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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은 해외 순방을 기록한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으로 49차례나 해외를 다녀왔습니다. 현임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3년 차지만 이미 30여 차례의 해외순방을 기록해서 무난하게 전임대통령의 대기록(?)을 갱신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갑자기 해외순방을 언급한 것은 오늘의 주제가 ‘협상’이기 때문입니다. 협상에서 장소는 무척 중요한 요소입니다. 일명 홈그라운드라고 하는 자신의 영역에서 방문자를 상대하는 것과 적지로 뛰어드는 것의 유불리를 생각하지 못하고 무조건 자리를 박차고 나서는 것은 경솔한 행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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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협상은 되도록 내 영역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은 불문율입니다.


누가 기회 되면 대통령님께 이 얘기를 좀 전해주십시오. 설마 중요한 일 하러 나가시는 거지, 놀러 나가는 외유(外遊)는 아니실 테니 말입니다.


리더가 갖추어야 할 능력과 덕목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협상의 기술’입니다.


기업은 매일매일 협상에 임해야 하고, 그 협상의 중요도가 커질수록 결국 결정은 사장의 몫이 됩니다. 10평도 안 되는 작은 커피숍의 사장님도 해외를 동네 마실 나가듯이 돌아다니는 무역회사 사장님도 언제나 협상이 주요 업무입니다. 원자재 값을 한 푼이라도 깎아야 하고, 바이어의 어마 무시한 단가 후려치기를 지혜롭게 피해 나가야 합니다.


그동안 많은 협상을 해 왔을 테고 앞으로도 많은 협상을 남겨 놓은 사장님들한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으면 해서 협상의 기술들을 늘어놓아 보겠습니다.



1. 정보의 전쟁, 협상


사람들은 협상력에 있어 최강의 국가를 미국이라 하면 별 이견을 말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미국이 강력한 국력을 앞세워 ‘나를 화나게 하지 마라.’ 식의 Madman theory(또라이 이론)에 기초해 미국의 협상력을 두려워하지만 기실 더 강력한 것은 그들의 미사일 개수가 아니라 인공위성의 개수일 것입니다.


더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면 인공위성이 망가질지언정 궤도를 바꿔서라도 알아내고자 하는 사실을 확인하는 그들의 정보력이 더 무시무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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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법가 손무는 전쟁은 승리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일 뿐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말인즉, 충분한 준비를 한 전쟁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협상은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쟁취하는 절차일 뿐이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상대방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취득하고 그 기업이 어떤 이해관계 속에서 협상에 임하는지, 이 협상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적은 무엇인지 미리 알아내야 합니다. 반대로 내가 협상에서 얻고자 하는 것, 협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우리의 처지는 철저히 숨겨야 합니다.


이미 연재했던 기사 중 기업의 정보조사가 있습니다. 좋은 협상을 위해서라도 기업의 정보조사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니 이 연재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한 번씩이라도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관련기사: 컨설팅일지 11. 기업의 조사와 평가(링크))



2. 협상장에 들어설 때 들고 있어야 할 기술들


미국 못지않게 협상을 잘하는 집단으로 꼽는 곳이 의외로 북한입니다. 쥐뿔, 아무것도 없는 그네들이 협상장에서 좋은 실적을 내는 이유는 협상 자체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잔기술이 대단하죠.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번 기회에 한번 배워 보겠습니다.


 (1) 성동격서(聲東擊西)


전투에서 고의적으로 동쪽 방향에 소란을 피우고 거기에 적이 정신이 팔린 사이에 서쪽을 친다는 고사성어죠. 협상에서도 이런 성동격서는 효과적인 테크닉입니다.


이런 경우입니다. 우리 회사는 원자재 공급사인 A사가 제시하는 MOQ(Minimum Order Quantity, 최소구매 수량)가 부담스럽습니다. 그런데 딱히 A사를 대체할 수 있는 공급처도 없는 상황입니다. A사에서 구입하는 원자재 의무구매(?) 수량을 줄일 수 있다면, 현금은 원자재로 묶이지 않고 회사자금 운영에도 도움이 되는 상황입니다.


자. 우리의 협상 목표는 MOQ 무효화로 결정했습니다.


이제 A사와 협상장에서 만납니다. 그리고는 MOQ와 관련된 얘기는 한 마디도 안 하고 여신(與信)을 붙잡고 늘어집니다.



“우리가 귀사에서 부품을 납품받은 후 제조 과정을 거쳐 납품하고 나면, 그 대금이 빨라야 3개월 만에 들어오게 됩니다. A사에서 요구하시는 당월 말 현금결재는 저희한테 큰 부담이 됩니다."


“우리 회사에 납품해 주시는 협력사들 중 90%가 익월 말 현금결재입니다. 그간 저희가 보여드린 신용을 생각하시면, 여신(결재 유예기간)을 좀 주셔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여신에 대한 문제로 몰아갑니다. A사 입장에서는 곤란할 테지요. 쉽사리 동의해 주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한 시간이건 두 시간이건 계속 결제 대금에 대한 여신만 얘기합니다.


그리고 결국 합의되지 않는 여신에 대해 져주면서 MOQ를 줄이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A사의 입장을 생각해서 여신은 조만간 다시 한 번 말씀하기로 하시구요. 그 대신 MOQ를 1,000개에서 500개로 줄이는 거로 합시다.”



여신에 지친 상대방은 그저 MOQ 쯤이야 하고 협상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2) 송곳은 작은 구멍을 큰 구멍으로 만든다


협상을 통해 큰 이익을 얻기 위해 처음부터 무리하고 강력한 요구를 주장하면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협상을 통해 일의 시작을 만들어 내고 이후 과정에서 자신의 이득을 더 챙겨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을’이라는 기업은 ‘갑’이라는 기업에게 원자재를 납품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갑’이라는 기업은 우리에게 많은 물량을 발주하지 않을 생각이고, 단순히 1회성 납품에 낮은 단가로 구입하길 원합니다. ‘을’은 협상에서 ‘갑’의 의견을 수용합니다. 그리고 실제 납품단계에서는 운송비를 ‘갑’에게 요구합니다. “저희가 그 단가에서 운송비까지 부담하기는 어렵습니다. 이해를 부탁드립니다.”와 같이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는 거죠.


이런 사례는 의외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사짐 센터에서 처음에 낸 견적보다 이사 후 추가 물품이 있었으니 더 돈을 달라는 거나 납품 시에는 저가로 물건을 판 후 유지보수에서 이익을 챙기는 정보통신 공사업 등도 여기 해당되겠죠.


일단 거래를 만들고 그 다음 과정에서 손해를 만회한다. 하지만 상대방은 기분 좋게 받아들이지는 않죠. 어찌 보면 하수의 협상일 수도 있습니다만 어떻게든 첫 거래를 열고 자신의 능력과 신용을 보일 기회로 삼겠다면 그때는 고수의 협상기술일 수도 있겠습니다.


 (3) MOU라는 만병통치약?!


가끔 언론에서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서 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호들갑을 떠는 걸 보셨을 겁니다. MOU라는 것 자체가 상호 간에 ‘앞으로 잘 해보자.’ 이외의 구속적 계약은 하지 않는 것이기에 제가 굳이 호들갑이라고 말했습니다만 사업하시는 분들이라면 MOU라는 걸 잘 활용하고 이해하셨으면 합니다. 당장은 실익이 없으나 그저 서류 자체를 의미 있게 보는 정부사업 평가 등의 근거자료를 위해 체결하는 해 두는 것도 좋고, 구체적인 협상을 시급하게 진행하기 어려울 때 사전단계로 시간을 벌 때 써도 좋습니다.


유의하실 사항은 상대방이 내미는 MOU에 은근히 숨어있는 독소조항이 없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컨설팅했던 지방의 향토기업은 대학교와 공동연구개발에 관련된 MOU를 체결했는데, MOU에서 특허권에 대한 권리를 대학이 갖는 것으로 슬쩍 써 놓아서 특허출원에서 분쟁이 발생한 적도 있습니다.


이런 표현이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MOU는 MOU여야 하지, 계약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4) 스탈린 협상법


냉전 시대 세계 최고의 강국인 미국이 했던 협상은 힘이 너무 쌔서 대적 못 할 미친놈 전략이었다면, 북한이 억지를 부리면서 협상장에서 사람 혼을 빼놓는 식의 협상은 스탈린 협상법이라고 합니다.


협상 도중 갑자기 일어나 김일성 초상화에 대놓고 경례를 하는 행동 등 돌출행동을 하면서 상대방의 정신줄을 빼 놓는 거죠. 다분히 의도된 것이나, 협상장에서 이런 행위를 보고 쫄게 되면 보통의 사람들은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라며 양보를 하게 됩니다.


협상에서 양보는 결국 나의 손실이죠. 쫀 거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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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협상의 방법론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협상장에는 나오지 않은 자신의 사장을 핑계로 “저 이번 협상에서 나쁜 결과를 가져가면 짤립니다. 우리 사장님이 저 죽일 거에요.” 이런 식으로 나오는 사람도 보셨을 겁니다. 협상을 학문적으로 공부하는 분들은 Ladder 기법이라고 부르는데, 상대방에게 “너네 사장이 널 죽이지. 날 죽이냐!”, "야! 권한도 없는 너 말고 사장 나오라고 해!"라고 하며 대차게 협상에 임해야 하는데, 협상에 능하지 못한 사람들은 제법 이런 술수에 잘 넘어갑니다.


양보를 할 때는 조금씩, 엄살을 부려가며 나눠주는 것도 협상학을 하는 사람들은 살라미 소세지 씨어리라고 그럴듯한 이름을 짓고 있는데, 협상장에서 갖추고 있어야 할 스킬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열거한 것과 같은 잔재주에만 힘을 쓰다 보면 협상 자체의 본질을 잊고 이기고 지는 것에만 집착하게 되어 단기적으로는 이익일지 몰라도 먼 훗날 후회할 협상을 할 수도 있기에 협상장에서 쓰는 잔기술들은 길게 다루지 않으려고 합니다. 음식의 레시피를 외우는 것보다 중요한 건 어느 음식에든 쓸 수 있는 장을 담그는 기술이겠죠. 큰 기술,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이 우선일 테니 좀 더 들어가 보기로 하지요.



3. Top Line과 Bottom Line


변화무쌍한 상황과 시시각각 유불리를 계산해야 하는 협상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있나요? 라는 질문에 저는 반드시 원칙이 있다고 답합니다.


순간순간 감정의 굴곡 속에서 멀미가 날 정도로 하늘로 오르고 무저갱으로 추락하면서도 정신 바짝 차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 순서와 절차마저도 혼미해지는 긴 시간 속에서도 정신 차리고 반드시 한번은 거쳐야 할 것, 협상장에 나를 내보낸 조직과 그 구성원이 주문했던 변하지 않는 협상의 기준점이 바로 상한(Top Line)과 하한(Bottom Line)을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지리한 협상을 마무리해야 할 때, 그냥 접는 것이 아니라 확인의 절차로서도 상한과 하한은 제시해야 합니다.


내가 사는 입장일 때는 상한선을 제시해야 합니다. 1억 원 이상은 절대 지불할 수 없다. 와 같이요. 반대로 내가 파는 입장일 때는 하한선을 제시해야 합니다. 2억 원 이하로는 팔 수 없다. 이렇게 명확하게 제시되어야 합니다.


이 최후통첩을 통해 긴 탐색전을 마치고 협상을 더 할 것인지, 서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새로운 협상안을 들고나올 것인지, 아니면 이별을 고할 것인지 결정하게 됩니다.


“몰류~ 그거 개나 줘버리지. 뭐.”로 끝날 게 아니라 “내가 제시하는 이 금액은 최후통첩입니다.”라고 명확히 의사를 전달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듯 명확한 의사 전달은 만약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협상에서 나의 진심과 신용을 확인하게 하는 비즈니스의 근간을 마련해줍니다.


끝내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협상장에서 계속 무례했으며, 나른 갖고 논 거 같은 사람과는 다른 이미지를 심어주는 거지요. 이 협상장이 모든 것이라 생각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은 하수요, 이 협상은 수백 번의 승부 중 한 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고수인 거죠.



4. 좋은 협상, 나쁜 협상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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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 & Take을 했던 Take & Give를 했던 주고받는 협상은 좋은 협상입니다.


남이야 나 몰라라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협상에 임하는 사람은 스스로 미래의 곤궁한 위치를 찾아가는 꼴입니다.


비즈니스에서 무슨 공자 왈 맹자 왈 같은 소리냐고 하실 수 있는데, 제가 경험해 본 컨설팅 사례를 풀어 놓아 볼 테니 혹시 비슷한 일은 없었나 비교해 보셨으면 합니다.


 (1) 대충 덮어버린 협상, 그리고 돌아온 쓰나미


농어촌에 지원되는 국고보조금 지원 사업 중에는 영농조합법인과 같이 수혜자들이 하나의 법인을 만들어야만 지원되는 사업들이 있습니다. 개인기업처럼 수혜자가 특정인으로 제한되거나 작목반 같은 법인격이 아닌 단순한 단체에는 지원을 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지원되는 자금이 수십억 원이 되기도 하니 이런 국고보조 사업의 법인 설립 과정에서 다툼이 일어나는 게 일상적입니다. 누가 더 많은 지원을 받을지, 법인의 임원은 누가 될지 등등을 협의하다 보면 그 과정은 시끄러운 게 당연한 거지요.


이때 중재에 나서는 이들은 지역의 지자체 공무원인 경우가 많은데, 제가 보았던 A라는 군의 공무원은 국고보조금 사업을 최대한 빨리 성공리에 마치고 자신의 실적으로 삼겠다는 생각에 ‘날 믿고 설립총회 의사록에 인감 찍으시라.”라고 하고선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설립된 법인은 정부에 제출했던 사업계획서와는 달리 사업 시작 몇 해 만에 생산시설이 멈춰 섰고 법인 조합원 간에 고소고발이 난무했습니다. 또한 당시 중재를 한다며 자신의 성과와 실적에만 몰두했던 공무원은 이 정부지원 사업의 실패 사례로 매년 타 지자체에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협상은 어떤 일보다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큰소리 한 번 듣지 못하고 곱게 자란 이들에겐 고성이 난무한 그 협상장이 두렵고, 어떨 땐 문을 잠그고 협의가 되기 전까진 여기를 뜰 수 없다고 윽박지르는 깡패 같은(?) 사람들 앞에선 내가 왜 여기서 목숨을 걸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치열하고 거친 협상의 과정에서 숨김없이 상호 이해관계가 파악되고, 작은 수준의 양보와 배려라 생각하지만 그 속에서 서로 간에 큰 신뢰가 싹트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비겁하게 힘들고 두렵다고 그냥 대강 덮었다가는 미래에 어떤 재앙이 찾아올지 모르는 일입니다. 빠른 협상, 조속한 타결,.. 이런 표현들이 절대 좋은 협상을 대표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얼른 피한 자리, 귀찮아서 도장 찍어준 합의서와 동의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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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ive & Take, 돈을 주고 기회를 얻다


F라는 회사는 작은 유통회사였습니다. 커다란 골프채도 팔고, 조그마한 컴퓨터 마우스도 팔고, 그때그때 돈이 되지 않을까 싶은 것들은 다 손대는 회사였습니다. 하지만 'dapara'라는 광오한 뜻(?)의 이메일 아이디를 명함에 새긴 영업사원들이 다 그렇듯 그만큼의 큰 재미를 보지는 못하고 있었지요.


이 회사가 C라는 벤처기업을 만납니다. C에서는 마침 자신들이 개발한 신제품을 판매해야 하는데 F라는 회사와 또 다른 두 개의 유통 회사까지 총 3개사가 이 벤처기업의 대리점이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C社에서는 대리점들에게 손을 벌리게 됩니다. 벤처기업의 자금난이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보니, 이 회사도 비슷했어요. 궁여지책으로 자금 확보를 위해 대리점 보증금을 요구한 거지요.


하지만 유통하는 회사들 입장에서는 쌍팔년도도 아니고 무슨 보증금이냐고 난리가 났습니다. 결국 3개의 대리점 중 오직 F社 만이 보증금을 냈고, 나머지 두 개의 대리점은 뒤돌아보지 않고 떠났습니다.


F社는 왜 보증금을 냈을까요? 이 회사의 사장님은 수시로 벤처기업을 방문했습니다. 밤 12시, 휴일, 어떨 때는 커피를 한 박스 사 들고, 어떨 때는 치킨을 몇 마리 튀겨서 손에 들고, 마침 이 근처에 왔다가 생각나서 들려봤다고 너스레를 떨면서요.


F社의 사장님은 이렇게 잠입(?)해서 벤처기업이 개발하고 있는 신제품의 정보를 알게 됩니다. 마케터들이 말하는 속칭 'Killer App', 대박 신제품이 개발되고 있었고, 개발자금이 상용화 직전 정말 막판에 떨어져 버린 벤처기업이 보증금을 요청했던 건 정말 신제품 개발 때문이었다는 진심도 확인했습니다.


F社는 대리점 보증금을 내는 대신 신제품의 독점판매권을 요구했습니다. 당장 눈앞에 불을 꺼야 하는 벤처기업에서는 이에 바로 수긍했고, 결국 신제품은 F社를 통해 시중에 유통되었습니다. F社는 단숨에 설립 이후 역대 최대 매출액을 올렸고, C社는 F社를 마치 광고 카피처럼 어려울 때 손을 잡아준 진정한 파트너로 인정했습니다.


이 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데요. 과거 C社의 대리점으로 있던 회사 중 하나가 이 신제품에 대응하는 제품을 수입했다가 C社의 특허를 침해하게 돼서 어렵게 수입한 제품을 판매하지 못하는 빅엿을 먹기까지 합니다. 사실 유통회사의 입장에서는 몇 푼 되지 않는 보증금이었는데, 그때 발을 담궈 뒀으면 좋았을 걸 또 욕심을 있어서 되려 경쟁제품을 수입해 큰 손해를 본거지요. 이 회사의 사장님이 F社의 사장님만큼은 아니더라도 좀 더 소상히 살피고 C社와의 보증금 협상에 임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네요.



저는 오늘 협상의 기술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는데요. 이미 며칠 전부터 준비해 둔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했지만 공교롭게도 정부의 위안부 합의와 이 글이 같은 시기에 올라가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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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연합뉴스>


대한민국에서 이런 역사적 굴욕에 가까운 협상이 나온 게 참으로 안타깝고 분한 일이지만, 순순하게 협상 자체에 대해 배워보겠다는 생각으로 오늘 협상의 주제에 맞처 박근혜정부의 위안부 협상을 평가해 보겠습니다.


수십 년간 이어진 한일협상, 그 협상을 더 미루지 않고 박근혜 정부는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자신들의 치적으로 남기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오늘 글 중 협상의 방법론은 차제하고라도 강조했던 협상의 기술, Top Line과 Bottom Line을 생각해볼까요?


우리 정부는 일본과의 협상에서 반드시 하한선(Bottom Line)을 제시해야 했습니다. 그 하한은 무엇이어야 했을까요?


협상의 마지노선이며,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선을 제시하고 이번 협상에서 타결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다시 돌아가 우리의 최후통첩에 대한 협상안을 다시 들고 오라고 당당히 말했어야 할 Bottom Line 말입니다.


그건 분명히, 위안부 할머니들과 또 그 곁에서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이 수십 년간 가다듬은 요구사항이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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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에 대해 이 말을 하지 않고 글을 맺을 수는 없을 것 같군요.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도, 외교에서도 ‘무능함’은 ‘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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