험장 빌려 줄 테니까 여기서 터트려라 응? 제발 좀!”
프랑스는 이걸 거절했다. 끝까지 독자노선을 가겠다는 거였다. 결국 미국 기술진이 프랑스의 무루루아 섬 핵실험장 건설 현장으로 달려가 이걸 지원했다(알게 모르게 미국은 프랑스의 핵 무기 개발에 도움을 주긴 줬다). 문제는 이렇게 핵무기를 개발했다 해도 이 핵무기를 가지고 과연 미국과 소련을 상대할 수 있냐는 거다.
나라의 체급부터가 다르다. 지금 러시아 미국이 각각 6천발 넘는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데, 프랑스는 고작 300발 넘는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 이걸로는 러시아 미국을 상대하기 버겁다. 이때 다시 등장한 게 프랑스의 엘랑비탈이다.
“(상략)사실, 어떤 인간도, 어떤 국가도 단 한 번만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잠재적 적에게 치명적 손상을 가할 수 있고, 그렇게 하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으며, 그러한 의지가 (잠재적 적에게) 충분히 인식된다면, 억지는 그 즉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하략)”
1964년 샤를 드골이 발표한 프랑스의 핵전략이다. 간단히 말해서 동귀어진(同歸於盡)이다. 프랑스가 소련을 박살낼 전력은 없다. 그러나 만약 프랑스를 공격한다면?
“내가 너한테 지는 건 확실한데, 너희 모스크바 하나는 확실하게 박살내고 죽는다.”
라는 거다. 소위 말하는 『비례억지전략』이다. 만약 가상적국인 소련이 프랑스에 대해서 핵공격을 한다면, 프랑스는 가지고 있는 모든 핵무기를 모스크바 쪽에다 쏟아 부어서, 죽을 때 죽더라도 세상을 ‘깽판치고’ 죽겠다는 거였다.
(최소한 ‘핵’에 있어서만은 프랑스는 그야말로 자존심의 총아였다. 그 흔한 대륙간 탄도탄 하나가 없어서 1980년대까지 전쟁 터지면 미라지 폭격기에 핵을 달아서 모스크바까지 날릴 준비를 했던 게 프랑스였다. 죽을 때 죽더라도 전 세계를 핵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게 프랑스였다)
지금 프랑스는 모든 지상 핵전력을 정리한 다음 SLBM만 운용하고 있다. 80년대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트럼프가 등장한 거다. 트럼프가 나토의 문제점을 말하면서 돈을 내라고 협박을 하고 있다. 더 나아가 나토 무용론에, 중동 편입설까지 들고 나왔다.
EU는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고민하게 됐다. 미국이 유럽에 제공하는 군사력 중 가장 중요한 게 뭐였을까? 바로 ‘핵우산’이다. 러시아가 유럽에 핵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주던 게 미국의 핵무기였다. 그런데 이 핵우산을 치운다면?
“우리한테 영국도 있고, 프랑스도 있어!”
라고 말하는 순간...영국이 EU를 탈퇴했다.
(영국은 유럽을 버리고 미국을 택했다. 하긴, 영국의 핵무기는 미국거라 보는 게 맞을 거다. 영국도 프랑스처럼 SLBM만 운용하고 있는데, 이 미사일은 미국에서 수입한 거다. 영국과 미국은 핵무기도 서로 사고파는 혈맹이 맞다)
남은 건 프랑스 하나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2018년 EU의 주요 국가인 독일과 프랑스는 유의미한 발표를 하나씩 했다.
“우리는 핵무기를 보유한 영국이나 프랑스에 미국 대신 핵우산을 요청하고, 그 반대급부로 재정적 지원을 하는데, 법적 하자가 없다는 걸 확인했다.”
2018년 독일 의회가 발표한 내용이다. 즉, 여차하면 미국을 버리고 유럽 독자적으로 핵우산을 구하겠다는 소리다. 물론, 독일은 정치적 문제(전범국)도 있고 하기에 핵무장을 할 순 없다(스스로 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 분위기인데...아직은...). 대신 유럽 내 다른 핵우산(영국, 프랑스)을 빌리고, 이에 대한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데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걸 선언한 거다.
독일 의회가 이런 발표를 내놓을 때 프랑스는 이에 화답하 듯 핵무기 현대화 계획을 내놓았다.
“프랑스는 앞으로 7년간 370억 유로(약 50조)을 투자해 프랑스가 보유한 핵무기를 현대화 할 것이다.”
트럼프가 나토에 대한 압박과 EU국가들의 자존심을 건드릴 때 유럽은 독자노선을 고민하게 된 거다. 이 절묘한 시기에 맞물려 영국은 브렉시트를 말한 거였다. 유럽에 남은 핵무기 보유국은 프랑스 하나가 된 거다(영국은 비용 문제로 미국의 SLBM을 수입해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유럽 핵무기라고 하기엔 모양새가 빠진다).
이 무렵부터 마크롱이 다시 한 번 엘랑비탈을 외치고 나섰다. 징병제를 다시 말했고, 국방비를 엄청나게 증액하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2025년까지 3천억 유로를 국방비로 사용할 예정이다. 이는 군 현대화 계획과 프랑스군의 전력증강을 위한 결단이다.”
트럼프가 방위비 증액을 말할 때 프랑스는 GDP의 1.8%를 국방비로 사용했다. 그러나 마크롱이 국방비 증액을 말했을 때는 이미 2%를 넘어설 상황이었다. 프랑스가 슬슬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이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부터 유럽 여러 각국들이 국방비 현실화와 군대를 다시 편성해야겠다는 움직임을 보여줬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모병제를 다시 징병제로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독일이 경제력을 기반으로 EU 내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면, 프랑스가 이제 군사력을 배경으로 EU 내에서 목소리를 높이려 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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