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와 전(前)근대 전투의 차이점이 뭐냐 물으면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거다. 산업혁명에 의한 대량생산과 총력전 체제의 등장, 민족주의 국가의 등장에 의한 전쟁의 거대화 등.
그렇다면, 근대로 한참 넘어온 20세기와 그 몇 년 전인 19세기의 차이는 무엇일까?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전투에 의해 죽은 병사의 숫자가 질병에 의해 사망한 병사의 숫자를 앞섰다.”
20세기에 들어선 후 군대는 더 이상 ‘질병’에 의한 대규모 사상(비전투 손실)을 겪지 않아도 됐다. 소소하게 병에 걸려 전선에서 이탈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전처럼 부대의 절반 이상이 병에 걸려서 죽거나 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는 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언뜻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하나씩 뜯어보면 이건 당연한 거다.
첫째, 당시엔 백신이나 예방접종 같은, 지금에 있어선 상식인 의료체계가 없었다.
둘째, 당시의 위생관념은 지금의 그것에 비하면 거의 없다시피했다.
셋째, 이런 상황에서 수 천, 수만 명이 좁은 곳에 몰려 있다.
넷째, 이런 이들이 평소 낯익은 곳이 아닌 외지를 다닌다.
다섯째, 외지에서 수많은 낯선 이들(외국인 포함)과 동식물과 접촉한다.
전염병이나 질병에 걸리는 게 당연하다.
물만 봐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때엔 선비나 양반을 귀양 보낼 때 외진 섬이나 궁벽한 시골로 보냈다. 이 때 체력이 약한 자들은 가서 적응도 못해보고 죽기도 했다. 왜? 물갈이(Travellers diarrhea) 때문이다. 해당 지역의 석회질과 미생물 함량이 이제까지 마셔온 물과 다른 경우 이에 대한 거부반응으로 설사를 하는 거다.
군대의 경우는 이동하는 루트가 제한적이다. 숙영지와 식수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취수원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데, 때에 따라 더러운 물을 마시기도 해 수인성 질병에 걸릴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 천, 수 만의 사람들이 좁은 구역에 뭉쳐있다면 전염병은 기본적으로 깔려있지 않겠나(없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고대부터 ‘전염병’이나 ‘질병’에서 자유로운 군대는 없었다. 요즘에는 방역이나 병사들의 위생에 신경을 쓰니 발병빈도나 정도가 낮아진 거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사람이 있고, 집단생활을 한다면 전염병의 확률은 언제나 있다.
우리가 그동안 간과하고 있었지만, 전쟁터에서 죽은 병사 중 상당수는 ‘병’으로 죽었다. 영광스런 전투의 흔적이나 명예로운 전사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전장에 가서 ‘전염병’으로 죽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까지 그랬다.
보어전쟁(Boer War)은 19세기 말에 시작해서 20세기 초에 끝난 전쟁이다. 이 전쟁 덕분에 보병들은 이제 엎드려 쏴도 할 수 있게 됐고, 카키색 군복도 입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인종학살과 강제수용소가 등장한다(하여튼 세상에 온갖 나쁜 건 영국 놈들이 다 만든다).
1차(1880~1881)와 2차(1899~1902)로 나뉘어져 벌어진 이 전쟁에서 영국은 ‘대영제국’이란 이름에 먹칠을 한다.
“시골 무지랭이”
라고 생각했던 보어인들의 사격술에 판판히 깨진 거다(사격술도 사격술이지만, '엎드려쏴'의 위력은 대단했다). 우리에게 ‘대포’란 거의 대부분 곡사포를 의미할 거다. 고각으로 압도적인 탄을 발사하는. 그러나 1차 대전 때까지 대포하면 떠오르는 상식은 ‘평사포’였다. 따라서 포를 아무리 쏘아 붙여도 참호 안에 들어가 있으면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보어인들은 참호를 팠다.
뭐, 이건 오늘의 주제와는 거리가 있으니 이쯤에서 넘어가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아프리카나 동아시아 지방 같이 ‘더운 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병은 '장티푸스(typhoid fever)'다. 우리나라에서도 꽤 유명한 병으로, 다들 입에 한 번씩은 올려봤을 ‘염병(染病)’을 말한다.
염병, 아니, 장티푸스는 수인성 질병, 즉 '물을 통해서 전염되는 병'이다. 따라서 ‘위생’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고 사람 간에 전염도 꽤 쉽게 벌어진다. 미국에서는 ‘티푸스 메리’라 불렸던 한 요리사가 53명에게 전염을 시켰던 사례도 있다.
물을 통해서 전염되는 병 / 사람 간 전염이 쉬움
딱 보면 알겠지만, 장티푸스는 군대와도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보어전쟁 때 영국군이 장티푸스로 고생을 심하게 했다. 더운 날씨, 아프리카, 영국군은 아무 생각없이 북쪽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식수’였고, 행군 중 물을 만나자마자 바로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강물이 장티푸스균으로 오염돼 있었다.
물론, 당시에도 장티푸스균에 대한 연구가 있었고, 장티푸스 예방에 대한 방법론도 있었다.
“장티푸스를 확실히 차단하기 위한 방법은 ‘살균’이다. 마실 물과 먹을 음식을 끓이거나 데우기만 해도 장티푸스를 예방할 수 있다!”
다만 알고 있더라도 지키기 어려웠다. 섭씨 40도가 넘어가는 아프리카 땅에서 장시간 행군을 하다 만난 강 앞에서,
“위생과 건강을 위해 물은 반드시 끓여 먹어라.”
라는 명령이 먹힐 수 있을까? 이런 상황을 예측해서 정수용 필터를 가져왔으나 이미 그 동안 행군하면서 사용했기에 이때쯤이면 ‘무늬만’ 필터였다.
그렇게 병사들은 강에 뛰어들었고, 물을 퍼마셨다.
잠시 잠깐의 청량감과 해갈의 기쁨을 누렸지만, 며칠 뒤부터 치른 대가는 혹독했다. 2차 보어전쟁 기간 동안 ‘질병’을 사유로 귀향한 병사의 숫자가 약 64,000여명 정도였다.
1900년 2월부터 1902년 말까지 질병에 걸린 영국군 병사의 숫자가 42,741명이고, 이 중 11,327명이 사망한다. 같은 기간 전투에서 사망한 영국군 병사의 숫자는 6,425명이었다. 질병 사망자의 숫자가 전투 중 사망자 숫자의 7배나 더 많았다.
20세기 초반의 전투이지만, 이때도 군대 내 전염병 사망자 숫자가 전사자 숫자보다 더 많았다. 군대와 전염병은 원래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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