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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법은 그 시대의 한계선이다. 이 이상은 뚫고 올라갈 수 없다고, 또는 내려갈 수 없다고 그어 놓은 금이고, 넘치는 또는 모자라는 물을 일단 보관하는 둑이다. 그러나 고인 물이 썩듯 고인 법도 썩는다. 법(法)이라는 단어 자체가 물(水)은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去) 규칙이 있다는 뜻을 가진 것처럼, 법은 때가 되면 물처럼 흘러야 한다.

 

또 흐르는 물이 새로운 물길을 내고 주변을 기름지게 하듯 법이 사회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사회가 법을 만들지만 법이 새로운 사회를 앞당기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소아성착취 영상물을 만들고 유포한 범죄자 손정우에 대한 미국 송환 불허 판결은 ‘고인 법’의 전형이다. 언론에 보도된 판사의 변을 종합하면 대충 이런 것 같다.

 

한국 법으로 처벌받은 이를 같은 혐의로 미국에 내줘야 할 이유가 없고, 유력 혐의자를 미국에 내주면 향후 수사에 지장이 있고, 무거운 처벌을 받는 쪽으로 범죄자를 인도하는 게 범죄자 인도 협정의 취지는 아니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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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합뉴스>

 

애초에 다른 나라에서는 무기징역도 가능한 범죄가 한국에서는 상습 절도범이긴 하지만 계란 열 여덟 개 훔친 자와 똑같은 무게로 처리된다는 것은 법의 미비이자 법 정신의 실종을 의미한다.

 

이쯤 되면 법이라는 ‘난간’ 즉 더 이상 나아가지 말라고 세워야 할 경계선이 낭떠러지 위가 아니라 낭떠러지 중간에 박힌 느낌이다. 즉 소용도 없고 의미도 없는 난간. 대체 그 ‘취지’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난간. 난간은 세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 세우는가가 중요한데 말이다.

 

사법주권 운운도 그래서 동의하기 어렵다. 국제적 상식 이하의 법적 처벌이 존재한다면 그때는 법이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지,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법을 선포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했다. 그게 판사가 할 일이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소아성착취 등 악질 성착취범죄자들에게 한국에서 사업하시라고 기업 설명회를 연 격이 아닌가. 국제적 공조 하에 덜미가 잡힌 범죄자를 "우리 사법 주권 때문에” 가장 가벼운 처벌을 내리는 것으로 끝낸다면 그 ‘주권’이 보호하는 것은 대체 누가 될까.

 

수사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건 언뜻 맞는 것 같긴 한데 이미 손정우의 범죄는 털릴 대로 털려서 수사로 완성된 범죄다. 그리고 손정우가 키를 쥐고 있는 부분도 거의 없다고 알고 있다. 결정적으로 수사해서 뭘 하겠나. 손정우가 1년 6개월이면 다른 사람들은 몇 달 살거나 아예 살지도 않을 텐데. 그 수사의 ‘취지’란 무엇인가 말이다.

 

어느 사회든 ‘하수구’는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음란물’ 자체에 정색을 하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찬성하고 싶지는 않다. 포르노 보고 싶은 사람은 보도록 보고 만들고 싶은 사람은 만들면 될 것이다. 나도 적절하게는 음란하고 싶다. 뭐 욕할 사람 욕해라.

 

단 거기서 불법적인 여지가 개입되거나 소아성범죄나 몰카처럼 ‘인간성을 파괴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관용의 폭을 최대한 줄이고 ‘엄벌’의 의미를 알게 해 줘야 한다. 하수구에도 유독 물질 뿌리면 안 되는 것이다. 손정우는 독극물을 뿌려 댔던 범죄자다. 한강에 괴물 한 마리 너끈히 만들 정도로.

 

언제나 판결은 존중돼야 한다. 우리는 판사의 판결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판사의 판결을 진리로, 부동의 사실로, 지엄한 존재로 믿어야 할 의무는 없다. 즉 판결에 반대할 권리가 있다. 다시 한번 이번 판결에 반대한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판사를 까는 게 제일 먼저 생각나지만 판사는 아주 튼튼한 방패가 있다. '법대로'다. 오늘 점심 먹을 때, 누가 그랬다. "기억력은 좋은데 응용력은 제로인 인간들." 올바른 평가다.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억해야 하는' 법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법을 빨리 바꾸자. 만들자. 허구헌날 응용력 부족한 판사들 욕해 봐야 소용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